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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귀환, 장태산

20년 프로젝트로 돌아오다

그림만 봐도 역시 달랐다. 거칠면서 섬세하고,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를 보는 듯한 그만의 그림은 다시 한 번 

진화해 있다. 황량한 벌판을 달리며 늘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살았던 사람들, 거친 수컷들의 세상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의 그림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되살아나고 있다. 장태산이란 만화가의 

저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올해 안으로 장태산 작가의 새 만화 <몽홀>이 독자들과 

만난다. 몽홀은 몽골의 옛 이름 중 하나로, 중국이 몽골을 

비하하는 의미로 부르던 말이다. 자신들을 처절하게 

짓밟았던 초원의 기마민족에 대해 씻어낼 수 없는 

공포심을 가졌던 중국은 몽골을 낮춰 부르며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정신승리를 추구했다.


<몽홀>은 중국을 벌벌 떨게 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전투 집단이자 그 누구보다도 넓은 영토를 지배했던 

몽골과, 그 몽골의 위대한 지도자 칭기즈칸의 이야기다. 

정통 극화 만화의 대명사인 장태산 작가가 수많은 

소설가와 만화가가 도전했던 이 거대한 서사를 들고 

웹툰으로 돌아온다는 것만으로도 <몽홀>은 관심을 

모은다.


야수라는 이름의 사나이

1980~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1960~1970년대 생 

중년 남자들에게 장태산이란 이름은 그 시기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다. 허영만과 이현세, 박봉성과 고행석이 

이끌었던 한국 만화의 전성기, 장태산은 이들 슈퍼스타 

만화가들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작품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사람들은 장태산이란 이름 석 자를 들으면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야수라는 이름의 사나이>를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나간다 용호취>와 <스카이레슬러>를 

생각해 낸다. 


어떤 이야기든 장태산표 만화는 달랐다. 그의 만화는 

그림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사로잡았다. 만화 시장이 

열악해 스타 만화가라고 해도 작품을 많이 그려야 먹고 

살 수 있었던 시절이어서 당시 만화는 그림이 조악하기 

일쑤였다. 최대한 경제적인 그림체로 공장에서 만화를 

찍어내듯 만들던 몇몇 작가들과 달리 그는 무엇보다 

만화의 기본인 그림에 충실했다. 


배경과 소품, 분위기를 나타내는 묘사에서 늘 최고 수준의 

디테일을 보여줬다. 등장인물이 찬 손목시계의 바늘까지 

생생하게 처리하는 그림은 장태산 만화의 차별화된 

표현이었다. 여기에 영화처럼 리듬감을 주는 장면 연출과 

하드보일드풍의 야수 같은 성인 취향 스토리는 장태산 

만의 묘미였다. 


이런 그림 실력과 역동적인 장면 연출은 인생 초기의 

처절한 간난신고 속에서 만화가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만화에만 매달린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마친 뒤 생활 전선에 

뛰어든 장태산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며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17살 무렵 구두를 닦던 손님 한 

명이 그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만화계의 지인을 

소개했다. 이를 계기로 장태산은 본격적으로 만화에 

입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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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해서 그렇다

청년 장태산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미국 만화였다. 

동년배 다른 만화가들이 대부분 일본 만화에서 절대적 

영향을 받았던 것과 달리, 드물게도 그는 미국 만화에 

매료된 만화가였다.


데생이 정확한 미국 만화가 좋았던 그는 틈만 나면 서울 

명동의 외국서적 서점을 찾아가 미군 부대에서 나온 만화 

잡지를 사 모으며 탐독했다. 닐 애덤스, 조 쿠버트 같은 

미국 코믹스 거장들의 만화를 교과서로 삼았다. 정확한 

그림과 어둡고 묘한 분위기가 강한 미국 만화의 특성을 

연구하며 자기 작품을 시작했다.


작품 배경이 미국이고, 주인공의 고독하고 처절한 

심리 처리가 일품이었던 그의 대표작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는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소년 권법물 <나간다 용호취> 역시 당시 만화들 중에선 

미장센과 디테일이 단연 두드러진 작품으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여전히 사람들은 장태산 하면 두 작품을 떠올리며 80년대의 

작가로 여기지만, 그는 그 이후로도 계속 만화를 그렸다.


만화의 주 유통 경로였던 대본소와 대여점이 사라지고 

웹툰이 새로운 주류가 되면서 한국 만화계는 급변했다.

문하생을 거느리고 작업하는 도제 시스템으로 그림을 

그린 기성 만화가들은 대부분 새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만화를 접었다. 


자기 또래 만화가들이 그렇게 사라지는 와중에도 

장태산은 변화를 힘들게 받아들이면서 홀로 새로운 

작업 환경에 매달렸다. 그는 작가로서 더 치열해졌고, 

더 깊어졌다. 그런 자신을 “미련해서 그렇다.”고 말하며 

웃는다.


장태산의 칭기즈칸 

칭기즈칸을 소재로 한 <몽홀>은 그의 이름이 낯선 

세대들에게도 장태산 만화를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다. 

40년 넘게 만화를 그린 중진 만화가가 칭기즈칸을 고른 

것은 어찌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동시에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만화가가 예순 무렵에 역사 대하 만화를 그리는 것은 

한국과 일본에서 익숙한 흐름이다. 고우영이 그랬고, 

데즈카 오사무가 그랬다. 불멸의 영웅 칭기즈칸은 

이런 노익장 만화가들이 꼭 한번 해 보고 싶은 소재 중 

하나다. 일본에선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칭기즈칸>에서 

칭기즈칸을 그렸고, 한국에선 허영만이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에서 칭기즈칸을 그렸다. 그리고 이제 장태산의 

칭기즈칸이 등장을 앞두고 있다.

그는 왜 칭기즈칸을 골랐을까? 그가 그리는 칭기즈칸은 

어떤 만화가 될까?


“정말 오래 구상한 작품이다. 한 출판사와 몇 년에 걸쳐 

출간하기로 했는데 출판사 문제로 진행되지 못하다가 

이제 네이버 웹툰으로 선보이게 됐다.” 


사실 그 시작은 거의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대 시절 봤던 <테무친>이란 칭기즈칸 영화를 본 

뒤로 칭기즈칸은 언제나 장태산의 뇌리 속에 존재했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 국내에 나온 몽골 관련 책들은

거의 읽어가며 본격적으로 대하 만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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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칭기즈칸이 되는 어린아이의 아버지 예수게이가 

젊은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적장 한 명을 사로잡았다. 

예수게이는 그를 살려두려 했는데 그가 오히려 ‘나를 

죽여라.’고 말했다. 결국 예수게이는 그를 죽이는데, 

그 적장의 이름이 테무친이다. 예수게이는 그 이름을 

자기 아들에게 붙여줬다. 몽골의 그 시절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살아남는 것만이 

지상의 목표가 아니었던, 웅혼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시대였으니까. 작은 이익에 목숨을 거는 요즘과는 달랐던 

그 시대를 그리고 싶었다.”


장태산 화실 

그의 화실은 부천에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작가실 

중 한 칸이다. ‘장태산’이란 이름 석 자가 문패처럼 출입문 

옆에 단출하게 붙어있다.


그곳은 다른 만화가들의 작업실과 달리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좌식 공간이다. 창을 바라보는 작업 테이블, 

평생을 모아온 손때 묻은 참고용 책들로 빼곡한 책장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국의 도시 풍경과 문화를 다룬 

화보집들이 유난히 많다. 그의 생생한 배경 묘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짐작케 한다.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는 작가의 일상을 대변한다. 요즘 

젊은 만화가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필수품인 초대형 

태블릿은 생경하다. 환갑을 넘긴 노장 만화가에겐 영원히 

낯설 법한 기기 아닌가. 평생 종이와 펜으로 그림을 

그렸던 그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스스로 변신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던 만화책과 달리 스크롤 방식의 

웹툰은 만화 작법까지 달라지게 했다. 단행본 만화 시절, 

장태산의 특기는 만화의 기본 틀인 프레임을 파괴하여 

결정적인 장면을 만화 한쪽 혹은 펼쳐진 두 쪽에 걸쳐 

과감하게 한 장면으로 연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로 

사이즈가 한정적인 웹툰에선 이런 연출이 불가능하다. 

기술의 변화가 꼭 만화의 질을 높여주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연출 기법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본다.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기기부터 작법까지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프로 

만화가의 투혼이 방 안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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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몽홀

일생의 마지막 장편이 될지도 모르는 만큼 그는 거의 

5~6년은 걸릴 분량으로 작품을 준비 중이다. 거친 

세상 속에서 야생의 삶을 살았던 인간 군상들의 거대한 

이야기가 과연 요즘 만화 독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장태산이란 작가가 전성기 

시절 돈과 인기만 좇았다면 지금까지 만화를 그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만화가 좋고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아 그는 작품을 양산하기보다는 자기가 그리고 싶은 

스타일을 진화시켜 왔다. 


<몽홀>은 그가 가장 오래 준비한, 가장 그리고 싶은 

작품이다. 칭기즈칸의 시대처럼 치열한 생존경쟁의 

무대인 만화판에서 그가 지금까지 버텨온 것 자체가 

바로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웹의 시대에 종이 만화로 잔뼈가 굵은 60대 

작가가 새롭게 독자들과 만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 만화계에서 50대 이후에도 

당당히 프로 작가로서 후배들과 경쟁하며 창작의 길을 

걸어가는 만화가는 실로 드물다. 장태산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만화가이기에 소중한 존재다.


<몽홀>로 장태산이란 이름이 신세대 만화 팬들에게도 

기억된다면 그는 또 한 단계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가가 

될 것이고, 그 성과는 한국 만화의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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