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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 그림쟁이인 건축가 오기사, 이제 또 어디로?

글쟁이, 그림쟁이인 건축가 오기사, 이제 또 어디로? 

MANAGA는 만화가는 물론, 만화적 상상력을 가진 만화 언저리의 아티스트도 초대, 그 창조적인 시간과 공간을 조명한다. 이번 호에서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건축가 오기사(오영욱)를 문화 칼럼니스트이자 한겨레신문 기자인 구본준이 만났다. 집 짓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오기사의 작업과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글 구본준  |  사진 김기태



건축가 오기사
 오영욱이란 이름은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르게 들릴 것 같다. 연예 뉴스에서 접한 사람들에겐 영화배우의 남편, 동종업계 사람들에겐 건축설계회사인 ‘오기사 디자인’의 대표, 그리고 독자들에겐 개성적인 일러스트레이터 또는 글쟁이로. 오영욱 은 20대 이후 건축을 공부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살 고 있다. 거창하지는 않아도 새로운 시도를 혼자 야금야금 도 전해왔다. 이력만 보면 그는 전형적인 엘리트다. 연세대 건축과를 나와 스페인 유학을 마친 건축가, 여러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 유 명 배우 엄지원과 결혼한 셀리브리티. 게다가 부드럽고 섬세 한 외모까지. 하지만 모든 문화 창작자들이 그렇듯 그가 지금 껏 해오는 모든 일들은 그저 ‘스스로 좋아서’ 했던 일들이다. 혼자 백지에 펜 하나로 끊임없이 끼적거리면서 즐거워도 하고 괴로워도 했던 것이다. 옆에서 볼 때 근사해 보이는 문화 쪽 일이라는 게 실제 직업이 되면 고되기 짝이 없고 대부분 대가도 적다. 건축은 그 대표적 인 직종이다. 어느 정도 사회적 경력이 쌓여야 일이 생기는 탓 에 젊은 건축가(건축계에서 젊은 건축가는 40대까지다.)들은 일 따내기가 쉽지 않다. 춥고 배고픈 생존의 마라톤을 견뎌야 만 한다. 건축가 오영욱도 이 어려운 레이스를 숨차게 달리는 중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오기사
 그런데 일러스트레이터 오영욱은 다르다. 그는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빨간 작 업모를 쓴, 머리 크고 허리가 긴 캐릭터 ‘오기사’는 수많은 책 과 포스터, 그리고 인터넷 한구석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인기 아이콘이다. 건축보다 그림으로 먼저 유명해졌으니 그림쟁이 오영욱의 길은 아주 순탄했나 싶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음란 만화를 그려 혼쭐이 날 정도로 괴 짜와 반항아 면모가 다분했다. 중학교 내내 <드래곤볼>을 모 사하던 어린 그림쟁이는 고교 졸업 후 원하던 건축과에 진학 해서도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루에 1장씩 1000장을 연이어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 여행 스케치들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뜻밖의 연락이 왔다. 그의 그림을 눈여 겨보았던 네이버에서 아이템 이미지로 개발하자고 제안한 것. 그렇게 해서 대중들과 만난 ‘오기사’는 작가가 건설회사에 들 어가 일을 하면서 생긴 호칭을 그대로 쓴 필명이자 작품 캐릭 터명이다. 작업장 안전모가 하얀색이어서 처음엔 그냥 하얀 안전모를 쓴 모습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심심하다고 해서 빨 간 칠을 한 뒤로 이 빨간 안전모 캐릭터는 오영욱의 분신이 되 었다. 사람들이 오기사의 그림에 매혹되었던 건 개성적인 펜선의 맛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그림은 상당히 입체적이다. 그가 건 축 전공자여서 가능한 그림이다. 건축 투시도법의 장면을 파 노라마처럼 이어 붙여 펼치기도 하고, 일부만 잘라 보여주기 도 한다. 하나의 그림 안에 실은 여러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그게 합쳐지니 사실적이면서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장면 이 주는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의 그림은 섬세한데 뜯어 보면 고불고불 엉성하기도 하다. 이런 스타일은 건축 여행 스 케치에서 나왔다. “대학 3학년 때 일본의 유명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인 교 토 <명화의 정원>에 갔어요. 안도의 건축은 반듯반듯 기하학 적인데, 건물 중간에 있는 보(기둥 위에 가로로 얹는 건축 부 재) 하나가 직선으로 잘 그려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휘게 그려봤어요. 그때 ‘아,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라는  걸 느 꼈어요. 그때부터 어깨에 힘을 빼고 그림을 그렸지요. 남에게 보여줄 걸 염두에 두지 않으니까 자유로워지더라고요. 그게 스타일이 됐지요.” 도시와 건축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기에 그의 그 림은 도시에 대한 현대인들의 취향을 잘 충족시켜 준다. 여기 에 읽을수록 곱씹게 하는 힘 있는 글까지 더해지면서 그는 10 년 차 저술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자기 자리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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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오기사 
졸업 이후 첫 직장인 건설회사를 3년여 다닌 뒤 그는 사표를 내고 훌쩍 해외로 떠났다. 그리고 15개월 동안 15개국을 돌았 다. 이 여행은 건축가로서 통과 의례와도 같은 과정이자, 일러 스트레이터로 자리 잡는 계기이기도 했다. 건축에서 여행은 살아있는 건축 수업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 다. 중국 고대 병법가 손무가 유명한 전쟁터를 찾아다니며 마 음속으로 전쟁을 복기하고 연구하며 <손자병법>을 남겼듯, 건축가들은 유명 건축물을 직접 찾아가 보면서 자기 건축의 알맹이를 키워 나간다. 오기사의 여행도 그런 것인 동시에 그 또래 젊은이들이 거쳐야만 하는 고민 속의 몸부림 같은 것이 었다. 당시 돌아본 15개국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유학을 하기로 한 오영욱은 책을 출간하는 것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 여행하면서 그린 그림과 글 을 묶어 2005년 첫 책인 <깜비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 리다>를 내며 주목 받았고, 이듬해 나온 <오기사, 행복을 찾 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로 유명해졌다. 이 책은 섬세한 펜선과 짧은 글로 독자들을 바르셀로나로 데 려가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여성적인 감성의 섬세하고 귀 여운 그림들, 은근슬쩍 던지는 유머, 가벼운 듯 그러나 무언가 가 부담스럽지 않게 담겨 있는 그림은 독자들을 상상 속으로 편안하게 이끌었다. 지금까지도 이 책은 오영욱을 대표하는 스테디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바르셀로나는 새신부 엄지원과 신혼여행지로 다시 찾을 만큼 의미 있는 도시였다. 그에게 있어 ‘여행’이란 뭘까? “여행이란… 대책을 뒤로 미뤄 두고 일단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럼 여행 뒤에 뭐가 남느냐고 요? 대책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어진다는 거죠.” 얼마 전, 오영욱은 ‘우연한 배낭여행을 함께 떠날 친구들을 찾 습니다.’라는 이벤트를 개인 블로그에서 벌였다. 함께 여행할 젊은 청춘 3명을 선정해서 항공권, 여행 경비는 물론 여권 발 급비와 가이드북까지 지원한다는 것. 대상은 배낭여행을 간 절히 원하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거나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여행을 떠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친구들이라고. 여행에 대 한 그의 행보 자체가 감동적일 수밖에 없다

건축설계회사 대표 오기사
 2007년 귀국한 그는 1인 사무실을 차려 독립했다. 직원 5명인 지금의 회사로 자리 잡기까지 낮에는 설계하고 밤에는 그림 을 그리는 생활을 이어갔다. 건축가라는 본업에서도 눈에 보 이는 성과가 쌓여 가고 있다. 세계 최대의 건축 축제인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시회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고, 서울 가로 수길에 근린생활시설을 설계해 호평도 받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오가다 마주치면서 간간이 전해들은 그의 행보는 창작의 치열함과 괴로움을 절감케 하는 것이었 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건축 현실은 작품성보다는 경제성이 나 건축주의 취향에 맞는 것만 선택하는 풍토가 강하고, 이런 구조 속에서는 오영욱도 당연히 많은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 었다. 건축에서는 몇 명 작가들을 골라 설계안을 모두 받아본 뒤 하나만 당선작으로 고르는 현상설계를 주로 한다. 작가 4 명 중에서 3등까지 설계비를 지급하는 현상설계에서 그는 두 번이나 꼴찌를 했다. 남들 같으면 좌절하고 화를 낼 법도 한 데, 그는 이런 사실을 담담하게 자기 블로그에 전하며 반성과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 그런 태도와 달관한 듯한 모습이 실로 인상적이다. “제 삶은 한없이 가볍고, 우연이 난무하고 그래요. 첫 책이 나 왔을 때도 담담했어요. 상을 받았을 때도, 실패했을 때도. 글 쓰는 건 창피하지만 좋아요. 글이든 그림이든 현재 제 수준에 서 보여주고, 좀 ‘쪽팔림’ 당하고, 그래서 더 잘하겠다고 마음 먹고 그러는 거죠. 재미있으니까.” 그런 그가 최근에는 재미 가 없었다고 해 조금은 놀랐다. “어떤 스타일이 생기고 그 스 타일에 구속받게 되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다른 그림을 막 그리는 게 재미있고요.” 그래서 새로운 재미를 찾 아 나온 것이 최근 나온 7번째 책 <인생의 지도>다. 그가 그린 가상의 세상을 지도를 따라 인생 여행을 하는, 철학적인 지도 그림책이다. “학교 다닐 때 사회과부도 같은 지도가 정말 좋았 어요. 그래서 지도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죠. 지도 안에 있 는 수많은 점과 선에는 시간이 담겨 있잖아요? 그 시간은 많 은 사람들의 사연이고 일이고 삶이죠. 지도가 그런 매개체가 되는 게 좋아서, 거기에 제 상상을 더한 작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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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사는 또 어디로? 
일러스트레이션에 변화를 시도하는 한편으로 그는 이제 건축 미술의 영역에도 조금씩 발을 디디고 있다. 공공조형물 작업 이 그것이다. 한 아파트에 그의 작업이 첫 선을 보였는데, 그 이후론 건축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모전에서도 연전연패 중이라며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웃는다. 생각해 보니 오기사는 늘 그랬던 것 같다. 자기 페이스대로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 우리 는 그를 보면 엘리트 재주꾼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오기사 역시 많은 좌절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면 그 역시 특별하진 않다는 것을, 그런 과정이 있어서 결국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재주 많은 작가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만화가 오기사’는 어떨까? “만화는… 그리는 것보다 독자로 남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 다. 하지만, 당장은 어렵겠지만 항상 이미지트레이닝을 하면서 서사를 만들어 낼 날을 고대하고 있지요. 그때가 되면 다시 펜 을 잡겠지요. 만화는 그 결과물이 될 겁니다.” 

꺼벙이(길창덕) 초등학교 시절, 아마도 단일 책으로는 가장 많은 횟수를 본 만화책이다. 자세한 기억은 없더라도 나의 무의식을 상당 부분 지배하고 있을, 잊지 못할 만화. 드래곤볼(토리야마 아키라) 일본 해적판 만화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지금도 인물을 그릴 때 눈 모양은 <드래곤볼>의 그것을 따른다. 수없이 베껴 보았던, 그야말로 스승 같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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