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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고

비평

고고고 - 해골물의 비밀
네이버의 대모험

 

선우훈

 

<고고고- 해골물의 비밀>은 패럴랙스 스크롤링 기능을 통해 독자의 스크롤에 따라 다양한 시각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2015년 5월 16일, 네이버 웹툰은 <고고고- 해골물의 비밀>(글 정은경, 그림 하일권) 1화를 공개했다.

<고고고- 해골물의 비밀>(이하<고고고>)은 8세 초등학생 '고민'이, 게임 중독에 빠진 아버지 '고문관', 저명한 고고학자 였으나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고지식'과 함께 전설의 해골물을 찾으러 떠나는 내용이다.

하일권 작가의 전작들처럼 경쾌한 색상과 시종일관 웃음의 코드를 보여주지만, 이야기 구조상 갈등 구조와 서사가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TV 애니메이션처럼 회별 에피소드의 다이내믹함이 재미의 중심이다.

<고고고>를 소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웹툰이기 때문이다. 1화가 공개된 다음날인 2015년 5월 17일, 네이버 웹툰 공지사항에는 ‘네이버 웹툰 내 움직임 및 진동 효과 적용’이라는 글이 게재되었다.

 

안녕하세요. 네이버 웹툰입니다.
그동안 웹툰 효과라고 하면 Gif나 플래시 파일에 한정돼 있었는데요, 훨씬 다양한 효과가 들어간 완전 스마트 최첨단 웹툰이 나왔습니다.

네이버에서 ‘웹툰 에디터’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하면서 작가분들이 웹툰 이미지를 확대하거나, 사라지게 하거나, 회전할 수도 있고 반짝거리거나 진동 등의 여러 가지 효과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움짤과 달리 손가락으로 스크롤하는 속도에 맞춰 이미지가 움직이기도 하기 때문에 평면적인 웹툰이 3차원적인 원근감을 느끼실 수도 있고, 이미지가 둥둥 떠다니는 느낌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요 기능을 제일 먼저 활용한 첫 작품은 정은경/하일권 작가님의 신작 수요 웹툰 <고고고- 해골물의 비밀>입니다.

(공지사항 내용 중 일부)

 

공지사항에서 예로든 ‘한정되어 있었던 웹툰 효과’인 Gif나 플래시 파일을 이용한 대표적인 작품은 호랑 작가의 단편 <봉천동 귀신>과 <옥수역 귀신>일 것이다. 두 작품은 2011년, 네이버의 기획 릴레이 웹툰 ‘2011 미스테리 단편’중 하나로 게재되었다.
 

두 단편은 ‘스크롤을 직접 조절한다’는 독자의 자율적인 독해 과정을 일순간에 빼앗음으로써 공포라는 감정을 극대화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아직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지 않은 시기라 상호작용에 대한 놀라움이 더욱 주목을 받았다. 물론 기능과 형식을 적절하게 접목한 작가의 역량이 가장 큰 역할을 해냈다.


 

위와 같은 장면이 강제로 빠르게 스크롤 되어 마치 애니메이션 같은 효과를 준다. 임산부, 노약자, 심장이 약하신 분들은 이용을 삼가달라는 문구가 있다. <봉천동 귀신>(링크)



 

당시 기술을 통한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을 주목한 미국의 만화 이론가 스콧 맥클라우드 역시 이 작품을 본인의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이를 본 외국인들이 웹툰을 보고 놀라는 장면을 유튜브에 게재하고, 그 사실이 SBS의 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네이버는 현재 두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제공 중이다.


움직이는 만화

호랑 작가의 기술을 통한 성취 덕분인지, 이후 무빙툰 혹은 더빙툰이라는 양식이 등장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만화에 목소리를 입히거나 컷의 움직임을 애니메이션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기능으로 인한 부가적 성취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 실패의 원인은 <봉천동 귀신>의 성공 원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화’의 핵심은 독자가 칸과 칸 사이를 유추해 머릿속에서 두 장면의 사이를 잇는 것이다. <봉천동 귀신>은 이러한 활동을 강제로 중지시켜 작품 연출의 영역으로 삼았다.

그러나 무빙툰, 더빙툰의 의도된 시간성은 독자 입장에서 조절할 수 없는 수동성을 작중 내내 접하는 일이다. 지속적인 수동성은,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쉴 새 없이 접하는 매체인 영상의 속성과 동일하다(웹툰 내에 음악을 삽입하는 경우도 시간성이 관여해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움직이는 듯한 만화’가 독자에게 자율성을 허락하지 않을 때, 곧바로 애니메이션과 경쟁이 시작된다. 투입된 자본과 인력의 차이가 있기에 무빙툰 혹은 더빙툰은 애니메이션의 열화된 버전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율성을 빼앗지 않는 상호작용은 어떨까. 만화는 움직이되, 칸과 칸 사이의 상상력과 만화를 읽는 속도는 독자가 조절하도록 두는 것이다. 바로 패럴랙스 스크롤링(Parallax Scrolling)이 그 상호작용의 이름이다.

 

이는 <고고고>가 택하고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스크롤의 정도에 따라 이미지 레이어의 움직임이 다르게 나타나면서 화면이 입체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뭔가가 화면 밖에서 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네이버에서 ‘웹툰 에디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공개한 <고고고>는 이 프로그램을 널리 알리기 위한 역할을 맡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1화에 등장한 패럴랙스 스크롤링 기능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고고고> 1화의 한 장면. 패럴랙스 스크롤링은 2D화면 안에서 원근을 느끼게 한다.


 

문제는 패럴랙스 스크롤링을 통한 연출이 매번 등장한다는 점이다. 화면 안에서 의외의 움직이 일어나는 연출은 매우 한정적이며, 그 움직임을 내용과 적절하게 어우러지게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고고고>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고고학이라는 소재를 통해 함정과 퍼즐, 뒤를 쫓는 악당들의 액션을 등장시켜 연출의 기능을 보여주고자 했다.



새로운 매체와 새로운 반응
 

이 과정에서 아직 실험 중인 단계의 여러 가지 새로운 반응이 나타난다.

첫째, 상호작용 자체가 피로하다. 패럴랙스 스크롤 기능이 적용된 경우, 독자는 만화를 볼 때 얼마만큼 스크롤 해야 하는지를 계속 신경써야한다. 만화를 보면서 능동적인 태도와 수동적인 태도를 조절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둘째, 기능의 존재 자체가 매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뭔가가 움직이는’ 기능은 전통에서 벗어난 문법이고, 내용의 깊이와 별개로 낯설다.

사용자에게 기존 만화와 다른 어떤 것으로 인식된다. 또한 움직임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없다면 이런 연출 방식은 우스워 보일 수 있다.

<고고고>는 이 지점을 의식한 듯 대상 연령층을 낮게 잡아 8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는 하일권 작가 특유의 유쾌한 가벼움과 어울려 작품의 색채를 살려주지만, 기능 자체의 한계를 인식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셋째, 제작 비용이 증가한다. 금전적인 비용 외에도, 기능 자체의 연출을 통제하는 역할이 새롭게 요구된다. 작가는 정지된 화면들을 계획하고, 그리고, 연출하고, 조직한다.

여기에 더해 패럴랙스 스크롤 기능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넣을 것인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이는 새로운 능력을 습득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지된 이미지의 연출과 달리 이 방법은 참고할 수 있는 기존의 문법도 굉장히 적다.

넷째, 웹툰 에디터 프로그램의 한계가 예상된다. 직접 써보지 않았지만, 에디터 프로그램에서 허용하는 방식은 제한적이다. 툴에서 무제한적인 기능을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출을 보여주는 스크롤의 감도, 불투명 정도, 패럴랙스 스크롤에 동원할 수 있는 레이어 개수, 픽셀의 가로 폭, 이미지 용량 등(웹툰 프로그램보다 포탈 웹툰 형식의 제한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이 앞으로 계속 추가 및 개선될 수 있을까?

제공되는 기능의 제한이 내용과 형식을 합치시키는데 어려움을 더한다. 각 기능이 만화 안에서 구현되는 적절함은 기능의 고유성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화는 더 발전할 것인가

이러한 지점들을 부작용이나 문제점이라 말하지 않은 것은, 상호작용과 만화가 아직 실험 단계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고고>의 반응과 연재 기간 등을 고려해볼 때 단기적으로는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웹툰은, 정지된 이미지의 드라마를 수백 개의 채널로 제공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주로 손바닥만 한 화면을 통해 감상하고 댓글을 통해 피드백을 공유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했던 것은 포털 덕이었고, 포털은 조회 수를 통해 연령과 장르별 매트릭스를 작성해 작품을 제공한다.

웹상에서 만화가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은, 만화 이론가 스콧 맥클라우드의 실험들처럼 가로 스크롤과 z축 이동, 하이퍼 링크를 이용해 얼마든지 기존과 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z축을 이용한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 ‹The Right Number›(링크)



그러나 이미 포털이라는 인프라 자체가 제한하는 양식에 의해, ‘웹툰’은 세로 스크롤의 정지된 이미지 형태로 자리 잡았다.

웹툰 내 음악 삽입이나 무빙툰, 더빙툰의 예에서 보듯이 지금까지의 실험들은 만화 매체가 작동하는 핵심과 배치되었다. 과연 스마트폰 시대의 기술적 상호작용이 지금까지의 만화독해 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

만화의 작동 방식은, 어쩌면 ‘숟가락’이라는 발명품처럼 탄생과 동시에 완성된 형태가 아니었을까?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이러한 비관적 전망이 틀리게 되기를 내심 기대해본다.

만약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고고고>는 만화 매체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할 작품이다. 만화와 웹툰의 실험은 계속 될 것이고, 가능성의 정도를 따져 희망을 계산할 필요는 없다. 실험의 장을 목격하는 즐거움이 있기에, <고고고>를 추천한다.

 

 

YOUR MANAⒸ선우훈
 

<고고고>(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