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글 그림 김용키 네이버웹툰연재)
장르물 전문 드라마 채널인 OCN에서 제작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웹에선 종스크롤 방식, 모바일에선 가로로 넘기는 컷툰 방식으로 뷰어를 달리했다.
드라마에서 원작이 성공적으로 재현될지 궁금해진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첫 번째 두려움은 사람이다.
두 번째 두려움은 고립이다.
누적 조회 수 8억 뷰. 네이버 일요 웹툰 39주 연속 1위. OCN 드라마틱 시네마 원작. 이것은
웹툰 <타인은 지옥이다>의 성공을 수식하는 문구들이다. 총 88화로 구성된 이 작품이
누적 조회 수 8억 뷰를 넘겼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900만 명 이상의 독자들이 이 작품을
봤다는 뜻이다. 이는 전체 웹툰 시장에서도 보기 드문 블록버스터급 성공이다.
공포나 스릴러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주위에서 꼭 한 번 읽어보라는 추천에 따라,
작품이 연재를 마칠 때쯤 비로소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스토리가 가진 팽팽한 긴장감과
인물의 심리묘사는 나를 단숨에 작품 속으로 빨아들였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는 동안
문득문득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불편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어둡고 축축하고 침울한 분위기, 낯설고 거북한 느낌의 캐릭터들, 냉소적이고 곤두서
있는 대사들. 처음에는 이런 어두움과 불편함이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이 작품을 읽다가 떠오른 나 자신의 타인들에 대한 적의와 적대의
감정이었다.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타인은 지옥이다>의 성공은 바로바로 이러한 지점을 정확하게
소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은 작품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타자에 대한 적의와 관계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탈출구도 없는
답답함으로 드러난다. 작가 역시 얼마 전 출판된 만화책의 서두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주는 무력함, 공포와 스트레스를 작품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정말
그 의도가 정확하게 먹힌 것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나와 타자 사이의 거리감에서 발생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작품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첫 번째 두려움은 사람이다. 나를 제외한
타자들, 그들은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낯선 타자는 더욱
위험하다. 낯선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로 바뀌는 것은 나에 대한 적의와 위협이
확인되는 순간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윤종우에게는 그를 위협하는 절대적 타자들이
등장한다. 도대체 그 적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도 없는 미지의 존재들.
이것이 종우와 독자가 마주하는 공포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두 번째 두려움은 고립이다. 종우는 믿을 수 있는 사람도, 믿어주는
사람도, 도망갈 수 있는 곳도 없었다. 그가 잠시나마 믿고 소통했던 친구들은 종우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음이 금세 드러났고 그 대가로 그들은 죽음에 이른다. 종우는 이러한
과정에서 철저하게 심리적으로 고립되고, 결국 자신을 막장의 상황까지 몰아간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 두 가지 공포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내재하고 있는 근원적 공포이다.
우리는 타자와 함께 살아가야 하고 세상으로부터 혼자 고립되지 않기를 원한다. 하지만
타자와 나 사이에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장벽이 놓여 있다. 결국, 우리의 삶은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혼자 고립되지 않도록 그런 타자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절대적 아이러니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피할 수 없는 관계의 근원적 모순이다.
<타인은 지옥이다> 2~3화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메타포
로서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2화에서는 한 술집 골목에서 취객들이 싸움하는 장면
이 등장하는데, 주인공 종우와 선배 재호는 이를 목격하고도 슬쩍 외면한다. 하지만 얼마
후 그들은 골목에서 맞고 있었던 취객의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종우와 재호는 싸움을 말
리거나 신고함으로써 사건에 개입할 수 있었지만, 괜한 시비에 말려들기 싫어 상황을 외
면한다. 그 결과 그들이 선택한 타자로서의 거리감과 무관심은 또 다른 타자의 죽음으로
연결된다. 이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결과는 매우 극단적이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
는 수많은 익명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허무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과연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작가는 <타인은 지옥이다>의 주인공 종우를 통해 우리나라 청년 세대들이 갖는 사회와
관계에 대한 불안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종우는 지방에서 상경하여 사회에 막 발을
들여놓게 된 25세 인턴사원으로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서울에서도 가장 싼 고시원을
구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시대의 흙수저 계급 청년이다. 작품 속에서 종우는 돈이 없어
더 나은 고시원으로 옮기지도 못하고, 인턴 신분으로 회사의 제일 아래 계급에서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하며, 직장 생활에서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상사와 갈등을 빚는 인물이다.
경제적 빈곤, 불안정한 주거, 낮은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마저 서툰 종우의 모습은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흙수저 청년 세대들의 평범한 얼굴로, 이 시대 청년들의 갈등과 고민을
오버랩시키고 있다.
김용키 작가는 이렇게 우리 안에 잠재한 다양한 심리적 공포와 현실의 불안을 반영하는
상징들을 기반으로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탁월한 연출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작품을 이끌
어 간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다음에 이어질 상황에 대해 끊임없는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스토리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데,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직접 묘사
하는 방법보다는 다양한 암시와 단서 제공을 통해 독자들의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다양한 음향 효과와 미지의 시선들, 간접적인 상황 묘사 등으로 심리적 긴장감
과 압박감을 높이고, 단서와 정황 증거들을 조금씩만 노출하여 불안과 위협을 가중한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작가는 미지의 상황들에 대한 독자들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개입
시킴으로써 작품에 대한 몰입도와 공포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제 이 작품은 웹툰의 성공을 넘어 출판과 드라마로 그 외연을 확장하는 단계다. 7월에는
단행본 3권 분량으로 만화책이 출판되어 판매되기 시작했고, 드라마 제작도 일찍 결정되어
8월 31일부터 OCN 드라마틱 시네마라는 형식으로 방영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이창희
감독이 연출하고, 임시완, 이동욱, 이정은 등 실력파 연기자가 대거 출연한다는 소식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결합한 드라마틱 시네마라는 형식, 화제성 있는 배우들의 출연, 여기에
감독과 스텝들이 전작에서 보여준 새로움이 더해져 한층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한국형
스릴러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이 작품이 드라마의 성공으로도 이어질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응원하는 마음이다. ◆
김성진 | 만화 전시도, 다른 잡다한 일들도 하는 문화기획자. 좋아하는 만화에 대한 글도 열심히 써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