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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의 공상(空想) 생활

박소희의 공상(空想) 생활

만화가 박소희는 지금 꿀 같은 휴식 중이다. 

그저 공상만 하는. 이 달콤한 시간의 방해꾼은 홍대 앞 수제 맥주집 Keg-B의 주인 아저씨다. 

두 사람의 연결고리는 여자만화잡지 <나인>. <나인>에서 데뷔한 박소희와 <나인>의 편집장이었던 김현국.

 맥주 방울처럼 추억이 방울방울한 두 사람의 풍경이 정겹다. 

 글 김현국  사진 김기태


김- 벌써 16년이 지났다. 1998년 여자만화잡지 <나인> 신
인공모에서 ‘영혼 결혼식’으로 데뷔한 지. 그간의 근황도 
궁금하지만 초히트작 <궁> 이후 준비하는 새 작품이 궁
금하다.  
박- 아, 인터뷰 어색하다. 새 작품에 대한 구상과 아이디어
를 지금 단계에서 다 드러낼 순 없다. 신비 모드를 유지하
고 싶은데… 밑천을 다 드러낼 만큼 배짱 있는 작가는 아
니다, 내가. 
김- 10년 동안 연재한 <궁>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차기작
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건 인터뷰라 이런 질문을 의례
적으로 던져야 한다. 
박- 으…, 예전보다 더 끈질기시다.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가문에 내린 저주(?)’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호러나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개그감이 잘 살아 있는 로맨틱 
코미디다. 이 작품은 <궁> 막바지 작업 즈음에 본 TV 시
트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김- 시트콤이라… 하이킥 시리즈? 
박- 아니다. 절대 아니다. 심혜진이 나왔던 거. 앗! 다 드러
난 건가?(웃음)
김- 대략 감이 온다. 기대된다. 하지만 만화 편집자로서 보
는 박소희의 감성은 개그감보다는 내면의 정서를 잘 끌어
내는 쪽이라고 보는데… 데뷔작인 ‘영혼 결혼식’도 그렇
고. 서정성이 강하고, 내면의 슬픔이나 상처에 집중한 작
품이 많았다.
박- <나인> 데뷔 이후 줄곧 인간의 내면을 그렸다. 사람이 
마주할 수 있는 슬픔과 서정의 실체를 표현하려고 애쓴 거다. 하지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느낌이었고, 그건 
부담이기도 했다. 편집부에서도 내 작품의 방향을 그쪽으
로 잡았다. 당시 <나인>에 실린 작품들이 다소 무거웠으
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독자 반응은 매우 우호적이
었다.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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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그래도 대표작이자 최고의 히트작인 <궁>은 작가의 
의도대로 갔다. 가볍게.
 박- 습작할 때부터 내 작품의 콘셉트는 개그감 작렬이었
다. <나인>이 휴간되고 연재처를 <윙크>로 옮기면서 가
볍고 경쾌한 개그감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런데 
<나인>의 독자들은 <궁>을 보고 많이 실망했다. 기대하
는 부분이 달랐으니까.
김- 작가로서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고 힘들었겠다. 
박-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상황 자체가 정말 열악했다. 
낮에는 회사를 다녀야 했으니까. 퇴근 후엔 잠을 아끼며 
만화를 그려야 했다. 주경야독이 아니라 주경야만(漫)의 
고달픈 인생이었다. 만화를 포기할까? 말까? 정말 고민 많
이 했다.
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궁>을 10년 장기 연재를 했고 
여기까지 왔다. 갑자기 대단해 보인다. 
박- 데뷔 초기에 던진 편집장의 한마디가 지금까지의 날 붙들어 주었다.
 “소희 씨는 나이도 아직 어리고 사회생활 도 이제 시작인데 참 신기해. 
어떻게 이런 진득한 감성, 특 히 엄마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거지? 놀라워.” 나한 테 이런 칭찬했던 거 생각나는지? 
김- 헉! 내가? 맞다. 어렴풋이 기억난다. 단편 ‘멍’을 보고 
한 얘기였다. 정말 편집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멍’은 자
폐아를 기르는 미혼모의 이야기였다. 
당시에 담당인 후배 에게 “혹시… 박소희, 진짜 미혼모 아냐? 애 키우고 있는 거 아냐?”라고 물어 봤었다. 
내면의 슬픔을 제대로 다루 는 게 놀라웠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것도 있을 
텐데…. 
박- 기억하시나? 그때 정말 힘들게 만화를 그렸다. 그런데 
내 그림에 대한 김모 편집장의 지적질이 장난 아니었다. 
김- 사실… 주인공 턱선의 불균형이 눈에 거슬렸다. 오른
쪽 턱은 살이 찌고 왼쪽 턱은 왜 그리 말랐는지. 난 그걸 
지적하며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했던 거지. 
박-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낮에 회사에서 일하고 밤
에 졸면서 만화를 그리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거의 누워
서 그림을 그렸다. 비딱하게 누워서 그림을 그리니까 턱이 
그렇게 삐딱하게 빠진 거다. 누워서 그리니 뭔가 불균형
한 게 당연한 거지. 그렇게 변명하면 편집장 포함, <나인> 
에디터들이 다 뒤집어지게 웃더라. 남은 힘들어 죽겠는데.
김- 어쨌건 그 묘한 불균형의 마스크는 이제 박소희의 전
유물이다. 앞으로도 절대 고치지 말고 쭉 나가시라. 이제 
어엿한 중견작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순정만화가의 위
치에 와 있다. <궁>이 히트하기 시작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박- 그리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 게 아니라서 갑자기 찾아
오는 ‘행운’ 같은 것에 매우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나인> 신인공모에 당선되었다는 우편물을 받았을 때 한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실 같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웠다.
 <궁>도 그런 존재였지만 인기를 얻은 덕분에 안정적
으로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만화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온 거다. 앞으로
도 계속 만화를 해나갈 수 있겠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나는 인기와 상관없이 가늘게, 길게, 마지막 힘이 남아 있
는 순간까지 만화를 그리고 싶은 사람이다. <궁>은 그런 
의지를 선물해 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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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얼마나 많이 벌었냐?’를 노골적으로 묻기 뭐해서 살짝 
돌려서 질문한 건데, 너무 진지하게 자기성찰을 해버리니 
미안해진다. 그토록 애정하는 만화를 구상할 때 박소희
만의 독특한 기질, 버릇 같은 것이 있을 법한데 어떤가? 
박- 늘 공상을 많이 한다. 혼자 있을 때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그 생각들은 하나의 사건으로 구체화된다. 그 사건
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타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성장한 버릇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등장한 인물들은 또 다른 나이기도 하다. 

김- 결국 공상의 차이가 일반인과 창작자의 차이인 건가?
 박 -아무래도 그렇겠지. 난 너무 많은 공상을 해서 문제가 
될 정도였다. 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공상만 할 때도 있
었다. 그 공상에서 내 만화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공상 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면 만화도 그만 두지  않을
까 싶다. 그래서 공상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하고 싶다. 그
게 내 만화가 생활의 목표다. 
 
김- <궁> 이후에 네이트에서 꽃미남 헤어 디자이너의 성
공기 ‘살롱H’를 연재했다. 이 작품도 공상이 성공적이었나 
보다. <궁>처럼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데. 박 드라마 제작은 잘 진행되고 있다. 이 작품은 외부에서 
기획한 후 내게 의뢰한 거라 맘껏 공상하기보다는 신중을 
기한 작품이었다.
원작 만화가로서 드라마가 재미있게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다.


많은 거? 게으름. 에어컨 버튼을 누르는 게 너무나 귀찮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한 적이 있을 정도다. 
없는 건 관능미? 농담이고, 사실 철이 없다. 일부러 철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 만화는 철이 들면 그릴 수 없는 것들이 많아서. 

김- 빅 히트작을 가진 작가인 만큼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
이 있을 법하다. 어느새 중견 작가가 되어 있어서 한국만
화가협회를 포함, 여러 단체나 행사 등에서 역할을 해달
라는 요청도 많을 텐데…. 
박- 잘 아시다시피, 난 매우 소극적인 성격인데다 나서기를 
굉장히 꺼려한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나의 ‘안면인
식장애’도 한몫했다. 늘 자주, 익숙하게 보는 사람이 아니
면 기억을 잘 못한다.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들이나 작가들이 날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하면 본의 아니게 당황한다. 그런 일이 잦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공식적인 자리에 나가는 게 매우 부담스럽
다. 이점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김- 아…,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박- 이 인터뷰도 예전의 인연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거다. 
그저 좋은 만화를 그리는 게 만화계를 위한 내 역할이지 
싶다. 사람은 변하기 힘든 것 같다. 내 역할이나 위치도 마
찬가지다.

김- 여전히 겸손하시다. 아무튼 꾸준히 공상 중인데 차기
작품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만들어진 건지? 
박- 연말이나 내년 초에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싶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게 내 콘셉트니 서두르고 
싶지 않다.
아무튼 이렇게 맛있는 맥주를 마시며 지난날을 추억하니 
참 좋다. 딱 한 잔만 더 마시자. 

김- 술은 박소희의 공상 생활에 득이 될까? 독이 될까? 다
다익선 아닐까? 박 글쎄…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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