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입장에서 즐기는 서사
오세형 작가의 <신도림>은 목적이 매우 명확한 웹툰이다. 파죽지세로 쾌속 진격하는 통쾌한 서
사를, 강자의 입장에서 즐기는 것이 그것이다. 이 통쾌함을 위해 작가는 특유의 숙달된 기술력으
로 강렬한 색감과 구도, 과장된 동세, 대담한 레이아웃을 연출하여 시각적인 박진감을 극대화한
다. 강자의 입장에서 즐기는 서사란, 다시 말해 평범한 약자의 차근한 성장을 인내하지 않는 서사
이다. 주인공의 정체성은 성장하지 않는다. 능력도 이미 최상위권이다. 다만 그 잠재력을 아직 다
못 끌어냈을 뿐이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크고 작은 성패를 조마조마하게 가늠해보는 대신, 퍽 낙
관적인 마음으로 소위, ‘포텐(potential, 잠재력)이 언제 터질지’ 기대하며 본다. 이것이 흔하게 회
자되는 ‘사이다’ 서사의 한 방식이다.
물론 전통적인 장르물에도 <록키>처럼 주인공만의 값진 승리를 이야기하는 서사는 많았다. 이
승리를 최대한 시원하게 맛보기 위해, 전통 장르물의 작법은 주인공을 가장 밑바닥 지옥으로 끌
어내렸다. 지옥과 승리, 이 사이의 낙차는 크면 클수록 좋다. 미리 준비된 시원한 물 한 잔의 가치
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독자를 탈수 상태로 만든다. 주인공은 주인공만을 위해 고안된 맞춤형 지
옥에서 불굴의 의지로 기어 나와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독자의 갈급함을 해소한다. 창작물에서 얻
을 수 있는 대리만족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사이다 류에는 그러한 지옥이 없
다. 독자들은 더는 긴 탈수 상태를 견디지 않는다. 약간의 목마름에도 펑펑 사이다를 터뜨려야 떨
어져 나가지 않는다. 핵심은, 이미 많은 수의 독자들이 대리만족하고 싶은 서사는 성장을 통한 어
려운 승리가 아니라, 쉬운 승리라는 것이다.
주인공이 어려운 변화 없이 승리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그냥 세계가 변하면 된다. 예컨대 ‘이고
깽(이계에서 고등학생이 깽판을 부리는 판타지 장르의 총칭)’ 주인공은 성적 중심의 경쟁 사회에
서 낙오하다시피 한 고등학생이지만, 이(異)계에 가서 쉽게 주류에 편입된다. 드래곤이 쓰는 언어
가 한국어라거나, 평소 즐겨 하던 게임 속의 아바타가 된다거나 하는 식의 비(非)일상계 질서는 마
침 주인공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인공에게 맞춤화된 비일상계에서, 평
범하던 주인공은 자연히 최상위의 권위자가 된다. <신도림> 역시 마찬가지다. <신도림>에서 설
정된 비일상계는 핵전쟁으로 망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이다. 작가는 거대하게 판을 때려 엎
고, 비일상계를 원래의 일상 세계 위에 포개어 세팅한 뒤 시작한다. 이 포개짐은 기존의 세계에서
외면당하던 가치가 제고될 때의 ‘낯설게 하기’를 극대화하는 기법이 된다.
이렇게 기존의 공고한 장벽으로서 새로운 세대들의 진출을 가로막아오던 질서, 즉 학연, 지연, 경
제력, 지위, 명예, 연령에 부여되던 권위가 모조리 붕괴한 이 세계에서는 오로지 강한 육체와 싸
움의 기술만이 질서가 된다. 거기에 일부 청소년들은 방사능 부작용으로 신체적으로 18세에 성장
이 멈춰져 더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방사능에 의해 면역된 것은 물론, 가지고 있던 능력까지 증
폭되는 부작용을 겪는다. 원래 청소년 국가대표 야구 선수였던 주인공 천둥은 방망이로 총알도
되받아칠 수 있는 초능력자가 된다. 이런 아이들은 키즈(Kiz)라고 불린다. 이들 키즈의 세계에선
과거 ‘스펙’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청소년 야구, 족구, 당구, 태권도, 판치기, 헬스, 재봉, 미용 기술
자가 유리해진다. 6년이 지났다지만 부모나 이전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비추는 아이들도 없
다. 그들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의 임모탄 조처럼 씩씩하게, 위화감 없이 새 세계에 착 달라
붙어 있다. 기존 관계와의 완전한 단절을 통해, 새 세계의 진정한 원주민이 된다. 즉, 신인류이다.
거침없는 취향 지향과 압도적 기술력
의도된 단절, 이것은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다. <신도림>의 가장 핵심적인 설정은
신인류인 청소년에게 누구든 판결할 힘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주인공 천둥과 동료들은 그야말로
약육강식에 최적화된 채로,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가치에 따라 행동한다. 기성세대가 중요하게
여겼던 시스템은 의도적으로 무시된다. 모두가 억압 없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게 하겠다고 기성
▲<신도림> (글 그림 오세형. 네이버웹툰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