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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무대 위 보통의 사람들

어떤 작가를 만나 어떻게 각색되는지와

동시대에 부합하는 어떤 의미를 담으려는지를 관전하는 것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이는 모든 고전이 살아남는 방식이기도 했다.

 

 

<삼국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직도 유비가 천하 통일을 이루는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고 이문열 혹은 황석영 작가의 삼국지를 모두 샀음에도 그걸 끝까지 읽은 사람 또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사실 대부분 사람이 삼국지를 알아가는 과정은 조조와 유비의 싸움이라고 이해한 상태로

평생 여러 콘텐츠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그 조각이 맞춰지는 형태다. 그래서 때가 되면 리뉴얼되는 삼국지

드라마를 재밌게 보며 새로운 시각과 사실을 알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세대에 따라 학교나 도서관의

만화책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치되어 있던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60권짜리 <삼국지>를 재밌게 보며 그 조각을

맞추는 부류도 있다. 혹 게임에 능동적인 사람은 KOEI사의 <삼국지: 시리즈>를 통해 그 수려한 일러스트와

장수의 이름을 기억하고 덕분에 위()나라는 반드시 파란색, 촉한(蜀漢)은 녹색, ()는 붉은 깃발이어야지만

삼국지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뿐만 아니라 한 부분만을 떼어내어 만드는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도 많은데 이렇게 그 시대의 보정을 거치는 삼국지 콘텐츠는 늘 존재해왔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다 아는 이야기지만 해당 콘텐츠가 어떤 작가를 만나 어떻게 각색되는지와 동시대에

부합하는 어떤 의미를 담으려는지를 관전하는 것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로 이는 모든 고전이 살아남는

방식이기도 했다. 여기에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친근한 앱 인터페이스 이미지를 활용해 독자의 직관적 이해를

돕고 동시대의 현실감 있는 감성과 감정들을 캐릭터에 주입해 더 공감할 수 있다면 이 시대에 이보다 더

고전을 쉽고 익숙하게 전달할 방식은 없을 것이다.

 

이런 설정 위에 이리, 무적핑크 작가의 <삼국지톡> 주인공 영웅들은 2019년 늦가을의 관점에서 잘생기고

호감형인지라 고전의 재해석에 (Hip)’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삼국지톡>에서 보여주는 톡의 대화들은 긴 대하소설 속 겉멋 부리고 격식을 차리던 얘기를 요즘 말로

바꾸면 이거 아님?”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또 끊임없이 인증사진을 찍고, 업로드한 이미지와 영상을 기반으로

기사가 나오며 댓글이 달리는 모습 등은 이 작품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주요 패턴이다. 이 패턴을 유비가

황건적을 진압하고도 그 ()’을 살 돈이 공()하여 묻힐 뻔하다가, 낙양데일리의 기사 -[사회] 황건적

무찌르고도 흙수저는 꺼져?”-와 만들어진 여론을 통해 첫 공직을 맡게 되는 지점부터 현재 연재가 된

분량까지 계속 반복한다. 그리고 그 속에 우리 곁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 속 사건들을 곁들여

활용하는데 이는 독자 개개인의 경험과 반응해 직관성을 만든다. 그것의 적절한 예로 황건적의 난_10. 그놈들,

십상시편을 들 수 있다. 세 줄 요약하면 지금 나라엔 황제를 갖고 노는 비선 실세가 있는데 그게 자그마치

열 명인 거다. 더 설명이 필요할까? ‘#헬후한 #망했어요와 함께 보여주는 이미지는 독자의 현실 경험과 곧바로

연결해 그 느낌의 응어리가 탄성을 지르며 터지는 메타포를 선사하는데 말 그대로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그 적절함에 풍자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삼국지톡>의 매력은 바로 작가가 작품 속에 설치한 풍자의 요소들이

즐비하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독자가 직관성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곧바로 건드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 적절함 때문에 현시점에 맞춰 재해석된 삼국지를 누군가에게 추천해야 한다면 <삼국지톡>

보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작품 속 영웅을 소비하는 백성의 모습에서 현실 속 미디어와 우리의 소비 모습을 자각할 수 있는

지점을 함께 제시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작품의 포맷을 우리가 평소 활용하는 모바일 앱의

한 형태를 빌렸고 그 속에 돌아가는 소비 패턴 때문이다. SNS의 유행에 이어 LTE 무제한을 거쳐 5G

가능해진 시대로의 진입은 개개인이 거대한 세계를 어디서든 휴대하지만, 그 형태를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내가 책임져야 하는 무게 또한 알 수 없어 남발하는 시대를 낳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런 의미 없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포맷도 그렇고 작품 속에서 소비 당하는 영웅들이 오늘날 매일같이 소비 당하는 무대 위의 사람들과 닮았다.

 

그리고 소비자가 권력자인 이 시대에 소비의 행태를 자각할 수 있는 요소들 또한 작품에 녹여낼 필요가 있었다.

스토리텔링 콘텐츠엔 편집의 힘이 존재하거나 필요하다. 작품 속 거대한 소비의 사이클 속에서 영웅들이

스스로가 어떻게 소비되고 싶어 하는지와 대중이 각 영웅을 어떻게 재가공하여 소비하는 것의 차이에서 비롯된

괴리와 힘겨움을 함께 제시했다면 지금 우리 시대가 가지는 직관의 장점과 함께 덕분에 생겨나 그 이면에

깔린 소비를 위한 소비도 함께 보여줄 수 있다. 지금 삼국지의 재해석이 왜 이런 형태와 패턴으로 우리에게

제공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입체감을 더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소비한다. 그리고 그 소비는 늘 최소한의 행위로 적당한 만족이 아닌 최대의 만족을

쟁취하려는 욕구를 수반한다. 그리고 이런 소비를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시대에 무대 위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밝은 모습, 웃는 모습, 멋진 퍼포먼스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우라를 전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무게가

유독 이 작품의 영웅들이 겪고 있는 상황과 닮았다. 작품 속 영웅들의 겉모습은 대부분 그것을 힘차고

정갈한 감정의 기복으로 이겨내지만, 현실은 본인이 소비 당하고 싶었던 모습이 아닌 대중이 원하는 모습으로

재가공되어 소비 당하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무대 위 사람들은 그것을 괴로워하다 각자의 종착지에서 결론에 당한다.

 

얼마 전, 우리는 무대 위의 삶이라는 이유로 견디라고 종용당하던 한 젊은이의 비극적 결말을 보았다. 만약

10년 전 지금 연재된 분량만큼의 <삼국지톡>을 감상했다면 지금과 다른 결론으로 글을 마무리 지었겠지만

같은 시기 원고를 위해 처음부터 다시 찾아본 <삼국지톡>을 읽으면서 무대 위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과

그들을 소비하는 보통의 사람들 관계가 이런 소비가 맞는가?”라는 지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무대 위 사람들의 콘텐츠를 넘어 그들의 뒷이야기까지 소비하길 원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고

그것이 기술로 구현할 수 있고 또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많은 관계자는 결국 유튜브와 각종 SNS

통한 그들의 사생활까지도 자본의 재료로 도마 위에 올렸다. 이것은 타인의 사생활을 몰래 보고 싶은 자들이

늘 욕망했던 지점이다. 또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이 다른 모든 가치를 아우르게 되는 자본의 속성과

결합해 가져온 참사였다.

 

덕분에 어뷰징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미디어들의 카더라기사는 개인의 SNS를 기사화하는 일에 그 어떤 고민도

할 필요가 없었고 우린 온라인에선 그 기사를 아무런 의심 없이 링크하거나 댓글을 달았으며, 오프라인에선

지인들과 한순간의 날카로운 가십으로 소비했다. 만약 그것들이 지금 무대 위 사람들에게 하나로 뭉쳐져

떨어지는 것처럼 나에게 돌아온다면, 우린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우리는 무대 위의 사람들에게 너흰 나보다 잘난 구석이 많으니 이런 대접은 좀 받아도 되잖아?”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조차 견딜 수 없는 에너지를 그들에게 떠넘긴 것일지도 모른다.

 

또 인간이라면 매일 조금씩 피어오르는 부정적 감정들을 아무도 모를 거라 믿거나 모두가 그렇게 한다는

합리화 속에 그들에게 버리며, 그 결과가 내게 필요한 감성일 때를 제외하곤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그 형태를 보거나 만질 수 없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무대 위의

사람에게로 항상 치워 버렸던 것은 아닐까. 2019년 늦가을 <삼국지톡>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인수 | 변방의 만화인. 인수니즘 코믹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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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톡> (글 무적핑크, 그림 이리, 기획/제작 와이랩)

지금껏 보지 못했던 삼국지라는 전제 아래 만들어지는 <삼국지톡>. 유비, 장비, 관우의 도원결의의 촉매는 SNS.

그러나 2G폰을 쓰는 관우는 화질구지로 안습.

이 웹툰을 제대로 읽어내려면, 우선 화질구지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차려야 한다.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