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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언덕에 왜 왔니?

비평
 

도깨비언덕에 왜 왔니?
어린이를 위한 동화 같은 만화, 그리고 그 안의 한계

 

성상민

 
※ <도깨비언덕에 왜 왔니?>의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은 작가
 
<도깨비 언덕에 왜 왔니?>는 김용회 작가가 처음으로 어린이를 위해 그린 만화이다.
 
김용회는 <미스터블루> 신인 공모전으로 데뷔했다. 성인들을 위한 만화를 꾸준히 그려왔지만, 성인만화 작가는 아니다. 백수들의 구질구질한 일상 <해바라기 꽃미남>, 혁명가의 일대기 <체게바라> 등 폭넓은 연령층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서사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의 이러한 자세는 확실한 독자층을 갖기 어려운 한계를 동시에 지닌다. 더욱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을 위해 돌아 푸는 자세는 ‘성인 만화가’였던 그에게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다음에서 연재하고 있는 <도깨비언덕에 왜 왔니?>에서는 김용회 작가가 이제야 몸에 맞는 옷을 찾아 입은 느낌이다. 다양한 독자층은 이전과 동일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간의 작품들이 고 연령 독자층에서 저 연령층까지 고려했다면, <도깨비언덕에 왜 왔니?>는 저 연령 작품을 고 연령 독자들도 함께 볼 수 있도록 서사를 고안했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어른들도 공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아이들도 볼 수 있도록 풀어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10여 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김용회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펼치는 판타지
 
<도깨비언덕에 왜 왔니?>의 주인공 가람은 평번한 소년이다. 10살 생일을 맞는 날, 가람의 부모는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다. 내심 기대했던 생일 파티도 없이 홀로 집에 남겨진 가람에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이 벌어진다. 부모님이 기르던 진돗개 달님이 두 발로 서고 말하기 시작한 것. 이어 말하는 너구리, 늑대인간, 구미호 등등 비현실적인 존재들이 가람의 눈앞에 등장해 동료가 된다.
 
정말 놀랄만한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출생의 비밀. 가람의 어머니는 달에서 내려온 천녀였는데, 지상에서 가람의 아버지를 우연히 만나 결혼했다. 가람의 부모님은 동쪽 땅의 여왕이 납치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알게 된 가람은 달님을 비롯하여 새롭게 알게 된 동료들과 함께 여정을 시작한다. 부모님을 찾기 위해 동쪽 여왕의 성으로 향한다.
 
이렇게 작품은 납치된 부모님을 찾기 위한 모험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모험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때로는 신나고 때로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거치면서 가람은 동료들과 더욱 두터운 관계를 만들고, 이윽고 자신의 진정한 정체와 힘을 인식한다.

 


 

부모를 찾기 위해서 시작한 모험은, 이윽고 주인공 자신이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이 된다.

 


소년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개지만, 작가는 이를 철저히 어린이 독자를 위해 더 철저하게 설계하여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다.
 
부모가 사라진 아이 앞에 새로운 친구들이 나타나 동료로 함께한다. 이런 설정은 부모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이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동시에 아이가 부모의 말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도리어 부모를 구하러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하나의 주체임을 보여준다.

<도깨비언덕에 왜 왔니?>는 
다른 소년 만화와 달리, 적과 싸워 이기는 쾌감에 방점을 두지 않는다. 적들의 계략에 의해 시련을 겪으면서도 만화는 적들이 왜 악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고민한다. 주인공 일행은 자신들의 앞길을 막는 적과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적들의 마음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신나는 모험담으로 시작한 작품은 어느덧 삶과 죽음, 그리고 폭력이 무엇인지를 깊게 파고든다.

 

아군과 적, 선과 악의 이분법을 지운 결과, 남는 것은 삶에 대한 집착과 그로 인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폭력의 연쇄이다. 저마다 살기 위해 남을 속이고 심지어 없애기까지 한다. 죽음은 다시 증오를 낳고, 그 증오는 또 다른 폭력을 만든다.
 
처음부터 강력한 힘을 지녔음에도 손쉽게 적들을 해치우지 않았던 만화는, 등장인물들은 물론 독자들에게 ‘폭력’이 결코 가벼울 수 없음을 말한다. 아무리 '선'을 위한 이유에서라도, 무분별한 폭력은 도리어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강조하며 작품은 화합을 노래한다.

 
어린이 만화에서도 대상화되는 여성의 모습

 
그러나 <도깨비언덕에 왜 왔니?>에는 매우 큰 한계가 존재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여성이 대상화되고, 사회 속 틀에 박혀 있는 성역할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대다수 여성 캐릭터를 인간이 아닌 신묘한 존재를 만나, 거대한 힘을 지닌 아이를 출산하는 도구적 존재로 그린다. 동시에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강한 모성애까지 부여한다.
 
왜 ‘당연히’ 여성은 막대한 힘을 지닌 남성과 관계를 맺고, 다시 ‘당연히’ 그 힘을 이어받은 ‘남자’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것일까? 왜 아이를 가진 여성은 자식을 위해 목숨마저 바치는 존재여야 할까?
 


 

끊임없이 폭력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정작 여성 캐릭터를 그릴 때는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걸어간다.



 
작가는 권선징악 속에 내재된 폭력의 연쇄에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정작 그 속에 있던 여성의 모습은 아무런 의심이나 질문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만다.
 
이러한 루트에서 벗어난 캐릭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가람의 동료인 구미호 ‘로라’는 모성애로 인한 증오에 날뛴다. 하지만 가람을 통해 증오를 푼 이후에는 모성애 대신 자신에게 충실해진다. 이후 로라는 일행들에게 핀잔을 듣는 살짝 이기적인 성향의 캐릭터로 그려진다.
 
작품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마고'를 보자. 가람의 부모님이 지닌 비밀을 들려주는 마고는 일행을 지키기 위해 모든 마력을 소진한 이후, 치매에 걸린다. 결국, TV 막장 드라마만 좋아하는 개그 캐릭터로만 소모된다.
 
물론 작가도 이러한 문제를 마냥 모르지는 않았던 듯, 최근 진행 중인 에피소드에선 '마야'라는 캐릭터를 삽입했다. 요괴 헌터로 주인공 일행과 대립하는 마야를 통해 좀 더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라지만 마야 역시 가족이 몰살당해 반강제로 요괴 헌터가 되었다는 과거가 드러나는 등 다른 여성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로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신한 여성상’을 찾는 작품의 모습은 어린이에게 맞춘 작품의 방향성과 만나며 제대로 충돌하고 만다.
 



대다수 한국 만화가 청소년과 성인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도깨비언덕에 왜 왔니?>는 어린이도 볼 수 있도록 작품의 톤을 맞추고, 신경 쓰는 몇 안 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분명 가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며,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동떨어진 방식으로 여성 캐릭터를 묘사하는 모습은 여전히 아쉽다.
 
진정으로 <도깨비언덕에 왜 왔니?>가 웹툰 시대 '어린이를 위한 동화' 같은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고민과 질문을 던지는 자세가 절실하다. 새로운 시대에는 기존의 고정 관념을 벗어 던지는, 새로운 작품이 필요기 때문이다.




 

YOUR MANAⒸ성상민

 

<도깨비언덕에 왜 왔니?>(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