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tic
[스크랩]
리타의 ~야한 만화가 좋다~ㅣ③<마이너리티 리포트>

리타의 ~야한 만화가 좋다~ㅣ③<마이너리티 리포트>
보편적이지 않은 섹스
 

 이연숙(리타)


&#44536;&#47548;&#51077;&#45768;&#45796;.&#50896;&#48376; &#44536;&#47548;&#51032; &#51060;&#47492;: &#54364;&#51648;.jpg&#50896;&#48376; &#44536;&#47548;&#51032; &#53356;&#44592;: &#44032;&#47196; 1200pixel, &#49464;&#47196; 600pixel

간부추 작가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미스터 블루’와 ‘레진 코믹스’에서 연재 중이다.



 

보편적’일 수도 있는 이야기

한 영향력 있는 영화 평론가가 영화 <캐롤>에 대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강렬한 이끌림을 다룬 영화’라고 말했다.

두 인물 중 누구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여성을 좋아하는 여성’으로 정체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캐롤>을 ‘레즈비언 영화’로 분류하는 것은 과잉 해석일 수 있다.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 특히 당사자성 부문에서 발언권을 우선적으로 획득한 레즈비언들은 상당히 분개했다. 

왜냐하면, 안 그래도 ‘내가 뭘 봤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는’ 이 세상에 항상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

<캐롤>에서 레즈비언들은 레즈비언을 봤다. 그건 영화 <아가씨>에서도 마찬가지다. <캐롤>에 비해 <아가씨>는 공격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레즈비언’ 영화다. 그럼에도 두 영화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라는 찬사를 들어야만 했다.

<아가씨>와 <캐롤>이 ‘보편적인 이야기’로 환원되는 것을 우리가 막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을 지구에서 제거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아가씨>와 <캐롤> 안에는 보편적인 주제들이 내재되어 있고, 우리는 레즈비언 관객들이 절박하게 스크린 속의 다른 레즈비언을 찾아 헤매는 것만큼이나 분명하게 영화를 ‘보편적인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다.

필요하다면 ‘여자들 간의 미묘한 공기’를 좀 희박하게 하고서라도 말이다.
 


&#44536;&#47548;&#51077;&#45768;&#45796;.&#50896;&#48376; &#44536;&#47548;&#51032; &#51060;&#47492;: &#12635;&#12635;.JPG&#50896;&#48376; &#44536;&#47548;&#51032; &#53356;&#44592;: &#44032;&#47196; 507pixel, &#49464;&#47196; 904pixel

주인공 정현(위), 도현(아래). 정현은 FTM(Female-to-Male), 도현은 MTF(Male-to-Female)이다. 두 사람은 거의 30센티 이상 신장 차이가 난다.
 



웬만해선 ‘보편적’이기 힘든 이야기

그런데 정말 죽어도 환원이 안 되는, 진짜 어떻게 해도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종류의 작품들이 있다.

‘미스터 블루’와 ‘레진 코믹스’에서 연재 중인 <마이너리티 리포트>(간부추)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말하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당위성이 없다면 꽤 곤란한 상황이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도 아닌데 내가 무슨 수로 이걸 ‘내’ 이야기로 말한단 말인가? 그리고 이렇게 ‘퀴어’한 일이 어떻게 ‘모두’의 일인가?

우선 짧게 줄거리를 살펴보자.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평범해 보이는 한 커플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10년을 사귀었고, 곧 결혼을 할 것 같다. 뒤늦게 이들이 수술을 하지 않은 MTF, FTM 커플임이 밝혀진다(이 만화의 제목이 왜 <마이너리티 리포트>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들이 ‘선망하던’ 육체를 가진 레즈비언과 게이 캐릭터가 등장해 안 그래도 퀴어한 이들의 인생을 더 퀴어한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무슨 정체성 사고실험이 일어나는 현장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요컨대 MTF인 도현이 FTM인 정현에 비해 절대적으로 큰 몸집을 가졌다는 설정, 그로 인해 외부에 의해 ‘폭력남’으로 규정되는 상황 등은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전개였을 것이다.

덕분에 이 작품은, 감히 아무도 ‘퀴어 만화라기엔...’을 운운할 수 없는 ‘퀴어함’을 획득하고야 말았다.
 


&#44536;&#47548;&#51077;&#45768;&#45796;.&#50896;&#48376; &#44536;&#47548;&#51032; &#51060;&#47492;: &#51652;&#51676;&#51076;.JPG&#50896;&#48376; &#44536;&#47548;&#51032; &#53356;&#44592;: &#44032;&#47196; 445pixel, &#49464;&#47196; 432pixel

‘진짜 여자’에게 끌리는 중인 정현.

 
 
&#44536;&#47548;&#51077;&#45768;&#45796;.&#50896;&#48376; &#44536;&#47548;&#51032; &#51060;&#47492;: &#44480;&#50685;&#45796;.JPG&#50896;&#48376; &#44536;&#47548;&#51032; &#53356;&#44592;: &#44032;&#47196; 681pixel, &#49464;&#47196; 784pixel

‘진짜 남자’에게 끌리는 중인 도현.

 
 
 
밤의 수치를 끌어안기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결코 ‘보편적’ 이야기가 될 수 없는 까닭이 또 있다. 바로 이들의 몸 때문이다.

정현과 도현의 나체는 아름답게 재현되지 않는다. 이들은 조이고, 숨기고, 붙이고, 가린다. 몸은 끔찍하다. 몸은 콤플렉스 덩어리이다. 결코 안전할 수 없는 어떤 장소다.

도현은 섹스파트너인 제롬의 완벽한 ‘남성적’인 육체를 보며, 결국 자신에게 고백한다.

"눈앞에서 제롬의 몸을 보고 있으면, 왜 나도, 정현이도 서로의 몸을 보여주는 것에 주저했었는지 싫어도 깨닫게 된다. 정현이를 남자친구라 생각해왔으면서도 여자인 몸을 부럽다 느꼈던 적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서로 비교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신체에 대해 수치스럽게 느끼는 장면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섹스 신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퀴어 물’에서 재현되는 섹스와도 다르게,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섹스 신은 누군가를 자극하기 위한 일말의 장치도 고려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하게도 반복적인 섹스 신은 등장하지 않는다. 섹스 신은 인물들의 관계에서 대낮의 사건 만큼이나 중요한 기능을 한다.

이를테면 정현이 수연에게 '괜찮다면, 하네스에 딜도를 끼우고 삽입 섹스를 해 보면 어때요?'라고 말한 후에 이어지는 두 사람의 섹스만 해도 그렇다.

론 독자의 입장에서 정현의 ‘삽입 섹스’에 대한 욕망은 이전의 오랜 연애 경험에 부착된 것이기도 할 것이고, 또한 자신의 ‘남성성’을 유지하고 확인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수연은 정현의 이러한 제안을 ‘정현씨는 힘들기만 하고 하나도 즐겁지 않을 텐데. 혹시 페티시라도 있는 건가?’하고 다른 방향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이후의 섹스에서 수연과 정현은, 표면적으로는 서로에게 적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독자는 수연이 왠지 정현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인상을 결코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들의 관계는 섹스 도중에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서로의 제안과 눈짓에 응하는 방식 혹은 섹스 도중 내뱉어진 말로 인해 그리된다.

그러므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인물들에게 밤의 행위들은 낮의 대화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44536;&#47548;&#51077;&#45768;&#45796;.&#50896;&#48376; &#44536;&#47548;&#51032; &#51060;&#47492;: &#50557;&#54844;.JPG&#50896;&#48376; &#44536;&#47548;&#51032; &#53356;&#44592;: &#44032;&#47196; 527pixel, &#49464;&#47196; 623pixel

~콘돔으로 만든 약혼반지를 끼고 즐거워하는 중인 두 주인공~

 
 
보편적이지 않은 섹스


문득 지난 18회 여성영화제 초청작이었던 <걸스 로스트>가 생각났다. 수상한 꽃의 진액을 먹으면 하룻밤 동안 남자가 될 수 있다는 설정의 틴에이지 퀴어 영화다.

이 영화는 퀴어 영화가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정체성 실험을 ‘수상한 꽃’의 핑계로 다 해버린다. 근데 그게 납득이 된다.

만약 퀴어 영화를 일렬로 줄 세울 수 있다면, 스펙트럼의 어떤 극단에는 <걸스 로스트>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그 근처에 있을 것이다.

섹스 도중 스타킹 위에 벨트 딜도를 차고 투덜거리는 모습, 기운이 벌써 딸린다는 정현의 말에 조금만 힘내 보라고 격려하는 도현의 모습, 섹스 후 대자로 뻗어서 손가락에 콘돔을 나눠 끼고 약혼반지라고 키득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 이건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그래서 ‘보편적이지 않은’ 섹스다.

마치 지구 상에서 딱 한 번 일어났던 사건처럼 말이다.
 


 

YOUR MANAⒸ리타
 


<마이너리티 리포트>(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