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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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도시처녀들>의 미깡 작가

인터뷰

<술꾼도시처녀들>의 작가 미깡
미깡, 성실한 ‘술꾼’ 그리고 당당한 ‘도시처녀들’로 살기




 

이연숙(리타)
사진 전수만

 

 
 


<술꾼도시처녀들>의 작가와 마주한 자리. 컵에 담긴 것은 술이 아니고 커피다.
 

 
 

 

<술꾼도시처녀들>은 술을 좋아하는 여자들에 대한 만화다.
 
이들의 삶은 간단히 말해 ‘Work Later Drink Now.’로 요약된다. 술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두 가슴 깊이 공감할 문구다.
 
그러나 <술꾼도시처녀들>은 단지 '오늘 마실 술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가슴 따뜻한 교훈을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여자들은 뭘 해도 욕먹는다.”는 속 시원한 대사는, 이들이 무지막지한 ‘술꾼’이면서 동시에 ‘처녀들’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처녀들은 일도 하고, 사랑도 하고, 술도 마신다. 술이 ‘너무 좋아서’ 술을 마신다는 리우의 말에서는 어떤 부끄러움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이들은 당당하다. 그래서 멋있다. <술꾼도시처녀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면 바로 이런 이유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술꾼 처녀들이 마시고 싶은 술을 마시면서 밤새도록 수다를 떠는 이 만화는, 어째 평생 봐도 지겨울 것 같지가 않다. 게다가 술꾼들만이 알 수 있는 그 구질구질한 디테일들은 어떤가?
 
<술꾼도시처녀들>을 읽으면서 작가가 궁금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술꾼’으로서의 미깡 작가, 그리고 ‘도시처녀들’로서의 미깡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술꾼도시처녀들>의 새 시즌 연재를 앞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성실한’ 술꾼, 미깡
 
사실 오늘 인터뷰가 취중 인터뷰가 될 줄 알고 기대를 했다.
 
미깡 육아 때문에 저녁에 술 약속을 못 잡는다. 그리고 연재 들어가기 직전이라, 금주상태다. 다음에 한 잔 하자.
 
 
술은 안 질리나?
 
미깡 안 질린다.
 
 
‘미깡’이란 닉네임도 술 먹고 게임하다가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미깡 영어로만 말하는 술 게임이 있다. 다들 영어가 짧으니까 억지로 ‘헤이 스타트!’ 이래야 된다. 한국말을 쓰면 무조건 술을 먹는 거다. 그 게임을 하는 와중에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데, 어차피 이름은 고유명사니까 영어로 발음 안 해도 상관없지 않나. 게임 중에 본명을 가지고 웃다가 생긴 닉네임이다.
 
 
술 말고 다른 취미는 없는지.
 
미깡 원래 성실한 술꾼이어서, 술을 마시기 위해 운동을 엄청 열심히 했다. 마라톤도 했고 등산도 가고 헬스 경력도 길다. 그런데 요즘은 육아가 바쁘고, 연재도 코앞이라 운동을 통 못했다. 그러고 보니, 요새 ‘구몬’을 시작했다. 성인들이 많이 한다. 집으로 와주니까. 일본어랑 한자. 재밌다.
 
 
술을 마시기 위해 운동을 하는 점이 대단하다. 잠깐의 일탈로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된 것 같다.
 
미깡 <술꾼도시처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술도녀’들이 뭔가를 찾거나 벗어나려고 술을 마시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군 화가 나서 술을 마시고 어쩌고 하는데, ‘술도녀’들은 ‘그냥 맛있어서’ 마신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일상에서 술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냥 한 짝으로 같이 있는 게 좋다. 나는 술이 뭔가 일탈이나 낭만처럼 삶에서 분리되는 게 아니라 내 삶의 일부라고 느낀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운동도 그래서 하는 거다. 생활의 일부라면 스케줄 관리를 해야 하지 않겠나.
 
 
 
 
 

미깡 작가의 멋진 투 블록 컷을 보여줄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술꾼도시처녀들>은 ‘기승전술’보다 다양한 경험이 녹아있는 이야기

 
문예창작과 출신에 기자 생활이 10년이다. 만화를 어떻게 시작한 건지.
 
미깡 <음주가무 연구소>라는 만화를 접했다. 보고 나서 친구들이랑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이야기를 그리면 바로 만환데, 왜 술 만화가 없지?’
 
근데, 술꾼들의 특징이 있다. 술에 취해서 아무 말이나 막 하고 나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가 어려운 거다. 술 마시느라 너무 바빠서.
 
어느 날은 친구들이랑 말만 하다가 환멸을 느꼈다. 그래서 결심을 했다. ‘난 뭘 하나 해 보이겠다.’ 라고.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다. 첫 웹툰을 네이버와 다음 양쪽 게시판에 올렸을 때, 정식 연재는 생각도 못했다. ‘나는 한다면 한다.’하고 친구들끼리 모여서 낄낄거리려고 한 건데. 운이 좋게도 그게 빨리 계약이 돼가지고.
 
 
꼭 물어보고 싶었는데, 술에 마시는 도중에 ‘아 이거 그리면 재밌겠다.’하는 상황들은 어떻게 기억하나? 아무리 소재가 좋아도 다음 날이면 잊어버리지 않나. 대사 같은 건 더 그럴 텐데.
 

미깡 사실 그렇게 만취할 정도로 취하진 않는다. 술에 잘 안 취한다는 이야기다. 취하려면 여러 병 마셔야하니까. 나는 매일 적당량 마셔야하니까. 금주 전까지는 주 6일을 마셨다. 하루는 병이 나서 못 마신다. 쉬어야 하니까.
 
 
휴재 기간이 좀 길었는데, 음주와 더불어 소재 비축은 했는지 궁금하다.
 
미깡 그게... 그렇게 못했다. 최근 난다님이 휴재한 후 얼마 후에 다시 휴재를 한 일이 있었다. 많은 독자가 세이브 왜 안 해놨냐고 성토를 했는데, 나 역시 독자의 한 명으로서 휴재가 아쉽고 세이브도 없어서 아쉬웠다. 근데 막상 내가 그런 입장이 되어보니 세이브는커녕, 소재 하나 비축해 놓기가 힘들더라. 생각해보니, 우리가 언제 방학숙제 미리 했었나? 싶었다. 아무튼 세이브는 하나도 못했다.
 
 
얼마 전에 손목을 다쳤다고 들었다.
 
미깡 염증이 생겼다. 근데 그림 그리다가 다쳤다고 말하긴 민망한데. 아무래도 출산해서, 손목이 약해진 것 같다.
 
 
여성 작가들이 결혼 후 육아하면서 작가보다 엄마로서의 삶에 더 충실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미깡 작가님은 그런 모종의 불안함에 시달리는 않는지.
 
미깡 일을 쉬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지금은 그런 걱정보다는 현실적으로 육아하면서 만화를 그리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과 육아의 조건이 같다고 치면, 남자 작가들보다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게 있다. 출퇴근할 장소가 있다면 남편이나 나나 둘 중 하나가 퇴근해서 애를 데려오고 집안일을 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집에서 작업을 하니까, 이런 역할 구분이 잘 안 된다.
 
뭔가 일에 집중을 하다가도 지금 빨래가 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오고. 나한테 주어진 시간을 계획대로 쓰기가 어렵다. 가사분담을 해놨지만 실제로는 내가 더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에 보이니까 안할 수가 없다.
 
육아든 가사든. 작업실로 출퇴근을 하는 경우엔 생활과 일이 분리되니 창작에 전념하기 쉽다. 결국 프리랜서로서 결혼해서 육아를 하고 일을 꾸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충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술꾼도시처녀들>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 육아 이야기도 나올 것 같고. 임산부 캐릭터도 있으니까.
 
미깡 그럴 것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다양한 단계를 이르는 개념으로 ‘생애주기’라는 말이 있다. 인물들이 나와 동갑인 만큼, 얘 네도 사랑을 하고 혹은 결혼도 할 수 있고, 아기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순전히 소재 면에서 생각해도, 주인공이 3명이나 있으니까 다양한 경험이 등장하는 것이 좋다. ‘기승전술(酒)’ 같은 구조가 되면 지루해진다. 누구는 프리랜서, 누구는 직장인 이렇게 다 나눠져야 재미가 생긴다.
 
임신한 캐릭터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시댁 이야기와 술 이야기를 엮어서 이야기를 더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술과 관련해서는 이렇게 진지한 사람들입니다.

 

 
 
인물들의 사연으로 나름대로 서사가 생기고 있는데. 장기적인 연재를 고려 중인가?
 
미깡 사실 휴재하는 동안 그걸 고민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준비를 너무 못해서, 연재를 하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갈등이 많다.
 
<술꾼도시처녀들>은 사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면이 있기 때문에, 이걸 길게 가져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 독자들이 원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럼 나도 좋고.
 
근데 재미가 없는데 우려먹느니, 깔끔하게 끝내는 게 낫다. 그래서 생애주기나 여러 장치들과 함께 가는 전략으로 새 시즌을 진행해볼까? 하는 그런 갈등 중에 있다. 하다 보면 알겠지. 새로운 인물들도 등장시킬 것이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게, 새로운 술과 계속 만나게 되지 않나? 일단 오늘만 해도 여러분들께 커티삭을 선물 받았다. 어쩌면 이 술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르고. 연재 기간에 대해서는 어쨌든 이번 시즌 연재하면서 더 생각해 볼 예정이다.
 
 


디지털 작업으로의 전환기
 


미깡 작가가 외주 작업 중인 작품 한 컷. ‘술도녀’원작에 비해 깔끔함이 도드라진다.

 
 
 
그러고 보니, 술 선물을 해도 되는 건가? 지금 금주기간이라고 했는데.
 
미깡 맞다. 지금 5개월 만에 작업하다보니까, 술을 며칠 정도 마시지 않고 있다. 감을 찾아야 해서. 원래 종이로만 작업을 하다가 이번에 아이패드로 바꿔봤는데, 그래서 작업량이 더 많다. 민감하신 분은 바로 알 수도 있는데, 최대한 종이의 느낌처럼 거칠게 보이도록 작업 중이다.
 
 
아이패드로 왜 바꾸게 된 건가?
 
미깡 우선 내가 아이패드를 샀다. 그리고 종이 작업이 손목에 부담이 상당히 심하다. 시즌 6에서 끝낼 거면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 어디까지 더 그릴지 모르니까 중간에 한 번 바꿔보자는 생각을 했다.
 
원래 만화가로 먹고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디지털로 작업하는 방법을 몰라서 여태 종이에 그려왔다. 이것도 저것도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아날로그적인 낭만을 가지고 종이를 선택한 건 아니라는 소리다. 지금 101화 작업을 아이패드로 하고 있다. 사용한 지는 대충 석 달 정도 된 셈이다.
 
 
디지털 작업방식이 처음인데, 종이와 비교해서 차이를 크게 느낄 것 같다.
 

미깡 우선 훨씬 편하다. 지우개질 안 하는 게 너무 좋다. 종이 작업은 아무리 잘해봤자 연필자국이 남는데, 그걸 또 포토샵으로 보정을 해야 한다.
 
또, 말했다시피 손목 부담. 물론 디지털 작업에는 ‘손맛’이라고 하는 게 덜하긴 하다. 종이에 작업할 때는 펜 끝이 쫙 하고 나갈 때의 느낌이라는 게 있으니까.
 
대신 디지털 작업은 휴대성이라는 게 너무 큰 매력이다. 물감 작업은 집에서만 해야 하지 않나? 근데 아이패드는 키즈 카페에서도 하고, 소파에 누워서도 하고.
 
 
다른 인터뷰를 읽으면 그림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더 배워야한다’는 태도더라. 독자 입장에서는 미깡 작가의 그림만큼 <술꾼도시처녀들>에 어울리는 그림은 없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미깡 내 그림체가 지금 그리는 <술꾼도시처녀들>와는 딱 맞는다. 배경도 필요 없다. 앉아서 주루룩 술을 마시는 장면. 취해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묘사하더라도 약간 코믹하게 하면 되니까 지금 실력으로 괜찮다는 거다.
 
내 그림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정확히는 내 레벨을 인식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다음 작품을 하기에 내 그림 실력이 걸림돌이 된다는 거니까.
 
내가 절절한 사랑이야기나 전쟁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이 그림으로는 무리라는 거지. 그런 의미로서 내 그림 실력을 한탄한 거다.
 
이번에 내 만화를 싹 다 정주행을 했다. 테이블을 그렸는데 다리가 없거나, 인물들이 반 측면 묘사가 하나도 없는 걸 보면서 한계를 느꼈다. 독자 입장에서도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사실 이번 시즌 시작 전에도 그림을 배우고 싶었는데, 배우더라도 좀 독특하게 나가버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외국 그래픽 노블들을 보면 좋은 그림들이 많지 않나?
 
개성 있는 스타일을 연구해서 굳히는 것도, 지금의 한계에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차기작을 시작 전에 그림 작가를 구하는 것도 방법이고.


 

 
 
 

8월 26일자로 연재가 재개된 <술꾼도시처녀들> 101화의 디지털 작업(위)과 96화의 수작업(아래).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맞다. 차기작 이야기도 해 달라. <술꾼도시처녀들> 이후 차기작 준비는 하고 있는지.
 
미깡 이 연재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차기작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 매주 매화마다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내는 게 진짜 바쁜 일이다.
차기작 생각이 없는 건 아닌데, ‘당장 하고 있는 거나 잘해’ 하는 마음속의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생각 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만 살짝 들려 달라.
 

미깡 ‘성적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해봤다. 여러 가지 시도 중에 하나다. 할지 안 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고. 성적 취향이라고 해서 LGBT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어려운 문젠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누가 써주시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뭐 아무튼 연마를 해야겠지.
 
 
 

               

 
 
 
정오에 시작된 인터뷰가 끝날 때쯤에는 슬슬 배가 고파졌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소원성취를 하게 되었다. 바로 미깡 작가와 술을 마시게 된 것이다. 왜 밥을 먹으러 가서 술을 마시게 되었는지는 묻지 말자. 그냥 그렇게 됐으니까. 왜, ‘Work Later Drink Now.’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YOUR MANAⒸ이연숙(리타)

 
 
<술꾼도시처녀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