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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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지컬 고삼즈>의 seri 작가

인터뷰

<매지컬 고삼즈>의 스토리 작가 seri
“모든 소녀의 마음 속에는 아저씨가 하나 잠자고 있다”


 

허이모
사진 최민호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얼마 전 네이버에서 완결된 <매지컬 고삼즈>에 관해서는 이 말을 거꾸로 읽어야 할 것 같다.

<매지컬 고삼즈>를 멀리서 보자. 병약한 여고생 여름이는 생물 선생님을 통해 자살한 언니가 마법소녀임을 알게 된다. 여름이는 자신도 마법소녀가 되어 죽은 언니의 뜻을 이뤄주고자 한다.

언니의 죽음으로 시작된 이 웹툰에서 주인공 여름은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마법소녀에 대한 비정한 친구들과 사회의 시선, 조력자의 배신, 언니의 비밀 등. 

반면, 가까이서 웹툰을 들여다보면 이 작품엔 희극적 요소가 촘촘히 엮어져 있다. 여름은 심각한 상황에서도 마법의 힘을 빌려 전국 규모의 떠들썩한 사건을 일으킨다.

또 다른 마법소녀 아란은 근육질의 남성인 생물 선생님에게 레이스와 프릴이 잔뜩 달린 분홍색 미니 스커트를 입히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이런 비상한 작품을 만든 이는 어떤 사람일까. 범상치 않은 드립 센스로 무장한 seri 작가를 낙성대역 인근의 카페에서 만났다. 

 

             


 

네이버에서 완결된 <매지컬 고삼즈>(글 seri, 그림 비완)의 주인공 한여름. 여름은 입시 생활 중에 마법소녀가 되어 학교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게 된다.
 




덕질하는 나날 

seri라는 필명에 특별한 유래가 있는 건가?


seri 필명은 일본의 성인게임 <투 하트>의 쿠루스가와 세리카에서 따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야겜’인 걸 모르고 받아서 설치했다가, 랜선 관계를 맺은 첫 캐릭터가 됐다.

원래는 일본어 '짱'(ちゃん)을 붙여 ‘세리카짱’이라고 썼 는데 ‘짱’이 한국에서는 다른 의미로도 쓰여서 혼선을 빚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세리’라고 쓰게 됐다.

 


덕질과 떼 놓을 수 없는 필명이다. 

seri 초등학교 때 지은 필명을 10년 넘게 쓰고 있다. 기원이라고나 할까. 초등학생이 야겜을 플레이하는 막장스런 덕질에서 시작된 이름이니 나름 내 정체성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최애가 <페이트> 시리즈의 금발 세이버라는 사실도 여러 지면에서 밝혔다.

seri 생김새를 보자면 내 품에 쏙 들어올 거 같은 가녀린 여성 캐릭터(이하 ‘여캐’)를 좋아한다. 

세이버 체구는 굉장히 작다. <페이트> 원작에서 세이버가 자신의 몸을 근육투성이 몸이라고 묘사하지만 그림으로는 야리야리하고 곱상한 소녀로 그려진다. 

가녀린 체구로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한다. 말하자면 투기물 특유의 모에로움인 셈이다. 세이버 루트 엔딩을 볼 때까지는 아무 생각도 없다가 엔딩을 본 후에 후유증처럼 그녀가 내게 남았다. 안타까운 삶 이나 BGM 같은 게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달까. 

 


의외다. 외형보다는 인생사가 중요했다는 말인가.

seri 그렇다. 높은 이상을 꿈꾸면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달려 나가는데, 결국 자기가 정말 원하는 것은 이뤄내지 못했으니까. 

TYPE-MOON 작품 전반에 흐르는 모티프 아닐까. 강력한 능력을 갖춘 여캐가 나오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시 남성 캐릭터(이하 ‘남캐’)에게 의존하는 관계를 그려내는 것이. 아무튼 강약과 젠더가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는 <매지컬 고삼즈>에도 등장하는 것 같다. 이따가 조금 더 얘기하자. 


 

 

"정식 연재하는 이상, 반 허구가 섞여서 사람들이 원하는 드라마를 쓰게 된다. 드라마적 요소나 완급 조절이 들어가게 되고, 등장인물도 실제 인물이 아니라 캐릭터로서 소비될 수밖에 없다."




일상을 만화로 그려내기 

일상툰 <고시생툰> 결말에서는 합격하게 되고, 실제 교사가 되어서 교사 생활을 <쌤툰>이나 <先生하는 나날>에서 교육용 매체의 부록처럼 그리기도 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seri 지금은 전공(국어교육-고전소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잠깐 교직을 휴직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공부와 연재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나? 

seri 작화·채색을 하시는 분들과 분업이 되어 있다 보니, 공부를 병행하면서 연재할 수가 있었다. 갈수록 힘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완결을 내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다 보니 (끝 부분이) 오히려 술술 잘 풀렸던 것 같다.

 


대학생 때, 학교 커뮤니티에 연재하던 <고시생툰>이 네이버 정식 연재로 결정됐다. 부담스러웠던 부분이 없었나?


seri 일단 마감이 부담이다.

독자층이 확장되어서 수정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림일기>에서 사용한 도서관이나 학식 메뉴 같은 소재는 학교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었는데, 정식 연재를 하면서 소재에 설명을 붙였다. 대학생만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는 가급적 줄이기도 했다. 

어쨌든 폭넓은 층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부에 쫓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독자층이 넓게 가정할수록 사소하고 디테일한 부분에서의 공감은 희석되지 않나. 조율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다.

seri 딱히 어렵지는 않았다. 내 만화를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집단 안에서 좋아하는, 조그만 부분은 줄여나갈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다고 그런 디테일을 완전히 죽여버린 것도 아니었다. 알아보는 사람은 알아보고, 모르는 사람은 그냥 보고 넘어갈 수 있도록 그린 부분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 패러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대로 서사를 넣어서, 몰입할 만큼 ‘말이 되는 허구’를 만들 때 느끼는 부담감도 있는지 궁금하다. 특히 일상툰을 그릴 때는 아무래도 현실을 좀 더 과장하게 될 것 같다.

seri 
정식 연재하는 이상, 반 허구가 섞여서 사람들이 원하는 드라마를 쓰게 된다. 드라마적 요소나 완급 조절이 들어가게 되고, 등장인물도 실제 인물이 아니라 캐릭터로서 소비될 수밖에 없다.

그 부분이 특별히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실제 친구들도 이런 부분에 관해 납득을 해줬고. 




<매지컬 고삼즈> — 입시 지옥에 빠진 마법소녀 
 


<매지컬 고삼즈>의 그림을 그린 비완 작가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seri ‘초등학교 카르텔’이다. 비완 작가님이랑 같은 초등학교 동창인데 그때 만화 동아리를 하면서 친해졌었고, 중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로 진학했지만 나중에 대학 와서 동문이 됐다.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있다 보니 그림을 염탐하면서 좋아하긴 했지만 같이 작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원래 비완 님 그림을 매우 좋아했고, 그에 비해 내가 미숙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충실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도록 힘을 많이 썼고, 개인적으로는 성장하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시너지도 잘 맞았다.


비완 작가와 함께 작업하는 데 있어 따로 특기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

seri 보통 그림 작가가 원고를 최종 마무리하는데, <매지컬 고삼즈>는 스토리 작가인 내가 마지막으로 원고를 받아 식자 작업을 하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전공생이다 보니까 맞춤법을 덜 틀리기도 하고, 작화로 보면 콘티와는 느낌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대사를 다시 정제하기도 한다. 완성된 장면에 안 어울리는 대사를 수정하거나 말풍선 위치를 옮기기도 하고. 


레이스와 프릴에 대한 자료를 따로 찾기도 하는가? 예를 들면 복식사를 검토한다든가.

seri 그냥 우리끼리 디자인한다. 마법소녀 코스튬은 환상 속의 코스튬이고, 만화를 많이 읽다 보면 정형화되는 디자인이 생긴다. 그걸 짜 맞추는 것뿐이다. 오히려 사복을 그릴 때 참고자료가 필요할 텐데, 비완 작가님이 이 자리에 없어서 어떤 자료를 참고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담인데, 비완 작가님이 원래 청년을 그리는 데 특화된 분인데, 마법소녀물이다 보니까 소녀를 귀엽게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걸로 안다. 그래도 잘 그리는 분이다 보니 점점 빠르게 발전을 했다. 막판에 갈수록 여캐들이 너무 예뻐져서 백합을 만들어버릴 뻔하기도 했다. (웃음).


 

첫 번째 에피소드, '착한 아이와 죽은 금붕어'. 서로를 뜯어 먹고 먹히는 금붕어의 세상과 고3 학생들의 생활.




왜 하필이면 마법소녀물이었나?

seri 남캐보다는 여캐를 잘 소비한다. 일단, 눈이 즐겁고... 게다가 전투 능력도 출중하지 않나. 여캐가 약하니까 남캐한테 기댈 수밖에 없다는 공식은 마법소녀물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예쁘면서 강하다는 데 꽂히는 건가?

seri 그렇다. 예쁘고, 강하고, 어쨌든 주인공이 여자다 보니까 아무래도 이입하기도 좋은 것 같다.

 


흥미로운 얘기다. 게임을 할 때도 여캐에 이입하는지?

seri 게임을 할 때는 남캐에 이입을 한다. 19금 신에서
모니터 바깥의 내가 남캐에 이입해서 여캐에게 ‘삽입’한다. 굳이 남캐에 이입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인 것도 같다.

폭넓은 성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보니 헤테로섹슈얼적 관계에 익숙하니까.


마법소녀물에서는 이입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난다는 말인데.

seri 예전부터 꾸준히 밀어왔던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모든 소녀의 마음속에는 아저씨가 하나 잠자고 있다.’ 말하자면 ‘총공’이랄까.


여캐, 남캐 가릴 것 없이 모두의 등짝을 볼 수 있는 아저씨 말이다. 내 안의 아저씨가 캐릭터의 성적 착취를 성별 구분 없이 잘 해준달까. 대부분의 덕후도 비슷한 아저씨를 품고 있지 않겠나.  

 


시작할 때 어느 쪽에 더 기대를 걸었는지 궁금하다. 마법소녀물로서 대성해서 사람들이 <매지컬 고삼즈>를 그리고 놀길 바랐는지, 아니면 입시 문제를 환기하는 작품이 되길 바랐는지.

seri 누가 일종의 덕 콘텐츠로서 그리면서 놀아줬으면 진짜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마법소녀물의 장르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능력자배틀물로 구상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서사가 길어지면서 빠르게 진행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능배물의 요소를 제대로 살리진 못했다.

처음에는 100화 정도를 바라봤는데 필요한 서사만 넣었는데도 140화가 되어버렸으니까. 더 지치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입시와 마법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매지컬 고삼즈>의 세계는 마법소녀들에게 지나치게 비정하지 않은가? 입시엔 죽음이 따라다니고, 소녀들은 타인의 질투 때문에 정당한 보상조차 받지 못한다.

seri 그 정도로 잔인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가 입시를 빡세게 시키는 곳이다 보니 주변에 실제로 자살하는 학우가 있었고,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공부하다가 병이 악화돼 돌연사한 선배도 있었고, 학교에서 야자를 하다가 죽은 선배도 있었다.

나도 입시하면서 몸이 안 좋았고, 일상적으로 저녁을 거의 못 먹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입시는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입시에 집중하는 고등학교에서의 과도한 경쟁이 평생의 상처나 트라우마로 남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게 지나치게 불행했나?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됐다.

교사가 되고 난 뒤에 연재하긴 했지만 <매지컬 고삼즈 >를 구상한 시기가 고등학생 때라, 고교 시절의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부분도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시리어스해진 것인지?

seri 마냥 시리어스하기만 하면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질 거 같아서 약을 섞는다고 섞은 게 과했던 것 같다.
 

소위 ‘약 빤’ 웹툰으로 소비되길래 빠르게 설정을 터뜨려서 무게를 잡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당황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나는 처음부터 무거운 이야기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아무도 그렇게 봐주지 않은 거다. 

때 좀 우왕좌왕했다. 막판에는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끌고 가야 하고, 끝까지 따라온 독자들도 개그로 힘을 빼는 것을 원치는 않을 것 같아서 좀 더 무게를 잡긴 했다.

고전소설이라는 전공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비극 안에 희극이 섞여 있는 게 현실의 삶이고, 그것을 만화로도 나타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마법소녀라는 장르 상 현실적인 희극이나 비극이라기에는 극단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다. 

seri <매지컬 고삼즈>의 세계관 내에서는 마법 자체가 현실에 존재한다. 캐릭터들이 처한 현실 안에서 희·비극이 섞인다고 생각했다.

지금 시국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상황이 엉망진창인데 사람들이 희극적인 요소를 덧붙이고 있지 않나. 희극과 비극 간의 줄타기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했다. 최대한 극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웃음을 유발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매지컬 고삼즈> 캐릭터 비하인드

캐릭터 이야기를 해보자. 이제는 말할 수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캐릭터가 있는지?

seri 미래에서 온 강혁이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다.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살릴 방법이 없었다. 

 


마치 열린 결말처럼 보이는 연출할 수도 있었을 텐데.

seri 그렇게 해도 현재의 여름이와는 못 만나는 거니까. 하지만 이 결말을 해피엔딩이라고 본다. 미래에서 온 애들도 한 가지 씩은 얻어서 돌아갔고, 주인공 여름이도 많은 것을 잃었고 입시에도 실패했지만 이 일련의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여름이도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죽은 언니를 향한 마음의 짐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장물로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구원받지 못한 캐릭터는 역시 언니인 겨울이인가? 겨울이만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행동을 교정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seri 그렇지만 동생인 여름이를 통해서 자신이 꿈꿔왔던 올곧고 깨끗하고 고결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선 나름 구원받았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 부분에서 겨울이와 반대로 자신의 과오를 수정할 기회를 여러 번 얻은 생물 선생님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캐릭터라고 할 수도 있을까?

seri 그렇지만 결국은 모든 시도가 실패했고, 그 실패를 또 보고, 자기 자신을 또 죽여야 했고, 나이만 먹은 채로 아무것 도 얻지 못하지 않았나. 20대를 모두 날린 셈이다. 나한테는 아픈 손가락인데 많은 미움을 받았다. 

 


워낙 악역 캐릭터다 보니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seri 하지만 완전 악역도 아니었다. 그 속은 어린 애라, 때문에 보고 있으면 짠해지는 부분이 있다. 

 


19살에 고정된...

seri 그렇다. 생물 선생이 겨울이를 좋아하긴 했겠지만 죄책감도 있고,
 무엇보다 자기애도 컸을 것이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타인에게 과오이자 오점이 됐다는 것을 못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삽질을 열 번이나 반복 했을 것이고. 


그런 면에서는 또 다른 주인공인 것 같다.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 인물이기도 하니까.

그렇다. 그리고 작중 미모 담당이기도 하고. 

 


미모 담당(?) 생물 선생님 

생물쌤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비판이 있었다. 말하자면, ‘여성의 옷을 입는 남성을 희화화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나 합당한 서사가 주어져야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seri 고민이 많다. 생물 선생님은 크로스드레서가 아니라 마법소녀 옷을 입은 것이다. 하지만 그냥 마법소녀일 뿐이라고 바로 선을 긋기도 어렵다.

작품 속의 대중들이나 작품 밖의 독자들은 생물 선생님의 복장을 크로스드레서의 복장으 로 인식하며, 생물 선생님이 비웃음을 받는 지점 또한 크로스드레서가 희화화되는 지점과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또 여장남자 캐릭터를 등장시킬 일이 생긴다면 이런 식으로 희화화되지는 않도록 당사자의 자문을 구하려고 할 것 같다. 

 


하지만 남성 마법소녀를 찾아서 직접 물어볼 수 없다는 점만 봐도 자문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순 없다. 또 애초 에 취향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은 않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가 아닌가.

seri 사회적으로, 우리가 자라온 사회는 그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회는 아니었고 스테레오타입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다. 다만 10년, 20년 뒤에도 작품이 불편하지 않게 읽히도록 하기 위해선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물론 나 자신의 취향 자체는 정치적 비판과 무관하게 형성돼 왔고, 지금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지금도 여고 교사로서 실재 여학생들을 아끼는 것과는 별개로 모니터 속의 여학생을 소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나는 소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이 지점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비판받는 취향을 쳐내는 것이 항상 가능해 보이지도 않고, 언제나 옳은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seri 생물 선생님 문제에 관해서 일그러진 인물은 오히려 아란이라고 생각한다. 마법이라는 폭력을 써서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니까.

물론 이에 대해 아란이는 10대 소녀이므로, 실제 사회의 상황을 고려할 때 전복적으로 읽힐 수 있고, 수용 가능한 전복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 안에서 마법소녀는 마법을 써서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는 소녀다. 



 

아란이는 근육질의 남성인 생물 선생님에게 강제로 마법소녀의 유니폼을 입힌다.




아란이가 처한 인구 집단의 사회적 현실을 강조하면 역설적으로 아란이는 어떤 힘이 주어져도 약한 존재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모순이 있다.

seri 그럼에도 아란이는 생물 선생님에게만큼은 강자다. 언제든 선생님을 제압하여 취향을 강요하고 선생님을 울린다. 선생님이 뒤집을 수 있는 역학관계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생물 선생님의 이야기를 크로스드레서의 서사로 가져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마법소녀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는 크로스드레서와 겹치면서도 겹치지 않는 부분이 있고, 선생님은 자신의 취향 때문에 마법소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니까.

 


재현, 정치, 인기

결국은 재현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차례가 온 것 같다.

seri 글쎄, 최선을 다해 젠더, 체형, 인종의 다양성을 보여주려고 해도, 욕망이 이런 노력을 배신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볼 때 배우가 ‘잘생기고 예쁘길’ 바랄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도 ‘잘생기고 예쁘지' 않은 캐릭터는 설사 주인공이어도, 그를 최애로 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올바르다’고 과시하기 위해 그런 캐릭터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seri 맞다. 그리고 ‘바람직하지 않은’ 외모를 지닌 캐릭터를 열성적으로 소비하거나 성애의 대상으로 삼는 독자가 적다면, 그러한 캐릭터를 전면에 등장시킨 작품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이어진다.   

 


올바른 작품이 그런 작품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도 재미없을 수도 있기 때문인가?

seri 가장 좋은 건, 정치적으로 올바르면서도 재밌는 작품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작가가 정치적으로 올바를 것을 천명하는 순간, 그 작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작가보다 더 더욱 높은 잣대를 적용받게 된다. ‘당신은 공부했다면서 왜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었죠?’라는 말을 듣게 된다.

결국 작가 입장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가장 편하다. 모든 SNS를 폐쇄하고 작품으로만 얘기하면, 작품만 재미있다면 어느 정도는 참고 그 만화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데스노트>나 <슬램덩크>, <기생수>에서 여캐의 서사가 미흡하다고 지적할 수 있을지언정, 어쨌든 명작은 명작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은, 어쨌든 나도 소수자의 입장에서 그런 식으로 고민해주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내 만화가 10년 후에도 읽히길 바라는 욕망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못 보는 지점을 다른 이들이 지적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대중성에 대한 욕심이라고 볼 수 있을까.

seri 그렇다. 결국은 많은 사람이 오래 즐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 누군가가 나에게 <데스노트>를 그릴지, (그런 작품이 존재할지는 모르겠지만)정치적으로 완벽하면서 재미없는 작품을 그릴지 물어본다면, 나는 분명히 < 데스노트>를 택할 것이다.

모든 작가는 기본적으로 관심병이 있는 사람이다. 다만, 그러면서도 내 작품을 읽는 사람들이 상처를 덜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편에 있는 것이다. 

 

 

<데스노트>를 택한다고 했지만 독자로부터 여캐 묘사에 상처를 받았다는 편지를 받으면 굉장히 고민할 것 같다.

seri 그때는 여캐에게 현실의 삶을 부여하기 위해 고민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야기에 천착해 이야기가 산으로 가게 두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은 이기심의 발로다. 박애주의적인 관점에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만화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만화를 많은 사람이 봐 주었으면 하고 그러려면 상처 받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니 공부하겠다는 말이니까. 

 


그렇지만 독자라는 집단은 ‘모두’가 아니라 이미 분절돼 있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seri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같이 보는 작품은 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작품의 ‘재미’가 아닌가 싶다. 나는 그런 분절된 집단을 넘어 모두가 읽어주는 데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와 작품 

그렇다면 문제는 그런 대중성 있는 작품을 그릴 수 있느냐는 것이겠다.

seri 예를 들어 인기가 보장된 작품을 그리라고 하더라도 나여서 그릴 수 있는 만화, 나라면 그릴 수 없는 만화가 분명히 있다. 각 작가가 지닌 감성이 다르고 그려낼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이니까.

나 자신의 색을 갖고 있으면서 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고시생툰>도 고시생이 아닌 독자도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던 거고.



 

"<데스노트>나 <슬램덩크>, <기생수>에서 여성 캐릭터의 서사가 미흡하다고 지적할 수 있을지언정, 어쨌든 명작은 명작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작품이란 ‘나’를 인정받고 내가 사랑받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을까?

seri 그렇게 말한다면 작가와 작품을 동일 선상에 놓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작품은 내가 생산한 것이지 내가 아니고 나와는 별개이다. 오히려 작가인 나를 싫어하더라도 내 작품은 재밌게 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나의 작품을 볼 때, 그 작품을 ‘내’가 생산해 낸 것이라는 생각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seri 실제로 그랬다. <고시생툰>을 연재할 때는 일상툰이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는데 작중 캐릭터가 아닌, 실재하는 나를 언급할 때는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내가 생산한 것은 나로부터 완전 히 떼어놓을 수도, 붙여놓을 수도 없는 미묘한 관계에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과거에 만들었던 자기 작품을 나중에 다시 보기도 하는가?

seri 맨정신으로는 못 보고 보통 술을 먹고 본다(웃음).

<매지컬 고삼즈> 화수가 덜 쌓였을 때는 콘티를 짤 때마다 1화부터 다시 읽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는 후회가 들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니 어쩔 수 없다.

반면, 당시에는 재밌게 잘 짰는데 지금은 이렇게 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스토리는 발전하고 있는지 어떤지 자기 자신도 알아보기가 힘들다.

<고시생툰> 같은 경우엔 일상 개그를 꽤 많이 썼는데 이제는 이렇게 못 쓰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뭐, 생활비가 없고 마감이 다가오면 또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만. 아무튼 작품을 만든다는 게 그런 게 아닐까. 즐겁고 괴롭고, 괴롭고, 괴롭고...



결론짓기

 

<매지컬 고삼즈>의 '에필로그'. 여름은 이 세계의 초등학생 강혁과 우연히 재회한다.




마지막 장면은 '키잡'으로 볼 수도 있을 텐데.

seri 키잡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 둘 사이가 진전된다고 해도 여름이가 보는 강혁은 반쯤은 미래에서 온 강혁일 테니까. 둘 다 한참 땅을 파게 될 거 같다. 잘 될 수도 있을 거고, 아니면 여름이가 소라랑 사귈 수도 있을 거고.

 


여름-소라 엔딩을 진 엔딩으로 밀고 있는 것 같다.

seri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여름이는 누구와도 접점이 많은 편이고, 심지어는 생물 선생님이랑 접점이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겨울이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는 두 사람이니까. 아니면 뭐 이 세계의 준혁이랑 여름이랑 잘 될 수도 있을 거고.

 


엔딩에서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달라진 부분이 혹시 있을까?

seri 기획 단계에서는 엔딩에서 생물 선생님을 군대 보내는 것을 징벌적으로 그리려고 했었다. 그러나 연재 중에 군 인권 문제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서 군대에 끌려가는 것이 심각한 인권 유린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완 님과 협의를 해서 콘티를 변경하고, 해당 장면이 조롱으로 보이지 않도록 주변 군필자들이나 징병제를 반대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 외에는 인물들이 처음 설정에서 많이 바뀌긴 했는데 전체적인 서사에서는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각 에피소드를 통해 한 사람의 상처를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크게 바뀌진 않았고 끝까지 그 줄기를 잘 잡고 갔던 것 같다.

 


완결 이후 소감이 있다면?

seri 좀 더 잘하고 싶긴 했다. 지금의 <매지컬 고삼즈>에 대해서도 만족하지만, 그와 별개로 더 캐주얼하게 그렸다면 더 많은 사람이 보면서, 더 많은 사람이 이 이야기에 대해 같이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가 있다.

물론 이미 이건 늦은 후회고 되돌릴 수도 없는 거니까 후반부 작업에서는 마지막까지 힘을 줘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자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무튼 많이들 엔딩에 만족해주셨고, 지금은 엔딩 뽕이 차 있는 상태다. 이 엔딩 뽕이 빠지고 나면 다시 한번 쫙 보면서 철저하게 자기 비판을 할 것 같다.

 


그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몰아붙일 필요가 있을까?

seri 몰아붙이는 것까지는 아닌 것 같다.
원래 운동선수도 더 잘하고 싶으면 꾸준히 자기 퍼포먼스를 모니터링하면서 뭐가 문제인지 알고 고치려고 하니까. 자기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차기작 계획이 있다면?

seri 네이버에 차기작을 연재하기가 쉽지가 않아서 이것저것 많이 연구해 볼 생각이다.

 


차기작 중에 학교 얘기도 있는지?

seri 이번에 들어갈 작품은 학교 얘기는 아닐 것 같다. 사실은 앞으로도 장편 학원물을 하나 정도 더 하고 싶다.

 


정말로 마지막 질문이다. 여름이는 초등학생 강혁이에게 무슨 아이스크림을 사줬을 것 같나.

seri 붕어싸만코? 겨울이가 여름이한테 사줬던 아이스크림이기도 하고, 첫 에피소드도 금붕어 얘기니까 붕어싸만코가 잘 어울릴 것 같다.



 

                

 



4시간에 달하는 인터뷰 시간 내내, seri 작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놓치지 않았고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이든 신중하고 또렷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동시에, 마법소녀물이라는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인터뷰에 임하는 그의 태도만으로도 <매지컬 고삼즈>의 여러 마법소녀들이 단편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모두가 오래도록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이뤄지길 바란다. <매지컬 고삼즈>는 어쩌면 그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YOUR MANAⒸ허이모




<매지컬 고삼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