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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나다

비평

<학교를 떠나다>
일상툰과 자전적 작품의 관계 맺기


 

오혁진
 

버선버섯 작가의 <학교를 떠나다>. 일상툰으로는 드물게, ‘고교 자퇴생’이라는 자전적 요소를 구체적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혼동되는 만화 용어가 있다. 바로 ‘일상툰’과 ‘자전적 작품’이다. 두 '장르' 모두, 작가가 작품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일상툰과 자전적 만화는 실제로 많은 부분이 겹친다. 두 장르를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이 두 용어가 독립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오히려 드물 것이다.

일상과 자전은 어떻게 다른지, 두 장르의 관계에 모호한 지점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학교를 떠나다>를 통해 논하고자 한다.

 


자전적 작품이란 무엇일까?

<자서전 이론에 대한 몇 가지 고찰 : 필립 르죈의 이론과 그 반향을 중심으로>(이가야)라는 논문에 다음과 같은 문장 등장한다.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암묵적인 서약을 하고 자전적 쓰기의 계약을 이행한다."

자전적 작품이란 ‘한 실재 인물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소재로 하여 개인적인 삶, 특히 자신 인성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서술한 회상형 이야기’다.

즉, 작가-화자-주인공의 동일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구조를 갖는다. 그래서 자전적 작품은 저자와 독자 사이의 일종의 진실 계약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문제는 기억과 상상력 사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기억의 고리들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상의 작용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기대와 달리 ‘픽션’은 온전한 ‘상상력’으로, ‘자전적 글’은 온전한 ‘기억력’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자전적 작품은 ‘기억’에 의존하는 글쓰기지만, 그 기억은 언제든지 작가의 관점이나 서사적 전략에 따라 수정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전적 작품이 자서전, 자전적 소설 같은 다양한 하위 장르를 가능하게 하는 이유다.
 


일상툰은 자전적 작품의 하위장르인가?

일상툰은  ‘작가-화자-주인공’의 동일성을 유지한다.


일상툰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초창기 웹툰 <스노우 캣>, <마린 블루스>에서도 이러한 서술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을 통해 과거를 생생하게 복원하면서도, 화자를 통해 과거의 경험과 미적 거리를 확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경험자아인 ’주인공‘이 대화와 행동을 통해 과거를 재현하고, 서술자아인 ’화자‘가 그 과거에 주석을 달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전적 작품에서 발달한 서술방식이다.

실시간으로 웹상에 연재되는 일상툰이 1인칭인 자전적 작품의 화법을 택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로 보인다. 이는 일상툰과 자전적 작품의 구분이 서술방식 외에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상툰이 어떤 서술방식을 통해 서술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딱히 구체적인 서술의 목적이 없기에, 우리는 그것을 일상툰이라 부른다.

실제적 개인의 역사(일상)는 조직적으로 전개되지 않으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인생의 큰 사건'을 반추하는 자전적 작품과, '인생의 큰 사건을 제거한 일상의 여집합'을 다루는 일상툰의 차이는 결국 소재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 소재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일상의 편린을 이야기로 만들려는 추동력의 유무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는 작품을, 자전적 작품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일상툰과 자전적 작품은 ‘작중-화자-주인공’의 동일성과, 경험 자아/서술 자아의 재현방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툰’의 파편화된 이야기는, 때때로 ‘장기 연재’를 통해 일관된 서사로 구축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11시즌에 접어든 <어쿠스틱 라이프>다. 긴 연재기간 동안 달라진 그림체만큼이나,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작가의 삶 또한 여러 변화를 겪는다.

그 사이 작가는 많은 사건을 겪고 많은 사람과 만나며, 최근에는 출산과 육아를 새로이 경험한다. 결국 이 같은 변화는 중대한 기점을 기록하고, 작가에게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일상의 누적이, 사후적으로 자전적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다.

 


일상적 자전, 자전적 일상의 가능성
 

<학교를 떠나다>는 ‘현재’가 아닌 자퇴 전후의 시기인 ‘과거’에 초점을 맞춘다. ‘왜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자퇴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퇴 전’ 시기는 다시 초중고 시기로, ‘자퇴 후’ 시기는 공모전 당선 이전과 이후로 촘촘히 나뉜다. 작가는 이 과거의 시간 안에서, 학교를 거부했던 자신의 내면과 대면한다. 또, 자퇴 후 자유의 무게에 짓눌린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한다.

<학교를 떠나다>에서, 과거는 끝나버린 존재가 아니다.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주며, 이는 다시 과거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역동적으로 과거와 현재가 순환할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이 자전적 작품이면서 동시에 ‘일상툰’이기 때문이다.

‘일상툰’은 현재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그 흐름 안에서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즉, 시작점이 현재의 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이야기가 과거로 이동하더라도 결국 다시 현재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다>는, 현재의 서술 자아가 장면의 상단이나 하단의 주석 형태로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인물인 주인공의 형태로 가시화한다.

즉 ‘일상툰’의 주인공처럼 현재 일상을 경험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다시 이러한 일련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

11화 <선생님 말씀>의 에피소드를 보자. 현재의 경험 자아인 작가는 밤늦은 시간에 만화 작업을 한다. 작가는 볼펜을 찾던 중 수년간 잊고 있던 선생님을 떠올린다.

과거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훌륭한 어른이 아니라 행복한 어른이 되라 당부한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 자아인 어린 작가는 선생님 말씀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무언가 소중하고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느낄 뿐이다.

회상이 끝났다. 현재로 돌아온 주인공은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긴다. ‘열심히 행복해야지’.

 
 
 

 

자전적 작품이 일상툰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현재’가 아닌 ‘과거’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작가는 과거의 복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보통 자전적 만화는, 경험 자아인 ‘주인공’과 서술 자아인 ‘화자’라는 두 개의 층위로 구성된다. 화자는 인물의 대사 외에 장면의 상단이나 하단의 주석 형태(나레이션)로 나타나기도 한다.

<학교를 떠나다>는 자전적 만화의 관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화자를 재현하는 방식 역시 세분화한다. ‘화자’가 반드시 하나의 인물로 고정되지 않으며, 주인공과 친구로 분리되는 것이다.

30화 <그때 그 시간>에피소드를 보자. 주인공은 과거를 돌아보고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이어 옆에 있던 ’별‘캐릭터-실제로는 주인공과 동일한 화자-는 주인공을 다독인다. 그리고 주석이 등장해, 나레이션의 주체(작가)가 화자(주인공과 친구)와 동일함을 암시한다.
 


 

 

<학교를 떠나다>의 서술 자아는 3가지 형태 -주석, 주인공의 대사, 주인공과 친구의 대사-로 세분되어 있다.
 

  
 
 

자전적 만화가 아닌 일상툰은 가능한가 


<학교를 떠나다>의 단행본은 완전히 새롭게 작업한 것으로, 이전 작업과 다른 내용과 전개방식을 보여준다. 특히 자퇴 후 작가가 되기 직전까지의 과거를, 일상툰과 달리 연대기적 흐름에 따라 서술한다.

단행본은 통일된 맥락을 갖는 ‘연속적’ 이야기이고, 웹툰 연재분은 일상을 보다 섬세하게 담아낸 ‘삽화적’ 이야기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자전적 이야기에 어떤 형식이 더욱 적합한가가 아니다. 형식마다 고유의 개성이 존재하며, 그것은 작가의 경험, 작품의 주제에 따라 선택된다. 자전적 작품의 하위장르인 ‘일상툰’은 그러한 선택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큰 사건을 제거한 일상의 여집합을, 자신의 목소리로 정제하는 것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일상의 누적과 과거의 반추는, 이미 인생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고 있고, 과거를 발행하는 순간 나 자신의 해석을 피할 수 없다. 무의미한 과거에 대해 무의미한 표현을 하더라도, 그것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현재를 만난다.

결국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면, 자전적 만화가 아닌 일상툰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이며, 스스로 어떤 질문을 던져왔는가. <학교를 떠나다>를 읽으며,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YOUR MANAⒸ오혁진

 
 

<학교를 떠나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