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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의 ~야한 만화가 좋다~ㅣ④<대한민국 이혼보고서>(음란선비, 대갈량)

리타의 ~야한 만화가 좋다~ㅣ④<대한민국 이혼보고서>(음란선비, 대갈량)

아낌없이 이혼하는 부부
 

 이연숙(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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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심, 앞으로도 변치 마시길... 음란선비와 대갈량 작가의 <대한민국 이혼보고서>는 탑툰의 스테디셀러다. 현재 <이혼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시즌2가 연재되고 있다.



 
이런 글을 써도 될까? 물론 세상에는 여러 해괴한 글들이 많으므로 이 글이 존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그 글에 책임을 질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책임은 언제 발생할까? 바로 이런 글을 쓸 때다.

<대한민국 이혼보고서>(음란선비, 대갈량)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내게 특별한 종류의 책임감을 유발한다.

‘특별한 책임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미 책임이라는 문제가 귀속되어 있다는 철학적인 문제는 집어치우고서라도, 한 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책임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적어도 그가 공중에 글을 내보인 이상, 책임은 요구된다. 원치 않더라도 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굳이 ‘<대한민국 이혼보고서>와 책임감’을 운운하고 있다.

마치 <대한민국 이혼보고서>에 대한 글에 뭔가 특별한 종류의 변명이 요구되는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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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나도 모르겠다.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나는 이 만화가 ‘야한 만화’로서의 입지가 완벽할 뿐만 아니라 아주 재미있고 교육적으로도 유익하며, 무엇보다 내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자신 있게 누구에게든 추천할 수 있다.

만약 그가 이 만화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그냥 그뿐이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대한민국 이혼보고서>를 보았고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한들, 나는 “그래서요?” 정도로 뻔뻔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갖은 말로 <대한민국 이혼보고서>를 칭찬하자면,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다. 실제로 내가 감동한 몇 몇 에피소드에는 ‘사랑과 전쟁’과 같은 공중파의 재연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는 구제 불능의 인물들과 극단적인 수위의 묘사가 등장한다.

이들은 성적 욕망과 자본에 종속된 노예고, 그러므로 양심과 법 바깥에 산다. 따라서 이 만화를 자본주의와 이성애 중심주의 그리고 성 보수주의에 대한 ‘일침’으로 독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심지어 이 만화에 등장하는 ‘부부 클리닉 상담원장’들조차 이혼한 사이라는 사실은, 이 작품이 얼마나 ‘이미 망가졌는지’를 보여준다.
 
 

 

이혼한 지 일 년도 안 된 부부클리닉의 상담원장들(이혼은 했지만 섹스는 종종 합니다).

 
 


해체되는 가족, 배가되는 재미

물론 작품이 ‘막장’으로 치달을수록 어느 정도 재미가 보장되고, 이는 작품의 흥행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이혼보고서>에 등장한 한 남자가 트랜스젠더와의 섹스로 인해 성적 취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한들, 그리고 그 과정이 몇 화 동안 세세하게 묘사되었다고 해도, 이를 지나치게 ‘전복적’으로 읽어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트랜스젠더를 사랑한 남편>).

작가가 그렇게 그리지 않았으므로 우린 <대한민국 이혼보고서>를 무슨 결혼제도와 이성애, 자본주의가 공모하는 방식에 대한 고발과 혁명에 대한 은근 슬쩍한 암시로 읽을 수는 없고 또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다.

이 만화는 많은 부분을 ‘순수하게’ 섹스 장면의 묘사에 할애한다. 물론 작가가 몇몇 독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잉크로 ‘전복적인’ 암호를 송신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읽느라 애를 쓰느니 보이는 잉크로 쓰인 책을 읽는 것이 낫다고 느낀다.

하지만 <대한민국 이혼보고서>가 제공하는 ‘재미’가 지나치게 파괴적인 바람에, 굳이 전복적으로 읽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파괴되는 여러 ‘소중한 가치’들이 존재한다.

매화마다 한 가정이 망가지고 돌이킬 수가 없게 되므로, ‘가족중심주의’라는 가치는 가볍게 해체되고 비웃음당한다.

성적으로 방종하고 ‘문제 많은’ 남녀가 무더기로 쏟아지니, 성적 순결이라는 가치는 이미 진창에 처박힌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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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트랜스젠더와 사랑에 빠지기 전, 남편의 모습
(아래) 트랜스젠더와 사랑에 빠진 남편의 처참한 말로...!





“근본이 없는 집구석”

섹스만 하면 ‘여보’를 외쳐대는 장모님은 어떨까? 이 이야기는 그리 단순하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물론 인생 실패자이지만 물건은 쓸 만한 남자인 ‘나’와, 매일 나이트에 출근을 하는 ‘어린 신부’, 그리고 죽은 남편이 그리운 글래머러스한 ‘장모님’이 한집에 산다는 것 자체는 단순한 ‘막장’ 스토리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에 사람 심란하게 하는 사소한 사건들이 더해짐으로써, 이 이야기는 ‘막장’을 뛰어넘는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 딸래미가 걱정되어 ‘나’와 나이트에 미행을 간 ‘장모님’이, 화장실에서 열심히 섹스 중인 ‘어린 신부’인 딸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짐과 동시에 흥분하게 되는 장면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엄마가 딸의 정사를 목격하고 흥분하는 장면을 그릴 생각을 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게다가 섹스 상대는 흑인이다. 이후 동양인 남자인 ‘나’는 그에게 인종적인 이유로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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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섹스만 잘하면 다 ‘여보’

결국 ‘나’는 ‘어린 신부’와 이혼하고, ‘장모님’의 ‘여보’가 되어주려고 하지만 결말에서 흥미로운 진실이 드러나고야 만다.

‘장모님’이 섹스할 때 부르짖는 ‘여보’는 ‘아무나’를 유혹하기 위한 미끼일 뿐, 특별히 ‘나’를 부르는 요청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표면적으로는 ‘나’의 시점에서 전개된다고 해도, 결국 ‘어린 신부’와 ‘장모님’의 감당할 수 없는 성욕에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나’는 이야기의 중심에서 추방당한다.

나이트에 가서 밤마다 원 없이 섹스를 하는 ‘어린 신부’와, 원하는 남자와 섹스하기 위해 ‘여보’를 소환하는 ‘장모님’을 어떻게 당해낸단 말일까?

어쭙잖게도 ‘나’는 장모님을 구원하리라고 결심했으나, 장모님 입장에서는 ‘안물안궁’이었던 셈이다. 섹스만 잘하면 다 ‘여보’다.

‘나’가 끼어들기 이전에도 이 모녀가 자기 인생의 승리자로서 살아왔다는 사실이 이토록 분명한데, 이제 와서 누가 누구의 ‘여보’가 된다는 말인가?

아무튼 <어린 신부와 장모님>은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 길고, 그 만큼 ‘막장’이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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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적인 장면들만을 캡처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게 생각한다.

 
 

재미와 책임감

결국 내가 <대한민국 이혼보고서>를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나게 된다. 이 만화에 장황한 수식을 붙이고, 뭔 근거를 들어가며 옹호를 하려고 해도, 이 만화가 재미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진리 앞에서 만고 쓸데없는 짓이 된다.

이 근사한 재미에 설명이 필요할까? 물론 필요하다. 내 일기장에 쓰는 나 혼자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내 취향을 주장하기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곤혹스러움이 뒤따른다.

1. <대한민국 이혼보고서>는 이미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탑툰 완결작 2위에 들 정도로 (아마도) 잘 팔리며,

2. ‘전복적’으로 읽지 않으면 재미있지만 거슬리는 장면들도 많고,

3. 굳이 <대한민국 이혼보고서>가 아니어도 ‘성인 웹툰’ 대부분은 앞서 말한 ‘소중한 가치’를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으로) 해체 혹은 파괴한다.

어쩌면 나는 ‘이런 글’을 씀으로써, 그리고 <대한민국 이혼보고서>의 코인 결제를 부추김으로써 ‘여성 혐오적’인 문화를 재생산하는 구조에 이미 일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누군가 이 글을 보고 <대한민국 이혼보고서>가 너무 보고 싶어진 나머지 전액 결제를 해버린다면 심각한 책임감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돈은 다 누구에게로 가게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 이혼보고서>에 결제한 나의 1만 5천원이 과연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가게 될 지 신경 쓰여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아, 여기에 대해 내가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지면이 부족하여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게 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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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합니다~

 

 

YOUR MANAⒸ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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