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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북촌 풍경 같은 만화가, 김광성

고즈넉한 북촌 풍경 같은 만화가, 김광성

<순간에 지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만화가.  프랑스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나비의 노래>로 시대의 아픔을 알린 만화가

. 대중과 한 뼘 떨어져, 항상 변화하는 작품을 추구해 온 만화가 김광성을 만화평론가이자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인 박인하가 만났다. 북촌에서. 

글 박인하  |  사진 최민호



북촌을 닮은 만화가 
북촌에서  김광성 작가를 만났다. 하얀 크로키북에 그림을 그 리고 있다. 그 모습이 작가의 만화처럼 그윽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디서 이야기를 나눌까요?” “난 막걸리 한 사발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조선의 마지막 흔적인 기와지붕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는 북촌 언덕배기의 작은 막걸리집으로 함께 향했다. "북촌엔 자주 오세요?" "달토끼에서 한두 번 온 것 같아요. 여기는 정감 있어서 좋아. 붓이 땡긴다고나 할까? 하하” 달토끼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모여 크로키를 하는 모임’이 다. 김광성, 박재동, 이희재, 석정현, 김정기 작가처럼 드로잉 하면 한가락 하는 만화가들이 서울을 스케치한다. <달토끼, 서울을 그리다>(성인당, 2012)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저 순수하게 그림 좀 즐기자는 모임입니다. 회장도 없고, 회비도 없어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들어오고. 게임 회사 일러스트레이터도 있지요. 재미있어요."

만화와 그림을 좋아하던 소년
 ‘김광성’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1954년 부산에 서 태어나, 순수 회화를 하다 서른 중반인 1988년 <자갈치 아 지매>로 데뷔했다. 데뷔도 늦었고, 작업한 햇수에 비해 알려 진 작품도 적다. 하지만 문학과 회화의 미묘한 조화를 이룬 따 듯한 작품을 한 편 한 편 선보여 왔다. 고향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부산이 고향이에요. 엄궁동.” “음궁이요?” “아니, 엄할 엄(嚴)자 활 궁(弓)자. 산세가 그렇게 생겼어요. 을숙도를 보고 자랐지요. 아버지가 배 타고 민물 뱀장어를 잡 고 재첩도 잡고. 작은 터가 있어 밭일도 하고 논일도 했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형을 따라가 본 동네 만화방에서 문 화적 충격을 받았다. “<달려라 순동이>라는 축구 만화를 본 뒤 만화에 푹 빠졌지 요. <좁쌀 삐빠>라는 만화도 좋아했고, 신문 만화 <왈순마>도 열심히 찾아봤지요.” 만화를 보는 것도 그리는 것도 좋아하던 소년은 초·중·고등학 교 때 사생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늘 상을 받는 단골 수상자였다고. “만화를 그리는 방식으로 수채화를 그렸지요. 회화의 기본적 인 구도조차 없었는데, 너무 많이 그리다 보니까 내 나름의 구 도가 나오더라고요.” 인상적인 대답이었다. ‘너무 많이 그리다 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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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에 운명적으로 만난 만화
 군대를 대신한 특례보충역으로, 군수산업 공장에 들어간 뒤 에도 그림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M16 소총을 만드는 국방부 조병창인데 직원이 2천여 명이에 요. 다양한 문화예술 동호회가 있었죠.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소문을 듣고 ‘일요 화우회’라는 서양화 동호회에서 찾아왔어 요. 유화는 안 해봤다고 거절하다가 설득 당했지요. 그 후 10 여 년을 함께 했어요. 부산미술대전 같은 공모전에서 입상하 는 성과도 있었고요.” 일요일만 되면 회원들과 경주 한옥마을, 옥산서원 등 영남 곳 곳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그 동호회에서 평생의 반려 자도 만났다. “그 시절이 참 재미있었어요. 하이퍼리얼리즘이니 뭐니 하면 서 설전도 벌이고. 크리스마스이브만 되면 밤새도록 술 마시 고. 참 재미있었던 젊은 날의 추억입니다.”

작가는 1988년 잡지 <만화광장>에서 <자갈치 아지매>로 데 뷔했다. 활력 넘치는 시장 풍광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작품이 었다. 대본소 만화와는 사뭇 다른 진지함을 추구했다. 왜 유화 를 그리다 갑자기 <만화광장>에 만화를 투고하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서른다섯 살 때, 간판 만드는 광고사로 직장을 옮겼어요. 86 서울아시아 게임을 앞두고 거리 정비가 한창이어서 간판 사 업이 호황이었죠. 어느 날, 간판을 교체하던 서점에서 <만화 광장>을 보게 됐어요. 작가진이 이현세, 이희재, 이두호, 백성 민, 박흥용 등이었는데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죠. 이런 만화들이 있다니…!” 당시는 만화가 유해문화라며 어린이날 만화책 화형식을 가질 정도로 암울한 시절이었다. “전두환 시대가 끝나니까 이런 만화도 나오는구나 싶었어요. 나도 만화를 해 보자, 무작정 일을 그만두고 들어앉았죠. 만화 를 좀 아니까 덤빈 거죠. 처자식 걱정은 잠시 접었어요.” 1986년 아시안게임, 1987년 6·10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 대의 격변은 김광성에게 만화와의 운명적 만남을 선사한 것 이다. “그때는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모든 출판, 잡지 시장이 확 열릴 때였죠. 난 운 좋게 <만화광장>에 연결됐고, 다시 <매주만화> 로 넘어가서 탄력을 받아 열심히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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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만화, 김광성 만화
 부산 만화가 김광성은 부산에 사는 만화가들을 수소문했다. “박봉성, 김혜린, 신일숙 씨가 부산 작가들입니다. 순정만화가 김혜린, 신일숙 씨를 찾아가 보니 젊은 여성들이더라고요. 밥도 먹고 친했어요.” 김광성은 누구의 문하에도 들어가지도 않고 어떤 스타일을 좇 지도 않았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어디에도 없는 김광성 스타 일이란 말은, 그 누구도 찾지 않는 만화가 될 수도 있으니까. 갈 등과 유혹이 많았을 터였다. “왜 돈을 안 벌고 싶겠어요. 박봉성 선생을 찾아가서 스토리를 받아볼까, 배경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볼까, 그런 생각들을 했지 요. 자본 논리에 편승을 해야 한다는 갈등도 많이 했어요. 하지 만 꾸준히 혼자 작업했어요. 어쨌든 재미있고, 내용이 상업적 이어도 작품성이 있는 걸 추구하면서 묵묵히 작업했지요.” 그렇게 성인매체에 다양한 중·단편을 연재했다. 하지만 변화 가 필요했다. 그때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만났다. “2003년 가을쯤 박완서 선생을 만났지요. 선생의 자전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만화로 그리게 되었어 요.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현저동 분위기를 묻고, 집의 형태며 우물이 어땠는지를 일일이 확인하고 작업했어요.” 소설의 맛을 살리려고 400쪽 가량의 만화를 전부 수채화로 작업했다. 문학적인 만화의 미학을 보여주며 ‘김광성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디딤돌을 놓은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 잔을 나눴다. 초창기에 발 표했던 중·단편 만화들을 묶어 출간을 다시해 보는 건 어떻겠 냐고 제안해 봤다. 우리 만화 특유의 정서가 가득한 그 만화 들은 복간의 가치가 충분한데 고개를 젓는다. 늘 새로운 작품을 독자에게 선보이고 싶기 때문이리라. 김광성은 작품 활동에 매진하면서 우리만화연대 회장 일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한국만화의 상생과 발전을 위해 힘을 다하 고 있는 중이다. 해외 활동이 부쩍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한참 잔이 오가다 꼭 묻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만화하기 잘했나요? 즐거우세요?” “즐겁죠. 계속 즐거웠고, 지금도 즐기고 있어요

 이 만화가를 MANAGA에!

달려라 순동이 어린 시절 본 만화라 작가 이름을 기억 못 하고 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을 딛고, 불굴의 의지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또렷하다. 희망과 꿈과 용기, 더불어 자신감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감동 스토리를 잊을 수 없다.


북촌에 어둠이 내렸다. 늦가을을 정취가 막걸리 잔에 내려앉 았다. 서울 한복판 빌딩 사이에서 북촌 낡은 집들의 가치를 다 시 발견하는 것처럼, 김광성의 만화는 휘황찬란한 웹툰 사이 에서 따듯하고 고즈넉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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