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젊은 날 신체훼손에 대한 만화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조경규 작가는 이제 <오무라이스 잼잼>과 <차이니즈 봉봉 클럽> 등의 음식 만화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맛있는 걸 먹으며 즐겁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건넨다. 얼핏 젊은 시절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것 같지만, 작가 본인이 좋아하는 주제를 신 나게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그는 한결같다. TV칼럼니스트 이승한은 새벽 내내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의 작품들을 읽느라 걷잡을 수 없어진 식욕을 끌어안고 대화를 나눴다는데, 말맛 하나하나가 잘근잘근 맛있어서 시종일관 입안에 맑은 침이 고였다고. 글 이승한 | 사진 김기
<오무라이스 잼잼>(이하 <오잼>), <차이니즈 봉봉 클럽> (이하 <차봉>), <돼지고기 동동>까지, 식욕증진 만화의 대표주자가 되었어요. 스스로 보는 작가님 음식 만화의 특 징은 무엇일까요? 전 음식을 좋아하지만 만드는 쪽엔 큰 관심이 없어요. 손님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죠. <미스터 초밥왕>을 보면 후반 엔 정말 희귀한 재료의 음식들이 나오거든요. 독자 입장에서 는 그림의 떡이란 기분이 드는데, 제 작품에선 그러고 싶지 않 았어요. 중국음식을 다루는 <차봉>도 식당을 찾아가 사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다루고, <오잼>은 누구나 슈퍼에서 사 먹 을 수 있는 음식들을 다룬 거죠.
그래서 일부러 브랜드나 상품명을 가리시지 않는 것 같더 라고요. 가릴 수가 없죠.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 거고 <오잼> 은 제가 화자고 다들 실명으로 나오는데, ‘새우깡’이라고 해서 이름을 바꿀 순 없잖아요. PPL이었다면 오히려 가렸을 수도 있어요. PPL을 싫어하거든요. 의식적으로 그린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아져요.
제가 처음 작가님을 알게 된 건 피바다학생공작소 시절 그 린, 신체훼손에 대한 판타지 컬트작 <외계왕자 난조>였어 요. 그 작품만 기억하다가 <팬더댄스> 연작이나 <오잼>, <차봉>과 같은 대중적인 작품을 만났을 때 ‘어라?’ 했습니 다. 하지만 <팬더댄스>에도 냄비 안에 담긴 사람 머리 그 림 때문에 독자 항의를 받고 모자이크를 한 적이 있었죠. 요즘의 제 작품에도 마이너 감성은 녹아 있지 않을까요? 누구 나 편하게 볼 수 있는 만화는 아니죠. 제 입장에서는 대중적인 만화지만, 진짜 대중적인 것에 비하면 속을 쿡쿡 찌르는 대목 이 있을 거예요. 제 취향에 좀 극단적인 면이 있는 거 같긴 해 요. 전 귀여운 걸 보면 너무 좋아 못 참고요. 막 과격하게 터지 는 것도 좋아하지요. 반면 TV 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처럼 애 매한 건 잘 못 봐요.
<외계왕자 난조>에서는 해부학적으로 디테일하게 묘사된, 과격하게 터지는 신체훼손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았어 요(웃음). <오잼>에서는 음식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섬 세한 묘사를 했어요. 디테일의 완급조절이 작가님의 특징 인 것 같습니다.
그리는 입장에선 디테일이 제일 재밌거든요. 대화 장면보다는 액션이 더 재미있는 액션영화처럼.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만 찍을 순 없죠. 완급조절을 하면 디테일이 더 돋보이는 것 같아요. 계속 밀도 있는 그림만 나오면 강약의 묘미가 사라 지죠.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독자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다가 일순간 확 그림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낯설어지는 지점들이 있어요. 익숙한 흐름 속에 방점을 찍어 낯설게 보는 것을 좋아하나요? 글쎄요. 그쪽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제가 의식적으로 생 각한 것은 ‘늘 옆에 있기에 오히려 건성으로 보는 것’에 애정 을 갖고 자세히 관찰하는 거예요. 제겐 낯설지 않은 건데, 보 는 분들 입장에서는 낯선 게 있는 거죠. 이를테면 ‘오뚜기 크 림스프’ 같은 거요. 수십 년 동안 우리 곁에 있어 왔잖아요. 저 는 포장부터 맛까지 최적화되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 람들은 비스트로에 가서 먹은 스프를 블로그에 소개할지언정 ‘오뚜기 스프’를 이야기하진 않더라고요. 저는 ‘오뚜기 스프’ 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만들까 정말 궁금했 어요.
그래픽 디자이너로서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많이 맞추는 편이라 들었는데, 웹툰에서는 본인의 주장이나 취향을 타 협하지 않는 느낌이 있어요. 전 만화를 그릴 때 많은 독자를 생각하면서 그리지는 않아요. 혼자 낄낄거리면서 보는 개별적인 독자를 생각하며 그리죠. 일대일 연결이랄까요. 보편적인 정서의 좋은 만화는 많이 있 으니, 이런 만화가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그래서 너 무 많이들 보면 좀 부담스러워요.
직접 쓴 시에 그림을 곁들인 ‘시화’ 형식의 작품 <아침의 시 한 수>를 다음에 연재할 때도 ‘이게 무슨 만화냐’는 독자 항의가 많았지요? 후반 절반가량은 고료 없이 연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젊은 작가의 기회를 빼앗는다는 반응을 보니 미안해지더라고 요. ‘과거에 같이 작품을 했던 조경규 작가’ 말고, 신인 작가가 같은 포맷으로 연재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