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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ID는 강남미인!

비평
 

내 ID는 강남미인!
사이다 썰과 무해한 약자의 불안한 결합


 

로카



멜로드라마, 혹은 막장 드라마의 쾌감



주인공 강미래. ‘강남 미인’의 얼굴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일단, 이 웹툰은 재미있다. 우연한 사건과 평면적인 인물들, 자극적인 상황의 반복 등의 ‘막장 드라마’ 요소들의 훌륭한 배치 덕이다. 주인공 강미래는 성형을 통해 엄청난 추녀에서 ‘강남 미인’으로 거듭나 대학에 입학한다.





현수아와 도경석. 도경석은 인간에겐 별 관심이 없으면서 눈치는 빠르다.



그 과에는 엄청난 자연 미인 현수아와 시크하고 좀 무서운 미남 도경석이 있다. 귀엽고 착하게 생긴 현수아는 놀랍게도 끊임없는 물밑 작업으로 남자 사이에서 인기를 독차지한다. 동시에 강미래를 ‘멕이는’ '여우짓'을 한다. 무서워 보이는 도경석은 놀랍게도 사실 주변인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속 깊은 남자며, 역시 놀랍게도 강미래를 좋아하게 된다!



향수 잡지의 대표 나혜성.




게다가 향수에 진지한 관심을 가진 강미래는 향수 런칭 행사에서 동경하는 잡지 대표 나혜성을 만나는데, 놀랍게도 그는 도경석의 어머니다! (미래의 ‘시어머니’일까?)


 

연우영. 능글맞고 솔직하다.




최근 2부에서는 ‘강미래의 콤플렉스인 성형 티 나는 외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미남 서브 남주 역의 연우영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날라리 같은 냉미남 도경석과 능글맞은 온미남 연우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강미래의 삼각관계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이다.



멍청하고 나쁜 대학 선배: 리얼한 클리셰.

 


만화에서는 현수아를 비롯해 대학 캠퍼스를 누비는 악역들의 멍청한 협잡질이 반복된다. 타 캠퍼스물-웹툰에서 수없이 봐 온 같잖은 패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쾌감의 가치에 어느 정도는 수긍했다.

악역들에게 처벌이 가해질 때 역시 뻔한 작위적 구조라고 생각하면서도 작품의 의도대로 주인공에 스스로를 이입했다. 이런 단순하지만 선한 조역이라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쾌감에 스스로를 내맡긴 것이다. 악한의 악행에 대한 분노와 이에 따른 처벌이 내려질 때의 카타르시스, 이 익숙한 구조가 주는 쾌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무언가 엇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녀거나 추녀거나, 우리 모두 아는 리얼한 폭력

이 작품은 분량의 상당 부분을 실재하는 여성혐오 묘사에 할애한다. 그것을 ‘여성 혐오’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따라서 덧글 창에서는 이따금 “이 작가는 남혐을 하는 게 아니라...”로 시작되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 말만 꺼내면 누군가 나타나 외치는 말이다. (겨우 이 정도로 “남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일부 독자의 지적이 놀랍다. 애초부터 ‘남성 혐오’라는 단어의 의미가 성립할 수 있기나 한가?)





마인드C 작가의 강남미인도: '강남 미인'은 늘 여자를 향한 조롱의 호칭이었다. 남자를 향한 호칭인 적 없다. 그림 뒤편에 배치된 백인 남성의 시선을 보라.


미래 주변의 여성들 역시 여성혐오적 현실에서 기인한 고통을 겪는다. 화학과의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에게 외모를 평가당하며 언어폭력을 겪었다. 도경석의 어머니는 능력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주변인들에게 '꽃' 취급을 받았다.

이 여성혐오의 피해자들에게는 자신이 부당한 고통을 겪고 있음을 자각하고 저항하는 서사가 주어진다. 그들에게 이입해 고통 받던 독자 입장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학생회에서 남학생들의 외모 평가에 시달리던 여학생들은 어느 순간 위치를 역전시킨다.




 

도경석의 모친, 나혜성은 아름다운 꽃으로서 누리는 권력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이혼한다. 후각의 상실로 그 대가를 치르고.




이 일련의 고통과 결말을 묘사하는 서사 구조는 마치 인터넷 게시판을 떠도는 ‘썰’의 집합체 같다. 선배가 후배에게,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았나. 공포 썰과 고구마 썰, 그리고 그들을 응징했다는 사이다 썰. 가해자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 이들이 이따금 다는, 해방감을 선사하는 덧글.

많은 경우 ‘썰’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여성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만에 하나 저런 경험을 직접 하지 않은 여성이 있대도 저런 썰이 전달하는 리얼한 고통과 충격에는 익숙할 것이다.

‘사이다 썰’ 혹은 ‘사이다 덧글’이 호응을 얻는 이유는 여성이 현실에서 그런 ‘사이다’적 대응을 쉽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미래 주변의 세계를 이야기할 때 차용되는 ‘사이다’적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여성이 늘 원했으나 직접 하지 못한 일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 준다. 다소 유치하더라도 의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좋은 세계다.



주인공, 액션 없는 리액션

이 와중에 주인공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보면 문득 의아해진다. 그의 주변인들이 여성으로서 깨달음을 얻고 나이브한 방식으로라도 무언가 해나가는 동안, 강미래는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귀엽고 사악한 ‘여우년’과 그 여우년이 자신을 엿 먹이는 줄도 모르는 ‘곰’ 정도의 그림이다.




이 웹툰의 주인공은 태초의 멜로드라마에서 기인한 수많은 주인공이 그랬듯 수동적이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며, 악역들이 자신에게 어떤 뻔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둔하고 멍청하다.

주인공이 독자보다 똑똑하면 연민을 유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주인공을 향한 연민은 주인공에게 이입하는 독자의 자기연민과도 연관되어 있다. 멜로드라마의 오래된 관습대로.

강미래는 추녀일 때도, 티 나는 미녀가 되었을 때도 외모를 평가하는 폭언을 듣는다. 그러나 추녀일 때보다는 ‘강남미인’일 때가 낫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유는 만화를 읽으면 충분히 납득된다.

추녀일 때는 아홉 번 고백해 아홉 번 차였지만, 강남 미녀가 되고 나니 이미 그가 마음도 준 적 없는 두 훤칠한 미남이 그에게 달라붙어 아름다운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극중의 가장 주된 악역인 현수아가 강미래를 엿 먹이려 할 때, 또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개자식 선배 김찬우가 강미래를 폭행하려 할 때, 강미래 본인은 정황을 몰랐다. 미래는 멍청하고 눈치 없는 캐릭터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그 멍청하고 눈치 없음 때문에 독자와 여타 인물들은 전부 얻는 정보에서 홀로 배제되며 자연히 수동적이며 동정을 살 만한 인물이 된다.

'그렇게 눈치 없는 인간도 진짜 존재할 수 있다.'는 식의 변호는 의미 없다. 이야기의 창작은 현실을 완전히 복사해 옮기는 것이 아닌, 어떤 의도를 바탕으로 실재하는 조각들을 고르고 오려내 새로운 진실로 재구성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의도적으로 수동적 인물이 됐을 때, 주변의 남성 인물이 주인공을 구한다. 도경석은 강미래에게 호감이 없을 때부터 현수아의 ‘여우 짓’과 선배의 폭력으로부터 미래를 지켜 왔다.

그렇다면 미래는 도경석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도경석은 우연히도 미래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만났고, 미래는 경석으로 하여금 진실에 눈뜰 계기를 마련해 줬다. 그 외엔…….




(1부의 마지막 화. 강미래와 도경석 둘만 갇힌 과실에서.)


‘이해’는 <강남미인> 1부를 마무리하는 큰 주제였다. 그리고 ‘이해받기’가 미래가 원한 전부였다.

이 작품은 명백히 주인공이 사회적 약자로서 차별받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주인공을 눈치 없고 수동적인 틀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주인공이 어떤 액션도 취하지 못하게 한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악의, 그리고 베풀어지는 호의에 대해 무해해 보이는 리액션만을 취할 수 있었다. 연민 받기에만 좋은 입장에서.



강미래 소외를 멈춰 주세요

주인공 주변인의 입을 통해 ‘사이다’를 유도하는 계몽적 대사들이 이따금 뱉어지는 가운데 강미래는 어버버거리고, 울고, 또 안도하고만 있었다. 여성혐오가 명백히 비판적인 측면에서 재현되는 세계에서 주인공만 홀로 ‘나를 사랑하는 잘생긴 남자들과 나를 미워하는 예쁜 여자’의 낡은 여성혐오적 멜로드라마 속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흐름이 정상적이며 긍정적인 것으로 묘사됐다. <강남미인>의 1부는 강미래가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감동을 전달하며 끝났다. 현재 2부 초반부의 동력은 도경석과 연우영 사이에서 강미래가 느끼는 로맨틱한 갈등이다. 불쌍한 강미래만 유독 적대적이며 여성혐오적인 세계에 갇혀 남아 있다는 점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지 않았다.

웹툰은 ‘끊기 신공’과 ‘반전’의 의미가 유난히 큰, 분절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는 매체임을 안다. 다음 화의 전개를 통해 이번 화까지 구성되었던 의미가 뒤집힐 수도 있다.

현수아의 캐릭터가, 연우영의 캐릭터가, 혹은 강미래의 캐릭터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때문에 아직 완결되지 않은 작품을 평할 때는 조심스레 접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작품이 제시한 세계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을 가장 착하고 무해한 약자의 포지션에 놓고 독자로부터 연민과 위로를 구해 왔다. 여기에서는 무해한 존재로 남지 않는 이상 약자(여자)는 차별받는다는 원칙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근원적 불신이 읽힌다. 그리고 이 불신은, 행동이 무조건 긍정적인 결과로 직통하는 ‘사이다’ 썰들과 엇나가며 주인공을 기묘하게 소외시켰다.

내가 느꼈던, 무언가 엇나가는 감각은 여기서 기인한다.





기맹기 작가가 썼듯, 도촬은 범죄다.



쓸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다. 작가가 말했듯 ‘조금 더 순정만화다워’진 <강남미인>의 향후 행보를 흥미롭게 지켜볼 예정이다. 특히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를 강화하는 명예 남성이되, 여성으로서의 위치를 벗어날 수는 없는 인물인 현수아의 움직임이 기대된다.



특별편을 통해 그려진 미래의 하렘!


덧붙이자면, 특별편의 제목이 <이런 강남미인은 싫어!>가 아닌 <이런 강남미인이 좋아!>였어도 무난히 어울렸을 것이다.


 




 

YOUR MANAⒸ로카

 
 
 

<내 ID는 강남미인!>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