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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 만화가 정석호의 이미지 통섭

수묵 만화가 정석호의 이미지 통섭

먹을 갈고 난을 치는 동양화가이자 서예가. 수려한 동물 그림으로 일본에서 먼저 책을 낸 수묵 만화가. 어린이 만화와 성인 만화를 함께 어우르는 만화가. 자신의 작품을 전주 합죽선에 접목한 아트상품 기획자. 영화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대역 배우. 이미지 통섭의 작가 정석호를 씨엔씨 레볼루션 이재식 대표가 만났다.


글 이재식  |   사진 최민호



‘고헌’ 정석호는 동양화가다. 수묵화를 그린다. 그는 호랑이 를 그리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고헌(古軒)은 옛 고, 처마 헌. ‘옛집’이란 뜻인데, 옛것을 좋아하는 품성을 보고 스승인 야 석 조원복 선생이 지어줬다. 그런 그는 만화가다. 만화는 한재 규 선생 문하에서 배웠고, 하승남 화실에서 데생을 하며 만화 팀을 이끌었다. 그렇게 왕성한 만화 작업을 하던 20대 후반, 동양화를 시작했다. 이유는 명료했다. ‘우리 그림이 좋고, 붓 이 좋아서.’ 그에게 동양화를 그리는 일은 신명이 나는 일이었 다. 우계 등 대가들을 찾아다니며 배웠다. 전시회를 열고, 자 신의 낙관을 찍은 그림을 팔고, 서예도 배웠다. 그렇다고 만화 를 그만둔 건 아니다. 한쪽에 무게를 두던 시기가 있었지만 양 쪽을 병행했다. 동양화만 해선 먹고살기 어려웠고, 만화만 하 기엔 붓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정석호는 2000년에 들어서야 자신의 이름을 건 만화를 내 기 시작했다. 정신호라는 필명으로 야컴 출판사에서 <사신>, <쿠데타>, <강호 영웅전>을 냈다. 그러다 어린이 만화와 인 연을 맺었다. <WHY> 시리즈를 비롯해 교과서 만화 등을 여 러 해 동안 맡아 그렸다. 2000년대 중반에서 지금부터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만화 시장에서 학습 만화의 지분은 절반 이상이었다. 그는 시장 흐름에 따라 참 부지런히 일했다. 동양 화와 병행하며 만화에 몰두했다.

정석호에게 만화와 동양화는 ‘한길’이다. 두 갈래의 길이 아 니다. 그걸 증명해 보인 게 <백호(白虎)>다. 이 책은 2014년 초 일본 후타바샤에서 먼저 나오고, 국내에선 여섯 달 후에 출간하며 한국형 그래픽 노블의 탄생을 알렸다. 표지에 형형 한 눈으로 버텨 서 있는 흰 호랑이를 보면 동양화집인가 싶다. 하지만 표지를 넘기면 만화다. 잠시 숨이 멎는 듯한 정적을 맞 게 된다. 붓의 춤사위가 한 폭의 병풍처럼 펼쳐지다 만화 칸칸 으로 엮어져 이야기를 토해낸다.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의 조 합이다. 고헌의 만화 <백호>에는 말풍선이 없다. 그림 위에 붓글씨를 흘린다. 우리 글이 나비 떼처럼 날아든다. 호랑이가 주인공이니 인간의 언어를 넣지 않았겠지만, 작정하고 언어를 배제한 것처럼 보인다. “한재규 선생한테 그림을 배울 때, 선생 작품 중에 글 없는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어린 왕자 이야기’였던가? 굉장히 인상적 이었다. 호랑이 만화를 그리면서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의 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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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호 작업의 흔적은 화선지에 배어 있다. 화선지에 그린 그 림들이 배접이 되거나 날것 그대로 화실 벽면 여기저기 붙어 있다. 혹은 선반에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런데 이 큰 그림들이 그의 책에서는 만화 한 칸을 차지할 뿐이다. 이 그림들을 만화 의 흐름에 맞춰 편집하는 것이다. 비로소 고헌 정석호의 30년 작품세계의 맥이 짚힌다. 만화와 동양화가 이렇게 만났구나. 이미지를 합성하는 건 만화에서는 일상적인 작업이지만, 그 처럼 전혀 다른 두 장르를 접목한 사례는 드물다. 이건 단순히 기술이 아니고 철학이다. 이미지의 통섭이랄까. 대단한 실험 이고 성공적인 콜라보레이션이다. “수묵화에 색을 옅게 들이니 수묵담채화가 맞다. 이걸 다시 만화로 구성하는 건데, 칸에 넣으면 공간이 생기고 시간이 벌 어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바로 만화다. 수묵담채 만화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그린 원화는 한 장씩 촬영하여 데이터로도 보관한다. 화실에는 고급 기종 DSLR 카메라와 조명 장치까지 갖췄다. 이렇게 공력을 들이는 원화의 값은 얼마일까? “글쎄… 10호(1호가 엽서 크기)를 150만 원 정도 받는다. 병풍 처럼 큰 그림은 700만 원에 판다. 유명 도예가의 천만 원 하는 작품과 내 작품을 서로 맞바꾼 적도 있다. 내가 워낙 도자기를 좋아해서. 하하.” 문득 펜으로 호랑이를 그리는 고 안수길 선생이나 붓으로 말 과 춤을 그리면서 가끔 호랑이를 그리는 백성민 선생이 생각 났다. 뜻밖에도 안수길 선생은 한재규 선생 화실에서 동문수 학한 사이였다고. 또 백성민 선생과는 온라인 블로그 이웃으 로 그림 정보를 나눈다고 한다. 

정석호의 동양화는 새롭게 진화한다. 바로 아트상품으로 개발하고 있는 것. 전주 부채 명인의 합죽선에 직접 원화를 그 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 민예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 상 품들은 인사동 아트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한국의 멋이 그윽 하게 배인 부채는 참 멋스럽고 들었을 때 손맛도 좋다. 또 하나, 정석호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 현장의 대역 배우이기도 하 다. 등장인물을 대신해 난을 치거나 붓글씨를 쓴다. <다모>를 비롯 <연개소문>, <황진이>, <별순검>, <서동요>, <허준>   등에 출연했다. 최근엔 영화 <도리화가>에도 출연했다. 지난 해 부천국제만화축제 때는 전시 부스를 열었다. 부스 안에서 작업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했다. 젊은 관람객들 과 여성 관람객들의 반응이 좋아 보람이 컸다고. 최근 정석호는 웹툰 플랫폼 탑툰에서 붓으로 그리는 만화<여윈 칼> 연재를 시작했다. <백호> 이후 또 다른 전환기를 맞은 것. 만화 시장에 웹툰 플랫폼이 앞다퉈 나오면서 연재 지 면이 늘어나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여윈 칼>도 <백호>처럼 각각의 그림을 화선지에 그리고 촬 영한 뒤에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만화 편집을 한다. 정석호의 수묵담채 만화는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지금 우리 만화는 해외로 나가고 있다. 정석호도 채비를 갖춰 가고 있다.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그이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그의 그림은 어떤 장르를 만나느냐에 따라 새 로운 콜라보레이션의 콘텐츠로 재탄생할 수 있다. 그가 시도 하고 있는 수묵담채 만화 퍼포먼스는 새로운 예술 장르로 개 척될 수 있을 것이다. 독특한 자신만의 화풍과 작법으로 새로 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수묵담채 만화가 정석호. 그의 이미지 통섭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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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만화가를 MANAGA에!

노미영(살례탑) 일본에서 작품을 발표하는 실력파다. 여성 작가인데 힘 있는 그림을 그려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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