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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 “나는 그림 못 그리는 만화가 지망생의 희망이다”


주호민, “나는 그림 못 그리는 만화가 지망생의 희망이다”

세 식구의 보금자리이자 작품 창작의 산실인 파주 주호민 화실을 독자만화대상 집행위원회 운영자 김민태가 찾았다. 

작가의 인간성이 작품의 인기와 비례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친절했고 시시콜콜한 질문에도 성의껏 답해 주었다.




작가의 생활패턴이 궁금하다. 역시 야행성인가?

맞다. 연재 중일 때는 낮에 자고 밤에 작업한다. 연재를 

쉴 때는 밤에 자고 낮에 활동한다. 아이디어 구상은 돌아

다니면서 한다.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탄다. 운전하면 

전혀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작업에 돌입하면 

한 시간에 한 페이지 그리는 게 목표다. 한 회 마감을 끝

낼 때까지 책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취미생활을 전혀 못할 것 같다.

아니다. 얼마 전까지 홈 브루잉(Home Brewing)에 꽂혀

있었다. 수제 맥주 만들기. 그러다 통풍이 발생했다. 수제 

맥주 다량 섭취가 원인인가 싶어 끊었다. 

건강을 챙겨야겠다 싶어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

다. 한 달 만에 몸의 변화를 느꼈다. 죽었던 몸이 다시 살

아난 기분이라고 할까? 이제는 트레이너 없이 혼자 하고 

있다. 운동이 취미가 됐다.


자기관리가 철저하다. 원고 마감도 잘 지킬 것 같다.

솔직히 마감 시간을 몇 번 어겼었다. 아슬아슬하게 마감해

도 제시간에 웹툰이 서비스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담당자가 고생한다. 그래서 마감 시간을 최대한 

지키려고 애쓴다. 만화 창작 과정이라는 게 초반의 기획, 

콘티 단계를 넘어서면 그다음은 막노동과 같다. ‘만화 숙

련공’이 되려면 스스로를 관리할 수밖에 없다.

작품 연재도 순조로운 편이다.

연재 운이 있었다. 인터넷에 올린 첫 작품 <짬>을 보고 

야후에서 연락이 와서 <무한동력>을 시작했다. 이후 누

룩미디어 작가로 합류하면서 <신과 함께>를 네이버와 다

음 두 곳에 제안했다. 네이버에서 연락이 왔다. <신과 함께>를 끝내고 육아 만화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레마

켓웹툰에서 연재 청탁이 왔다. 덕분에 아들 선재와 우리  

부부의 성장일기 <셋이서 쑥>을 완성할 수 있었다. 


연재를 하면서 독자의 댓글에 신경을 쓸것 같다.

댓글들을 살펴본다. 하지만 댓글에 영향을 받은 스토리 

전개는 하지 않는다. 원래 계획했던 서사에 문제가 생기

게 되니까. 연재는 마지막 칸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다. 

작가가 그린 마지막 칸의 정서를 독자가 동일하게 느껴주

길 바랄 뿐이다.


주호민만의 창작 과정을 공개해 달라.

먼저, 주인공과 조연급 캐릭터를 설정한 뒤 각 캐릭터들

이 누구를 대변하는지를 정한다. 주인공의 특징을 약하

게 설정하는 편이다. 대신 조연급에 개성을 부여해서 사

건과 상황을 만든다. ‘매력 없는 주인공’이 가능한 이유는 

내 작품이 캐릭터보다 서사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주

인공은 화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 외의 캐릭터들은 미

리 만들지 않는다. 급조하여 등장시킨다. 미리 짜 놓으면 

상상력에 한계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습관 때문에 실수

한 적도 있다. <신과 함께> 신화 편에 등장하는 측신을 

단발머리로 그렸는데 우연히 만난 향토문화 전문가가 ‘측

신은 머리가 너무 길어 자신의 머리로 자살을 했다.’고 해

서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연재 중이라 고치지도 못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어떻게 짓는가?

<신과 함께> 저승 편의 ‘진기한’은 졸업 앨범을 펴놓고 친

구들의 이름을 조합해서 만들었다. <무한동력>의 ‘선재’

는 선하면서도 평범한 이미지를 생각하며 지었는데 우리 

아들의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수자’는 아내의 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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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선정한 그 주제를 가지고 ‘현재 트렌드를 반영하는가?’ 

혹은 ‘당대성이 있는가?’를 고민한다. 즉, ‘지금 필요한 이

야기인가?’가 내 스토리의 화두다. 연재 원고는 70회에서 

100회 분량으로 기획한다. 네이버는 3개월 단위로 계약하

기 때문에 연재 기간을 고려해 스토리의 완급을 조절한다. 


자, 캐릭터와 스토리가 잡혔다. 본격적인 작업 순서를 공개한다면.

우선 해당 연재 분량의 대사를 미리 다 써 놓는다. 한 화

가 마무리되면서도 다음 화가 궁금해지는 느낌이 살면 그

걸로 콘티를 짠다. 대사를 보면 어떻게 연출해야 할지 감

이 온다. 장면의 성격에 따라 만화 칸의 크기를 조절한다. 

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지를 항상 고민한다.


콘티가 완성되면, 작화 ‘막노동’이 시작되는 건가?

원고는 포토샵과 태블릿을 이용한 디지털 작업이다. 칸을 

미리 그려 놓은 만화전용 원고지를 불러와서 작업한다. 

콘티를 참고하여 칸의 크기를 조정하고, 말풍선을 먼저 

그리고 거기에 대사를 미리 써둔다. 

그러고 나서 밑그림이나 데생 없이 바로 캐릭터와 배경을 

그리고 채색을 하면 끝! 의성어나 의태어는 폰트를 사용

하지 않고 손글씨로 쓴다. 


주호민 특유의 만화 연출 콘셉트가 있다면.

웹툰이지만 출판만화의 특성을 따르는 거다. 스크롤 방

식에 적합한 연출은 별도로 고려하지 않는다. 일단 내 그

림체와 작품 성격이 스크롤 형식과 잘 안 맞는다. 가장 중

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만화 칸의 목적성이다. 

그 칸이 주는 정서를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중요한 부분에만 신경을 쓰고 주변부 묘사에는 힘을 빼

고 그린다. 이것은 그림을 정확하고 치밀하게 그리는 것

과는 다른 문제다. 굉장히 못 그렸지만 정서가 가득 차 

있는 것이 정교하지만 무미건조한 그림보다 낫다고 본다.


그림 스타일에 대한 다른 욕구는 없는가?

내 그림체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굉장히 허술하다. 그렇

지만 그림체를 바꾸거나 작화의 밀도를 높일 생각은 없

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제일 적합하

기 때문이다. 연재 분량과 마감 일정에 맞추고, 시간과 노

동력을 효율적으로 배합해 탄생한 그림체라서 바꾸기 힘

들다. 물론 현재 그림체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래서 협

업을 할 생각도 있다. 김양수, 도가도 작가가 협업한 <아

이소포스>처럼. 나도 가슴 속에 대서사시 하나쯤은 가지

고 있다.


스토리가 잘 풀리는 편인가?

웬걸? 꽉 막히는 경우가 빈번하다. <신과 함께> 저승 편

의 경우, 7개 지옥의 순서와 다루는 죄만 설정했었다. 각

각의 지옥을 돌파하는 방법까지 미리 설정해 둔 건 아니

었다. 지옥 에피소드마다 임기응변과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내야 하는 고통이 있었다. ‘내가 변호사라면 여길 

어떻게 뚫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지만 

결국 마감이 닥쳐야 생각이 났다. 주 2회 마감은 스토리 

전개를 풀게 하는 물리적 방법이다. 스스로를 벼랑으로 

모는 거다. 스토리가 꽉 막힐 경우, 아내와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정답이 나오지는 않지만 실마리가 잡힌다. 

아내와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

나는 집이 좋다. 집에서 작업하는 게 가장 안정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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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들을 아내(일러스트레이터 한수자)와 함께 돌볼 

수 있으니까. 작업실 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나

만의 공간이다. 작업실엔 모니터, PC, 태블릿을 둘 수 있

는 책상과 의자만 있으면 된다. 의자는 듀오백을 쓰는데 

10년 정도 됐다. 바꿀 생각이 없다. 어차피 고양이 짬이 

다 뜯어 놓을 게 뻔해서.  

 

이젠 만화로 먹고살 만한 건가? 

데뷔작 <짬>은 원고료가 없었고, <무한동력> 원고료도 

참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건사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감사하다. 최근 웹툰 유료화로 평생

에 먹을 욕을 다 먹었지만 수입은 늘어서 먹고살 만하다.


인기를 얻고 어떤 변화가 있는가?

무명을 벗어나 조금 인지도가 생겼지만 대신 불편해졌다. 

뭐든 쉽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 예를 들면 <신과 함께> 

저승 편 번역의 질에 대해 언급했다가 문제가 커진 일이 

있었다. 또 만화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호감을 표현한 작

품에 ‘주호민 추천작품’이라는 타이틀이 붙고, 정식 연재

가 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내 말이 어

떤 힘으로 작용한다는 건 부담스럽다. 누룩미디어 노예 

계약 1호 작가에서 이사로 영전된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10년간 작가 생활을 하면 가치관도 변하는가?

예전에는 불후의 명작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은 만화를 그리는 숙련공으로서 오랫동안 작품을 하고 싶

다. 만화가 지망생에게 해 주는 말도 변했다. 너무 목숨 걸

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만화가로서의 삶이 아닌 만화와 

연관된 산업군의 다른 직업도 생각해 보라는 조언도 한다. 

꼭 이 길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웹툰의 생태계도 많이 변한 것 같다.

나는 웹툰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았을 때 들어온 세대지만 

지금은 매우 높아졌다. 뭔가 공식을 따르듯이 획일적이 

된 듯도 하다. 1화에서부터 뭔가를 보여 줘야 되고, 캐릭

터 설정은 어때야 한다는 구조화도 보인다. 아쉬운 점이

다. 파격적이거나 허를 찌르는 재기발랄함으로 기존 만화 

스타일에 도전하는 작품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새 작품에 대한 구상은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머릿속에 몇 가지 아이템이 있다. 장르와 소재 면에서 사

극, 판타지, 일상물 등등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각기 다른 

블록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하나를 고르는 게 쉽지 

않다. 이렇게 몇 가지 아이템들을 구상하다 보면 TV나 기

타 매체를  통해 한 가지에 딱 꽂히는 순간이 있다. 그럼 점

점 생각이 증폭되면서 이야기의 줄기가 잡힌다. 그렇게 윤

곽이 드러나면 공부를 시작한다. 해당 분야의 책을 찾아보

고 영상 다큐멘터리도 챙겨 보면서 이야기를 더욱 구체화

해 나간다. 지금은 이 과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는지?

여러 작품을 했지만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나름의 노하

우는 아직 없다.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접점을 작품 안에 

녹여내는 내공이 부족하다. 그래서 다시 읽었을 때 스스

로 부끄러워지는 부분이 있다. 이런 걸 느끼는 것도 성장

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부끄러운지 모

르고 그렸을 테니까. 이런 식의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웹툰에 대한 전망은?

웹툰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 

현재 유명 웹툰 작가들도 몇 년 뒤 ‘예전에 그런 작가들도 있

었는데 지금 뭐하나?’ 하는 급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

기 때문이다. 지금 웹툰은 성장세이고 상당 부분 안정되

고 있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변화의 촉을 세우지 

않으면 도태되는 건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흐름에 

대한 불안감이 변화의 대응에 빠른 해답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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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나 20년 후를 상상해 보자.

앞으로 10년 후면 40대 중반인데 작품을 쉬지 않고 지속

적으로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때쯤 되면 15편 정도의 작품

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20년 뒤에는 50대 중반이다. 

그때는 아마 만화를 직접 그리지 않고 만화 프로듀싱 업

무나 만화와 연관된 일을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만화인

의 삶을 살고 있겠지.


작가 주호민이 만화라는 우주에서 역할이 있다면?

웹툰이라는 우주 은하계에서 나는 그림 못 그리는 만화

가 지망생의 희망이다. 일본 만화처럼 그리지 않더라도, 

대중적인 소재와 공감 가는 스토리만으로도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징표다. <무한동력>이 드라마와 뮤지컬화 되

었다. <신과 함께>가 일본에서 리메이크되었고, 라디오 

드라마,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영화 같은 만화가 영화화 

되는 게 아니라, 재미있는 만화가 영화화 된다. 만화는 만

화 그대로의 장르적 재미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작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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