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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민의 말과 춤

백성민의 말과 춤

작가는 한동안 말과 놀았다. 그런데 이제는 춤을 춘다. 그런 만화가 백성민을 만화평론가이자 청강문화산업대 교수인 박인하가 만났다.

 은은한 한지를 후두둑 가르는 먹물 한 줄기가 그림이 되고 시가 되는 공간. 말은 살아서 펄펄 움직이는데, 

두 사람의 말은 두런두런 무심히 오갔다.

글  박인하  사진  최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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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업실은 광명시의 다세대주택 2층이다

광명시 광명 2동은,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연변 동포들과 

외국인들이 많이 기거하는 곳’이다. 언덕길을 걸어 올라 

작업실을 찾았다. 작가는 넓지 않은 작업실 바닥에 화구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린다. 희끗한 흰머리 사이로 땀이 흐

른다. 하얀 한지 위로 거침없는 붓의 선이 배어난다. 


“집에서 그림 그릴 때는 팬티 바람으로 그리거든.  땀을 많

이 흘리고, 파지도 많이 나오고 해서.” 

땀이 후두둑 한지에 떨어진다.  붓이 거칠다. 갈라진 붓 끝

으로 굵은 선과 가는 선이 자유자재로 나온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운 붓 끝에 묻은 먹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거친 붓은 굵고, 가늘게 자유자재로 조율

되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그렇게 커다랗게 펼쳐

진 한지 위로 말이 뛰어오른다.


“이런 식으로 10여 장 그리다 보면 하나쯤, 조금 맘에 드는 

게 나오지.”

한 장을 완성하자마자 밀어 놓고 새 한지를 펼친다. 한쪽

에 파지가 쌓여간다. 무릎을 세운 작가는 오롯이 그림에만 

집중한다. 그 안에 그만의 세계가 펼쳐진다. 작가는 굵은 

붓의 한 올 한 올을 모두 이용한다. 어떤 생명의 힘이 꿈틀 

거린다.

“작년에는 정말 미친 듯 ‘말’을 그렸다. 체중이 4~5㎏ 정도 

빠졌다. 그러다 요즘 한 석 달 동안 붓을 쉬었다. ‘말’에 이

어 ‘춤’을 새롭게 표현하고 싶어서…. 좀 노니까 다시 체중

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작가의 화두는 말과 춤이다 

흐르는 붓 선에 다양한 힘을 담아내는 작가의 그림은 작가를 닮았다. 

“경마장에 가서 말을 보면 참 예뻐. 아름다워. 초등학교에 

가 보면 어린애들은 못생겨도 예뻐. 그러니까 하나도 버릴 

애들이 없어. 말도 그래. 준마는 준마대로 예쁘고….” 

잠시 말을 멈추고 말의 얼굴을 그린다. 몇 획의 붓 선으

로 새로운 말이 태어난다. 말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

인다. 

“이 서러브레드 종은 한국 사람들이 승마용으로 타기엔 

너무 크고 성격이 예민해서 안 좋아. 승마용은 제주도에서 

스페인 말을 키우고 있지.”


문득 지난해 네이버의 한국 만화 거장전에 실린 작가의 

‘붉은 말’이 생각난다. 첫 스타트를 끊은 작가의 작품 ‘붉은 

말’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기존 웹툰에서는 볼 

수 없었던 놀라운 내공과 스타일 그리고 강렬한 색과 선이 

보는 이들은 매료시킨 것. 

한 편의 시처럼, 한 폭의 동양화처럼 붓으로 완성한 작가

의 작품은 생명력 넘치는 선으로 디지털 세상에 되살아나 

웹툰 독자들과 조우했다. 

“‘붉은 말’은 작은 종이에 그렸지만 평소 난, 큰 종이에 말

이랑 호랑이를 맘껏 그리고 있어. 정말 크게 그린 호랑이 

그림이 잘된 게 있었는데… 안 보이네. 집사람이 나 몰래 

팔아먹었나? 하하.”

작가의 작품을 보니 큐레이터의 본능이 발동한다. 말과 춤

이 어우러진 작가의 개인 전시회는 상상만으로도 예술적 

감흥을 솟게 한다.


“개인전을 하자고 몇 번 이야기가 있었어. 홍콩에 있는 말 

클럽에서도 하자고 했지. 내 말이 중국 말 같지도, 서양 말 

같지도 않다고 하면서. 지난해 말부터 올 3월까지 열린 

‘신화와 전설, 잃어버린 세계로의 여행’(아람미술관) 그룹

전에서 내 그림을 보고 홍콩에서 제안을 한 거지. 그 전시

회에서 여섯 점이 팔렸어. 그때 전시한 그림은 곧 화집으로 

나올 거야.” 

작가의 개인전이 머지않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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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민은 가장 생명력 넘치는 선을, 신명을 다해 긋는 작가다

<라이파이>의 작가 산호 선생의 문하에서 만화를 시작한 

후 다양한 모색 끝에 80년대 이후 한국적인 만화에 몰입했

다. 계기가 된 작품이 황석영의 <장길산>이다. 스스로 ‘마

당그림’이라 이름 붙인 이 만화를 두 달에 한 권 꼴로 완성

하며 4년 동안 매달렸다. 손에 익었던 모든 그림을 버리고 

‘마당그림’을 손에 익힌 것. <황색고래>, <싸울아비>, <토

끼>, <삐리>, <상자하자> 등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

품도 연이어 발표했다. 그 안에는 시대와 불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가의 작품을 더는 만날 수 없었다. 만화

들이 한없이 가벼워질 때 그 무게를 잡아주던 작가의 작품

을 볼 수 없게 된 건 적어도 내겐 큰 상실감이었다. 더구나 

후속작으로 성서를 만화화하기로 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백성민이 그리는 성서만화라니!

“자격이 없었던 것 같아. 성서를 만화로 그리려면 믿음이 

있거나, 돈만 보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난 둘 다 아니

었어. 난 내가 하면 잘 그릴 줄 알았거든. 어떤 단계로 넘어

갈 자신이 있었지. 그런데 나이 먹고 눈이 어두워지니까, 

그림이 안 되더라. ‘잘 그릴 나이에 왜 저렇게 그리나.’ 하

고 선배들에게 불평했던 나였는데…. 만화는 눈과 손이야. 

노안이 온 지금은 팔로 그려. 아직 몸으로 그리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노안이 올 무렵 성서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했지만 이미 손

에 힘이 빠졌었다고. 진짜 잘할 줄 알았던 작업을 더는 하

지 못하게 됐을 때, 작가는 절망했다. 

“만화는 작은 데다 성실하게 해야 하는데 나이 먹으면 그

게 잘 안 되는 거지. 해 봤자 구닥다리라고 욕만 먹고. 개인 

작업을 하는 작가는 다 마찬가지야. 팀 작업하는 작가와는 

달라.”


서글프다. 작가가 벽에 부닥쳤다
마음도 몸도 모두. 작가의 옛 만화 중에서 평생 바위산을 
홀로 뚫어 굴을 연결한 주인공을 들춰냈다. <은원을 넘어
서>라는 일본의 단편소설을 모티프로 만들었던 만화다. 
좌절과 절망을 이기고 새로운 예술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작가의 열정이 그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그 주인공은 목적이 뚜렷했지. 하지만 나는 막연했어. 너
무 절망스러워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 그 절망 속에
서 만난 후배 양영순과 석가(석정현)가 그래서 참 고마워. 
내 블로그에 작은 그림들을 올리게 된 게 양영순이가 ‘붓으로 그린 그림이 재미있으니까 블로그에 올려 보라.’고 
했기 때문이야. 누군가가 사인해 달라고 하면 나는 특별히 
해줄 캐릭터가 없었지. 그래서 말을 그리곤 했는데 영순이
가 그게 재미있다는 거야. 바로 우리 딸에게 블로그를 만
들어 달라고 했지.”
작가의 블로그 ‘광대의 노래’(http://blog.naver.com/
ctbaik)에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그린 그림이 디
지털로 소개되고 있다. 여기저기로 그림이 스크랩되고 댓
글이 달린다. 
“영순이가 석가의 방사(방배동 사람들) 사이트에 가 보라
고 했어. 젊은 애들이 잘하고 있다고. 거기 가서 그림들을 
둘러보고 나도 놀았지. 그 친구들도 내 블로그에 와서 글
을 하나씩 남기고 갔어. 힘을 많이 받았지.” 
백성민의 블로그에 젊은이들이 모인다. 안부게시판에 고
민을 남긴 후배들도 있다. 그 글에 댓글이 달리고, 그 댓글
은 누군가의 힘이 된다. 그림을 통해 서로를 위로한다. 새
로운 연대가 서로를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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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통하며 그린 작업의 결과물이 벌써 수천 장 이다
“동적인 건 그래도 우리 만화가들이 잘 그리잖아? 일반 화
가들보다. 만약 전시회를 하게 된다면 ‘말과 춤’으로 할 생
각이야. 맞다. 내가 좋아하는 호랑이는 좀 넣어야지.”
작가는 요즘 현대무용가 홍승엽 선생과 협업을 하고 있다. 
홍승엽 선생이 춤을 추면, 그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퍼
포먼스다. 홍승엽 선생이 작가를 취재한 SBS 뉴스를 보고 
연락을 해 왔다고. 
“주체가 춤이니까 처음에는 크게 그렸어. 크게 그리니까 춤
이 죽더라. 지금은 작게 그려. 홍승엽 씨가 살아야 하니까. 
한 30분 공연을 하면 30장을 그려. 그중에서 10장 정도는 
괜찮은 게 나와.”
춤을 추는 현장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건 작업실에서 그리
는 것과 전혀 다른 일이다. 춤을 추는 무용가의 육체적 에
너지가 그림의 선으로 바로 전환된다. 머리로 그리는 그림
이 아니라 몸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그렇게 작가는 만화 인생의 새로운 장으로 넘어와 있다. 
타고난 그림쟁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에 자신의 모든 
걸 녹여 내고 있다. 부드럽고 힘찬 선은 하얀 종이의 여백
과 함께 말이 되고 춤이 된다. 
“그림쟁이는 어떻게든 계속 그림을 그려야 되는 거야. 자
신 앞의 바위를 계속 뚫고 나가야 하는 운명인 거지.”

자기 앞의 바위산을 뚫고 있는 남자
홀로 바위를 뚫고 나가는 사람의 고독과 분투의 현장에 있
으니 가슴이 더워진다. 늘 역사의 고갱이를 붙들고 민중의 
이야기를, 대서사를 그리던 작가는 이제 말과 춤의 이야기
를 거친 선으로 이야기한다. 뚝뚝 흘리는 작가의 땀처럼 
끈적한 열정은 그대로 그림에 투영된다. 
“당분간 춤에 전력투구를 할 거야. 미친 듯이 춤을 그리다
가 말이나 호랑이를 그리면서 쉬었다 가곤 해야지. 춤의 
웅장한 무게감과 깃털 같은 가벼움을 내 붓의 놀림만으로 
재해석하고 싶어. 하지만 춤이 가진 ‘본질’은 살아 있어야 
해. 그렇게 그리고 싶어. 그게 소원이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세월
의 두께가 느껴지는 작가의 이마에 다시 송골송골 땀방울
이 맺힌다. 그 땅방울이 채 식기도 전에 작가는 다시 붓을 
잡는다. 검은 먹을 머금은 투박한 붓이 하얀 종이 위에서 
다시 넘실넘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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