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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연, 열세 마리의 고양이와 산다

한혜연, 열세 마리의 고양이와 산다

한혜연의 화실은 ‘ㅁ자’ 구조다. 화실 가운데가 고양이 놀이터인 정원이다. 고양이들이 오후의 따듯한 볕을 그르렁거리며 즐길 수 있는 그네가 한가롭다. 고양이 집과 고양이 식당 그리고 작가의 주거 공간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경기도 이천의 이 기묘한 화실을 Keg-B 김현국 대표가 찾았다. 

글 김현국  |  사진 최민호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지낸다면 무섭고 외로울 거 같다. 만 화가와 교수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겠지만. 
일단 고양이 가 열세 마리라 외롭지 않다. 그 아이들을 돌보는 데 시간과 손이 꽤 많이 든다. 일상이야 뭐… 수업 준비하고, 작품 구상 하고, 빵 굽고, 케이크 만드는 정도? 한때 무작정 쉬기 위해 캐 나다에서 1년을 머물다 온 적이 있다. 충전이 필요했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충전이 잘 되고 있어 다행이다.

한혜연에게 만화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청강문 화산업대학에 처음 출강했을 때 주변의 친구들이 다 놀랐다. 내가 누구를 가르칠 성격이 아닌데다 말도 없고 말주변도 없 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학생들 앞에 서고 보니 그 리 낯설지 않았다. 나도 한때 만화에 대한 배움의 열망이 가득 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학생들도 그 시절의 나와 다르지 않 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래 전 만화 동아리 시절, 만화를 더 잘 그리고 싶어서 내가 필요로 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배우 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는 게 내 의무라고 여 기고 있다.

학생들이 ‘한혜연 만화’를 알고 있는가? 탁월한 이야기꾼 이라는 걸 알면 좋을 텐데. 
나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 기 작가는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세대가 달라 내 만화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내 만화를 좋아한다는 학생 들이 간혹 있다. 그럴 때 내색을 잘 안 하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다.  

작품 행보를 보면, 뉴욕 강력계 형사가 주인공인 <M노엘> 같은 스릴러, 미스터리물을 주로 그리다 감성 넘치는 여성 지향적 만화를 보여왔다. 
초창기엔 <ILLUSION>, <또 하나 의 환상>처럼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옴니버스 시리즈로 그렸 다. 엽기적인 스토리의 <M노엘>이나 <기묘한 생물학>도 그 런 이미지를 굳히는데 한몫하는 거 같다. 그 분야를 좋아하지 만 여성 지향적 만화와 균형감을 가지며 작품을 해왔다. 여성 들의 사랑, 슬픔, 이별 등을 담담하면서도 따듯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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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생물학>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더라. 작가의 전 공(이화여자대학교 생물학과)과 상상력이 맞물리니 이런 작품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거칠고 잔혹한 소재가 많았다. 7년에 걸쳐서 여러 매체에 실었던 ‘생물학적’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동기감응’, ‘한성유전’ 같은 생물학 용어들이 출몰하 는 책이다(웃음).

아무튼 정갈한 그림체와 어울리지 않는 섬뜩한 스토리가 한혜연의 매력이다. 대표작 <애총>은 일제 강점기에 실제 일어났던 사이비 종교 백백교 사건이 모티브였다.
 만화잡 지 <팝툰>에서 연재한 후 출간한 <애총>(전4권)은 장편이라 준비하는 시간이 매우 길었다. <M노엘>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했다. 꾸준히 취재하고 생각하고 구상해온 테마 여서 사료나 사건에 대한 취재를 4, 5년간 했다.   

작품의 잔혹한 소재가 부담이 되지 않았나? 
시간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게 부담이었다. 사건에 대한 디테일도 중요했지 만 이 이야기를 현재의 시간으로 이동시키는 장치를 구상해 야 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도 애를 많이 썼고. 잡 지가 중간에 폐간되어 연재 과정 없이 마감하는 것도 부담스 러웠다. 아마 <애총>이 내 만화 중에서 가장 긴 장편으로 남을 거 같다. 앞으로 더 긴 호흡의 작품을 하지 않는다면. 

한혜연표 만화에 또다른 키워드가 있다면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늘 크리스마스 소재의 단편을 발표해 왔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분위기나 느낌을 워낙 좋아한다. 겨 울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으며 고양이들과 뒹굴고 만화를 보는 게 제일 행복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잡지 편 집부에서 크리스마스 특집 단편만화를 청탁해오곤 했다. 그 때 발표한 단편들을 묶으니 두 권의 책이 되더라. <그녀들의 크리스마스>와 <어른들의 크리스마스>. 이 두 권에 실린 단 편들은 소재가 모두 크리스마스다.

최근엔 크리스마스 단편이 뜸하지 않았나?
 MANAGA 덕분 에 올해 작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책, MANAGA 2호에 <BERRY CHRISTMAS>라는 짧은 이야기가 실린다. 독자님 들이 즐겨줬으면 좋겠다. 최근 낸 책 <빵 굽는 고양이> 맨 마 지막 페이지에는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놓은 크리스마스 그림이 있다. 궁금하신 독자님들이 직접 확인해 준다면 고맙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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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고양이>는 미디어다음에서 연재를 한 작품이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에 부담감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다른 작가님들은 매회 올라오는 댓글에 긴장 타는 게 힘들다 고 하더라. 난 바로 바로 댓글을 확인하지 않는 성격이라 부담 감은 없었다. 가끔 읽어보면 그리 나쁜 이야기는 없었던 거 같 다. 다만 이 만화가 ‘고양이 만화’인지, 빵 만드는 ‘베이킹 만 화’인지, ‘카페 창업 만화’인지 헷갈린다는 댓글은 마음에 남 더라. 작품을 다 그려 놓고 웹툰 연재를 했던 작품이라 독자 의견을 작품에 반영하지는 못했다. 완결작이 아니었어도 반 영하긴 힘들었겠지만(웃음).

<빵 굽는 고양이>가 취업난을 겪는 젊은 세대의 아픔을 다루었냐는 이야기도 있다. 주인공인 고정미는 비정규직 의 설움과 실업자의 애환을 겪다 빵 만들기와 고양이를 통 해 위로를 받는다. 
사실, 나름대로 그 모든 이야기를 담으려 고 한 거다. 젊은 청춘의 일과 고민을 빵과 고양이라는 소재로 풀어냈다. 주인공이 베이커리 카페 BABA를 오픈하는 것으로 만화를 끝맺었다.  

뒷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카페 BABA에 손님들이 찾아오면 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걸 생각하고 있다. 언젠가 는 그리고 싶다. 딱히 그 시기는 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언 젠가는 할 것이라는 약속만 드린다. 

이 집, 구조가 무척 특이하다. 애묘인(愛猫人)인 작가의 구 상인가?
 이 집을 지으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있다. 고양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 렇게 ‘ㅁ자’ 형태로 지어 정원을 집 가운데에 배치하니 고양이 들이 집 안에서 정원으로 맘껏 안전하게 드나든다. 

고양이 식구가 정말 많다. 이 아이들 모두 길고양이 출신이 다. 어느 날 고양이 한 마리가 울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그 아 이로 시작해 하나하나 받다 보니 이렇게 식구가 늘었다. 열세 마리나 되다 보니 이 집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우리 고양이들 이 됐다. 고양이들이 편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집이면 나도 만 족이다. 밥 먹으러 찾아오는 동네 고양이들까지 합치면 정말 식구가 몇인지 모르겠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순정만화가’라는 기사 타이틀을 생각하 다 보니 요즘은 순정만화, 소년만화 이런 경계 자체가 모호하 다. 만화 주변 환경이 정말 많이 변했다. 소회가 있음직하다. 
이제 만화에 경계는 없다고 해도 무방할 거 같다. 만화를 전공 하는 학생들만 봐도 그렇다. 새로운 환경에서 워낙 다양한 만 화를 경계 없이 경험하면서 체득하고 있다. 그래서 예전 시대 보다 훨씬 더 세분화된 만화를 만들고 있는 거다. 어떤 구분을 뛰어 넘는 풍성한 만화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다. 이제 그 생태 계가 더 풍부해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나 역시 열심히 만 화를 그리고 열심히 가르칠 참이다. 만화인 모두 갈 길을 열심 히 걸어 나가면 될 일이다. 

 이 만화가를 MANAGA에!

오르페우스의 창(이케다 리요코) <올훼스의 창>이라는 제목으로 만난 만화다. 10대에 처음 볼 때엔 ‘사랑’ 을 봤다. 20대에 다시 봤을 땐 시대적 상황 때문인지 ‘혁명’을 봤다. 30대에 봤을 땐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40대 들어 또다시 읽었을 땐, ‘인생’ 사는 거 뭐 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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