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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집니다>의 정영롱 작가

인터뷰

<알아집니다>의 정영롱 작가
친근하다기엔 너무 이상적이고, 꿈 같다기엔 이상하게 익숙한 제주의 일상을 그리다.


 

  로카
사진 전수만

 


 

 

 


<알아집니다>의 주인공인 의진은 수도권을 떠나 제주도로 간다.

'문화공간 양'이 제공한 제주의 공동 작업실에서 일하게 된 것. 의진은 반 년 동안 작업을 하고, 동료 작가의 일을 도우며 끝이 정해진 시간을 보낸다. <알아집니다> 작품 속 제주도 생활은 친근하다기엔 너무 이상적이고, 꿈 같다기엔 이상하게 익숙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정영롱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끝이 정해져 있던 시간의 기억들을 돌이켜 만화로 재구성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시작과 끝이 정해진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일상툰’은 어떻게 탄생했고, 또 어떻게 작업되고 있을까? 정영롱 작가는 <알아집니다>의 의진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수많은 호기심들을 안고 작가를 만났다.
 
기나긴 폭염 후 처음으로 날씨가 서늘해진 날, 정영롱 작가를 망원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알아집니다> 외에도 자체 제작하신 배지 판매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는 것으로 압니다.

정영롱  배지 제작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시작한 일이에요. 웹툰을 그리다 조금 힘들 때 컴퓨터 모니터 창을 따로 켜 두고 웹툰과 번갈아 가면서 작업했지요.

배지는 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하는데, 작업이 마무리되면 행사를 잡습니다. 제작은 업체에 맡겨요.

 

 
 
 
 


정영롱 작가가 최근 제작한 4종의 배지. Ⓒ트위터 @m4tc84님

 

 
 
 


스트레스 해소로 또 다른 일을 한다니, 대단해요.

정영롱
  마감이 끝나면 오버워치라는 FPS 게임을 하면서 놀기도 하지요.


 

정영롱과 의진
 


실제로 제주도에 다녀온 경험을 기반으로 <알아집니다>를 그린 것으로 아는데.

정영롱
  네. 2014년도에 7개월 정도 제주에 있었어요.



<알아집니다>의 이야기는 전부 작가님의 이야기인가요? 독자들은 일상툰의 주인공을 작가 그 자체로 여기기 쉬운데요.

정영롱
일상툰이라고 말한 적은 없는데요, 실제 찍었던 사진들을 업로드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완전히, 백 퍼센트 리얼은 아닌데 사진이 있어서 더 그렇게 판단하는 것 같아요. 다들 엄청 믿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아집니다> 1화에서 제주의 귤밭을 지나는 의진이 본 풍경의 파노라마 컷. 작가 본 기억을 바탕으로 한, 가로 스크롤 컷이다.

 
 
 
 

주인공 의진과 작가 정영롱이 완전히 동일한 인물은 아닐 텐데, 차이가 있다면?

정영롱 
일단 이름부터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내 이름을 쓸까 했다가 동생 이름으로 바꿨죠. 특별히 다르게 하고 싶었던 건, 주인공을 착하게 그리려고 많이 노력했다는 거죠.

 


왜, 굳이 착해야 했나요?

정영롱 
제가 만화 콘셉트를 '힐링'에 두고 있으니까요. 거기에서 있었던 불편한 일들을 제 성격으로 얘기하면 시니컬해질 텐데, 그걸 배제하려고 했어요. 주인공 의진이의 성격을 착하고 우유부단하고, 소심하게 했습니다.

 


소심한 오타쿠라는 설정이었죠?

정영롱 
오타쿠 설정은 그려나가면서 비중을 줄였어요. 얘기에 꼭 필요한 설정은 아닌 것 같아서요.
 


의진이 작가님과 비슷한 점도 있겠죠?

정영롱 
은근히 아무 데나 잘 뛰어드는 점? 뭐든 '아, 그냥 해 볼까?’ 하고 무작정 뛰어들어서 사람들과 부딪치는 거요.

 


<알아집니다>에 나왔던 대로, 실제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어울렸군요.

정영롱 
네, 저 자신을 약간 놓고 지냈어요

 
 

<알아집니다>의 주인공 의진과 함께 작업실을 쓰게 된 슬기와 미리. 슬기는 처음부터 의진과 함께 작업실 생활을 시작했고, 시간이 흐른 뒤 미리도 작업실에 합류하게 된다.

 
 
 

주변인들


주변 인물들도 거의 실재하는 인물 기반으로 만들어진 거죠?

정영롱 
네. 대부분.

 


혹시, 작품에 등장하는 걸 거부한 분도 계신가요?

정영롱 
네. 싫다고 하면 뺍니다. 만화를 보고 자신의 캐릭터가 그렇게 나올 줄 몰랐다고 하시면 그 분이 나오시는 분량을 줄이기도 하지요.

 


등장한 분들도 만화를 계속 보실 텐데.

정영롱 
네, 보시죠. 초반에는 사과도 많이 했어요. 저런 사람 너무 싫다는 식의 덧글이 달리기도 했으니까요.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당황했죠. 작품 감상 방식이 스크롤 뷰가 아닌 컷 뷰인 이유가 커요. 연재하고 있는 플랫폼이 피키캐스트라 각 컷마다 그 컷에 대한 반응이 오니까요.

어떤 컷에서 캐릭터가 안 좋아 보이는 행동을 하면, 그 뒤에 다른 장면이 나온다고 해도 일단 그 컷에는 욕이 달리는 거예요. 컷 뷰 형식의 단점이죠.

덧글을 보고 상처를 받으실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린 적도 있어요. 그래도 작품이니 상관없다고 답변을 주셔서 그 뒤론 편하게 하고 있어요.



제주의 마을 분들도 재미있게 보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정영롱 
연재 초반에 마을 청년 회장님께 말해서 많이 아실 거예요. 축하도 받았고요. 옆집 시인 아저씨한테는 재밌게 보고 있다는 피드백도 받았습니다.




제주도의 경험들



<알아집니다>를 보면, 제주도 생활이 꿈처럼 멋져 보였어요. 그만큼 멋진 곳이었나요?

정영롱 
일단 생활 방식이 전반적으로 다 느려요. 늦게 일어나도 되고요. 뭔가를 빨리빨리 해서 결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를 못 느껴요. 원하는 속도대로 살 수 있는 점이 좋았죠.

 


느리게라는 건, 제주도만의 분위기 같은?

정영롱 
제주에서 열리는 축제들도 그렇고, 제가 살던 마을의 슬로건 자체가 '슬로우 라이프'였어요. 삶의 여유가 필요한 분들은 제주도에서 살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주도엔 어떤 계기로 가게 되셨나요?

정영롱 
사실 대학을 졸업한 뒤 딱히 할 게 없어서 놀고 있었는데, 만화에 등장하는 슬기 언니가 제주도에 함께 갈 작가를 찾는다고 했어요.

'문화공간 양'이라는 곳에서 예술가들을 위해 제주도에 작업실을 마련해 주고, 작가는 그 곳에서 거주하며 자신의 작업을 완성하는 지원 사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청한 뒤 면접을 보고 통과해서 가게 됐어요. 만화에 나오는 대로. 제주도에 가서 뭘 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니었고, 그냥 우연?

 


제주도에서의 멋진 경험이 작가님 본인을 바꾸기도 했나요?

정영롱 
저는 잘 못 느꼈는데, 주변 사람들이 성격 좋아졌다는 말을 했어요. 제가 원래 좀 까칠한 편인데, 뭔가 색깔이 풍부해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만화에도 한 번 나온 것처럼.

 


그런 컬러풀함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나요?

정영롱 
아뇨, 안 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정영롱 
하지만 지속을 시키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요.


그래도 작품을 그릴 땐 제주도에서 느꼈던 그 감성이 돌아올 거 같아요.

정영롱 
콘티를 짜면서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그 때의 느낌이 돌아옵니다.

 


추억으로 창작을 하시는군요.

정영롱 
네. 그 때, 그 날들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제주에서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영롱 
<알아집니다>에 슈퍼문을 보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주도에선 팔월 말쯤 슈퍼문이 뜨는데, 그 때 제주도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달을 보려고 이동해요.

저도 차를 타고 어디에서 달을 보면 좋을지 돌아다녔어요. 숲속 도로를 지나다 달빛이 너무 예뻐서 라이트를 다 끄고 차에서 내려 달을 바라봤는데, 달빛 하나만으로 주변이 다 보이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가로등이 전혀 없는데도?

정영롱 
네, 빛이 전혀 없는데, 도로 옆 목장에서 달려가는 말도 보이더라고요. 이런 달빛은 제주도가 아니면 못 보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지요.

 

 
 
 

<알아집니다> 33화 제주도의 슈퍼문이 작가의 기억을 통해 이렇게 재탄생됐다.

 
 
 
 


정말 재밌는데 만화에 나오지 못한 에피소드도 있나요?

정영롱 
동네 남자 청년과 한 번 친해졌었어요. 그 동네에 청년은 그 하나뿐이라 친구 생겼다고 자랑을 했더니, 강사님이 연락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을이 보수적이라 젊은 남녀가 연락하고 지내면 소문이 안 좋게 나서, 마을 분위기에 누를 끼친다는 식의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죠.

마을에 사는, 진짜 그냥 마을의 평범한 청년 하나였을 뿐인데 친구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도 몇 번 연락하다가 안 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 그렇게 끝났어요.



모두 사생활을 알고 지내는 시골 마을이네요.

정영롱 
윤태호 작가의 <이끼>처럼 좀 무섭더라고요. 여자는 담배도 숨어서 피워야 돼요.  담배를 피우다가 걸리면 죄송한 게 아닌데 죄송하다고 해야 되고요.

 


재밌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그릴 수 없는 에피소드였네요.



‘제주도 일상툰’의 시작
 


아마 처음 갈 때부터 웹툰을 그릴 생각은 아니었을 텐데, 갈 때 기대했던 바는 무엇이었나요?

정영롱 
원래 애니메이션을 전공해서, 도형으로 예쁘게 이루어진 애니메이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주도 풍경을 바탕으로 그 애니메이션을 제작도 했으니 원했던 것은 다 이루고 왔어요.

 


만화를 그리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정영롱 
삶의 소소한 순간들에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고양이 관찰할 때라거나 그런 순간들을 만화로 그려서 웹에 올리기도 했으니까요. 일상툰을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나 계기가 있지는 않아요. 재밌는 일이 있으면 그냥 그걸 만화로 그려서 블로그에 올리는 정도였죠.

제주도에서 돌아온 후 집에서 사진을 정리하면서 쭉 보는데, 그냥 갖고 있긴 아깝고 경험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려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제가 학교를 완전히 졸업한 게 아니고 수료 상태인데, <알아집니다>는 졸업 작품으로 준비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콘텐츠 진흥원에서 진행한 신인만화가 지원 사업에 당선돼 지원금을 받게 됐어요. 피키캐스트라는 플랫폼과 매칭이 되면서 연재도 결정됐죠. 정식 연재는 처음이라 어려운 점이 많아요.
 


<알아집니다> 이전엔 어떤 만화 작업을 했는지요?
 
정영롱 
애니메이션 작업과 페이지 방식 만화 작업을 주로 했고, 동인지도 종종 만들었어요.

 


연재를 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영롱 
내가 재밌게 기억하는 일과 그걸 재밌어 보이게 구성하는 게 다르더라구요. 제 감정이 제일 강렬하게 느낀 부분과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달라서, 그 간극을 좁히는 게 어려웠어요.

저는 소소한 말장난을 하는 걸 좋아하는데, 독자들은 사건이 터져 주는 걸 좋아한다거나 하는 그런 차이들. 그래서 한 화마다 작은 것이라도 사건을 하나씩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죠.

 

 


만화 <겁쟁이 페달>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컷. 초반에는 오타쿠 설정이 눈에 띄었던 의진.
 

 
 
 


제주도가 진짜 바람이 센가 봐요.

정영롱 
바람이 눈에 들어가면 눈물을 흘리는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가 제주도에 내려왔을 때 바람이 너무 세니까, 마스카라 섞인 검은 눈물을 흘렸어요. 아, 이것도 사정이 있어서 못 그린 재밌는 에피소드네요.

 


개그를 구상하거나 만화에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팁이 있을까요?

정영롱 
개그를 구상할 때 도움이 제일 많이 되는 건 시트콤이에요. 개그가 잘 안 떠오를 때는 한국 시트콤을 봤어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나 <순풍산부인과>. 그런 시트콤은 한 화 안에 개그를 짜넣고 끝내는 흐름이 있으니까. 만화보단 주로 시트콤을 참고했지요.
 

 
 
 


제주도에서 의진과 로맨스를 꽃피우는 청년 광재.
 

 
 
 


만화에서 가장 특별하고, 이질적으로도 보이는 캐릭터는 광재라고 생각합니다. 그 인물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정영롱 
광재는 원래 예정에 없던 캐릭터였어요. 편집부와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짧은 제주도 생활을 하는 동안 연애를 하는 환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중간에 넣었습니다.

원래 모델이 되는 캐릭터도 있었고, 그 분에게서 따 와 변형시켰어요. 말씀드린 마을 청년도 약간 있고, 그 외에도 여러 명의 캐릭터가 광재에게 섞였죠. 제주도에서 있었던 로맨스의 집약체?
 

외형이 <쿠로코의 농구>에 등장하는 아오미네를 닮은듯 해요.

정영롱 
그건 의도한 게 아니구요! 다들 그렇게 말씀하셔서 저도 '아,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었어요. 광재의 외양은 마을 청년 분과 비슷합니다.




피키캐스트라는 플랫폼, 컷 뷰 방식의 작업
 


사실 피키캐스트라는 플랫폼에서 웹툰을 보는 게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피키툰에 대해 전부터 알았나요?

정영롱 
솔직히 몰랐는데, 연재를 시작할 때 지망하는 매칭 플랫폼을 찾다 보니 여기가 제일 좋아 보였어요.

당시 피키툰에서 연재되던 김양수 작가님이나 주호민 작가님 등의 작품을 인상적으로 봤고, 그 외 연재되는 웹툰들의 성격이 제 만화랑도 잘 맞을 것 같더라고요.

 


피키캐스트가 네이버나 다음, 레진 같은 여타 플랫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정영롱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컷 뷰라는 형식이 특별해요. 각 컷마다 즉각 반응이 오니까요.

또 피키캐스트에는 메인 피드 페이지에 다른 콘텐츠와 함께 웹툰이 업로드돼요. 만화를 봐야겠다고 생각을 않으셨던 분들이 메인에 노출된 것을 보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일반 조회수가 높고요. 연재하면서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플랫폼의 특성이 작업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나요?

정영롱 
컷마다 덧글로 즉각 반응이 오니 다음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때 어떤 부분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알게 돼요. 구체적인 피드백이 많고, 캐릭터에 대한 감정적 덧글도 컷마다 많이 달려요.

처음에는 컷마다 끊기는 작업에 적응이 힘들어서 일단 페이지 만화 방식으로 콘티를 짰었지요. 그런데 처음부터 컷 단위로 콘티를 짜 보니 또 너무 달랐습니다. 연출을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게 됐어요.

 


스크롤 뷰나 페이지 뷰의 웹툰과 컷 뷰 웹툰의 또 다른 점이 있다면요?

정영롱 
스크롤 뷰는 이어지는 컷들 사이에 연속성이 있는데 컷 뷰는 계속 끊기니까요. 그래서 점프해서 넘어가는 컷을 팍팍 쓸 수 있는 장점도 있죠.

하지만 이야기가 긴 호흡으로 진행될 때는 스크롤이 없어서 끝까지 보기가 힘들죠. 50컷 이상 가면 집중도가 확 떨어져요. 그래서 한 화당 평균 50컷 이내를 쓰지요. 그 안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잘 진행할지가 관건입니다.

 


좌우 스크롤의 파노라마 컷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피키툰에만 있는 기능인가요?

정영롱 
네, 다른 데서는 본 적이 없네요. 제주도 풍경을 보여 주려는 제 의도와 잘 맞고, 파노라마 컷을 사용하라는 권유를 처음부터 많이 받았어요.

 


작업을 하면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정영롱 
작화에선 역시 배경에 제일 신경이 쓰이죠. 특히 가끔 나오는 파노라마 컷을 잘 살리고 싶어요. 연출에 있어서는 한 화 안의 완결성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게 잘 안 된 초반부는 집중도가 조금 떨어졌죠.

 


확실히 작가님의 만화는 그림의 밀도가 높습니다.

정영롱 
배경이 제주도인만큼 배경에 힘을 줘서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처음엔 흑백으로 그려서 컬러보다 예쁘게 보이게 하자는 생각도 했었어요. 터무니없었지만.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제주도에서 기대되는 색채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걸 버리면 안 된다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은 뒤 최종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결과물을 내고 있습니다.

배경을 그릴 때는 그 풍광에서 느꼈던 그 순간의 기억을 전하는 데 주력해요. 실재 있었던 장소니까요. 독자들이 보고 감탄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립니다.

 
 


 

정영롱 작가와 식물.

 
 


식물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 같아요.

정영롱 
식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건 2012년도나 2013년쯤이에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집 베란다의 식물들을 그리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생산적이네요.

정영롱 
스트레스를 풀려고 결국 뭔가 만들게 돼요. 그러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지?'하는 생각도 하고요.


특히 좋아하는 식물은 무엇인가요?

정영롱 
야자수예요. 중학교 때 필리핀을 잠깐 다녀왔는데, 그 때도 야자수에 대한 일기를 썼더라고요. 야자수의 종류에 대해 혼자 그림을 그려 놓기도 했고요.

제가 야자수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제주도에 간 뒤였지만 그 전부터 저도 모르게 좋아하고 있었나 봐요.

제주도에 가기 전에 태국도 갔었는데, 그 곳의 식물들도 너무 예뻤어요.

 

 
 
 

야생의 색을 포착해낸 식물 그림.

 
 
 
 


<알아집니다> 초반의 손금 보는 사람을 만났던 태국 여행 말씀이군요.

정영롱 
네. 맞습니다. 그 에피소드가 만화에선 코믹하게 표현됐지만, 실제로는 너무 무서웠어요. 갑자기 전화가 오더니 말없이 끊기고, 누가 방으로 쳐들어왔으니까요. 만약 그 때 방에 혼자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까를 상상해 봅니다.

 


스릴러 만화가 나올 수도 있었겠네요.

정영롱 
그렇죠. 하하.

 



<알아집니다> 완결, 그 이후
 


<알아집니다>는 결국 어떤 이야기인가요? 제주도라는 곳이 의진을 바꾸게 될까요?

정영롱 
제목이 내용을 함축한다고 생각해요. 의진이 제주도에서 새로운 생활을 겪고 삶을 알아가게 되는 거죠. 특별히 크게 변하는 건 없어요. 제주도에서 지내고 돌아가는 그 사이의 과정이 있는 거죠.

그 과정에서 의진이가 느꼈으면 하는 건, 사람들이 자신에게 왔다가 떠나가는 걸 느껴 보는 것이에요. 늘 떠돌아다니던 의진이 제주도에 왔다가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남겨진 사람의 기분을 알아가게 됩니다.

기억이란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어요.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추억하는 그 느낌.

 


제목이 <알아갑니다>가 아닌, <알아집니다>인 이유가 있는지요?
 
정영롱 
제주도 방언이더라구요. '알게 됩니다.'를 제주도 말로는 ‘알아집니다.’라고 해요.


그 <알아집니다>도 이제 끝이 다가왔다는 느낌이에요.

정영롱 
네. 사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6화 정도요. 4화 분량의 비축분을 갖고 연재를 시작했는데, 두 달쯤 전에 모두 소진했네요. 매주 실시간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빠듯하네요. 그래도 꾸준히 잘 연재해 오셨어요.

정영롱 
실은 휴재를 한 번 했습니다.

 


잠이 부족하지는 않나요?

정영롱 
잠은 기본적으로 많이 자려고 하고 있어요. 어머니가 어시로 도움을 주시기도 하니까요.


어머니가 미술을 전공하셨다거나?

정영롱 
그건 아니고요, 제가 타블렛을 가르쳐 드려서 인물 밑색만 깔아 주세요.

 


무급 어시네요.

정영롱 
대신 제가 오키나와로 가족여행을 보내 드리기로 했어요.

 


일본어를 잘 하는지요?

정영롱 
애니에서 배운 정도? <쿠로코의 농구>에서 배운 말은 쓰면 안 되지만요. 사실 내후년쯤 일본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할 예정이에요. 그 때도 기회가 되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만화를 그리고 싶습니다.

 


제주도에서의 경험도 그렇고, 다른 공간에 임시적으로 머무는 경험이 많은 것 같아요.

정영롱 
네. 여행과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잠깐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 곳에 사는 것도 아니고. 경계를 떠도는 느낌.

 


차기작은 일본 체험 만화가 되는 건가요?

정영롱 
그 전에 학교 졸업작품으로 단편집을 낼 예정이에요. 졸업하고 나면 텀블벅 후원을 시도해 보고, 안 되면 자비로라도 소량 출판할 예정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갖고, 비슷한 시공간에서 다른 캐릭터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릴 계획이에요. 주제는 '졸업'이 될 예정입니다. 졸업하고 싶어서.

 

 
 

 
 

넝쿨식물 아래서 고양이를 만난 정영롱 작가. 

 

 

 

작가 자신에 대하여
 


특별히 롤모델로 삼는 작가가 있나요?

정영롱 
<알아집니다> 전까지는 구로다 이오우를 좋아했어요. 특히 <가지>의 경우처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담담하게 풀어내는 스타일이 좋습니다. 자유로운 작화와 아름다운 배경도 좋고요.

그 외엔 여성 작가들에 주로 관심이 있습니다. 타카노 후미코나 요시나가 후미같은. 여자의 시선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본받고 싶어요.

<알아집니다>의 경우도 여성 캐릭터의 이야기가 주로 나오는데, 은연중에 여자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루 평균 작업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요?

정영롱 
열두 시간 정도 하는데, 작업 중간에 식사를 가거나 가끔 오버워치 게임도 해요.

 


휴일은 있나요?

정영롱 
일주일 중 하루는 무조건 쉬어요. 집에만 있다 보니 너무 나가고 싶어서요. 주로 친구들을 만나 맛집을 다닙니다. 주간 웹툰을 하다 보니 나가서 못 노는 게 제일 힘들어요.

원래 일 주일에 세 번 정도는 외출하는데요, 요새는 거의 못 나가고 있어요. 활동적인 사람이 방에 가만히 있으면 힘들다는 걸 알게 됐죠. 생각보다 내가 활동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깨닫고.

 


노동요로는 어떤 것을 들으시나요?

정영롱
주로 엔시티의 노래를 들어요. 유튜브에서 괴담도 많이 듣습니다. 듣고 있으면 잠이 안 오거든요. 하지만 또 많이 듣다 보면 패턴이 다 파악되니까 식상해지기도 해요.

 


작업에 사용하시는 툴은?

정영롱
사이툴이라는 걸 쓰고 있어요.



사이툴!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군요!



 

               

 
 
 

정영롱 작가의 멋진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작가는 직접 제작한 배지를 인터뷰 팀에게 선물했다. 작가의 말처럼 힐링을 목표로 제작되어 부드러운 톤을 지닌 <알아집니다>와는 달리, 그의 식물 그림에서는 야생적인 생동감이 넘친다.

벌써부터 정영롱 작가가 계획하고 있다는 일본 체류기를 기대하게 된다. 또 다른 경계에 머물게 된 그는 어떤 만화를 그리며, 어떤 감각을 전해 줄까. 그의 작품 세계는 앞으로 얼마나 더 다채로워질까.

 

 

 

YOUR MANAⒸ로카

 

 



<알아집니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