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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vs 이웃

비평

 

살인마 vs 이웃
‘B급’이고 싶지만 ‘B급’이 되지 못하는 모호함


성상민


※ <살인마 vs 이웃>, <이웃 사람>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케이툰에서 연재중인 <살인마 vs 이웃>(글 수사반장, 그림 고민중). 프롤로그에서부터 끔찍한 살인 사건의 현장을 전한다.



<살인마 vs 이웃>은 전형적인 스릴러 만화 같다.  끔찍한 살인 사건과, 범인이 주변에 있을 것 같은 불안함. 전형적이지만 현실 속에 엄연히 남아 있는 두려움이다. 도시의 변두리 마을에, 위험에 처해도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을 적막한 동네에 사는 이라면 그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엔 없다.

<살인마 vs 이웃>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살인마의 정체를 곧바로 드러낸다. 가장 평범하고 선량하게 생길 것 같던 사람이자 작품을 1인칭 시점으로 계속 이끌어 나가던 주인공 ‘진혁’이 프롤로그에 드러난 사건의 범인이다. 이 반전은 더욱 만화가 잔혹한 스릴러가 되리라 생각하게 하기엔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하지만 작품은 그 이후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된다. 물론 <살인마 vs 이웃>이라는 제목과 엇나가지는 않는데, 연쇄 살인마 진혁과 맞서는 이웃들 또한 평범한 존재는 아닐 뿐이다. 국정원 요원부터 흡혈귀, 구미호, 외계인, 심지어는 미래에서 온 인조인간까지 등장한다. 진혁이 정체를 숨기며 살던 달동네의 하숙집은 절대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범상치 않은 공간이었다.



장르를 이리저리 꼬는 재미

내 주변 사람들이 알고 보니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설정 자체는 비교적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타니가와 히카루의 라이트 노벨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시리즈처럼 평범하게 보였던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감추면서 살고 있다는 전개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살인마의 주변 사람들이 어딘가 범상치 않고, 따져보니 살인마가 이 중에서 가장 약한 존재였다는 식의 전개도 <살인마 vs 이웃>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다.  강풀 작가의 <이웃 사람>에 등장하는 살인마 역시 노약자들에게는 강해도 일상에서는 조폭에게 얻어맞는 등 결코 신체적으로는 월등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두가지 이상의 장르 설정을 본격적으로 합치면서 전개하는 묘미는 분명 <살인마 vs 이웃>이 지니는 특징이다. 진혁은 어떻게든 하숙집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갖은 수를 쓰지만, 그때마다 하숙집 사람들은 비범한 정체를 독자 앞에 드러낸다. 전형적인 스릴러의 톤으로 흐르던 작품은 이웃들이 정체를 밝힐 때마다 다양한 장르로 이리저리 뒤섞인다.




 

범할 줄 알았던 하숙집의 이웃 사람들은 점차 시간이 지나며 모두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두 장르의 만남은 매번 색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스릴러로 시작했던 작품은 때로는 SF 블랙코미디가 되었다가, 한국의 과거 역사를 무대로 펼쳐지는 판타지로 변하며, 이뤄질 수 없는 인연을 그리는 가슴 아픈 로맨스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작품이 애초 예상했을 방향과는 다른 길을 걸어갈수록, 무척이나 강해 보였던 악역 주인공 진혁은 우스꽝스럽게도 가장 힘도 없고 나약한 캐릭터로 전락한다. 도리어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진혁의 모습에 웃음이 나올 따름이다.

이러한 장르의 변화는 스릴러를 기대하고 작품을 봤던 독자들에겐 당혹시킨다. 하지만 작가진이 시즌2 종료 후기에서 밝혔듯 ‘서스펜스 스릴러를 가장한 혼합 잡탕 SF 뱀파이어 첩보물 B급 블랙코미디’라는 작품의 본래 정체성에는 너무나도 충실한 전개이다.

B급을 표방한 대다수 작품은 장르의 법칙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따르기보다는, 장르를 이리저리 조립하고 잘라 붙이면서 정통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며 매력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살인마 vs 이웃>은 장르의 법칙을 계속 뒤엎으며, 묘한 재미를 만드는 B급 정서의 작품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B급을 말하면서도 멀어지다

하지만 정작 B급을 표방하는 작가진의 말과는 달리, 작품은 B급이 되고 싶은 ‘척’ 이상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물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막강해 보였던 주인공은 사실 ‘페이크’에 가까운 주인공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쉽게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장르를 뒤섞고 흔든다.

하지만 단순히 여러 장르의 혼종을 만든다고 해서 곧바로 그 작품이 B급이 되는 것은 아니다.

‘B급’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고유한 스타일이 메이저 작품들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작품'에 사람들은 ‘B급’이라는 말을 붙였다.

분명 <살인마 vs 이웃>은 스릴러로 시작해 B급이 되고 싶어 하지만, 너무나도 많은 장르가 섞여 있는 것에 묘한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듯, 이리저리 이동하는 장르마다 어떻게든 개연성을 삽입하기 위해 많은 공력을 기울인다.

하숙집의 사람들은 저마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장르가 바뀔 때마다 자신의 과거를 주절주절 읊는다. 과거의 시퀀스에 드러난 갑작스러운 장면들에 나름대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정체가 드러나며 장르를 전환하는 흥미는 분명 있지만, 과거를 밝혀내는 행위가 반복되면 될수록 작품의 긴장감은 점차 떨어진다.




물론 이러한 과도한 설명이 한두 번에 그쳤다면, 작품에 B급 정서를 부여하기 위한 나름대로 시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처음 몇 번의 과거 회상 시퀀스에는 과거 장면들에서 드러났던 복선들을 회수하는 쾌감이 있었다.

하지만 같은 농담도 여러 번 반복하면 재미가 없듯, <살인마 vs 이웃>은 한 이웃의 과거가 밝혀질 때마다 시간을 과도하게 소모하며 개연성 구축에 지나치게 공을 기울였다. 이는 작품 흐름을 작품 스스로가 방해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하숙집 사람들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살인마로 인해 벌어지는 서스펜스 스릴러는 중심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작품을 묶는 틀은 살인 소동극에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과거를 이리저리 푸느라 안간힘을 쓰는 사이에 살인마에 대한 긴장감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하숙생 사람들의 정체와 과거 에피소드들은 주변부에 존재하는 이야기일 뿐 결코 이야기의 중심에 설 수는 없다. 그렇게 작품은 B급에서도 멀어지고, 연재가 계속될수록 조금씩 흥미도 사라지고 있다.




흥미로운 ‘재료’, 미완성 상태의 ‘요리’

물론 아쉬움만 았눈 것은 아니다. 지나가는 개그나 드립인 줄 알았던 요소들을 차근차근히 작품의 줄거리로 편입시키는 구성은 놀랍다. 복선을 회수하고 스토리를 잇는 수사반장 글 작가의 솜씨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선량한 고시생인 줄 알았던 진혁의 진정한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을 비롯해 분위기가 한순간에 전환되는 장면을 현출하는 고민중 그림 작가의 작화는 강렬하다.

각 등장인물이 지니고 있는 에피소드들도 조금만 더 잘 풀었더라면 더욱 흥미로운 ‘어번 판타지’(urban fantasy, 실제 존재하는 공간을 무대로 삼는 판타지)나 ‘피카레스크’(picaresca, 악당을 주인공으로 삼는 작품)가 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살인의 충동에 빠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력을 오롯이 살인에 쏟아 붓는 사이코라는 주인공의 설정이 그렇다. 국정원 요원과 남파 간첩이라는 현실적 개연성을 지닌 존재와 흡혈귀, 구미호, 인조인간, 외계인 등 절대 실존하지 않는 존재들을 한자리에 모은 설정도 좋다. 이런 설정은 이야기가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나 흥미로운 요소들을 차곡차곡 쌓아놓을 뿐, 쌓아놓는 이상으로 크게 터트리거나 막 나가지 못한다. 섞여 있는 장르들은 이렇다 할 화학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조망하는 것에 초점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


 

진혁의 정체가 살인마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8화의 마지막 장면. 힘을 줘야 할 순간에 분위기를 바꾸는 고민중 그림작가의 연출.




<살인마 vs 이웃> 이 쌓아 놓은 요소들이 언젠가 한 방에 터져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B급 정서를 끝내 구축하지 못해도, 끊임없이 스토리의 개연성을 작용시켜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냥 그때를 기다릴 수 있을까. 아무리 맛있는 재료가 가득해도 결국 요리하지 못한다면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B급을 표방하는 작품이 B급이 될 수 있는 여러 소재를 갖춰만 놓은 채 폭주하는 속도감도, 좌충우돌 막 나가는 재미도 없이 계속 쌓아두기만 하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람마다 B급을 정의하는 기준은 달라도, 재미가 없는 작품에는 그 누구도 ‘B급’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살인마 vs 이웃>이 진정으로 B급을 추구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오직 작가진이 알고 있다. 이미 타이밍이 많이 늦은 마당이지만, 독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쌓아놓은 재료들을 맛있게 조리하기를 바랄 뿐이다.




YOUR MANAⒸ성상민

 

<살인마 vs 이웃>(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