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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 송곳의 의미

최규석, 송곳의 의미


노동 만화 ‘송곳’으로 ‘만화 노동’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만화가 최규석.

 그를 만난 인터뷰어는 ‘노모뎀’이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 에디터 이주석이다

 최규석 화실이 입주해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오간 즐거운 대화! 글 이주석(노모뎀)  사진 김기태



MANAGA 1호의 인터뷰 작가로 선정됐다. 이유가 뭘까?  
친한 사람 위주로 선정해서 걸린 거 같다. 

혹시… 이번 인터뷰에서 피하고 싶은 질문이 있는지?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느냐? 같은 건 좀…(웃음). 들을 때마
다 대답을 못 하겠다. 대답을 하려고 애는 쓰는데 성공한 
적이 없기도 하고.

알 거 같다, 그 기분. 최규석 작가의 첫 단편집 <공룡둘 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에 실린 ‘솔잎’에 대한 얘기부터 해보자.
 1998년 일이라 기억이 잘 안날 수도 있겠지만.
아니,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솔잎’은 만화하는 친구들
이 군대를 가기 전에 동인지나 하나 만들자고 해서 시작한 
작품이다. 나는 ‘시간’이라는 아이템을 선택했다. 군대로 인
해 벌어질 나의 상황과 세월에 대해 생각한 거다. 그런데 친
구들이 작품을 못 끝내고 입대했다. ‘솔잎’을 완성했던 나는 
서울문화사 <빅점프> 신인 공모전에 응모하고 바로 입대
했다.


그 ‘솔잎’이 금상 수상작이 됐다. 당시 편집자들이 ‘작 품은 좋은데, 작가가 군대에 있다.’며 기다렸다더라.  
하지만 내가 제대를 했을 때, 잡지가 없어졌다.

헉, 결국 잡지가 못 기다린 거네. 그 이후로도 하던 잡 지가 없어진 경험이 있나?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실었던 <영점프>. 그때 
<영점프>는 폐간 수순을 밟고 있어서 기존 만화잡지에서 
보기 힘든 작품들을 막 실어 보던 상황이었던 거 같다.  

<영점프> 때의 기억나는 작품이나, 또 궁금한 작가가 있을 거 같다.
<굳세어라 군바리>를 연재했던 나병재 작가가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도 대중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그림이었다. 국내
에서는 보기 드문 스타일이라 참 좋아했던 작품이다.
아무튼 그 시기에 시작한 작가들은 모두 궁금하다. 그때를 
좋게 말하면 디지털 만화 1세대, 나쁘게 말하면 만화가 망
해가는 판이었다. 만화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숫자 자체가 
적었던 시절이라 뭔가 동지 의식 같은 게 강했다.

또 다른 초기작 <짜장면>은 채색이 특이했던 기억이 있다. 왠지 그림체가 유독 달라 보인다.
<짜장면>은 졸업 후 생계 수단으로 변기현과 함께 분업한 
작품이다. ‘공정하고 적절하게 반으로 탁 갈라서 하자.’고 
시작했는데 구성이 좀 이상해졌다. 거기에 컬러를 수채화
로 완성해서인지 그 느낌이 더 독특해졌다.

어려운 시절에 혼자 시작했지만 스승으로 여긴 작가나 작품이 있을 거 같다. 
이상무 원로 작가의 ‘독고탁 특별 전’에 들렀다 왔는데, 
많은 만화가들이 독고탁이 자신 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회상하더라.
대체로 한국 만화가 선생님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특
히 박흥용 선생님과 이희재 선생님. 박흥용 선생님의 연출은 
정말 특이하다. 말이 안 되는 것들을 과격하게 늘어놓고는 
그것들이 모두 말이 되게끔 만든다. 전달하고자 하는 게 확
실하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독자에게 납득시킨다. 박흥용 선
생님의 작품은 이야기와 감성보다 현실 묘사에 매달렸던 내 
연출 방식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이희재 선생님의 작품은 항상 좋다. 오래 가는 그림이랄까? 
언제 봐도 예스럽지 않다. 특히 얼굴 표정이 참 좋다. 잘 그리려고 애쓰신 느낌이 없는데도, 근육과 피부의 인체묘사부터 
감정의 표현까지 정말 뛰어난 분이라는 생각이다.
일본 만화가 중에는 에가와 다츠야 같은 작가. 전혀 말이 
안 될 법한 내용을 현실적인 배경에 현실적으로 던져 넣는 
그런 느낌이 항상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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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수 있다. 만화가!’ 이런 작법서 이야기를 하는 느낌 이다. 혹시 문하생이 있는지?
문하생은 없고 글을 도와주는 분은 있다. 프로 작가분이 
쉬는 동안 도와주시는 정도다. 그림은 뭐, 요즘 내가 가르
칠 사람이 있겠는가. 다들 잘 그린다.

자, 이제 젊은 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네이 버 화제의 웹툰 ‘송곳’ 이야기를 해보자.
젊은 층이 아닌, 30대 이상 남성독자 순위권….

송곳’을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송곳’의 뜻을 정의하고 있다, 나 역시. 작가가 말하는 ‘송곳’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저 피상적인 의미로 만들어본 제목이다. 이야기를 펼쳐
가면서 ‘송곳’을 여러 가지 의미로 쓰고 있다.  지금도 주인
공들의 대사에서 한번 나오긴 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여러 
가지 의미가 이 말에 부합될 것 같다. 각자 생각하는 의미
로 ‘송곳’을 느껴 줬으면 한다.

‘송곳’이라는 제목을 지을 때 떠오른 이미지나 형상이 있었는지.
뭔가가 위에서 누르고 있는데, 그 밑에서 숙이고 있는 이미
지를 떠올렸다. 그건 어떤 압박에 자연스럽게 버티는 사람
의 이미지다. 평범하지만 다른 사람보다 조금 선량하고 정
의감이나 고민이 많은 그 사람은, 안에 뭔가 꼿꼿한 게 하나 있어서
 ‘내가 여기 이상은, 더는 못 굽힌다!’는 고집이 있는 거다.

많은 분들이 송곳 로고가 참 감탄스럽다고 한다. 로고 타입 작업은 어떻게 한 것인가?
…뭐, 전문가에게 의뢰했다. 캘리그래퍼 강병인 선생의 작
품이다. 굉장히 유명한 분이다. 여러 작품의 타이틀 디자인
도 하셨고.

송곳을 열심히 봤는데 전혀 몰랐다.
크레디트라는 게 가끔은 작품 감상에 거슬릴 때가 있지 않
나? 그래서 합의 하에 연재 중에는 굳이 표기하지 않기로 
한 거다.

‘송곳’의 등장인물인 ‘이수인’과 ‘구고신’을 가지고 독자 들이 2차 창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요새는 ‘주주 임’도 가세되었다.
오! 다 보고 있는 건가?

그렇다. 특히 트위터상에서. 그만큼 캐릭터가 매력적이 라는 이야기 아닌가?
그간의 작품에서는 매력적인 요소가 딱히 없던 캐릭터들에
게서 매력을 끌어내려 애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송곳’에서
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등장인물의 매력을 조성해 봤다.

‘송곳’의 배경은 현실적인데 ‘이수인’ 같은 주인공을 너 무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초인급 인물로 만든 느낌이다. 
19세기 러시아 실존주의 문학에서 나타나는 도스토예 프스키의 주인공들처럼. 이것 또한 작가의 의도인가?
현실에서 흔치 않은 인물을 만들려는 의도가 처음부터 강했다. 일단 잘생겼다(웃음). 현실의 인물들과 엄청난 차이
가 나기보다는 친구로 사귀고 싶은 사람을 생각했다. 평범
하면서도 강직하고 나름 훌륭한 사람이면 좋겠다 싶었다. 
물론 ‘구고신’ 같은 경우는 좀 많이… 훌륭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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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들이 차례대로 나오는 경 우가 요즘 웹툰이나 대중문화에서 좀 드물지 않았나.
왜, 정도전 있잖은가? 드라마 정도전.

정도전 인정! 그런데 다른 만화 같으면 ‘왜 예쁜 여자 캐 릭터가 없는 거야?’라는 항의가 곧잘 나오는데 송곳에 서는 그런 얘기가 없다.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웃음).

‘송곳’은 오래 준비한 작품이지만 그래도 어려움이 있 을 거 같다.
한국 사회의 노동문제를 주제로 다룬다는 게 참 어렵다. 대
중들에게 노동문제란 중간이 없다. 확실히 알고 있는 층과 
완전히 관심이 없는 층의 두 극단으로 나눠져 있다. 나는 
일반 독자들이 우리의 노동문제를 극단적인 강요가 아닌, 
만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이야
기가 극단으로 치달아 독자들이 못 따라오는 만화로 그리
지 않으려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판사와 검사가 법정에서 설전을 하면 
일반 대중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지
방노동위원회에서 노사문제를 다투는 상황은 독자들에게 
생경할 수밖에 없다. 독자들은 그런 위원회가 있는지, 심판
제도가 있는지 조차 모르니까. 

만화의 주제를 잘 전달하기 위한 고민이 많겠다. 
모든 이야기는 쉽게 전달이 되어야 하는데 이건 소재 자체
가 쉽지 않다. 어느 정도로 어떻게 풀어 써야 할지, 그 지점
을 짚기가 어려우니까 항상 조심스럽다.

이 만화가 어떤 다리가 될 수 있겠다.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고, 그냥 끝이 되어버릴 수도 있고…. 
어쨌든 오픈 테이프를 커팅한 느낌?  

다른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이런 주제의 이런 캐릭터가 어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장르에서는 새 캐릭터 하나가 새
로운 이야기 문화를 열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의학만화, 기
업만화 등등.
기업이 아닌 노조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더 깊은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난 심슨처럼 사회의 전방위적인 구조
를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혼자 전진하기보다는 
이런 분야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데 역점을 두고 싶다.

‘송곳’에서 가장 아끼는 캐릭터가 있는지.
이수인. 20대 때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이수인은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감히 화를 내지 못하는 순간에도 화를 내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멋진 캐릭터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
면 이수인과 꼭 닮은 실재 인물이 있다는 걸 알 것이다. 구
고신은 특정하지 않은 여러 노동운동가의 모습을 담은 이
상적인 인물이다.

작품처럼 작가의 인기도 높다. 트위터 프로필을 보면 ‘허지웅의 절친’이라고 적어놨던데 어떤 의도인가?
트위터 프로필은 블랙유머로 일관했다. 허지웅의 절친도 
그런 측면에서 ‘속물스러운 농담’이다. 그런데 그걸 진지하
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더라. 속물을 비꼬는 뜻으로 쓴 것
이 오히려 속물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게 된 거지(웃음). 그
래서 아, 이거 오해 받는데 바꿀까 하다가 그대로 뒀다. 허
지웅 씨는 친구 연상호 감독을 통해서 알았다. 셋이서 즐겁
게 뭉친 시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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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주변 이야기도 궁금하다. 결혼 했을 때 많은 여성들 이 아쉬워했다는데, 그런 인기에 대해서 실감하는지?
전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다. 그런 인기는 들어보지 못했
다. 작업할 때는 화실에만 푹 박혀 있다.

슬럼프라든지 작품이 잘 안 풀릴 때가 있나?
딱히 슬럼프를 겪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새 작품을 구상할 
때는 많이 읽고, 많이 만나면서 해결하려 한다. 인터넷 검
색도 도움이 되지만 뭔가 잘 안 풀릴 때면 사람들을 만나서 
듣고 배운다.  

작품을 만들 때 어떤 과정에서 시간이 가장 많이 지체 되는가?
콘티 이전 시나리오 단계의 구상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
려면 사건에 공을 들여야 한다.
이 사건을 어떤 보편성으로 연결할 것인가? 이야기 속의 다
른 부분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그런 고민을 가장 길
게 하는 것 같다. 내가 실제로 겪은 경험을 사건으로 만든
다 하더라도 등장인물의 나이와 장소에 따라 스토리가 달
라진다. 30대가 겪는 해고통지와 20대가 겪는 해고통지가 
다른 것처럼. 상황과 사건을 등장인물에 맞게 형상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아무것도 아닌 사건에 보편성을 입혀서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어 나가는 게 내 시나리오 작업의 핵심이다.

가장 애착이 가거나 아끼는 작품을 하나 꼽으라면?
딱히 없지만, 작업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작품은 <습지생태
보고서>다. 
참 편하고 자유롭게 그렸다. 현실의 여러 가지 비루한 부분
을 귀엽게 표현했다고나 할까? 힘을 빼고 적절하게 만든 
작품이다. 

살면서 자신의 인생에 큰 계기가 되거나 변화를 준 사 건은 뭘까?
글쎄… 별거 없이 편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데뷔할 때 만
화 출판계가 망한 분위기였다는 게 참 특별한 느낌으로 남
아 있긴 하다.
요즘의 한국 만화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이 조
금 더 뭉쳐서 어떤 매체의 오판이나 이상한 기획에 휘둘리
지 않고 조금 더 단결하면 좋겠다. 
작가의 창작 활동도 노동 활동의 기본적인 보상이 주어져
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해 볼 여건 자체가 안 된다. 
일반적인 노동 활동에서의 최저임금이 있는 것처럼 만화작
가들에게도 그런 기초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만화 
단체의 고민으로부터 나와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예비 창작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으아! 진짜 내가 해 주고 싶은 근사한 말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이 안 난다!

그럼 ‘왜 이런 거 안 물어봐 줄까?’ 싶은 질문이 있는지.
없다. 누군가가 묻기 전에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 무심한 
상태다. 누가 뭘 물어봐야 그때 생각을 해 보고 ‘난 이런 생
각을 하고 있구나.’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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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뒤를 이어서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해 주고 싶은 동료 작가가 있다면?
마인드C. 뛰어난 감각의 재기발랄한 작가다. 나와는 참 다
르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봐도 스타일이 독특하다고 
느낀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독자들께는 뭐, ‘보시라!’, ‘감사하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
씀드리고 싶다.
장시간 인터뷰에 정말 수고 많았다.
아, 정말 예비 창작자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근사한 말
이… 으~~ 왜 생각이 안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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