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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 신이 도래한 세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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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 (글 그림 꼬마비. 네이버웹툰 연재)

 

 

신이 창조해내는 질서는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이지,

그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재창조해낸 제2의 자연은 아니다.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신의 세계의 모방으로 간주하였던 인간들의 질서는

이제 독자적인 능력을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꼬마비 작가는 하나의 사태를 가정하고 현실 맥락에서 밀어붙이는 전개를 보여준다. 이것은 주인공이 눈앞에

닥친 재앙에 대처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재난물과는 다르다. 누구와 섹스를 했는지 모두가 알 수 있게

되거나(<S라인>),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일본 관광 중이던 한국인들이 난민이 되는 상황(<PTSD>)에서

초점은 개별 인물을 넘어 사회 전체를 향한다. 신작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서도 꼬마비 작가는 흥미로운

가정을 던진다. 전지전능한 문자 그대로의 신이 이 세상에 강림한다. 이 하나의 사태만으로 인간 사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인간들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그리고 구체적으로 신에 의해 무엇이 바뀌게 될 것인가?

 

이원론적 도식의 붕괴: 축복 또는 재앙

신의 세계를 상정하는 세계관은 늘 다음과 같은 이원론적 도식을 지닌다. 인간들의 질서는 신이 창조한 완전한

질서에 비하면 불완전한 모사품에 불과하다. 인간 세상의 불완전함은 사후세계에서의 심판을 통해 완전한 질서로

대체된다. 그렇기에 지상 세계와 천국, 이승과 저승이라는 구분은 종교적 세계관에 필수 불가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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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주요 인물인 고녀가 신의 은총으로 하나의 성을 선택해 살아가는

모습은 역설적으로 신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신이 이 세계에 강림할 때 이원론적 세계관은 붕괴한다. 완전무결한 신이 이 세상에 도래했으므로 두 세계는

하나로 결합하며, 더 이상 세상은 법이나 제도 같은 불완전한 인간세계의 질서를 따를 필요가 없다.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종교라는 불확실한 매개체도 존재가치를 상실한다(작품에서 신이 강림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모든 종교 시설의 소멸이다). 이제 인간들은 신의 명령만 따르면 될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문제의 해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등장이다.

 

그런데 24시간마다 랜덤 박스처럼 일어나는 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기적은 과연 인간에게 축복일까?

죄지은 자는 벌을 받고 죽은 자는 신의 은총을 받아 부활하니 분명 그럴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던

사필귀정, 인과응보가 100% 실현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그런데 이 기적들은 인간들이 예상했던 바와는 뭔가

다르다. 죄를 지은 건 알겠는데, 그 잘못이 머리가 터져서 죽을 만큼 나쁜 것이었을까? 어째서 병으로

고생하던 내 가족이 아니라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잡았던 개구리가 부활하는 걸까? 인간들은 신의

존재가 자신들에게 축복인지 아니면 재앙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히어로물의 영웅들은 세상을 파괴하려는 악을 막아내고 질서를 수호한다. 그들이 세상의 시민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에 선행하는 확실한 질서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악당들처럼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고, 남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되며, 법과 제도를 어겨서도 안 된다. 그런데 신은 이런 질서를

전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법칙 자체를 창조하는 자다. 따라서 인간들이 기대하는 바와 신의 의지가 엇갈리는

순간들이 등장한다. 신에게는 개구리나 인간이나 자신의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게 드러나는

순간, 신의 기적은 인간들에게 단지 축복으로만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2의 자연: 신조차도 무력한 세계

1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인터섹스인 고녀다. 고녀의 이야기를 살펴볼 때, 우리는 작품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한다. 전지전능해 보이던 신은 동시에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 역설은

다음의 의문을 통해 명백해진다. 신에 의해 도대체 무엇이 바뀌는 것이며,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고녀는 어릴 때부터 온갖 차별과 고난에 시달려온 인물이다. 고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에게 기도하고,

새로 생겨난 종교 모임에도 꾸준한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고녀가 정확히 무슨 기도를 하는지 작가는 괄호

안에 숨겨둔다. 고녀가 마침내 신과 대면하고, 신은 그동안 고녀가 바친 기도를 들어주는 은총을 내린다.

다음 화에서 고녀가 여성 혹은 남성의 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독자는 비로소 고녀의 기도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고녀가 정확히 어떤 성을 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고녀는 신의 은총에 힘입어

인터섹스라는 저주를 벗고 특정한 성별로 살아간다.

 

신이 드물게도 인간의 기도를 들어주었고, 인간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드물게 나타난

신의 축복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고녀가 괴로웠던 것은 신이 고녀를 인터섹스로 만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인터섹스를 차별하는 인간들의 시선 때문일까? 인터섹스 자체는 고쳐야 하는 병이 아니다. 작품에서도

고녀는 인터섹스라는 사실 자체로 괴로웠던 적은 없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녀를 자웅동체라고 놀리고,

괴물처럼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고녀가 괴로워하는 장면뿐이다. 신은 간편하게 고녀를 이분법적 성별

구분 중 하나의 성별로 만들어 고녀의 기도를 들어준다. 그러나 신이 정말 전지전능하고 정의로운 존재였다면,

인터섹스에게 하나의 성별을 부여하는 대신,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부조리한 사회적 틀 자체를

사라지게 했을 것이다. 작품 속의 신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혹은 안 한다). 작가가 성별 이분법을 너무

쉽게 전제하며 발생한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작품 속의 신은 통념에 구속된 존재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신조차 개입하지 못하는 인간들만의 세계를 발견한다. 신이 창조해내는 질서는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이지, 그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재창조해낸 제2의 자연은 아니다.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신의 세계의

모방으로 간주하였던 인간들의 질서는 이제 독자적인 능력을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신은 인간들의 법과 도덕,

제도와 규칙, 편견과 인습을 바꾸지 못한다. 전능해 보이지만 무력하다. 이처럼 신이 무력한 존재로

표상된다는 것은, 신의 세계가 은연중에 인간의 세계와 다시 갈라져 있음을 드러낸다. 신의 질서는 인간세계의

질서를 포섭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기사단과 같은 종교 모임이 등장했다는 점이 암시하듯,

신의 도래 이후 신의 법칙과 합치된 줄 알았던 인간들의 질서는 다시 불화 상태에 놓인다. 과연 이 불화는

어떻게 전개될까? 신의 기적에 의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봉합될까, 아니면 신에 대해 독립적인 인간만의

영역을 발전시키고 초월자에 대한 믿음 없이도 질서를 세우는 계기가 될까? 앞으로의 전개가

더욱 궁금해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서원주 | 웹툰을 좋아하는 사회철학 전공 대학원생.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