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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 그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그 자신이 유일하다

김정기, 그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그 자신이 유일하다

만화계 한류스타, SNS 인기 작가, CF 출연 작가인 김정기를 C&C 레볼루션 이재식 대표가 만났다. 

작가의 유쾌한 수다는 항상 스케치를 하는 그의 손처럼 쉼이 없다. 세계로 나선 ‘무대 위의 만화가’ 김정기를 들여다보자.

글 이재식  사진 김기태




그는 왜 세상 밖으로 나갔나
그는 마흔 살의 만화가다. 그는 민머리에 검붉은 피부, 셔
츠에 가려졌어도 단단한 근육이 확연히 드러나는 몸을 
가졌다. 따로 운동을 하지 않은 타고난 몸이라지만 첫 만
남부터 긴장을 부른다. 하지만 입가 언저리 근육을 쭈빗 
오물거리며 한마디를 시작하면 상대는 바로 무장해제된
다. 유쾌한 농담이 한 톤 높은 발성으로 이어지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는 쉬지 않고 손을 놀린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무조건 
그림을 그린다. 머리로 그리는지, 손으로 그리는지 그조
차 모를 만큼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 때론 휴지나 벽면도 
원고지가 된다. 펜도 가리는 게 없다. 이것저것 마구 쓴
다. 그림 소재도 가리지 않는다. 1년 전에 본 영화 속 한 
장면을 더듬어 그리기도 한다. 맙소사, 1년 전 영화 장면
이라니! 

김정기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그림에 이끌렸다. 선물 
받은 스케치북의 표지 그림에 단번에 매료됐는데 그 그림
이 바로 토리야마 아키라의 <닥터 슬럼프>다. 이렇게 만
화를 처음 접한 뒤 만화는 그의 모든 것이 되었다. 중학
교, 고등학교 내내 미술부 활동을 하며서 석고 소묘와 수
채화를 그리는 틈틈이 만화를 그렸다. 교실 맨 끝자리에 
앉아 수업시간 내내 공부는커녕 만화에 열중했다. 30쪽 
스케치북을 사면 이틀 만에 앞 뒷장을 그림으로 빼곡하
게 채웠다. 동의대 서양학과에 진학해서도 만화 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순수 회화와 만화를 함께 그리던 그 모든 
시절이 지금의 만화가 김정기를 만든 셈이다.

김정기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더 많은 
걸 푸념한다. 사실이다. 수년 간 화실 붙박이였던 작가가 
요즘 자리를 자주 뜬다. 해외 각지의 방문 요청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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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일은 대략 2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올해는 매달 
해외에 나가고 있다. 1월 프랑스 앙굴렘만화축제 참가를 
시작으로, 3월에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한 달간 머무르며 
드로잉 공연, 강연 등을 했다. 그야말로 ‘무대 위의 만화
가’인 셈이다. 4월에는 중국과 말레이시아를 다시 방문했
고, 5월에는 중국 황산에서 스케치 여행을 한 뒤 홍콩, 대
만을 다녀왔다. 6월은 한 달 내내 프랑스에서 보냈고, 7월
엔 미국 샌디에이고 코미콘 일정으로 출국해 8월 중순까
지 머물렀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그다음 날, 프랑스 
초청으로 다시 출국 길에 오르기도 했다. 
그 뒤로도 9월 브라질, 10월 중국 광저우, 11월 뉴욕, 12월 
말레이시아 등 매달 해외 일정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중국
의 전속 에이전트는 도시별로 방문 일정을 잡는다. 굵직한 
일정 사이사이 틈나는 대로 그곳을 다녀온다. 만화계의 
한류스타, 맞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만화 원화를 판 첫 사례  
도대체 누가 그를 찾는가. 만화가가 이렇게 자리를 옮기며 
작업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그가 해외에서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드로잉쇼 공연이다. 커다란 
백지를 무대에 올려두고 그림을 그려나가는 그만의 방식
이다. 두 번째는 강연이다. 그의 그림에 대한 생각과 그림
을 그리는 방법을 이야기로 푼다. 간혹 공간 구성과 투시 
등 김정기 그림 작법을 꼭 집어서 강연해달라는 주문도 
있다. 세 번째는 작품집 출간과 프로젝트 활동이다. 프랑
스 글레나 출판사에서 책이 나올 예정이다. 또 말레이시
아에서는 페낭 드로잉 관광 가이드북이 나온다. 중국에
서는 황산 원화 엽서를 제작한다. 무려 200장의 원화다.
해외에서 짐 리처럼 유명한 작가나 VIP들을 만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해외 전시회와 사인회 효과로 그의 책
은 해외 판매량이 국내 판매량을 앞섰다. 올해 프랑스에
서 출간된 작가의 책 <Spy Game> 표지 원화는 출간 전
부터 구매를 기다리는 독자가 있었고, 본문 원화도 전시
회를 통해 10점이 팔렸다.

최근의 성과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작품을 판매한 일이다. 
크리스티는 홈페이지에 김정기의 작품 제작 동영상 올리
고 그 작품을 경매에 붙였다. 작품이 팔리자 운영자가 더 
놀랐다고 한다. 한국 만화가의 작품이 쉽게 팔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 만화 원화가 거래된 것 자체가 크리
스티 경매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크리스티에서는 첫 
작품이 팔리면 다음엔 더 나은 조건(작품이 팔리지 않아
도 운영자 측에서 구입)을 기대할 수 있다며 김정기에게 
새 작품을 주문한 상태다.

무엇이 김정기를 차별화시키는가?
그의 핵심적인 차별성은 ‘드로잉쇼’다. 밑그림이나 그 어
떤 초안도 없이 즉석에서 백지에 그림을 그린다. ‘김정기 
드로잉쇼’로 통하는 이 작업은 온전히 그의 브랜드가 됐
다. 기업체나 공공단체의 CF로 활용될 정도로 대중적 인
지도도 높다.  
그 시작은 다소 우연이었다. 그는 2010년 부천국제만화
축제에서 개인 부스를 열었다. 가로 세로 3m인 부스 벽면
에 무작정 그림을 그려 나갔다. 드로잉쇼의 원조다. 이 과
정을 유투브에 소개한 것. 나흘간의 작업을 영상에 담았
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특히 해외에서 그랬다. 며칠 
만에 조회수가 수십만에 이르고, 유투브 운영자는 메인 
화면에 김정기 채널을 띄웠다. 디즈니에서는 디자인팀이 
단체로 영상을 관람했다고 알려왔고, 일본의 인기 만화가 
무라타 유스케는 김정기의 존재를 일본에 알리고 싶고,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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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팬들과 좀 더 긴밀하게 소통할 다른 방안은 없을
까? 김정기 화실팀은 페이스북을 떠올렸다. 화실팀이란, 
공동대표인 김현진과 세종대 만화학과 출신인 김지수를 
말한다.
2012년 초, 김정기의 페이스북이 열리자 불과 40일 만에 
5천 명이 친구 신청을 했다. 95% 이상이 해외 친구다. 이
렇게 어필이 되자 화실팀도 바빠졌다. 해외에서 책 주문
이 쇄도하고 해외 초청이나 다국적 팬들과의 소통이 갈
수록 많아졌기 때문이다. 미술학원 운영에 주력하던 김
현진은 김정기 매니지먼트가 주요 업무가 됐고, 김지수는 
SNS 운영을 도맡았다. 
이렇게 한팀이 되어 기민하게 움직여 나가는 와중에도 김
정기는 수다를 즐기며 낙서하듯 그림을 토해냈다. 예전 
같으면 서랍에 쌓였을 그림들은 페이스북의 콘텐츠로 멋
지게 선보이고 있다. 새 그림이 올라올 때마다 팬들은 ‘좋
아요’로 화답하고 세계 각지에서 ‘공유’한다. 김정기 화실
팀은 세계의 팬들과 빠르게 그리고 성의를 다해 소통하
고 있다.  
그는 요즘 계속되는 해외 일정으로 피로해 있다. 단골로 
표현하는 말 ‘망했다’가 불쑥 튀어 나온다. “망했어요. 가
족과 생이별해서. 저만 좋으면 뭐하겠어요? 우리 식구들
이 아우성이에요. 우리 가족은 여행을 자주했었는데, 요
즘엔 저 혼자만 돌아다니니 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해요.” 
그래도 여행 중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것도 성과라
고 한다. 
“여행 중에 생각이 참 많았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새
로운 사람들 만나고, 신기한 걸 많이 보니까. 결국 다시 드
는 생각은 ‘이야기 만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만화
를 그려야죠. 죽여주는 걸로….” 여행 중에도 그의 손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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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많은 건 ‘의지’다. 의지력이 강한 편인데, 어느 순간 확 사라질 때도 있다. 그래서 없는 것도 의지.


“스케치는 제가 생각해도 머리로 하는 일이 아니고, 손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거 같아요. 하하…. 그건 그대로 계속 
해야지요.” 끊임없는 손놀림과 아이디어의 발상은 결국 
‘만화’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된다. ‘만화’는 만화가라면 가
장 본질적인 작업이다. 해외에서 앞 다퉈 제안해 온 초대
형 프로젝트들과 자신만의 ‘만화 그리기’에 대한 시간 안
배가 관건이다. 지금, 그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김정기, 그 자신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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