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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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클럽>의 소망 작가

인터뷰

<자해클럽>의 소망 작가
자신의 수치를 안고 누군가를 위로한다. 


 
 

이연숙(리타)
사진 전수만

 
 
 
 

레진코믹스에서 <자해클럽>을 연재 중인 만화가 소망. 울산에서 고양이 두 마리와 동거 중이다.

 
 


 

“클럽의 규정, 첫 번째. 자해 일지를 쓴다. 두 번째. 자해 사실을 절대 들키지 않도록 한다. 세 번째. 클럽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네 번째. 절대 자살하지 말 것.”

 

영화 <파이트 클럽>을 연상시키는 엄격하고 폐쇄적인 규정이다. 여고생 비밀 모임 <자해클럽> 구성원들은 이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자해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다. 이런 힘든 규칙을 지켜야 하는 ‘자해클럽’에 굳이 가입할 필요가 있을까? 들키기도 싫고, 알려지기도 싫다면, 혼자 자해를 하면 될 일 아닌가? 그렇지만 그들은 모일 수밖에 없다. 어떤 절박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같은 흉터를 가진 자들만이 해줄 수 있는 것. 그건 최소한의 위로가 아닐까. <자해클럽>은 제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서로의 흉터를 마주보며 힘겹게 생존한다. 소망 작가를 만나 1년째 연재중인 <자해클럽>을 보다 깊게 들여다봤다.

 

 

                

 
 



 

 
<자해클럽> 최근 화에서의 주인공 아영.

 
 
 

며칠 전, 울산 지역 지진 뉴스를 봤어요. 많이 놀랐겠어요.

소망
당황해서 집 밖으로 나갔어요. 심하게 흔들렸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불안해하며 나와 있더라고요. 잠잠해진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죠.

그런데 두 번째 지진이 크게 났어요. 또 뛰쳐나왔죠. 생존에 대한 걱정이 됐어요. “이러다가 정말 건물이 무너지면 어쩌지?” 무서워지더라고요. 하지만 별로 답이 없었어요.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뭐 어쩔 수 없지.

 


오늘도 여진이 있다고.
 
소망
맞아요. 근데, 사실 인터뷰 전까지 계속 비몽사몽 해서 몰랐어요.

 


서울에서 울산으로 이사한 이유가 있는지요.
 
소망
애인이 울산 쪽으로 취직하게 돼서 따라왔어요. 애인한테 좀 의존적이라서. 제 일이 장소에 크게 얽매이는 것도 아니고. 분리불안장애 같은 게 있나 봐요.

 

 
심심할 것 같은데.

소망
차라리 편한 것 같아요. 만약에 물리적 거리가 짧으면 친구를 만나야 될 것 같은 압박감에 원고를 막 미친 듯이 해서 친구를 허겁지겁 만나고 이럴 수도 있겠죠. 근데 아예 울산으로 와버리니까 포기가 되는 거죠. 그냥 집에서 편하게 고양이 두 마리랑 사는 삶.


 

 

만약에 걔들이 나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서로의 자해를 알고 있었다면?

 
<자해클럽>, 제가 보기엔 슬슬 클라이맥스 같은데. 얼마나 온 것 같아요?

소망
앞부분에 잔뜩 꼬아놨던 문제들을 이제 조금씩 풀고 있어요. 얼마 전에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도 있고요. 걔들이 많은 이야기를 구성하진 않겠지만. 게다가 캐릭터 개개인의 문제가 하나도 해결된 게 없죠.

아영이 문제만 해도 그래요. 걔는 아직도 왕따 당하고 있고, 지수도 ‘정신병자’로 소문이 퍼진 상태죠. 문제 상황이 악화되었단 말이죠. 이런 상황들이 다 마무리되어야 완결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해클럽>을 그리게 된 동기가 뭔가요? 사실 휴재특별만화에 설명이 나오지만, 독자들을 위해 친절하게 한 번 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소망
그걸 안 읽는데 제가 지금 설명하는 건 읽을까요?

 


작가님 손글씨로 적어서 읽기가 너무 힘들다고요. 그림도 대충 그리셨잖아요.

소망
사실 거기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이 안나요.

 


자해경험이 있는 친구들을 대학교에서 만났다고...

소망
아, 맞아요. 대학 때 만난 친구들은 각자 다른 영역에 있는 친구들이었는데, 그래서 걔들이 자해를 해왔다는 걸 각기 다른 타이밍에 알 수밖에 없었어요. 걔들이 자해 사실을 알려올 때마다 충격을 받았죠. 처음에 제 반응은 그냥 ‘나뿐만이 아니구나.’ 하는 정도로 끝났고.

그렇게 한참을 멍 때리고 있다가 문득 ‘만약에 걔들이 나랑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서로의 자해를 알고 있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출발점이 된 것 같아요.


 
 
 
 

<자해클럽> 구상 과정을 휴재 특별 편에 담았다. 글씨가 너무 자유로워서 읽기가 힘듭니다. ^^

 
 
 

 
 

누가 그리겠냐 싶기도 하고.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저한테 매력적이기도 했고요.

 

‘자해’라는 소재가 예민하잖아요. 도전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소망
한번 그려봤어요. 머릿속에서 ‘괜찮지 않나?’하는 이미지가 떠올라서 끄적거려 보고. 만약에 내가 그린다면 어떻게 할 수 있으려나, 하고 재어 본거죠. 몇 장면 그려보고, ‘어, 되네?’ 한 뒤에는 결심이 필요했죠. 되긴 되는 것 같은데, 이걸 만화로 풀어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당시에는 막연하게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누가 그리겠냐 싶기도 하고.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저한테 매력적이기도 했고요.

 


<자해클럽>의 캐릭터들을 보면 각자의 사연이 다 다르잖아요. 자해 방식도 다르고. 본인 경험만으론 한계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취재과정을 거쳤나요?

소망
일단 직접 인터뷰로 사례를 딴 것은 두 명인데요. 제 친구. 그리고 지금 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리타님. 이렇게 두 명이에요.

다른 이야기들은 여러 상담소에서 각색된 상담 사례를 가져와 조합한 거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담 받았던 곳에 사례를 부탁했는데, 각색을 거쳐 몇 가지를 보내줬어요. 또 레즈비언 상담소에서도 사례를 부탁했죠. 내담자들 사연을 간추리고 각색해 보내주더라고요. 그래서 감사히 받았죠.

마지막으로 제가 학생회 그만두고 상담을 받았던 곳이 있어요. 그 사례들을 조합해서 <자해클럽>에 썼어요. 한 사연을 통째로 준 캐릭터는 없어요. 이 사례의 이 부분을 넣고, 저 부분을 넣어서 완성했죠.

 


 
 
 
 

신티크로 작업을 하는 소망작가. 최근에는 자신의 수작업에 가까운 브러쉬를 발견했다.

 
 


 

<자해클럽>의 매력 중 하나는 비밀을 공유하는 단 한 명의 파트너가 존재한다는 건데요. 한 캐릭터와 다른 캐릭터를 파트너로 맺어줄 때의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소망
지수랑 아영이는 그냥 딱 나왔어요. 나머지 애들은 연재하면서 조금씩 바뀌었어요. 대표적인 캐릭터가 경이에요. 초반 설정은 아영이랑 비슷하게 연약한 캐릭터였어요. 성폭력 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맨날 울고, 걸어 다니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섹스와 관련한 매체를 접하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키는 캐릭터였어요. 그러다가 문득, ‘얘 너무 약한데?’ 이런 생각이 들어서 확 바꿨어요.

대개 콘티를 짜는 와중에 성격들이 많이 바뀌어요. 기대하셨던 대답은 아닐 것 같은데, 제 만화는 정말로 제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파트너로 맺어줄 때의 기준은 사실 저도 잘 몰라요. 콘티를 짜면서 그때그때 정해지는 게 대부분이에요.

 


초반에 구상하면서 제일 중요했던 캐릭터들은 누구예요?

소망
화연이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지수랑 아영이가 아니라 화연이? 의외네요.

소망
일단은 외모가... 외모가 내 취향이어야 하고, 자기 파괴적인 면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중요했어요. 되게 매력적으로 보여야 했거든요. 초반에는 지금보다 설정이 훨씬 강한 캐릭터기도 했고요. 결국 ‘너무 강한 건 말이 안 되네’ 싶어서 약한 면을 좀 넣었지만요. 물론 지수랑 아영이가 중요하긴 하죠. 얘들이 메인이에요.
 


 
 

 

 

소망 작가의 애정을 받고 있는 화연이와 지수, 아영이, 다솜이, 서진이, 태은이 (왼쪽부터)

 

 


 

‘중요하긴 하다’니, 그래도 아영이가 주인공 아닌가요?

소망
아영이는 정말 대충 생각했어요. 구상할 단계부터 성격이든 외형이든 ‘무조건 그리기 쉽게 하자’고 생각했고. 그런데 사실은 이 만화가 <자해클럽>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저는 계속 아영이의 성장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영이의 성격을 크게 고민 안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리기 편하고 풀어내기도 편한 성격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고.

 


개인적으로는 초반부의 아영이가 제일 짜증 나는 캐릭터에요. 툭하면 울고. 소심하고.

소망
사실 아영이를 무리하게 성장시켰나 하는 생각도 좀 있어요. 초반의 아영이는 ‘왜 살지?’ 싶은 정도로 간신히 살아내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아영이가 제일 강한 캐릭터라는 사실이 드러나죠. 사실 지수의 가면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어야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자해클럽>은 아영이가 여러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지수를 공략하는 ‘여고레즈치정물’로 보이기도 하는데.

소망
<자해클럽>을 구상하면서, ‘이거는 절대 백합물이 아니다. 얘들이 느끼는 건 절대 연애감정이 아니다.’ 라는 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작업을 했어요. 그때는 제가 공식적으로 <자해클럽> 내에서 캐릭터들의 연애를 승인하는 순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같은 게 꼬일 것 같다는 걱정을 했어요. 물론 지금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자유죠. 단지 초반에 그렇게 생각한 건 잘한 거 같고.

 

그런 의미에서 소희라는 캐릭터가 재밌어요. 자해를 하지 않는데도 캐릭터들의 관계망 가장 깊은 곳에 연루되어 있죠.

소망
물론 저는 소희에게 일말의 면죄부를 주지 않을 거에요. 이미 면죄부를 준다고 해결될 상황도 아니지만요. 사실 얘도 자기가 아꼈던 사람을 잃어버려서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면서 그런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다니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 캐릭터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연민의 시선으로 보고 있고, 애정이 가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소희가 지수 치마 들치는 장면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소망
안 그래도 그 화의 콘티 짜면서 소희가 너무 제멋대로 움직여서 힘들었어요. 어떤 피드백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소희같은 가해자가 미화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요. 내가 하고 있는 게 가해자 미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걱정을 하긴 해요. 만화 <목소리의 형태> 같은 나쁜 예시처럼 보이진 않았으면 하고 바라죠.


 

 
 
 

모두를 놀라게 한 자해 아웃팅 신. (※친구에게 상처를 주지 맙시다!)

 
 
 

 

피해자가 직접 심판해야 한다는 거.
그 또한 그들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될 거라 생각해요.


소희가 치마 들치는 장면도 그렇지만, 유독 그리기 어려운 장면이 있었나요? 반대로 그리는 게 너무 신났던 장면은?

소망
맨 처음에 아영이가 자해하는 부분! 제일 신나게 그렸어요. 그리고... 연재 들어가고 나서는... 신나는 게 없어요. 모든 장면이 다 그리기가 힘들어요. 사실 의식의 흐름대로 콘티를 짜고 대사를 생각하니까, 스토리가 막히는 경우는 없어요. 근데 작화는 스트레스 받죠. ‘머리카락 왜 이렇게 길어’ 하면서.

 


<자해클럽>은 때로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진압하는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독자로서 항상 그런 부분이 찝찝했거든요. 요컨대 아빠의 폭력에서 화연이를 구해주는 게 교감의 권력이라거나?

소망
그 부분들이 저를 힘들게 해요. 제가 지적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또 다른 권력, 더 큰 권력에 의해 해결이 되잖아요. 예를 들면 예전에 아영이가 성추행당할 뻔했던 장면만 해도 그래요. 소희가 자기 권력으로 그걸 무너뜨리잖아요. 자본가의 권력으로. 결국 아영이는 일시적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데,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죠.

 


다른 캐릭터들과 다르게 가현이랑 경이는 권력을 빌려오는 대신 스스로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죠. 복수에 성공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 중 뭐가 더 최악일까요?

소망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성폭행에 대한 형 중에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총으로 쏴 죽인다.‘ 는 나라가 있대요. 저는 이게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가해 행동이라 생각해요. 피해자가 직접 심판해야 한다는 거. 그 또한 그들에게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될 거라 생각해요.

사회가 피해자를 보호해주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공식적으로 해주고, 피해자가 ‘아 내가 당한 일은 부당한 일이었고, 그것을 행한 사람은 벌을 받고 있고, 내가 사는 이 사회는 안전하다.’ 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사회는 그렇지 않으니까. 그래서 경이가 스스로 처벌자가 되려고 하는 거겠죠. 그렇다고 진짜로 오빠를 살해한다면 그건 경이의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되고 말겠죠.


 

 

 

 



'니가 꼬셔서 강간한 거나 다름없다'는 사촌의 말에 ‘그럼 니가 떠들었으니까 찌르는 거다?’라고 응수하는 가현의 모습.
 
 
 

 

 

 

'넌 남은 사람이었잖아’.
그건 떠나려는 사람에겐 무의미한
이야기죠.


<자해클럽>은 최악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모인 생존자 연대같아요. 서로에 대한 죄책감이 책임감으로 변해버린 것 같기도 하고.

소망
그건 구린 거 같은데. 자기가 자살하고 나면 남을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사는 게 뭔 사는 거예요. 물론 최근 화에서 지수에게 서진이가 말한 게 있죠. ‘넌 남은 사람이었잖아’, 하고요. 그런데 그건 떠나려는 사람에겐 무의미한 이야기죠. ‘내가 남겨진 사람이었다는 게, 뭐? 난 지금 죽을 건데.’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은 결국, ‘아, 씨 쟤 때문에 죽고 싶은데 죽지도 못하네, 어휴 살자....’ 이게 아니라, 얘가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고 이곳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게 의미가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걸 함께 누리려는 의지. 그걸 책임감으로 표현한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해클럽>을 구상할 당시에 예상 독자층이 있었나요?

소망
자해를 잔뜩 하고 내 몸의 상처가 있는데 아무도 몰라. 근데 조금만 삐끗하면 누군가 알지도 몰라. 항상 약간 기대 반 무서움 반인 상태로 있고. 걸을 때 마다 교복 치마에 상처가 쓸리면 내가 자해한 데가 아파서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되게 자해에 많이 의존했던 시기였어요.

<자해클럽>을 구상하면서,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 혹은 그런 경험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공감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위로까지는 안 될지 몰라도.

 


그런데 ‘현재’ 자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 <자해클럽>은 자해를 단지 자극적인 소재로 이용하고 있는 만화처럼 보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소망
저는 이 만화를 당사자가 아닌 관점으로 그린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참고 있는 거긴 한데 언제나 충동이 있어요. 스스로 문제의식이 있어서 참는 건 아니에요.

 


공감이 간다는 피드백도 있을 것 같은데.

소망
있죠. 긴 글은 메일로 오고, 트위터로도 공감된다는 멘션이 오고. 내가 뭐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나 싶죠. 뭐 털어놓고 이야기할 곳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딱히 대답을 한 적은 없는데, 안타깝죠.

'이러지 말고 상담소에 가시는 게 도움이 될 텐데...' 하다, '상담소 비싸지' 하게 되어요. '병원을 가시지...' 하다 보면 '병원 구린데 많은데' 싶고요.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있지요. 오는 메일은 다 읽고는 있어요. 다 읽는데, 뭐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도움이 됐다는 메일은 감사하죠.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은 꽤 많아요.

 


<자해클럽> 말고는 자해에 대해 말하는 만화가 없었으니까, 대표성 때문에 더 그럴 것 같아요.

소망
자해 관련해서 자해만 집중 조명하는 만화가 없는 것도 좀 신기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위인데도, 만화도 없고 소설도 없고. 심지어 논문도 별로 없어서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자해관련 논문도 통계만 있지 생애사연구가 없어요.

자해뿐만이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일탈로 간주되는 중독이나 충동과 같은 정신적인 질환들이 좀 더 대중적인 매체에서 많이 다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하기엔 사소한>이라는 웹툰이 있는데, 거기엔 섹스중독 여성이 나와요. 그런 만화도 되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매체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만화는 어쩌다가 그리게 된 건가요.

소망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되게 좋아했어요. 8살 때부터 <란마 1/2>, <드래곤볼>을 따라 그렸어요. 특히 <드래곤볼>의 오공이가 어린 모습에서 17살로 확 성장하는 모습에 사랑을 느꼈어요.
 
계속 만화를 그리다가, 다들 좀 더 ‘고급예술’을 해야 한다길래 대학은 조소과로 갔죠. 전공이 돈이 안 된다는 걸 곧 알았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만화를 그려봤죠. 갑자기 엄청난 열의를 가진 만화가 지망생이 된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소망작가의 첫사랑인 오공 피규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원래 최고 관심사가 만화 그리는 일이었어요?

소망
사실 대학 다닐 때는 그림 그리는 걸 접을 생각을 했어요. 활동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총학생회 선거준비를 하면서.

 


그때 코가 꿰인거에요?

소망
총학생회선거를 하는데 코가 꿰어서 하겠어요?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된 거예요?

소망
제가 경남 쪽에서 어린 시절을 쭉 보냈는데, 부모님 정치지향이 민주당이에요. 저희 아버지는 노사모 첫 회원인데, 경남 쪽 분위기 아시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그런 갭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지성인 엘리트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대학이 너무 엿 같은 거예요. 정신적으로 힘든 게 막 최고조로 이르렀어요. 휴학을 하고, 생각을 좀 많이 했죠. 가출도 해보고.

그런 걸 거쳐서, 결국 사회주의가 답이다, 하고 생각했어요. 웃기지만. 자본주의가 예술가들이 살아남기 힘든 구조라고 생각한거죠. 나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사회주의로 간 거예요. 한번은 복학하고 등록금 토론회를 갔어요. ‘대토론회’라고 해서 갔는데 막 일곱 명 있고.


 


싸우다 보면 이기겠죠.
이번 판은 졌지만 계속 지더라도.


그런 활동들에게서 얻은 경험치 같은 게 있나요?

소망
그 때 얻은 건 너무너무 많아요. 제 인생에 있어서 삶의 지향이나 희망, 전부 다 그때 얻었어요. 사람들이 모이고, 집회 같은 데 가고, 등록금 투쟁하고. 사람들 그런 주제에 되게 관심 없어 하는 거 같잖아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사람들이 모여서, 완전히 쟁취하진 못하더라도 학교의 완전한 상업화를 조금이라도 막으려고 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는 것 하나하나가 감동이었고, 그게 너무 좋아서 계속했어요. 가진 것 쥐꼬리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큰 권력에 맞서려고 하는 거 자체가 저에게 희망을 줬던 것 같아요. 물론 그 안에서 여러 문제들이 있었죠. 크게 놓고 보자면 운동 안에서의 젠더폭력 같은 게 있죠.

그런데 저는 여대를 나와가지고. 물론 여대라고 성폭력이 없는 게 아니죠. 그런데 제가 몰랐던 건지는 몰라도 상대적으로 덜 느꼈던 것 같아요. 어딜 가도 레즈비언이 너무 많았고. 아무나 보면 ‘레즈비언이 왜 아니지?’ 이런 생각 들고. 이런 재밌는 단상들은 여대라는 특별한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물론 모두가 레즈비언이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사람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하는 일도 많지만 분노할 때도 많잖아요. 최근 트위터의 소위 ‘메갈 사태’만 해도 그렇고요. 소망님이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에 놀란 이들이 꽤 있었죠.

소망
그 당시 제가 메갈 지지선언과 더불어 몇몇 트윗을 했던 게 알티가 꽤 되었어요. 몇몇 분들과 논쟁도 했어요. 어쨌든 사람이랑 대화는 하고 있는 거니까 재밌긴 재밌는데....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근데 무서운 게, 걔네들은 식었잖아요. "아 몰라, 귀찮아 노잼." 하고 안 하잖아요. 그럼 걔네들이 승리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워요. 메갈로 시끄러웠던 그때가 오히려 여성의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해준 거 같거든요. 그때로 인해 사람들이 생각을 많이 했죠. 그런데 조용한 지금은, 정작 피해입고 해고당한 사람들의 문제가 묻히고 그냥 끝난 거 같아서 그게 많이 안타까워요.

 


그래도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백 명 중에서 한 명이라도 바뀐다면, 그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 바로 바뀌지는 못 해도요.

소망
그 때 이후로 사람들이 예민해졌어요. 트위터로 보는 게 다니까 뭐라 말은 못하는데. 예전에는 그런 지적이 없었잖아요. 방송이나 그런 것들에 대한 지적이 없었는데 지적이 많아졌고. 그래도 좀 나아졌구나라는 걸 느끼죠.

이번 판은 졌지만 계속 지더라도 싸우다 보면 이기겠죠. 그거 하나만 보고 싸우는거죠. 결론은 자살하지 말자. 우리는 이길 거야. 그래서 노동요로 민가를 들으면서 힘을 얻곤 합니다. 기분이 좋아진단 말이에요.

 


마지막 질문. 차기작은 어떤 걸 준비하고 계신가요.

소망
지금은 무조건 웃기고 재밌는 거요. 남자캐릭터 많이 나오는 거. 더 이상 진지한 걸 그리기 싫어요....

 

 



 

 

4년 전부터 동거하기 시작한 동거묘, 으름.

 

 

 

              

 

 


더 이상 진지한 걸 그리기 싫다는 소망작가의 말에 ‘웃긴 거 그리다 보면 또 진지한 거 그리고 싶다고 할 거잖아요….’하고 토를 달려다가 참았다.

문득 몇 년 전 소망작가가 나를 인터뷰했던 때가 생각났다. <자해클럽>을 연재하기 전이었다. 내게는 무뎌진, 이제는 극복했다고 생각했다고 생각했던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망작가는 한참을 펑펑 울었다.

솔직히 말해, 그건 감동적이기보단 당황스러운 체험이었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몰입하면서 그렇게까지 망설임이 없는 사람을 우리 삶에서 발견하기란 힘든 일이다. 자신의 수치를 안고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 분명히 <자해클럽>은 그런 만화일 것이다.

 

 

 

YOUR MANAⒸ리타

 

<자해클럽>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