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도 괜찮아. 그 속에 따듯함과 희망이 있으니. 근미래 판타지 작가 안성호가 현대물 <재앙은 미묘하게>로 돌아왔다. ‘소음’이라는 특이한 소재와 달라진 화풍이 오묘한 재미를 준다. 작품 속 배경과 ‘미묘하게’ 닮은 화실을 MANAGA 에디터 윤효정이 찾아 3년 만에 시작한 장편 연재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수리산 전철역에 마중 나온 작가가 반갑다. 여전히 소년 같은 모습이다. 파란 웹툰에 데뷔할 당시 담당이었으니 약 6년만이 다. 네이버에서 웹툰 <재앙은 미묘하게>를 연재하며 바쁜 나 날을 보내고 있는 안성호 작가의 아파트로 함께 향했다.
작가님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네, 저도 반가워요.
그런데 여기… <재앙은 미묘하게>의 그 아파트네요. 네, 맞아요. 작품 배경이 전부 이곳이에요.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 굳이 다른 곳을 촬영할 필요가 없었죠.
지금 연재 중인 <재앙은 미묘하게>에서는 수작업이 느껴 지지 않아요. 바로 이전 작품인 <PLAY-A 보고서> 때부터 100% 디지털 작 업을 시작했어요. 그때 신티크를 구입했거든요.
디지털 작업으로 바꾼 계기가 있나요? 연필 스케치를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펜터치 후에는 일일이 지우개질을 해야 하고…. 마감에 쫓길 때는 친구들한테 지우 개질도 부탁한 적도 있어요. 스케치를 지저분하게 하는 스타 일이라 그 뒤처리가 힘들었지요.
그럼 이젠 좀 편해졌나요? 아직 적응하는 중이에요. 지금 방식도 쉽지는 않아요. 작업 속 도가 빠른 편이 아니라서요. 잘못하고 있나 싶어 다음엔 방식 을 바꿀까 생각 중이에요.
원고 퀄리티가 참 좋아요. 배경도 디테일하고요.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에요. 정말 손이 많이 가요. 면 자체를 깎듯이 그리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드네요. 배경은 시 나리오를 짜면서부터 많이 그려놨어요. 연재하면서 퀄리티를 못 맞출 거 같아서요.
만화를 그릴 때 주로 어떤 프로그램을 쓰세요? 포토샵이나 스케치업 등이 편하다는데, 저는 데뷔했을 때부 터 페인터 하나만 쓰고 있어요. 손에 익은 페인터가 가장 좋더 라고요.
이번 작품의 시간적 배경도 당연히 근미래일 거라 생각했 는데 현대물이라 놀랐어요. 근미래 SF판타지를 좋아해요. 처음 <재앙은 미묘하게>를 기 획할 때만 해도 SF판타지였어요. 소음에 따라 세금을 내는 마 을 이야기였죠. 하지만 상상 속의 세계관과 설정을 제대로 구 축하려니 힘들었어요. 재미도 떨어지는 거 같았고요. 어설프 게 하고 싶지 않아서 현대물로 바꿨죠.
현대물로 바꾼 건 100% 작가님 판단이었나요? 네. 불필요한 이야기를 버리고 제 경험담까지 추가하니 지금 의 <재앙은 미묘하게>가 되었어요. 제가 만화과(상명대) 출신 이라 주변의 선후배와 친구들에게 종종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재앙은 미묘하게>는 ‘층간 소음’이라는 이슈를 담고 있어요. 소음을 소재로 한 만화지만 ‘층간 소음’은 아니에요. ‘층간 소 음’이라는 말이 한 번도 안 나오거든요. 최근 ‘층간 소음’이 이 슈가 되다 보니 보시는 분들이 ‘층간 소음’의 이야기라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만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그냥 현실감 없는 난 장판을 다루는 내용이에요.
그렇지만 댓글을 보면 ‘층간 소음’으로 논쟁이 있곤 해요. 요즘 층간 소음이 워낙 이슈라 그런가 봐요. 연재 중에 ‘층간 소음 모임’ 카페에서 연락이 왔어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 락이 와서 놀랐지요. 자료를 보내주며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다루지 않길 바랐어요. 그래서 내용을 조금 수정했어요. 사실 어찌 보면 그분들에게는 층간 소음이 재앙이잖아요.
작업 외 작가님의 일상은 어떤지요? 마감이 일상이에요. 수요일에 원고를 마감하면 목요일은 푹 쉬어요. 금요일엔 콘티,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거의 밤을 새워 마감하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그림 스타일을 바꾸든지, 도와주는 친구를 구하든지 해서 이 마감 방식을 바꾸고 싶어 요. 연재를 3번이나 했는데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요(웃음).
마감과 함께하는 일상이라니, <재앙은 미묘하게> 연재 기 간 내내 힘들겠어요. 괜찮아요. 그저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나마 제가 잘하는 게 그림이니까요. 1화 때 퀄리티를 높여 놓으면, 그다음 화부터는 어떻게든 그 퀄리티를 맞추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이걸 두세 번 반복하니까 많이 지치네요.
만화를 하실 때 고민하는 부분이 있나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건 익숙해요. 만화가를 꿈꾸며 중학교 때 부터 많은 그림을 그렸으니까요. 하지만 시나리오는 아직 미 숙해요. 확신이 잘 안 서니 자주 엎곤 해요. 시나리오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중학교 때부터 만화가가 꿈이었군요. 아, 만화가는 유치원 때부터 되고 싶었어요. 사촌 형이 제게 그림을 그려주곤 했죠. 그런 형이 정말 멋져 보였어요. 형이 보 는 <드래곤볼> 같은 만화를 보면서 만화가를 꿈꿨지요. 다른 꿈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주변에서 제가 만화 빼곤 뭘 해도 어설프대요. 하하.
그럼 만화가가 된 지금의 꿈은? 인기 만화가? 더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네이버 ‘20대 실시간 인기 만화’ 여성 1위를 하던데요? 20대 여성분들에게 감사드려요, 하하.
좋아하는 만화가가 누군지 궁금해요. 만난 적도 친분도 없지만 억수 작가님을 좋아해요. 얼마 전 억 수 작가님의 작품 <Ho!>에 제 작품 <재앙은 미묘하게>의 인 물이 등장하는 재밌는 일도 있었어요.
좋아하는 영화 장르나 작품 있으세요?음… 저도 제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랐는데. 1년간 본 작품을 살펴보니 다 SF물이더라고요. 최근엔 <인터스텔라>를 재미 있게 봤어요.
차기작도 궁금합니다. <재앙은 미묘하게>를 하면서 내용 때문인지 저도 우울해지 는 거 같아요. 그래서 다음 작품은 가볍고 에너지 넘치는 작품 을 하려고요. 액션만화예요.
억수씨(Ho!) 데뷔 때부터 팬이었다. 만화를 읽고 후회한 적이 없다.
의 놀라움이 생생해요. “아! 이거다!” 싶었거든요. 그림도 스토리도 신인답지 않게 완성도가 높았으니까요. 다시 보 고 싶은데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워요. 안 그래도 재연재 제안이 들어와요. 보고 싶다고 문의하는 독 자들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 보면 부끄러워요. 거의 다 수정하 고 싶은 맘이거든요. 아무튼 고민입니다.
그 작품을 본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정말 좋은 작품이었어요. 그래도 부끄러워요. 개인 블로그에 올려서 정말 보고 싶어 하 는 독자에게만 공개할까 생각 중이에요.
그것도 좋지만, 저는 더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서 재연재했 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마무리 인사를 또 하 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작가의 아파트 나섰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 고, 빼어난 실력을 가진 안성호 작가를 다시 한 번 담당 편집 자와 만화가로 만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