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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영, 디지털 만화의 히스토리

천계영, 디지털 만화의 히스토리

천계영은 한국 디지털 만화의 역사다. 디지털 만화를 가장 먼저 시도했고,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해 왔다. 순정만화가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면서도 끊임없이 탐구하는 천계영을 MANAGA 기획위원인 노모뎀 이주석이 마포의 전망 좋은 화실에서 만났다. 이 인터뷰가 자신의 마지막 인터뷰라고 말하는 천계영의 특별한 히스토리를 보자.


글 이주석(노모뎀)  |  사진 최민호



최근 근황은? 미디어 다음에 웹툰 <좋아하면 울리는>을 연 재 중이다. 시간이 나면 올레TV로 영화를 보곤 한다. 1만 원 결 제로 극장 동시 개봉 작품도 본다. 유튜브도 많이 보는 편이다.

어떤 영상물을 즐겨 보는가? 원래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 었다. 뒤늦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접했다. 좋더 라. 픽사도 그렇고. 안 봤던 것들, 오래된 애니메이션을 보는 재미를 요즘 느끼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애니메이션이 있는지? <라따뚜이>가 참 좋았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궁금하다. 쥐가 요리를 한다는 기획 이 충격이었다. 어떻게 그 기획이 통과 됐을까? 꿈이 있어도 꿈을 이루기에는 미천한 존재인 쥐가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이 와 닿았다. 보면서 울기도 했다. 공감이 돼서.

<라따뚜이>의 주인공처럼 역경을 이겨낸 경험이 있나? 비 슷하다. 집안이 너무 엄격했다. 만화를 그리게 된 건 기적이 다. 요리사가 되기 힘든 생쥐였다고나 할까? 내 주위 그 누구 도 내가 만화가가 될 줄 몰랐다.

요즘 새롭게 마주한 어려움이나 도전이 있다면 뭘까? 얼마 전, 미디어 다음에 새 장편 웹툰을 제안한 적이 있다. 제주도 를 배경으로 환경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내 평생 이렇게 완벽 한 것을 다시 쓸 수 있을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만화기획 안을 보냈는데 ‘재미없다.’는 피드백이 왔다. 기대했던 작품인 데 거절당하니 기분이 묘했다. ‘나에게 대단해 보이는 것이 다 른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 다. 하지만 프로 의식이 발동해서 다음 날 바로 새 작품을 썼 다. 그게 바로 지금 연재하고 있는 <좋아하면 울리는>이다. 마음을 바꾸니 바로 다른 것이 보이더라.

그동안의 ‘천계영 만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글 쎄… 책이 나와도 눈에 안 띄게 숨기고 괴로워한다. 내가 내만화를 싫어하나 보다. 재미있게 봐 주는 독자들께 이런 이야 기를 하면 안 되는데…. 예의도 아닌 것 같고.

원로 작가님들께도 그런 얘기를 종종 듣는다. 자신의 작품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그런데 재미있게 봐 주는 독 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미안하다고. 원로 작가님들 도 그러신다니 참 신기하다. 무척 위로가 되는 이야기다. 어쨌 든 결과보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 애정을 가지고 작가 활동을 이어가려고 한다.

만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법대(이대) 출신인 데. 대학 졸업 후 CF를 제작하는 광고 회사에 다녔다. 아이디 어를 내는 창의적인 작업이 좋았다. 하지만 내 마음이 아니라 광고주의 마음에 들 때까지 광고를 만드는 과정에 답답함을 느 꼈다. 만화가가 된다면 내 마음대로 창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 었다. 그래서 만화가 데뷔를 했다. 만화를 내 마음대로 그리니 좋았다. <언플러그드 보이>를 독자들이 많이 좋아해 주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데뷔 시기였던 1990년대가 요즘 대세다. 그 시절 어땠었나? 정말 죽으라고 일만 했다. 집에서 독립해 바깥세상이 안 보이 는 반지하에서 계속 만화만 그렸다. 컴퓨터는 오빠에게 빌린 돈으로 마련했다.  

독학으로 만화를 공부하고 데뷔한 걸로 알고 있다. 데뷔하 고 싶었던 잡지 <윙크>를 사서 연구했다. 어떻게 하면 윙크에 만화를 실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런 것이 특별하다고 생각 하지는 않는다.

데뷔 시기를 같이했거나 유대감을 느끼는 동료 작가가 있는지? 내가 생각하는 제일 친한 작가는 유시진.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무척 동경하고 가끔 만나면 서로 반가운 작가로 박희정이 있다.

요즘 <언플러그드 보이>의 “난 슬플 때는 힙합을 춰.”라는 명대사나 그림들이 소위 인기 짤방에서 다시 돌더라. <언플러그드 보이>는 어떤 작품인가? 학원물이지만 학교를 안 다니는 현겸이 주인공이다. 전형적인 것을 한 가지라도 빼는 설정을 좋아했다. <오디션>도 장편 순정 만화였지만 순정 만 화의 특징인 로맨스를 배제했었다. 

만화를 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 <오디션>을 할 때 우울증을 얻었다. 내가 재능이 없다는 생각에 만화를 그만 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보려 미국으로 떠났다. 그런데 창작이 너무 하고 싶어 거기서 소설 <더 클럽>을 썼다.

디지털 만화를 개척해 온 작가인데 작품은 어떻게 하나? 현실적인 제약을 상당히 고려한다. <하이힐>은 3D CG를 기반으로 만든 만화인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매체에서 요 구하는 방향을 모두 염두에 두었다. <예쁜 남자>는 화실 스 태프의 인건비까지 계산해서 작품의 규모와 분량을 맞췄다. <드레스 코드>는 초능력자 여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옷을 보 면서 마음까지 읽어낸다고 설정했다가 생활툰으로 바꾸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만화는 어떤 건가? 먼 훗날이 되겠지만 주 인공이 없는 만화를 하고 싶다. 어떤 인물이라도 독자가 선택 해 그 입장과 경험을 이해해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게임과 도 유사하지만 게임의 플레이 요소는 배제된다. 감상 방식에 서 다중 선택이 가능한,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은 거다.

천계영 다운 발상이다. 요즘은 어떤 소프트웨어를 활용하 고 있는지? 시네마4D! 그 소프트웨어를 완전 사랑한다. 이전 에는 Windows에 AutoDesk 3dsMAX를 쓰며 속도 많이 썩 었는데 이제는 대만족이다. OS와 CG 애플리케이션은 업데이 트 될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는데, OSX에서의 시네마 4D는 업데이트 될수록 기대 이상의 기능을 제공하는 소프트 웨어다. 하드웨어는 맥북을 쓰다 현재 맥 프로를 쓰고 있다.

만화에 3D 프로그램을 활용하게 된 계기는? 데뷔 때부터 어도비 포토샵을 써왔지만 3D 소프트웨어들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다. 주인공 한 명을 장면이 바뀔 때마다 수없이 반복해서 그리는 만화 수작업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주인공을 한 번만 생성해서 계속 쓸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품게 된 거다. 배경이 되는 건물이나 공간도 시점에 맞춰 매번 다시 그리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앵글만 조금 바꾸면 되는 데. 그래서 3D CG를 도입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단축시 켜보려 한 것이다. 만화 <DVD>를 작업할 때는 포저로 동작을 잡은 뒤 데생을 하고, 배경을 스케치업으로 완성했다. 이후에 는 3dsMAX를 사용했다.



앞으로 디지털 제작 플랫폼에 바라는 게 있다면? 
디스플 레이 쪽이 요원하게 느껴진다. 난 지금도 여러 구상이나 장면 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종이에 메모하고 작업실 벽에 붙여 놓 는다. 그런데 이런 것들처럼 디스플레이가 한번에 객체화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종이를 굳이 이용하고 싶지 않은데도, 종이를 이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구상하고 있는 콘티나 메 모 또는 잘게 쪼개서 작업한 객체의 개수에 상관없이 한 번에 보이는 그런 비전이 구현되었으면 좋겠다.  

상상 이상의 생각이다. 디지털 문화의 미래는 어떨까? 난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디바이스가 인간성을 잃게 만든다는 부정적인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디지털을 통해 더 인간적 이 될 수 있고, 서로 소통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 나도 트위터를 쓰고 있는데, 그 이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에 흥미를 가져본 적이 없다. 지금은 다른 사람 들의 생각과 현재가 궁금하고 재밌다.

트위터리안으로서 뭔가 인상적인 사건이 있었다면? 소설 가 은희경 님을 좋아하던 차에 트위터에서 만나게 됐다. 대화 를 나누면서 이제는 자매처럼 친하고 반가운 사이가 됐다. 서 로 각자의 작품을 봐왔지만 막연했던 거리감이 트위터를 통 해 좁혀진 것이다.

만화를 ‘만화’라고 하기보다 ‘웹툰’으로 부르는 시대여서, 만화라는 이름을 낯설게 여기는 사람마저 있을 정도다. 만 화의 시대적인 변화에 대한 느낌은? 데뷔하던 시절에는 ‘만화가’라고 하면 애니메이션을 하냐고 묻더라. 지금은 만화가 라고 소개하면 웹툰을 하냐고 묻는다. 그런 걸 보니 중간에 만 화가였던 시절은 그다지 길지 않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만화 가 어떤 상위의 큰 개념이라고 한다면 시대와 매체에 따라서 그때그때 불리는 명칭이 달라지는 것 같다. 만화는 계속 형태 를 바꿔가면서 존재할 것 같다.


최근 연재작 <좋아하면 울리는>을 하며 느끼는 것은? 올 해 내 나이와 내 일의 정년에 대해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그 동안 나는 내 일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저 생활 여건에 맞춰서 일을 해 왔다. 그런데 정년을 앞두고 한 작품당 걸리는 시간을 따져보니 앞으로 주어진 기회가 몇 번 안 남은 거다.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거다. 그래서 <좋 아하면 울리는>부터는 ‘정리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지금까 지의 3D 작업이나 그림, 혹은 그 이전 작품들은 모두 내 인생의 연습 과정이었다. 이제 연습은 할 만큼 했으니 결과를 보여줘야 겠다고 결심했다. 뭘 해야 할지에서 내가 뭘 하려 했던가를 생 각하면서 <좋아하면 울리는>을 그리고 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지면에 다 싣지 못할 거 같아 아쉽다. 정말 감사했다. 인터뷰 제의에 몹시 망설이다 마지막 이라는 생각으로 응했다. 스스로를 정리해 보는 계기가 되었 다. 나도 감사하다.


없음. 
저는 아무도 추천할 수가 없어요. 저에게 인터뷰는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혹시 저 같은 분이 또 계실 수도 있으니 함부로 누군가를 지목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런 성격을 정말 고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