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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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드독 정우열, 제주에 산다

개를 키우면 개를 그리게 된다

 올드독은 커피와 영화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개다. 대중문화 전반에 전문가적인 식견을 설파하면서 철학적인 성찰을 하는 개다. 티 없이 하얀 털은 깔끔한 인품 아니, 견품을 드러내는 코드다.


올드독은 작가 정우열이 기르던 개 와이어폭스테리어에 스 스로를 빙의해서 탄생시켰다. 자신의 블로그(http://blog. naver.com/hhoro)에 올드독 콘텐츠를 올리며 독자들과 즐 겁게 소통한 지 벌써 10년째다. 그동안 꽤 유명해진 올드독은 여러 책과 만화의 주인공이 되어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 왔다. 나 역시 정우열 작가와의 인연이 10년째다. 우리 회사 거북이 북스에서 무려 10권의 책을 냈다. <올드독 다이어리>, <올드 독>, <올드독의 영화노트> 이렇게 3권의 단행본이 있고, 스 도쿠 북을 팬시북으로 둔갑시킨 7권의 <올드독 스도쿠> 시리 즈가 있다.


얼마 전에는 ‘개를 키우면 개를 그리게 된다.’는 문구가 인상적 인 포토 에세이북 <개를 그리다>를 RHK에서 출간했다. 작가 의 작품 기획력과 섬세한 디자인 감각이 그대로 드러난 책은 작가가 두 마리 개 ‘소리’, ‘풋코’와 제주로 이주, 새살림을 시작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책을 덮으며 이 작가 뭐지? 싶었다. 이토록 자유롭다니! 이미 불혹을 넘긴 그 나이 대 아저씨들과 는 삶의 방식이 사뭇 다르잖아. 문득 MANAGA 취재 대상이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취하고 제주행 비행기 에 몸을 실었다. 1박 2일의 짧은 제주여행을 감행한 것.


풋코, 저 혼자 외롭다 

2만 6천 원. 제주행 저가 항공료가 이 정도로 쌀 줄은 몰랐다. 횡재한 기분이다. 제주 공항에서 사진작가 최민호를 만나 예 약해 둔 렌터카에 함께 올랐다. 1박 2일 사용료 4만 원. 탈만 하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치니 지척이다. 정우열은 제주시 아라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마당이 있는 아담한 단층 집에서 살고 있었다. 검은 현무암으로 쌓은 까만 돌담 골목길 이 제주임을 알리는 운치 있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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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풋코가 먼저 반긴 다. 개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하자, 반색하던 정 작가의 얼굴에 섭섭함이 스친다. 맞다. 작가의 가족을 경계하다니. 앗! 나의 실수. 풋코는 흡사 걸어 다니는 ‘강아지 인형’ 같다. 꼬불꼬불 예쁜 털이 인조처럼 느껴질 정도다. 검은 뿔테 안경의 스타일 리시한 작가를 닮아서인지 멋지다. 깔끔한 거실, 깨끗한 주방, 작가의 공간은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빼곡하다. 정 작가, 키덜 트였나? 장난감들이 재밌다. 


작가가 끓이는 커피의 진한 향이 늦가을 오후와 조화를 이룬 다. 손님 접대라며 내놓은 제주 쑥빵은 입안에서 맛있게 녹는 다. 풋코는 금세 심드렁해져서 낯선 방문객을 무시하고 비 내 리는 창밖을 무심히 바라본다. 풋코 저 혼자 외롭다. 함께 제 주에 왔던 소리는 몇 달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 12년을 함께한 소리를 떠나보낸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쉽지 않다. 어색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루키와 알랭 드 보통을 떠올리며

 MANAGA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부터 부탁한다. 올드독 이라는 캐릭터로 주로 에세이 만화를 그리는 정우열이다. 만 화를 그릴 때, 하루키와 알랭 드 보통이라면 이 장면에서 어떻 게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작업하고 있다.


두 사람을 꼽은 이유가 궁금하다. 하루키는 어떤 사건이 있 으면 그 사건과 사건 사이를 집중해서 보고, 알랭 드 보통은 그 사건의 이면을 본다. 뭔가 상투적으로 흘러가지 않는 사람 들이다. 스토리 만화를 하게 된다면 쿠엔틴 타란티노나 박찬 욱 감독을 떠올릴 거 같다. 


정우열의 삶도 상투적이지 않다. 제주에는 어떻게 온 건 가? 개와 맘껏 헤엄치려고. 바다 수영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제주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니까  좋다. 사실은 하와이에 가 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 되더라. 


하와이? 생각만으로도 부럽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온갖 잡일을 다했다. 일러스트 작업이 많았다. 정성일 영화평론 가와 공저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책도 냈 다. 올드독 에세이 만화를 꾸준히 그리면서, 잡지 <매거진M> 에 <제주일기>라는 에세이를 컷과 함께 연재하고 있다. 여 전히 내 신변잡기, 잡생각이 주류다. 곧 책으로 나온다. 최근 <GEEK>이라는 잡지에 <카페 맥모골(맥심모카골드)>이라 는 네 칸 만화 연재도 시작했다. 중년 아저씨들의 수다가 만화 의 콘셉트다.


내가 보고 싶은 만화를 내가 그린다 

포털에 연재할 계획은 없는 건가? 3년 전, 네이버에 ‘변신 소녀물’을 연재할 기회가 있었는데 ‘잡 일’을 하느라 ‘본일’을 못 했다. 이제 다시 준비할 생각이다.   


깔끔한 집을 둘러보니 성격이 보인다. 만화 작업할 때는 어 떤가? 작업과정을 공개해 달라. 

평소에 메모를 많이 하고, 폴더 정리를 잘 해두는 편이다. 폴더를 많이 만들지는 않는 다. 대신 이미지나 텍스트의 파일명을 정확하게 쓴다. 찾기 쉬 워야 하니까. 이렇게 주워 모은 자료들을 꺼내 이야기를 만든 다. 이야기는 에세이나 시나리오 형식으로 쓴다. 그다음에 콘 티를 짠다. 자르고 이어 붙이는 편집을 거쳐 콘티를 완성한 뒤 태블릿을 이용해 드로잉을 하고 컬러링을 하면 끝.


특별한 작업 도구는 없는 건가? 종이, 라미 펜, 스캐너, 포토 샵이 전부다.


정우열이 추구하는 만화는 어떤 만화인가? 내가 보고 싶은 만화를 내가 그리는 거다. ‘현재 없는 만화’ 같은 걸 하고 싶다. 좋은 만화를 추구하고 있다. 비슷비슷하지 않고 개성 있는 만 화가 ‘좋은 만화’다.


마당에 흩뿌리던 빗줄기가 약해졌다. 분위기가 더 고즈넉해 진다. 작가 혼자 살기 외로울 거 같은데, 웬걸? 제주에 내려오 는 지인들이 이 집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모두 어쩌다 들르는 건데 정우열에겐 일상이 됐다. 사람을 더 쉽게 사귀게 된 것도 아이러니하다. 현지의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애월에 사는 이 효리, 이상순 부부와도 친해졌다. 메가쇼킹의 쫄깃 게스트하 우스에도 가끔 놀러 간다. 해녀 학교 입학을 시도했다가 떨어 진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아무튼 일 때문에 서울을 오갈 수밖에 없어 제주에서의 삶이 오히려 역동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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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면 개를 보내게 된다 

해가 짧아져서 금방 어둠이 내렸다. 아라동 맛집을 소개하라 고 하니 ‘상춘재’라는 비빔밥 전문 식당으로 이끈다. 돌문어 비빔밥, 멍게 비빔밥, 꼬막 비빔밥 등이 추어탕과 함께 나오는 깔끔한 맛집이다. 1만 원에서 1만 2천 원 하는 가격이 아깝지 않은 성찬이었다. 맛있게 식사를 하며 제주 바다 중 어디가 으 뜸이냐고 물으니 작가는 ‘함덕’을 꼽는다. 아침 여행지가 정해 졌다. 조천읍 함덕리의 서우봉 해변. 내일을 기약하며 깜깜해 진 길 위에서 인사를 나눴다. 


제주에 사는 배낭자 만화가가 소개한 서귀포 서호동의 ‘달팽 이 하우스’에서 1박을 한 뒤 아침 일찍 함덕으로 향했다. 달팽 이 하우스는 하룻밤 3만 원(독방)이 미안할 만큼 주인이 친절 했고 단풍이 짙은 골목길도 예뻤다.


서우봉 바다는 작가의 말대로 눈부시게 푸른 에메랄드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철지난 바닷가의 한가로움에 맘껏 취해 봤 다.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다. 만화가에겐 비교적 이른 시간, 찬란한 오전에 만난 작가와 바닷가를 산책하며 도 란도란 이야기를 이어갔다.


불편한 영화를 좋아하는 거 여전한가? 취향이 바뀌진 않더 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처럼 기대를 박살내는 게 여전 히 좋다. 편한 것들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진실을 알려주지 않 는다. 불편한 영화는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추악한 욕망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예쁘고 팬시한 올드독을 그리고 있다. 겉모습은 예쁘고 팬시하지만 나름 까칠한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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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독 모델이었던 ‘소리’의 빈자리를 채울 생각은 없는 지…. 빈자리를 빈자리로 두자는 게 나의 추모 방식이다. 소리 를 떠나보낸 게 삶에 대해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모든 삶은 유한한 거다. 아무리 사랑해도 이별이 있다. 부질없 는 말 같지만 있을 때 잘할 수밖에. 소리를 보낸 후 가방 수출 업을 하는 아버지를 뜬금없이 찾아가 돕기도 했다. 소리를 보 내기 전엔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서우봉 해변의 카페베네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면서 함께 소리를 추억했다. 소리와의 이별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소리의 뇌종양 발병과 작가의 헌신을 담담하게 들려주는데 가슴이 아련해진다. 개를 키우면 개를 보내게 된다.

마지막으로 MANAGA 독자에게 한 마디 해달고 청했다. 작가 는 더 좋은 만화를 그리겠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준비하 고 있는 스토리 만화인 ‘변신 소녀물’에 올드독은 어느 집에 있 는 개로 출연할 예정이란다. 기대감 급상승. 그야말로 ‘변신’을 꿈꾸는 작가의 차기작을 응원하면서 함께 카페를 나섰다. 바다는 화창한 햇살을 받으면서 또 다른 ‘변신’하고 있었다. 눈 시린 제주 서우봉바다. ‘에메랄드빛’ 보다 더 좋은 말이 없 는 게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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