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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닥터 프로스트가 한 달을 사는 법

이종범, 닥터 프로스트가 한 달을 사는 법 

2011년 어느 날, 독자만화대상 발표 뒤 집행부 계좌에 한 후원금이 찍혔다.  송금 명목은 ‘닥프 본선 진출 기념’. 신인 만화가 이종범의 패기였다. 그 신인 만화가 이종범은 이제 <닥터 프로스트>로 인기 웹툰 작가가 되어있다. 독자만화대상으로 인연을 맺은 집행위원 김민태가 오랜만에 이종범을 찾았다.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웹툰 작가의 ‘작업’과 ‘한 달 살이’를 탐색하기 위해.

글 김민태  |   사진 김기태



만화계 데뷔 때를 추억해 달라. 어린 시절부터 만화가가 꿈 이었다. 대학(연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만화에 도움 이 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화가가 될 사람은 결국 만화를 그리게 된다. 실력이나 여건이 부족하니까 지금 못 한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하게 된다. 부족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나하나 시작해 나갔다. 나는 흑역사나 미숙 한 상태에서 했던 데뷔작에 대해 관대하다. 왜냐하면 나아진 지금이 보이기 때문이다. 누적된 결과물은 멘탈 관리에 도움 이 된다.

친하게 지내는 만화계 동료들과는 어떻게 만났나? 재즈팀 에서 연주했던 인연으로 음악 웹진에 만화를 연재했는데, 내 블로그에 정필원 작가가 안부 글을 남겼다. 정말 좋아했던 작 가라 기뻤다. 박재수 작가도 소개 받았다. 두 사람이 ‘카툰 부 머’를 알려줬다. 고독한 생활에 찌든 때라 정모에 열심히 참여 해서 ‘카툰 부머’ 라디오 방송에 막내 스태프로 합류할 수 있 었다. “나도 만화가입니다.”라며 반지하방에서 분전했던 시기 였다. 그리고 운 좋게 공동 작업실에도 입주했다.

동료 작가들에게 무엇을 배웠는지? 포토샵 레이어의 속성 을 알려준 제나 작가, 빛 효과를 탁월하게 쓰는 법을 알려준 정필원 작가 그리고 억수씨, 권혁주, 정석우 등 동료 작가들로 부터 만화 작법에 대한 도움을 받았다. 웹툰을 보다가 궁금한 테크닉이 있으면 전화하곤 했다.

'정보 만화’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시행착오는 없었나? 초기작인 재테크 만화 <투자의 여왕>은 소중하지만 부끄러 운 작품이다. 만화가 가진 정보를 드라마틱하게 녹여서 재미 를 줘야 했는데 실패했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로 느낄 수 있는 간접 경험을 선사하지 못했던 거다. 어떻게 해야 이야 기에 정보를 재미있게 녹여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초기작 <투자의 여왕>부터 스케치업 프로그램을 썼다고 들었다.  맞다. 그때 스케치업을 처음 썼다. 연재는 기약이 없 으니 ‘마라토너처럼 저 전신주까지만 뛰자.’고 마음속에 전신주를 박아놓고 살던 때였다. 그 전신주 중 하나가 스케치업이 다. 무기력했다가도 하루 종일 스케치업으로 뭔가를 계속 세 우고 만들고 집중하다 보면 활기를 찾게 되더라. 자연히 실력 이 늘고 데이터베이스도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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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인 <닥터 프로스트>(이하 닥프)에 그간 변화가 있 었다면? 시즌 1, 2 총 122화를 그리며 몇 번의 변화가 있었다. 시즌 1 중반에 캐릭터 모습의 진화가 있었고, 시즌 2 후반부터는 표현이 더 세밀해졌다. 연재 초반의 과감한 구도나 연출은 갈 수록 부드러워졌다. 필요한 자료도 처음엔 ‘게티 이미지’에서 사진을 구매해 참조했는데, 요즘은 구글링을 하거나 학술지 혹은 오픈소스 이미지를 골라서 쓰고 있다. 

<닥프>를 보면 배경과 소품의 디테일에 신경 쓰는 느낌이다. 돈, 시간, 실력, 스태프가 없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케치업을 이용한다. 배경과 소품이 디테일할수록 심플한 캐 릭터에게 이입이 잘된다. 이를 극대화하려고 많은 연습을 했 다. 오덕의 쾌감이나 미니어처에 대한 개인 욕구도 한몫했다.

<닥프> 등장인물들의 의상 연출에도 상당히 신경 쓴 흔적 이 보인다. 패션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연재 초기에 “여성 캐 릭터들이 불쌍하지도 않냐?”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동안 여 성 쇼핑몰을 살펴보면서 이 캐릭터는 이 쇼핑몰을 애용할 거 라고 설정하고 작품에 반영했다.

<닥프> 52화의 전철 배경 장면이 인상적이다. 정석우 작가 는 사진으로 만화 배경을 만드는 노하우가 특출나다. 그것을 배워서 처음으로 원고에 도입해 본 거다. 동료 작가들과 노하 우를 공유하면서 각자 가진 테크닉을 서로 배웠다.

<닥프>에서 강아지 파블로프의 등장은 신의 한 수 같다. 닥터 프로스트를 상징하는 아이템으로 강아지 ‘파블로프’를 등장시켰다. 두 캐릭터는 서로 닮았다. 파블로프는 작품 흐름 상 성장하지 않는데, 그건 프로스트가 성장하지 않았음을 뜻 한다. 그런데 시즌 2 마지막 화에서 프로스트가 “가자!”라고 하자 갑자기 큰 개가 돼서 나타난다. 프로스트가 한 단계 성 장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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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신이 심리학 전공자면서도 심리학 전문가들을 <닥 프>의 스토리텔링 자문가로 모신 이유는? 이야기는 혼자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항상 듣는 사 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믿을 만하고 숙련된 대화 상대 가 필요했다. 에피소드, 소재, 아이디어 등을 잡을 때 “이게 재 미있을까? 없을까?”, “이야기할 가치가 있을까? 없을까?”에 대한 토론을 한다. 동료 만화가들에게 의견을 구하면 독이 되 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동료들의 의견을 수렴하다 보면 괜히 흔들린다. 그래서 잘 안 보여준다. 하지만 전진석 스토리 작가는 예외다. 예상되는 서사의 모든 경로를 안내해 준다. 마 치 세르파 같다.

창작 공간이 ‘이동형’이라고 들었다. 그게 뭔가? <닥프>부 터 종이를 없애고 100% 디지털로 작업했다. 언제 어디서나 작업이 가능한 이동형 창작 시스템을 만든 거다. 동일한 공간 에서는 같은 생각 밖에 안 나오더라. 그래서 외부의 자극, 상 황, 환경 등을 항상 새롭게 체험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다케히 코 이노우에(슬램덩크 작가)도 스토리 구상을 위한 장소가 십 여 군데 있다고 하는데 나도 그 정도 있다. 마지막 순간에 가 는 곳은 독서실이다. 

월 단위로 마감한다고 들었다. 그 시스템이 궁금하다. 웹툰 은 매주 연재되는데? 1주 취재와 스토리, 2주 콘티와 스케치, 3주 펜 터치와 채색, 4주 채색과 편집. 한 달치의 원고를 이 순 서로 완성하는 거다. 아프거나 경조사 등이 발생해도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한 공정으로 일주일을 이어가니 연습이 되어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특히 펜 터치할 때가 제일 좋다. 무념무상에서 손을 단련시킬 수 있어서 그림이 상향 평준화 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을 갖게 된 이유는? 능력이 안 되는 상태에서 첫 연재작 <투자의 여왕>을 시작했다. 그때 만화는, ‘직업이 되면 연습을 못 한다.’, ‘일이 되면 훈련을 할 수 없다.’는 걸 절감 했다. 그래서 나만의 방법을 찾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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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웹툰 연출법이 있다면? 출판만화는 페이지를 넘기 는 순간 갇혔던 페이지가 크게 열리면서 효과가 발현된다. 세 로 스크롤로 보는 웹툰은 노출되는 시간을 길게 할 때 의미가 생기더라. 먼저 독자를 준비시키고, 초대하는 과정의 컷을 배 치한다. 독자의 감정을 고조시키다 마지막 부분에 가장 중요 한 컷에 임팩트를 준다. 배경을 최소화시키고 심플하게 하는 게 몰입에 더 효과적이다. 세로 스크롤 연출법은 선배 만화가 들의 것을 상속 받아 쓰는 거다. 공부를 덜하면 상속도 못 받 는다. 공부를 하면 그 이상의 뭔가를 더 받는 거고. 난 후자가 되고 싶다.

- 이 만화가를 MANAGA에!

강형규(왈파) 믿고 보는 젊은 거장이다. 
박수봉 (수업시간 그녀) 차기작이 너무도 기다려지는 작가다. 
boxhead (주주 다이어리) 시각적으로 한 대 얻어맞는 아름다움이 있다.
 레드렌(마녀도시 리린이야기) 수면 위로 솟아오른, 역량 있는 작가다. 
마사토끼(모든 작품) 새로운 이야기와 소재가 끊임없다.

이젠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 스케치업 강의를 하게 된 계기 는? 영어 강사를 오래 해서 가르치는 것이 만화보다 오히려 익숙하다. 강의란 하나의 퍼포먼스이자 스토리텔링 기법이다. 그리고 좋은 공부다. 정보가 정리가 되고 구조화된다. 가르치 면서 얻는 이득이 크다. 스케치업 프로그램은 웹툰에 매우 유 용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스케치업 강좌가 드물뿐더러 웹 툰 창작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 많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알리고 싶어서 교육을 시작하게 됐다. 반응이 대단히 좋다. 곧 교재도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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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창작의 노하우 공유에 남다른 의식이 엿보인다. 웹툰 의 진정한 힘은 자유롭고 진정한 공유의식, 연대의식이라고 본다. 가르쳐주면 따라 할 수 있는 것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공유해야 한다. 가르쳐 줘도 못 따라 하는 게 진정한 ‘나만의 것’이다. 

앞으로의 이종범은? 현재는 경험이 많지 않은 작가로서 겪는 어려움들이 있다. 하지만 이 경로의 끝에는 내가 생각했던 만화 가가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의문의 시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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