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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이빨, 이 만화가의 존재

들개이빨, 이 만화가의 존재

삐딱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음식만화, <먹는 존재>의 작가 들개이빨. 작가는 <먹는 존재>에서 백수의 지질한 연애와 평범한 음식 이야기를 독특하게 버무려낸다. 연재 1년 만에 작가의 작품은 ‘본격 어른들의 만화’이자 ‘제법 흥행하는 콘텐츠’가 됐다. 이 특이한 음식만화 작가를 9년 지기 친구인 이승한 TV 칼럼니스트가 만났다. 어질어질한 인기 속도에 비해, 여전히 무덤덤한 작가를 제대로 들여다본다.  

글 이승한  |  사진 김기태



WORK 
음식만화치곤 맛에 대한 묘사는 담백하다. 정작 작가가 음 식보다 더 관심을 두는 건 ‘먹는 존재, ’ 사람이다. 특히 착취 와 피착취로 얼룩진 사람 사이의 권력 관계. 
인물이 어떤 자극에 황홀해 하는 걸 자세히 묘사하는 게 민망 하다. 맛있다는 걸 설득하려고 굳이 미사여구를 늘어놓아야 하나 싶고. 인간관계는 보통 그렇지 않나? 착취하고 착취당하 면서 산다. 맛난 음식이나 즐거운 일보단 괴로운 일들이 기억 에 더 많이 남기도 하고.

주인공 ‘유양’은 세상살이의 더러움 앞에서 늘 어떻게든 제 목소리를 낸다. 작가 본인과 얼마나 닮았나? 
안 닮았다고 하기에는 닮은 게 많고, 닮았다고 하기엔 아닌 게 많다. 나는 유양보다 생각이 격한 편이지만 언행은 유양보다 조심하는 편이다. 함부로 말하다 뜨거운 맛을 본 경험이 있어 서. 이름이나 사고방식, 생김새를 내게서 조금씩 따온 주인공 이라 실제 이야기라고 오해하기 쉬운가 보다. 여기에 내 미숙 함이 있다. 나와 닮은 주인공을 미워하질 않길 바라는 마음에 약간씩 미화가 들어간다. 유양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캐릭터 를 폄하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때도 있다.

연재 초기엔 여성 독자들의 불만도 적지 않았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근사근 웃어야 하고, 아침마다 풀 메이크 업을 해야 하며, 상사들의 농담을 가장한 성희롱을 견디는 또다른 주인공 ‘조예리’의 고충을 이해하는 이들이 있었으 니까. 이런 조예리에 대한 애정도 깊은 거 아닌가?
 예리의 삶을 쉽게 단정 짓지 않으려 노력한다. 친구가 육아 와 가사를 병행 중인데, 주변에서 “네 친구는 작가라고 인 터뷰도 하며 잘나가니 널 불쌍히 여길 것”이란 말을 들었 다는 거다. 내 일이 가사나 육아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시 선이 있다 생각하니 당황스러웠고, 어쩌면 <먹는 존재> 도 그런 식으로 보일 수 있겠다는 걱정도 들더라. 유양에 겐 남들을 얕잡아 보는 면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인물들 을 다 정치적으로 공정한 캐릭터로 만드는 건 바보짓이 다. 나와 유양을 혼동하는 오해들은 감수할 부분이지만작품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유양을 멋지게 그리지도 않는다. 유양이 퇴사를 선 언한 직후의 구질구질한 묘사는 참 리얼하다. 
사는 게 그렇지 않나? 앞에선 멋진 척 질러도 속으로는 불안 한 게 사람이니까. ‘개그’라는 건 괴로움과 즐거움의 낙차에서 생긴다.

괴로움과 즐거움의 낙차로 개그의 맛이 살듯, 공 들여 그린 음식과 투박한 선 몇 개로 묘사한 인물들의 이목구비가 주 는 낙차가 묘한 긴장을 돋운다. <먹는 존재>의 정신은 그 림에서 완성되는 거 같다. 
난 연필선을 지우다가 만 중간 단계의 그림이 가장 아름답더 라. 그래서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연습장에 연필로 그림을 그 린다. 음식은 대강 그리면 맛없어 보이니 최선을 다해 그린다. 

연필로 수작업을 해온 작가가 다른 도구를 쥐면 어떨지 궁 금한데. 
깔끔한 선으로 만화를 그리려면 정말 잘 그려야 하는데 내가 실력이 안 된다(웃음). 연필로 그리면 선이 분산되는 느낌이 있어 실력이 감춰진다. 이렇게 오래 하니 이제 필압이 안 느껴 지면 어색하다. 태블릿 특유의 미끄러지는 게 익숙하지도 않 고. 뭔가 잘 갖춰놓고 전문적으로 작업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 만 게으른 탓에 늘 까먹는다(웃음). 마감을 빨리 끝내고 자고 싶어 하니 계속 리셋되는 상태다.

LIFE 
아주 가까운 이들을 제외하면 만화가라는 사실 자체를 숨 기고 있다. 원래 살던 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이름을 내기 시작하면 세상 보는 눈이 조금은 바뀌지 않나? 가령 인터 넷에 떠도는 팬아트 같은 걸 보면 으쓱한다든지.
 오징어가 그렇다던가?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 몸이 빨개졌다 파래졌다 하다가 끝내 죽어간다고. 내가 그렇다. 살던 방식에 서 벗어나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팬아트는 볼 때마다 황 송하다. 다들 나보다 더 잘 그리시더라(웃음)!

인터뷰할 때 멋있어 보이는 말 같은 걸 못 하는 성정인가. 
실제로 멋지지 않으니까.

일반인으로 누리던 일상과 전업 만화가로서의 삶이 상충 되는 불편이 있을 듯하다. 
돈을 받고 일한다는 건 굉장히 긴장되는 일이니 거기에 집중 할 수밖에 없다. 물론 피곤하고 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되고 싶었던 만화가가 된 거니 굉장히 행복해야 맞는 거다. 단지 놀 고먹지 못해 불행하다는 건 주제넘지 않나?

일상의 경험들을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는 작가에게 밀려 드는 인터뷰 요청이나 칭찬은 독일지 모른다. 만화가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게 여전히 어색한가? 
만화가도 직업의 일종일 뿐인데, 필요 이상으로 대단하게 보 는 시선이 있다. 거기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 언급을 피한다. 요즘 만화 그린답시고 청소, 빨래, 밥 짓기 같은 ‘내 한 몸 건사 하는’ 영역의 일을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대단하기는 커녕 독립적인 사람의 삶이라 보기도 어렵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 지금의 자신은 어느 단계쯤 와 있다고 생각하는가?
 거대한 미로가 있고 난 여전히 그 안에 있다. 다만 전엔 돌바 닥이라 걷기 힘들었다면 이젠 잔디가 좀 깔려 걷기 편해진 느 낌? 물론 잔디는 돈이고(웃음). 하지만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는 평생 모를 것 같다.

일의 특성상 자기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직업이다. 만화가 로 행복해지기 위한 최소 조건은 뭘까? 
의도대로 작품이 나와 주는 것. 독자 반응은 그다음이다. 그런 데 보통은 자신이 생각하는 높은 기준에 일치하는 만화를 그 리는 데 실패하지 않나?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 같다.

전에 농담처럼 말한 25금 만화 <하는 존재>는 볼 수 있나?
 야한 얘기를 하고 싶은데 독자를 흥분시키는 작품은 어려울 것 같다. 진짜 장인정신은 성인물 작가들에게 있는 것 같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 그렇게 야하게 그릴 수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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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만화가를 MANAGA에!

기생수(이와아키 히토시) 작화, 연출, 대사 등등 모든 면이 완벽하다. 이렇게 그릴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작품이다.


전작 <들개의 지하철 방랑기>도 그렇고 <먹는 존재>도 그 렇고, 둘 다 자전적 캐릭터가 나와 특정 주제로 끌고 가는 옴니버스다. 다음 작품은 어떨까?
서사가 강한 이야기를 하려면, 나 자신과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약하다. 민망하지만 늘 내 감정 이 앞선다. 어차피 내 얘기밖에 못하는 시기라면 원 없이 해보 는 게 어떨까? 그 후에 다음 단계로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물론 이런 방식을 계속 답습하다가 결국 망할 것 같기도 하지 만(웃음). 여튼 다음 작품은 쿵푸 도장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생각 중 이다. 이번엔 주인공의 눈을 아주 크게 그리면 어떨까? 그럼 나랑 안 닮게 볼 텐데. 

… 인터뷰 잘 해놓고 끝이 ‘망할 것 같다.’면 어쩌자는 건가. 독자들에게 멋진 말 한마디하며 잘 좀 마무리하자. 망했다가도 어떻게든 다시 기어오르지 않을까? 조금씩 나아 질 것을 기대하며 산다. 독자님들께 드릴 수 있는 말은, 뭐 그 냥 열심히 하자는 거다. 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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