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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맥클라우드 초청 토크쇼 2

스콧 맥클라우드 초청 토크쇼 2

 
 
 

만화의 미래

 

스콧 맥클라우드 ㅣ 박인하 ㅣ 사회 선우훈

 

 
 
 
 

3. 다른 매체로 뻗어 나가는 만화
이야기는 작품이라는 자동차의 연료이다. 기술의 발전 또한 연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회 다른 산업적인 측면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마블이나 DC처럼 미국 만화시장은 영화화 시장으로 기능하고 있고, 한국 웹툰계도 영상화 판권 시장으로 기능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만화가 1차 시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먼저 박인하 교수님.

 

박인하 두 번째로 질문받게 될 줄 알고 긴장을 풀고 있었네요(웃음). 시대마다 유행하는 단어들이 있어요. 1990년~2000년까지 유행했던, 우리나라에서 만든 단어, OSMU라는 말이 있었죠. 만화는 어떤 소스가 되어 다른 산업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만화가 중요하다는 이데올로기의 전달을 위해 만들어진 조어였어요. 지금은 IP라는 게 각광받고 있는데, 지적재산권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웹툰이 많은 트래픽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졌다는 점을 강조하는 거죠.

사실 비슷한 말인데, 산업적 측면에서 접근은 충분히 가능하면서도 만화를 연구하고 그리는 사람으로서는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를 더욱 고민하게 되었죠. 그리고 얘기를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도 역시 더 고민해야 할 것 같고요.

전과 다르게 웹상에서는 작가와 독자의 거리가 매우 가깝습니다. 산업 외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또는 작가의 태도가 어떻게 기능할 것인가 등 변화한 시대에 맞춰 다른 방향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콧 맥클라우드 새로운 매체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보통 먼저 실험하는 사람의 행적 추이를 보고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한 명의 작가가 성공하면 점차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작업을 공동으로도 시작하게 되고, 이런 성공이 반복되면 산업적으로 접근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물론 공동작업도 좋겠지만 저희가 아까 생각했던 것은 한 명이 모든 걸 생각해낸 마법 같은 세계의 구현이에요. ‘OSMU’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것이 가장 구현이 잘 될 수 있는 때는 정말 좋은 만화를 만들겠다고 먼저 접근하고 난 그 이후라고 생각합니다.

 

박인하 제 말이(일동 웃음).

 

스콧 맥클라우드 아는 작가가 얘기하기를, 인기가 있어서 TV쇼 등으로 만들어지고 여러 콘텐츠로 구현될 수 있기를 바라고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구상하고 접근을 하니까 계속 실패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다른 콘텐츠로 즐기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말 거대하고, 너무 복잡하고, 매우 미친듯한 형태의 이야기를 책으로 냈대요. 그게 바로 ‘왕좌의 게임’입니다. 여러분이 많이 좋아하는 TV시리즈죠.

 

사회 다른 방식의 소비를 아예 못하게 하려고 썼던 게 ‘왕좌의 게임’이었군요. 하지만 스토리의 힘이 소비 양상을 확장하게 만들었네요.

이전에 유행했던 귀여니 작가의 인터넷 소설 등을 보면 인물의 감정을 이모티콘으로 표현하는 게 매우 신선했어요. 지금의 웹 소설은 아예 인물의 대사 앞에 누가 하는 말인지 알 수 있도록 얼굴을 그려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굉장히 만화와 닮아가는구나.’,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시각적 표지를 주는구나.’ 하고 놀랐지요.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할 때 상징이나 비유, 소설 자체의 구조, 미묘한 감정선 등 보다 훨씬 중요하게 소비되는 것이 자극적인 정보, 즉 부드럽게 표현하면 '서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서사로 집중되는 소비 양상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The Path, swept, clean."

내가 이제 엄청나고 거대한 이야기를 봐야 한다면 그 경로가 얼마나 복잡한 지를 잊어야 합니다.” –스콧 맥클라우드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가는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해야 합니다. 가장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차로 비유한다면 ‘이야기’는 차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가솔린에 해당되겠죠?

지인인 윌 아이스너는, 젊은 작가들이 많은 시도나 실험을 하고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보는 내내 흠뻑 빠지고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서 보고 나서도 몇 주 몇 달을 생각하고 또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죠.

아까 말했듯이 역설적으로 많은 실험을 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것들을 제시하기 위해, 기술을 통해 몰입하고 기술이 적용되었다는 것 자체를 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글에서 크롬을 출시할 때 크롬의 존재 자체를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가장 똑똑한 스무 명의 엔지니어와 얘기할 기회가 있었지요. 크롬이 그전의 어떠한 웹 브라우저보다 어떻게 훨씬 더 잘 적용되고 유통될 수 있는지 수백 가지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모든 얘기를 다 하고 나서 팀 리더와 저는 네 단어로 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The Path, swept, clean.”

내가 이제 엄청나고 거대한 이야기를 봐야 한다면 그 경로가 얼마나 복잡한 지를 잊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회 만화를 보고 있다는 의식 자체를 지우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 같습니다. 요새는 협업과 자본이 많이 투자된 현란한 영상의 영화와 게임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 그림과 텍스트, 즉 만화로 몰입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스콧 맥클라우드 예술 양식 자체가 화려하게 꾸며져 있더라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아주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장 단순하고 정지된 어떤 것으로도, 그것을 읽고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어떤 제한이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씀 같네요. 박인하 교수님 생각은 어떤가요?

 

박인하 서사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인간은 기본적으로 서사를 굉장히 좋아해요. 멋진 이미지가 있으면 잠시 매혹되지만, 누군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쪽에 훨씬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만화는 매혹적이게도 이미지로 만들어진 공간 안에 이야기를 집어넣어 버렸어요. <만화의 이해>에서 얘기한 것처럼 다양한 칸이나 기호 등을 통해 자기 동일시 효과를 내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는 방식으로 발전했죠.

 
 
 
 

인간은 기본적으로 서사를 굉장히 좋아해요. 멋진 이미지가 있으면 잠시 매혹되지만, 누군가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쪽에 훨씬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박인하

 
 
 


웹툰의 서사적 측면이 갖는 중요성은, 디지털 기술이 접목될수록 서사를 쉽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활용됐다고 생각해요. 완벽한 고민은 아니고 가설이지만, 한국의 만화는 1990년대를 기준으로 ‘잘 그린 그림’에 지나치게 몰입하기 시작했어요. 1980년대에 일본에서 괴물 같은 작가들이 등장했기 때문이거든요. 오토모 가츠히로 같은 작가가 차 문에 비친 유리창, 그 안에 다시 차가 비친 모습까지 그려내니까.

그래서 1990년대에 한 장의 배경을 일주일씩 투자해서 손으로 그리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럽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 것이 선생님에게서 문하생에게 전달되던 시기가 있었죠. 그러다1990년대 중반 이후로 서사 자체가 점점 허물어지더니 일반적인 장르인 판타지와 학원만화만 남게 되었었죠.

반면 웹툰은 그림에 대한 부담감을 확 떨어뜨린 상태에서 완전히 새로운 작가들이 다양한 서사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기술이 결합하면서 그림도 점점 잘 그리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3D 프로그램과 스케치업이나 망가 스튜디오 등이 도입되면서 직선 하나를 그리기도 수월해졌고, 수정도 매우 쉬워졌습니다. 초기의 화제로 돌아가면 그런 측면에서, 다시 서사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4. 온라인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예전에는 대 작가 10명이 같은 방식으로 성공했다면, 이제는 10명의 작가가 성공하면 각자 다른 이유로 성공한다.

 
 
 

사회 다음 질문입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웹툰이 오히려 <미생> 등의 성공 웹툰이 오히려 출판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는데요, 만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제 책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점점 낮아질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그래픽 노블 시장도 있고, 히어로 만화에 기반을 둔 출판시장이 튼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험적인 만화들이 '올해의 책'에 선정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예술 분야의 체력이라고 할까요? 출판시장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스콧 맥클라우드 미국에서 여러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어요. 일본의 ‘망가’는 미국의 많은 여자아이들이 처음 접한 만화였습니다. 그 세대들이 자라 성인이 되어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를 그리게 되었고요. 이 현상은 훨씬 더 많은 독자를 만드는 계기가 됐어요.

한편 그와 동시에 그래픽노블 무브먼트, 얼터너티브 코믹(대안 만화) 무브먼트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크리스 웨어, 아트 슈피겔만, 마르잔 사트라피, 크레이그 톰슨, 앨리슨 벡델 등의 작가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또 그 시점에 일어난 것이 슈퍼히어로 코믹 무브먼트이며 이것들이 영화화되었고, 웹 코믹스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트 슈피겔만 <쥐>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크레이그 톰슨 <하비비>




앨리슨 벡델 <재미난 집> 

 
 
 

이런 경향들이 함께 접목되면서 서로 영향을 받았고, 특히 공개되기 힘들었던 내용의 작품들이 웹을 기반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백만 독자들의 접근이 가능하죠.

제가 활동하던 시대에선 조금만 내용이 이상해도 출판의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요, 이제는 아무도 창작의 주제에 제약을 가하지 않습니다. 이제 어떤 만화를 그려서 웹에 올리면 10명의 독자가 읽습니다. 수천, 수백만의 독자도 가능합니다. 지금 다양한 형태로서의 만화가 나왔고, 작가들의 반 이상도 여성 작가입니다. 진보적인 현상이죠.

답을 하다 질문을 잊었는데(웃음), 종이 책 시장이 미국에서 견고하게 유지되는 배경은 이렇습니다. 다양성이 생기면서 대안이 많아졌기 때문에 책으로 볼 수밖에 없는 작품들도 나오게 된 거죠. 예를 들면 크리스 웨어의 작품 같은 경우 책으로 봤을 때 그 가치를 더 잘 느낄 수 있어요. 이런 방식으로 오프라인 시장에 대한 관심이 유지되고 있다고 봅니다.

 

박인하 만화를 보는 독자들이 늘어날수록, 진지하고 좋은 만화들이 다양한 출판으로 확장될 거로 생각해요. 그런 변화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고요. 미국 만화에 궁금한 점이 생겨서 묻겠습니다.

코믹솔로지 솔루션이 개발돼서 DC나 마블 만화들을 아이패드에서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다른 한 축으로는 도쿄팝 같은 출판사에서 일본 망가를 출판해서 소비하게 되었고요. 또 다른 한 쪽으로는 그래픽 노블, 인디 만화들도 있어요. 또 미국의 웹 코믹스 형식도 있지요. 특히 웹코믹스 쪽은 전통적인 코믹스트립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거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현황이 유지되다 ‘망가’가 시장에서 먼저 이탈해버렸거든요. 도쿄팝이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는데 하나는 서점 체인의 붕괴와 스캔본 유통 때문에 판매가 안 된다는 분석이 있죠. 미국 전체 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간단하게 말씀해주시면 궁금함이 해소될 것 같습니다.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로서 보았을 때 종이 매체로 소비되는 부분은 여전히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다양한 만화들이 팔리고 있고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문제는 전반적인 출판 시장 자체가 힘을 잃고 있는 거죠. 이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꽤 건강한 편이죠. 종종 성공 사례들이 있고요.

북미에서 아주 성공한 만화 작가는 10명에서 20명 정도죠. 그런데 10년 전에도 50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기본적으로 성공한 작가의 수가 대폭 늘어나거나 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10명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성공했는데, 이제는 10명의 작가가 성공하면 각자 다른 이유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활동하던 시대에선 조금만 내용이 이상해도 출판의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이제는 아무도 창작의 주제에 제약을 가하지 않습니다. –스콧 맥클라우드

 
 
 
 

사회 한국 웹툰의 출판시장에 대해서 박인하 교수님께 묻겠습니다. 요즘 웹툰은 펀딩을 받거나, 연재 후에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아 책으로 만들어지는데, 이제 책은 웹상에서 콘텐츠 소비가 일어난 후에 기념품으로 기능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요?

 

박인하 예, 그런 경향이 있죠. 선우훈 작가를 이번 토크에서 처음 만났는데, 작품 제목이 뭐였죠(웃음)? 아, <데미지 오버 타임>은 소셜 펀딩을 통해 독립출판으로 출간되었고 저도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웹상에서 보는 게 더욱 재밌더라고요. 웹툰의 소비 방식은 디지털에서 이뤄지는 게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출판 만화에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독자들의 수가 늘면서 새로운 요구를 하는 독자들 역시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른 출판 시장의 움직임도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미메시스’ 등의 출판사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이탈리아 만화를 내고 있고, ‘우리나비’ 출판사에서는 스웨덴, 덴마크 만화를 내고 있어요. 제가 스웨덴 만화를 어디서 보겠어요. 이런 만화라는 콘텐츠가 웹툰을 통해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면 새로운 만화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이런 시도들이 계속될 것이라 봅니다.

또, 독립출판 시장의 성장이 더 적극적으로 활성화될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소개는 안됐지만 크리스 웨어의 <빌딩 스토리즈>라는 작품은 전체의 구성 형태가 만화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그런 부분들도 새로운 작가들을 비롯해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크리스 웨어 <빌딩 스토리즈>
 
 
 
스콧 맥클라우드 초청 토크쇼2 끝 (3로 이어집니다.)

YOUR MANA선우훈

 

스콧 맥클라우드 초청 토크쇼 1(링크)

스콧 맥클라우드 초청 토크쇼 2(링크)

스콧 맥클라우드 초청 토크쇼 3(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