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tic
[스크랩]
리타의 ~야한 만화가 좋다~ㅣ①레진 코믹스와 탑툰

리타의 ~야한 만화가 좋다~ㅣ①레진 코믹스와 탑툰

성인만화는 셰익스피어를 꿈꾸는가?

 


 이연숙(리타)


‘레진코믹스’의 성인물 순위(위), ‘탑툰’의 성인물 순위(아래)





성인물은 돈이 된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섹스와 폭력이라는 소재는 인간을 매혹해왔다. 움베르토 에코는 일찍이 베스트셀러의 조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각 장마다 발기가 상세하게 묘사된 장면이 나오거나, 또는 공포와 죽음이 교묘하게 혼합되어 있는 소설들”.1)


물론 이러한 작품들이 ‘고전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느냐 없느냐는 또 다른 조건들이 필요하다. 아무 의미도 없이 섹스와 폭력만 쏟아지듯 묘사되는 작품의 경우는(물론 내 취향이기야 하겠지만), 굉장히 잘 해내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성인물은 항상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 왜냐? 돈이 되니까. 당장 돈이 되는데 대체 셰익스피어가 되고자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탑툰'과 '레진 코믹스'의 차이?

올해 ‘탑툰‘은 창립 2년 만에 매출 300억 원을 달성했다.2) ‘탑툰’은 소위 ‘남성향’ 콘텐츠를 주력으로 다루고 있기에, 이들이 점유한 포지션은 ‘레진코믹스’의 것과는 분명 다르다. 요컨대 현재 ‘탑툰’의 완결 인기작 1위는 <천박한 년>(글/돌콩, 그림/태발) 인데, 어쩐지 제목만 듣고도 내용과 주제를 간파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절대 그럴 수 없음에도 말이다.


어쨌든 <천박한 년>은 ‘레진코믹스’의 어딘가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어딘가 중립적이고, 어딘가‘여성향’스러운 분위기에서는 연재되기 힘들었을 만화다. 굳이 길게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냥 한 번만 ‘탑툰’과 ‘레진 코믹스’에 접속해보시라. 두 사이트가 뭐가 다른지는 그야말로 ‘ㅂㅂㅂㄱ’이다.



 

<아우의 남편>(타가메 겐고로), ‘탑툰’에서 현재 서비스 중.





'탑툰'의 성인물: 모호한 '수컷' 정체성

헌데 두 사이트가 그렇게나 다른가? 글쎄, 애매한 문제다. ‘네이버’와 ‘다음’이 그렇게나 다르지 않듯, ‘탑툰’과 ‘레진 코믹스’ 역시 첫인상을 제외하곤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물론 ‘레진 코믹스’에는 탑툰에서 연재되는 포토그래퍼 ‘로타’의 화보가 없고, ‘탑툰’에는 <환관제조일기>(김달)가 없다. 몇몇 독자의 입장에서는 미녀들의 ‘섹시화보’와 <환관제조일기>가 각각의 플랫폼의 특색을 유지해주는 최후의 보루일 수도 있다.


그러나 ‘탑툰’의 김춘곤 대표가 밝혔듯3), 성인 콘텐츠를 결제하는 소비자가 계속해서 성인 콘텐츠만을 찾는 것은 아니다. 비약하자면 <천박한 년>을 보기 위해 최초로 결제하게 된 독자가 <딸기밭>(하양지)을 결제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아우의 남편>(타가메 겐고로) 를 우연히 보게 될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이러한 작품들이 ‘탑툰’을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만들어 준다거나,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결코 없다. 그저 ‘탑툰’의 대문에서 느껴지는 거북할 정도의 ‘수컷’ 냄새와는 달리, 실제 그들이 팔고 있는 작품들이 깡그리 ‘남성향’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탑툰’이 ‘남성향’ 플랫폼이 아니게 되는가?





레진코믹스의 <밥보다 남친>(좌), <어디까지 해봤어?>(우)





'레진 코믹스'의 성인물: 기계적 중립

이에 대한 대답을 잠시 미뤄놓고 ‘레진 코믹스’로 눈을 돌려보자.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BL과 백합, ‘퀴어’물이 연재되는 ‘레진 코믹스’는 흔히 ‘여성향’으로 분류된다. 실제로 현재 ‘레진 코믹스’의 성인 연재물 1위는 <밥보다 남친>(R수없음)으로, <천박한 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목에서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3위인 <어디까지 해봤어?>(비비) 역시 <밥보다 남친>과 마찬가지로 일상물이라는 점이다. 이 두 작품은 여성 작가가 자신의 욕망과 그에 얽힌 경험들에 대해 ‘썰’을 푸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물론 이들이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방식은, ‘탑툰’의 ‘썰만화‘류 와는 완전히 구분된다. 이들의 썰에는 관음증적 욕망이 허락되지 않는다. 사실 너무 조곤조곤하게 썰을 푸는 바람에, 성인물이라기보다는 성교육 학습만화에 가까울 정도다.


내가 보기에 ‘레진 코믹스’는 여성이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해 말할 때의 방식과 그 한계를 상당히 명확하게 설정하고 있는 것 같다. 해당 작품들에 대한 나의 선호와는 별개로 말이다. 어쨌든 ‘레진 코믹스’가 ‘보기에’ 여성적인 욕망만이 ‘여성향’으로 선정되어 연재될 기회를 얻는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성인물 2위에는 <몸에 좋은 남자>(이원식/박형준) 이, 4위에는 <속죄캠프>(람작) 이
연재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탑툰’으로 가도 무방하지 않은 상당한 퀄리티의 ‘남성향’ 작품
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 '코인'

물론 ‘레진 코믹스’는 성인물의 장르적 다양성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탑툰’과는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네 작품을 예시로 들며 ‘레진 코믹스’의 내적 모순을
지적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을 시작했으니 끝을 내자. ‘레진 코믹스’가 어딘지 모르게 특별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그들에게 정치적 혹은 예술적인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돈이 되는 작품들을 팔다 보니 그리된 것일 뿐이다. 코인이 곧 신념인 셈이다.



 

‘탑툰’의 인기작 <천박한 년>.





‘탑툰’이 애매하게 ‘남성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에게 ‘남성의, 남성을 위한, 남성에 의한’ 플랫폼이 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탑툰’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300
억의 연 매출이다. ‘2025년까지 탑툰을 웹툰계의 유튜브’로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것은 돈이 되는 콘텐츠지, 플랫폼이 생산해내는 ‘가치’ 따위가 아니다. 따라서 ‘레진 코믹스’와 ‘탑툰’은 본질적으로 같은 논리 아래에서 작동하는 플랫폼인 셈이다.


이들에게 ‘남성향’이나 ‘여성향’이라는 수식이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런 수식은 정말로 그러한 서브컬처 내에 속해 있는작품과 창작자,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말이다. 기업은 문화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만약 이들이 기꺼이 ‘남성향’과 ‘여성향’이라는 ‘낙인’을 떠안는다면, 그것은 물론 ‘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탑툰’ 인기작 ‹H캠›의 명대사(그냥 넣어봤다.)




'야한 만화'를 옹호하며

나는 모든 문제를 플랫폼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예술의 가치를 등한시한 탓이라고 할 셈인가? 무수히 많은 ‘현상계의 쓰레기 더미’가 생산된 까닭이, 오로지 도래한 신자유주의의 사악한 자본가로 인해 고통받고 신음하는 예술가를 구제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할 셈인가?
 

다행히도 그렇지 않다. 나도 사람이니 취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떤 작품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렇지.’ 싶을 때가 있고, 또 어떤 작품은 ‘진짜 이런 작품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지금까지 나는 한국 웹툰 플랫폼 시장에는 이념도 영혼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별적인 작품들, 이제부터 내가 변호하거나 최선을 다해 공격할 작품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1) 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04, 65p.
2) 
노컷뉴스 기사(링크)

3) 이데일리 기사(링크)

 

YOUR MANAⒸ리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