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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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탕보고서>의 마일로, <모멘텀>의 박지연 작가 ②

인터뷰 ②

<여탕보고서>의 마일로,
<모멘텀>의 박지연 작가

"항상 수위높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한편 만화가란 직업을 계속 해도 될지도 고민한다."



 

로카, 선우훈
사진 전수만

 


박지연 작가의 신중한 작업 과정(사실은 컨셉 사진).



 

<모멘텀>에 대한 이야기

로카 <모멘텀>이 BL의 전통적인 문법을 전혀 따르지 않은 것이 의도처럼 느껴진다. BL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표현들이 있지 않나. '수'(BL에서 연인 관계와 역할을 지칭하는 용어)를 열등한 존재인 여자처럼 취급하거나, '수'가 '박히는 것'을 굉장히 수치스러워한다거나.

박지연 그냥 그런 걸 보면 이상하다고 느꼈다. BL에서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에 거부감을 갖고 고민하거나, 두 사람이 남자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이라고 갈등하는 것. BL에 그런 문법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유행이 지났다. 게이의 로맨스가 금단의 영역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나의 기본적인 목표는 개인과 개인의 로맨스를 그리며 게이 에로틱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거기서 난 남잔데 왜 남자가 좋아지는가 같은 의문에 시간을 쓰는 게 아깝다. 둘이 만나서 긴장감이 끌어내지는 장면의 연출만으로도 많은 걸 할 수 있는데.


 

로카 취향 외에 연출상 경제적인 이유도 있는 줄은 몰랐다.

마일로 <모멘텀>의 경우엔 '쟤랑 사귈까 말까?' 같은 고민이 없다. 다른 로맨스에서는 '사귀진 않고 싫어하다가 좋아하다가 드디어 잔다'는 결론에 이르는 게 대부분인데.


 

로카 그런 면에서 <모멘텀>이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현대적인 서사를 위해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다.

선우훈 주로 외국이 배경인 이유가 있나.

박지연 처음부터 그런 계획은 아니었다. 첫 편인 ‹TAKE 8›만 그렇게 하고, 그 뒤엔 한국 배경으로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시나리오 단계에서 그게 다 빠졌고, 그러고 나니 배경을 아예 다 외국으로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명이 우리 동네 옆 구로구 같은 게 아니니까 느낌이 달라질 수 있었다. 한국의 생활감도 사라지니 그 뒤로도 몇 가지를 더 뺐다. 두 인물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배경의 특이성을 배제했다. 가족이 등장하면 서사에 방해가 되니 그 부분도 사라졌다.

 

 

세 번째 에피소드, <취향과 편견>. 인물이 하루를 보내며 취하는 동선은 섬세하게 구성되어 있다.





선우훈 생활감이 없어진다고 했는데, 무대를 외국으로 옮겨서인지 오히려 디테일을 많이 신경 쓴 것 같다. 음식 먹는 거나 조향사 교육을 받는 장면 등. 인물들의 주거공간과 동선은 어떻게 계획했는지 궁금하다.

박지연 개인의 디테일에 대한 기본적 설계를 먼저 했다. <취향과 편견> 편의 경우, 구글 맵을 켜 놓고 에어비엔비에서 집을 검색해 봤다.

그 집 주변에 서점과 음식점이 어디 있는지, 이런 집에서 산다면 월세와 벌이가 얼마고 라이프 스타일이 어떻게 될지 등을 전부 설계했다.

그냥 연출을 위한 장면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쉬는 주말에 시간을 알뜰하게 쓰고 싶다면 알람을 맞춰 일어나고, 취미인 자전거를 타고 동네 서점에 들러서 책을 산 다음 스타벅스에서 돈을 쓰고, 이런 것들을 캐릭터마다 기본적으로 설계했다.

주 중에는 어떤 일을 하고 주말에 어떤 식으로 사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추측할 수 있었으면 했다. 주말에 집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나가서 부지런히 뭔가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보여 줌으로써 추측하고 판단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선우훈 인물을 포착하는 방식이 좋다. 어떤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느낌.

박지연 주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이 어디인지, 취미는 무엇인지 같은 경향을 보는 것.

 


선우훈 촬영장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잡지사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등의 디테일도 좋았다. 취재한 것인가.

박지연 잡지사에서 일하는 주변인 등을 통해 잘 알고 있는 것을 소재로 채택했다. 주변에 밴드를 하는 사람이 있다길래 음악 하는 사람도 한 번 다뤄 볼까 했는데, 그쪽은 문외한이어서 포기했다.

잡지 에디터나 포토그래퍼 같은 주변인, 내가 일해 본 영화 현장 등 디테일을 살릴 수 있는 소재 위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모르는 얘기를 허투루 쓰긴 싫다. 그럼 티가 나니까.





여덟 번째 에피소드, <팬텀>. 디테일이 돋보이는 르망 레이스 현장 묘사.


 


로카 작업 방식이 체계적인 것 같다. 특히 <팬텀> 편에서 F1에 대한 큰 관심과 애정이 느껴졌다. 분량도 제일 많았고.

박지연 레이싱을 굉장히 좋아했다. 연이 닿아 한국 그랑프리에서 1년간 레이싱 팀과 협업을 하게 됐고. 덕분에 레이싱 팀이 일하는 걸 굉장히 가까이서 보게 됐다.

그 사람들의 개별적인 직업, 이벤트를 보러 오는 관객들, 이런 데서 영감을 받았고 디테일하게 구성을 할 자신이 있었다.

 


선우훈 일 년간 어떤 일을 함께했나?

박지연 홍보 팀을 도와 차 위의 PR용 그림 등을 그렸다. 차를 제작하는 모습도 보고, 같이 이동하고, 차에서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선수들이 평소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경험했다.

 


로카 <모멘텀>의 인물들이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일반적인 한국 작품의 등장인물이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과 다르다.

박지연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로카 일본 만화의 팬픽과 서양 배경의 드라마나 영화의 팬픽은 완전히 문체가 다르다. 참고하고 영향받는 작품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멘텀>의 경우는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박지연 특별히 '이거다!'란 느낌은 없고, 기본적으로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로맨스 영화. 

<어톤먼트>, <인게이지먼트>, <잉글리시 페이션트> 이 세 작품을 굉장히 좋아한다. 로맨스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모멘텀>에서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두 주인공이 사소한 일로 알게 돼서 티격태격하다가 친구가 되고, 결국 진지한 관계로 나아가곤 한다. 이런 방식의 연애는 서른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20대 초중반에는 공감할 수 있어도 나이가 들면 그 단계를 지나지 않나.

<모멘텀>은 애초부터 타깃 연령대를 높게 잡았다. 서양의 로맨스 영화와 하이틴 드라마는 서사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구축한다. 나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연애하는 영화를 많이 봤고, 거기서 영감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로카 웹툰 쪽에선 보기 힘든 경향이다.

선우훈 사실 웹툰뿐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에 완전한 성인의 이야기가 드물다. 연애해야 하니까 하고, 결혼해야 하니까 하지만.

박지연 드라마도 젊은 남녀가 많이 나온다. 결혼하기 이전 연령대의 연애만이 연애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그 다음의 이야기는 단절된다.

성인 취향의 드라마라고 하는 것들은 4, 50대의 배우가 나와서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게 파격인 것처럼 묘사되는 식이다.

사람의 삶에는 연속성이 있고, 30대나 40대에도 미혼일 경우엔 연애를 활발하게 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의 연애가 이야기에서 빠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선우훈 갑자기 결혼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박지연 나는 그런 것을 싫어한다. 미혼인 사람들이 결혼으로 나아가기 위해 연애를 하는 이야기는 결혼한 순간 딱 끝나 버리니까. 그 공백의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어른이 된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를 하는가.





두 번째 에피소드, . 세 명의 인물이 서로를 동등하게 사랑하며 연애하는 것이 가능할까.



 


로카 세 명의 연애를 다루는 에피소드, ‹M의 서재›는 우디 앨런의 영화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박지연 맞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서 영감을 받았다. 처음 그 영화를 보고 복수 형태의 연애가 가능할까에 대해 생각해 봤고 아직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M의 서재›에선 불가능한 게 됐고. 

모든 구성원이 같은 생각을 갖지 않고서는 힘든 게 연애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할 때도 그 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가 있는데, 세 명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마일로 그편은 호불호도 많이 갈렸다.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다.

박지연 BL의 원칙적인 판타지는 두 사람이 결국 이어지고, 어떤 것도 두 사람의 관계를 방해할 수 없다는 거다. 한 명이 아무리 이상하게 행동해도 애인은 절대적인 사랑을 줘야 한다.

하지만 ‹M의 서재›에서는 그런 확실성 자체를 배제하고 싶었다. 두 사람이 오래 사귀더라도 연애는 언제든지 위태로울 수 있고, 연인은 언제든 타인이 될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을 표현했을 때 반발이 많이 있었다.

사람들이 가장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인물들이 마음이 변했다는 점이었다.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런 면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다고 생각한다.

 


로카 업로드 전부터 반응이 안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나?

박지연 약간 예상했다. 한 명을 두고 두 명이 투닥거리다 한 명이 떨어져 나가는 일반적인 삼각관계가 아니니까.

마일로 주인공이 수염 났다고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뭐 어차피 BL 좋아하는 사람들은 취향이 확고하니까.

박지연 <취향과 편견>에서 나이 많은 사람 보기 힘들다는 사람도 있었고.

 


로카 그게 취향인 사람도 당연히 있었을 거다.

박지연 맞다.

 
 

로카 사실 <모멘텀>의 모든 이야기는 인물들만 여자로 바꿔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대사를 전부 그대로 쓰고 인물들만 여자가 된다면.

박지연 결국 실제로 남녀의 구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고 본다.

 


선우훈 <모멘텀>의 세계는 이성적이고 언어적이고 현대적인 세계다. 그런데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 남자만 있다는 것이 조금 걸렸다. 남자들만이 단독자로 존재하는 프로페셔널한 세계는 결국 스테레오타입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박지연 <모멘텀>의 인물들이 이성애자 시스젠더 남성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는 이야기인가?

 

 

선우훈 그렇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적 편견은 그렇게 작동한다. 남자는 이성적이고, 여자는 감정적이라는 식으로.

박지연 나도 배타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로카 여성만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맥락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부가적인 설명 없이 완벽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묘사하는 것 자체가 인물들이 남자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박지연 남자들이 다 전문직에, 젊고, 돈도 잘 벌고, 사람도 좋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되는 게 다소 남성 중심적이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전부 여자여도 이 이야기가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남자기 때문에 모든 것이 더 매끄럽게 기능할 수 있다.

 


선우훈 이에 대한 반성으로 <팬텀>편에 여성 캐릭터들이 나온다는 느낌도 받았다.

박지연 맞다. 여성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팬텀>에서는 여성 인물들이 더 많은 게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팀의 보스나 기술자로 등장한다. 결국, 이건 BL의 한계다. 장르적 한계 때문에 여자가 원칙적으로 주인공으로 나설 수 없는 거다.

 


 

네 번째 에피소드, <테라피스트>. 지배당하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진다(물론 합의하에).





로카 SM 소재에 관해서도 관심이 깊은 것 같다.

박지연 SM에 대해선 오래 조사를 했었다.

 


로카 원래 관심이 있었나?

박지연 그렇다. 사람들이 판타지로 가볍게 소비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연애에서 동등함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주도권을 가진 사람에게 속박되고 싶어 하는 인간 감정의 본질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관계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실험적인 느낌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테라피스트> 편 앞의 인물들은 합의하에 특별한 로맨스 관계를 맺지만 이후는 다르다. 오히려 사랑을 배제하고, 안전하고 친밀하고 결속을 느낄 수 있는 돔과 섭의 관계를 선호한다.

결국 두 사람은 로맨스로 관계를 발전시켰지만, 사실 돔과 섭의 관계만으로도 돈독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고, 구속을 하는 입장과 받는 입장에서 모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관계의 기원에 대해 생각했다.

 


로카 특히 구속당하는 사람의 입장 서술이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박지연 마조히스트나 섭의 감정에 대해 이해를 못 했는데, 그런 쪽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있었다. 자기통제력이 높은 사람들이 오히려 이런 관계에 쉽게 빠진다고 한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길 때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있었다.

자기통제는 힘들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이 책임지고 모든 걸 해 준다면 그에 대한 만족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이 연애에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한다.

여자친구가 아침에 전화로 깨워 주고 밥을 해 주고, 남자친구는 여자에게 늦게 들어가지 말라고 하고. 당연히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데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계를 폭발적으로 몰아붙인 게 <뱅커> 편이다. 아슬아슬했다. 도덕적인 선을 넘어가게 되니까. 굉장히 안 좋은 내용이지 않나.

둘의 관계는 가정폭력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갈 곳 없고 의지할 수 없는 애를 거둬서... 분명 잘못될 수 있다. 나이 문제도 있고. 균형을 잘 찾아서 나쁜 쪽으로 가지 않도록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선우훈 <모멘텀>의 인물들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멋있는 말을 할 준비가 된 것 같다.

박지연 어른들이다.



선우훈 어른이라도 명대사만으로 이루어진 생활을 할 수는 없을 텐데.

로카 명대사가 아니고 그냥 멀쩡한 말이다.

박지연 멀쩡한 말.

로카 멍청한 사람들 안 나오는.



선우훈 판타지와 생활의 영역이 잘 구분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박지연 그냥 다 판타지다. 집도 참 좋고, 집에서도 옷 예쁘게 입고, 세수도 하고. <모멘텀>의 생활 자체가 예쁘게 꾸며졌고. 진짜 생활감이라고 볼 순 없다.



로카 다음에도 로맨스 작품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BL?

박지연 BL을 하게 될 것 같다. 다뤄 보고 싶은 소재들이 아직 있고, 로맨스 자체를 좋아한다. 인간관계가 로맨스와 절대적으로 분리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관계, 친구, 부모, 자식, 연인관계가 기본적으로 같은 틀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맨스는 그중 특별히 아주 깊어질 수 있는 관계다. 친구 관계는 선이 있고, 더 가벼운 선에서 그칠 수 있는 관계가 많으니까. 로맨스가 인간관계를 극단까지 표현하기에 좋다.


 

단행본과 차기작 계획

선우훈 단행본 계획은?

박지연 단행본은 이제 2권까지 나왔다.


<여탕보고서>(마일로)는 총 2권으로 완결, <모멘텀>(박지연)은 인터뷰 당시 1권, 현재는 2권까지 출간된 상태다.





로카 외전도 단행본에 들어갈 계획인가?

박지연 3권엔 <팬텀>을 수록할 계획인데, 외전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선우훈 레진코믹스에 만화의 출판 방식을 정하는 기준이 따로 있나? 어떤 것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출판하고,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다.

박지연 마케팅 계획이나 책의 성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선우훈 두 작가의 작품 모두 단행본이 나왔는데 기억나는 일화는 없나.

마일로 작업할 때 표지가 핑크인 게 싫다고 싸웠다. 왜 핑크냐고 난리를 쳤다.

박지연 진짜 심하게 싸웠다.

마일로 근데 나와 보니까 괜찮은 것 같다.

박지연 목욕탕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출판사에서 핑크를 고집했으니까...



로카 차기작 계획을 간략히 말해 달라.

마일로 연재를 쉰 지 일 년이 넘어서 차기작 계획에 대해 온갖 얘기를 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바뀐다. 처음엔 "다음 작품은 사극입니다!" 했다가 "다음 작품은 BL입니다!" 하면서 떠들어 놓기만 했다.

박지연 잘 모르겠다. 여러 가지 써 놓긴 했는데... 이번엔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싶기도 하다.



선우훈 그렇다면 <모멘텀>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완결한 이유는?

박지연 할 얘기가 다 떨어졌으니까. 막상 한국 배경을 생각하니 이성애 로맨스도 하고 싶어졌다.

너무 한정적이지 않은 서울의 라이프스타일을 그리고 싶다. 서울을 배경으로도 재밌는 삶을 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재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재밌는 삶을 그리면 좋겠다.



로카 백합 장르여도 재밌을 거 같다.

마일로 나름 백합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는 부치 나오는 백합을 그리고 싶다.


박지연 나는 심슨 같은 거. 심슨 같은 걸 그리면 어떻게 그릴지 상상해보면, 한국에서는 진짜 큰일 날 거 같았다. 거주지를 옮겨서 숨어서 그릴 것이다.

마일로 항상 수위 높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한편 만화가란 직업을 계속 해도 될지도 고민한다.


박지연 나도 다시 취직할지 고민한다.




박지연(좌), 마일로(우). 자매인 두 작가 모두 모두 하고싶은 게 많은 만큼, '만화가'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 중이다.




마일로 다들 초반에 그런 생각을 한 번씩 하는 것 같다. 기안84 작가도 용달을 다시 할까 했다고 하고.

박지연 타이어 회사에 들어갈까. 한국 레이싱 팀에 아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취직했다가 1년 만에 그만두고 다시 만화 그릴지도 모른다.

마일로 취직해서 다닐 만한 성격이 못 된다.

박지연 다른 것도 해 보고 싶긴 하다. 영화도 해 보고 싶고, 글도 써 보고 싶고.


 

로카 영화 일을 잠깐 했다고 하지 않았나.

박지연 해 봤는데, 여자가 감독이 된 사례가 최근 몇 년 사이에 한 번이었다고 하더라. 영화 마케팅은 여자들이 많이 하는데 감독은 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싫었다.

영화 팀에서 나오고 나서 방송사 공채를 봤었는데, 떨어졌다고 발표가 난 날 방송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내가 학력도 너무 높고, 오늘 면접 본 사람 중에 내가 실력이 제일 좋았다는 말을 들었다. 

연봉협상을 하려던 걸까? 화가 나서 그냥 끊고 나 혼자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 들여서 치마 입고 면접 보러 가서 '대체 뭘 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훈 만화가는 그런 의미에서 한계가 적은 것 같다. 감독의 일까지 다 할 수도 있고.

마일로 한국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힘들지 않은 극소수의 직업 중 하나인 것 같다. 패션디자인계는 여성이 더 많은 직종인데도 너무 힘들다.


 

                



두 작가는 목소리와 어조, 말하는 방식이 아주 달랐다. 마일로 작가는 강한 억양이 담긴 어조로 주장하는 바를 인상적으로 전달한다. 한편 박지연 작가는 차분한 억양으로, 평소 품고 있던 생각들을 구체적이며 논리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자매 작가인 두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온 흔적들을 느끼며, 만화가로서 각자 찾아가는 다른 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흔치 않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박지연 작가가 BL 장르를 대하는 태도와 로맨스로서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 마일로 작가가 육체를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거친 고민. 두 작가의 작품에서 느껴진 세심한 결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두 작가와 더불어 활발한 사모예드 강아지 솜이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인천에서의 새로운 삶과 경험이 서로의 세계와 작가적 시각에 새로운 결을 더할 것이다. 두 작가의 작품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인터뷰 ② <여탕보고서>의 마일로, <모멘텀>의 박지연 작가 끝

 

YOUR MANAⒸ로카,선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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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① <여탕보고서>의 마일로, <모멘텀>의 박지연 작가(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