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tic
[스크랩]
검은 물 검은 산

비평
 

검은 물 검은 산
서사가 변화시킨 잿빛 세계

 

오혁진

 



케이툰에서 연재 중인 <검은 물 검은 산>은 김성희 작가의 첫 번째 웹툰이다.




철컹철컹 기차 소리가 들린다. 주인공은 흘러간 과거를 떠올린다. 유년 시절 마을 앞은 항상, 태백선 열차가 지나갔다.

<검은 물 검은 산>의 배경 ‘탄광촌’. 마을은 온 종일 흩날리는 석탄 가루로 그늘져 있다. 그 곳에는 생존이 놀이와도 같던 주인공이 서있다.

작가 ‘김성희’는 이렇게 1980년대 탄광촌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왜 탄광촌이었을까? 호기심을 일으킬 낯선 공간이 필요했던 걸까.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탄광촌을 선택한 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작가의 진지한 주제의식. ‘박정희 서거’ 시기와 탄광촌 ‘사북’ 공간은, 앞으로 전개될 현대사의 굴곡을 짐작케 한다.

김성희는 그래왔다. 용산참사 철거민, 삼성반도체 공장 희생자. 누군가에게 항상 잊혀 지기를 강요받던 존재를, 그려낸 작가다.
 


김성희 작가의 첫 웹툰

김성희 작가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여러 권의 단행본을 낸 중견 작가다.

작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데뷔작 <몹쓸년>부터 <오후 네시의 생활력>까지로 이어지는 자전적 만화, 다음으로 <먼지 없는 방>과 <내가 살던 용산>같은 르포 만화.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두 갈래의 작품이 단순히 자신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이 일련의 작품을 다시 한 지점으로 수렴한다. 자전적 작품은 개인의 내면을 풀어내면서, 한편으로 개인의 문제를 통해 사회를 응시한다.

르포 만화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사회 구조를 비판하면서도, 개인에 대한 예의를 결코 놓지 않는다.

작가는 말한다. "친구는 우리 문제를 개인 문제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실이라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힘을 주지만, 우선 여기서 버티는 것은 오로지 내 몫이다."라고.

작가는 개인을 이야기하면서 사회를 이야기하고,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개인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개인과 사회는 분리되지 않는다.

<검은 물 검은 산>으로 돌아가 보자. 이 작품은 김성희 작가의 첫 웹툰이다. 그렇다면 이전 출판만화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물론 매체 변화가 작품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독자를 상정하는 웹툰 환경에서, 이전과 다른 방식을 시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김성희 작가만의 고민은 아니다. 이미 ‘최규석’, ‘마영신’ 같은 사회 비판적 작가도 직면했던 문제다.
 


서사의 확장과 표현의 확대

김성희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작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선’이다. 선은 여러 가지 감정을 품고 있다.

둥근 곡선에는 순수함과 따뜻함이, 기괴하게 비틀린 선에서는 불안과 고통이 느껴진다. 그리고 김성희의 선에는 힘겹고 지친 심정이 담겨 있다. 그 선은 여리며, 아무렇게 내던져 있다.

이 같은 선의 감정, 선의 분위기는 작품 주제를 가시적으로 형상화한다. 김성희 작가의 인물은 대부분 주변부 사람이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난 사람. 그것이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가난에 익숙한 보통 사람.

그들의 선의 경계는 언제나 명확하게 이어지는 법이 없다. 어딘가 비어 있으며, 어딘가 눌려 있다. 주제를 이야기하기 전 우린 이미, 그들의 고달픈 삶을 깨닫게 된다.







김성희 작가의 선은 주변부 사람의 고단한 삶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검은 물 검은 산>의 선은 여전히 주변부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표현은 보다 극적으로 변했다.

흐릿한 배경과 함께, 선은 끊길 듯 아슬아슬 이어져 있다. 게다가 밋밋한 선은 보다 거칠고 투박하게 바뀐다. 탄광촌의 무게감이 선의 형태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탄광’이라는 공간이 은유하듯,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태로운 삶. <검은 물 검은 산>의 선은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작품 속 인물 역시, 그래서, 한껏 과장되고 왜곡됐다.

심지어 어떤 경우 얼굴 형태마저 뚜렷하지 않을 정도로 뭉개졌다. 그것은 현재의 힘겨운 삶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 후 역사에서 지워질 텅 빈 존재임을 암시한다.




 

<<검은 물 검은 산>은 ‘탄광촌’을 재현하기 위해, 선을 포함한 표현이 이전 보다 극적으로 변화한다.




이같이 <검은 물 검은 산>은 극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그 중 대표적 장면 중 하나는 ‘탄광’ 장면이다.

탄광과 광부의 형체는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어지럽게 얽혔다. 게다가 탄광의 어둠과 광부의 얼굴은 칠흑 같은 검정 색으로 빈틈없이 메워져 있다.

짧은 장면이지만, 극적인 그림자를 부각시키는 ‘표현주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이 같은 표현은 김성희 작품에서 낯선 것인데, 굳이 연결고리를 찾는다면 초기작 ‘몹쓸년’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디지털 규장각 인터뷰에서, 유려한 붓선과 흑백 화면을 강조한 프랑스 작가 ‘에드몽 보두앵’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조차도 르포만화에 집중하는 시기에 이르러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탄광 장면의 표현이 일시적 변화인지 아니면 지속적 변화인지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일시적 변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변화를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겠다. 현재 작화의 변화는 서사의 변화와 연동된 근본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검은 물 검은 산>의 세계는 이전처럼 일상의 세계가 아니다. ‘탄광촌’은 격정적 사건을 만든다. 가령 2부 마지막 화 수업거부 장면은 지금까지의 어떤 장면보다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친다.

다시 말해, <검은 물 검은 산>은 이전과 다른 서사를 써내려간다. 이에 작화 또한 보다 풍부한 표현의 결을 품게 된다.
 


독백이 만든 서정성

<검은 물 검은 산>은 서정적인 작품이다. 서정적이라는 수사는 앞에 언급된 ‘극적인 표현’과 대치되는 것 같다.

분명 ‘탄광촌’이라는 공간은 극적인 이야기를 만든다. 하지만, 비록 극적인 사건이 표출될지언정, <검은 물 검은 산>을 지배하는 정서는 쓸쓸함과 고요함이다. 작가가 주인공의 관조적 독백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김성희 작가는 이미 자신의 작품에서 특유의 사려 깊은 독백으로 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곤 했다. 그럼에도 <검은 물 검은 산>의 독백을 주목하는 것은, 작품의 정서가 독백을 정점으로 점차 확산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검은 물 검은 산>의 독백은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처럼 작품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리고 한층 원숙해진 문체가 소설적 언어의 장점을 극대화 한다.

매 장면 주인공은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 목소리는 감정 선을 따라 작품 전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독백의 영향은 ‘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림’에도 영향을 미쳐 서정적 형식미를 구축한다. <검은 물 검은 산>의 독백은 그림 칸의 일부가 아닌, 하나의 독립된 칸에 위치한다.

독백이 제시되고, 다음으로 그림이 이어진다. 때론 ‘독백-그림’ 형태는 변주되는데, 다음과 같이 ‘그림-독백’, ‘그림-독백-그림’ 형태로 나타난다. 배열은 반복된다. 그리고 연속적으로 하강하는 웹툰 스크롤과 결합하면서 작품 고유의 리듬과 흐름을 지어낸다.

 


독백이 독자가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하면서, 그림은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진다. 그 결과 <검은 물 검은 산>은 동적인 행위보다 정적인 순간을 담아내는데 집중한다.

 


거기에 더해 독백은 그림을 시적인 이미지로 만들기도 한다. 만화 이론가 스콧 맥클라우드의 저서 <만화의 이해>는 <검은물 검은산>같은 독백중심 만화를 ‘글 중심 결합’ 만화로 분류한다. 이러한 결합은 이야기 진행의 부담을 글에 집중시킴으로써 ‘그림’을 자유롭게 한다.

독백은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그 덕분에 그림은 만화의 연속된 흐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다.

<검은 물 검은 산>은 동적이기 보다 정적으로, 채워 넣기보다 비워 넣기를 택한다. 이제 각각의 그림은 하나의 정제된 시어가 된다.

그것은 서사 흐름에 흩날리기보다, 오히려 마음 한편 고요히 쌓여 간다. 그 안에서 탄광촌의 한 마을이, 아니 한 세계가 떠오른다.
 
<검은 물 검은 산>의 ‘서사’는, 어쩌면 과소평과 받았을지 모를 작가의 이야기 능력을 입증한다. 자전 만화의 진실성에 억눌리지 않으며, 또한 르포만화의 절박함에도 한결 자유롭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북탄광 노동항쟁’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루지만,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시간의 틈에서 이야기의 힘이 발휘된다.

하지만 여기서 놓쳐서 안 될 지점은, 이 작품이 온전히 ‘서사’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서사는 또 다른 만화 언어인 ‘작화’와 긴밀히 연관되며,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작화’에 영향을 미친다.

선은 보다 극적인 표현을 가진다. 독백은, 웹툰의 장점을 활용하여, 독립된 공간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림은 연속성에 매이지 않고 탄광촌을 차분히 재현한다.

마음에 떠오르는 심상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감정의 타래. <검은 물 검은 산>을 통한 이 총체적 경험은 결국, 글과 그림이 하나 된 어느 순간 발생한다.

<검은 물 검은 산>은 만화가 글과 그림의 결합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상기시킨다. 모든 만화는 자신만의 글과 그림의 결합을 가진다. <검은 물 검은 산>은 김성희 작가만의 잿빛 세계가 처연히 펼쳐진 결과다.
 
 
 
 

YOUR MANAⒸ오혁진


<검은 물 검은 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