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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비평
 

단지
재현의 윤리

 

이우에오
 

“도덕은 트래킹 숏의 문제이다.”
뤽 물레 ‹Sam Fuller : In Marlowe's footsteps›(1959)

 

영화 <카포>는 창작물의 윤리적 표현에 대한 논의를 촉발한 작품이다.





1960년 <카포>라는 홀로코스트 영화가 발표된다. 개봉 당시 상당히 좋은 평을 받았고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일 년 후 감독 겸 비평가인 자크 리베트의 손에 의해 매장당한다.

<카포>의 극 중 엠마누엘 리바가 전기가 흐르는 수용소 철조망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장면이 있다.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는 이 장면의 미학적 마무리를 위해 철조망에 걸쳐진 그녀의 손을 트래킹 숏(움직이는 연기자를 따라가면서 일정한 숏의 크기를 그대로 유지하는 촬영장면)
으로 담아냈다.

비평가인 리베트는 이를 '천함에 뛰어든 행위'라며 단호하게 비난했고, 이 이후 영화 속 재현의 윤리에 대한 논의가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는 창작물이 사건을 윤리적으로 합당하게 다뤄야함의 중요함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피해의 사실을 재현한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창작물로서 나온 이상 그것은 제삼자(독자, 관객 등)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소비'되는 매체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건의 어디까지를 들어내고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줘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설명해도 괜찮은 것인가, 이미지를 어디까지 드러내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질문은 모든 창작물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작년에 <단지>라는 웹툰을 처음 봤을 때도 이러한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단지>에서 나타나는 피해의 묘사는 도덕적인가?





성차별과 가정폭력을 수기 형식으로 그려내 주목을 끌어낸 작품 <단지>(레진코믹스, 단지)의 타이틀 그림.





<단지>는 가정 폭력에 대한 피해를 작가 자신의 경험과 여러 독자의 사연을 받아 1, 2부로 구성한 수기 형식의 웹툰이다. 1부에선 주로 작가 자신의 경험을 나열하였다.
 
<단지>는 사실 자기 경험에 대한 성찰이나 무언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웹툰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게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연민도 자신의 감정인 것이고 그걸 만화로 표현한다고 해서 만화로서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폭력 피해를 극적으로 묘사한 컷들이 독자에게 어떻게 ‘소비’당할지 걱정스럽게 보이긴 했고, 그것이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단지 내 개인적 감상일 뿐이고 그것에 대해 작가에게 뭐라 요구할 생각도, 그래도 되는 권리도 없다. 그렇지만 2부에서의 표현 방식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부모의 뜻에 반한 피해자에게 남동생이 폭력을 가하는 장면.




두 가지 사연 속의 가정 내 성폭력 장면 묘사.





작가는 사연 속 독자들이 피해를 입는 장면의 괴로움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세심하게’ 연출했다.
 
뺨을 맞아 드라마틱하게 안경이 날아가는 컷을 시작으로 이후 두 컷에 걸쳐 황망히 쓰러진 피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어린 딸의 치마 속에 손을 넣는 장면이 그대로 보이고, 또 다른 가정 내 성폭력을 다룬 편은 효과음과 앵글이 극적으로 구성된 컷으로 피해 사실을 묘사한다.
 
확실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사실 이렇게 묘사된 장면을 봐야만 그 괴로움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장면들은 사건의 핵심부이고 사실의 재현이지만 꼭 이런 식으로 묘사되어야 했을 장면은 아니다. 충분히 윤리적이지 못하다.
 
이렇게 자극적이고 ‘세심한’묘사는 폭력을 전시하고 피해 사실을 납작하게 소비하게 한다. 또한, 이러한 재현의 방식은 그 평면적인 이미지 뒤에 숨은 가정 폭력의 구조와 문제점을 간과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

 

스펙터클이 되는 진실
 
<단지>를 계속 봐온 독자들은 이 웹툰에서 가정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다루어질 것을 알고 있다.
 
사회 고발의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에서 그 고발하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모두 알고 있을 때, 창작자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선택하기 쉬운 길은 사실을 통한 자극이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진실만이 호소력을 가진다.
 
<단지>도 강렬하게, 극적으로 묘사된 피해현장을 통해 독자를 부른다.



지켜야 하는 거리감
 
작가는 한 인터뷰 기사에서 ‘폭력, 학대의 순간을 직접 묘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한다. 가해자를 묘사할 때 표정이 아닌 뒷모습을 그리는 식으로 표현하고, 선정적인 묘사는 지양했다고 한다. 작가도 윤리적인 부분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의도가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창작자로서 어떠한 장면을 그려낼 때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단지>의 주제 의식은 훌륭하다. 웹툰이라는 접근성 좋은 매체로 가정 폭력이라는 주제를 크게 다뤄 여러 논의를 하게 만든 영향력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주제 의식이 훌륭하다 해서 재현, 표현의 문제를 안 짚고 넘어갈 수는 없다.
 
표현 사실을 그대로 전시하는 형식은 문제 의식만 죽 나열하는 것과 다름없고, 좋은 작품이라 평가받기는 쉽지만 이슈가 되는 건 한순간뿐이다.
 
이야기의 부재로 이 웹툰의 감상이 동정과 분노에서 더는 확대되지 못하고 단순하게 소비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는 자크 리베트의 말처럼 항상 의심해야 한다. 확실한 사실을 담아내더라도 자기가 말해선 안 되는 것, 알 수 없는 것들을 배제해야 한다. 지켜야 하는 거리감 없이 스펙터클로서 소비되는 재현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YOUR MANAⒸ이우에오


<단지>(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