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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은 만화인가 ③

매체 비평ㅣ웹툰은 만화인가


뜨거운 매체, 차가운 매체



 

손지상

 

도구는 우리를 만든다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 : 인간의 확장>(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뜨거운 매체’와 ‘차가운 매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뜨거운 매체는 정보의 밀도가 높고 전달량이 풍부하다. 한 가지 감각기관으로 ‘몽타주’ 되어 있으며, 자기완결적이고 배타적이기에 수용자가 참여할 여지가 없다. 수용하는 훈련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미를 ‘해석’해내야 한다.
 
반면 차가운 매체는 정보의 밀도가 낮고 전달량이 부족하다. 여러 감각기관으로 파편화되어 있어 수용자가 참여할 여지가 많다. 감성적(혹은 감각적)이어서, 굳이 해석하려 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의미를 쉽게 받아들인다.
 

 
 


 

맥루한은 “우리가 도구를 만들면, 도구가 우리를 만듭니다.” 라고 말했다. 이는 만화가 매체 별로 연출방식이 다른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영화는 ‘뜨거운’ 반면 TV는 ‘차갑다'


"영화는 활자나 사진처럼,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문자 교양 수준이 아주 높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비문자 문화적 인간을 당혹스럽게 한다.

카메라가 이동하여 인물을 쫓거나 인물을 시야에서 빼버리는 것을 문자 문화적인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지만,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인물이 필름 끝에서 보이지 않게 되면,아프리카 사람들은 그 인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문자 문화적인 관객들은 선형성의 논리를 의심하지 않고, 한 줄 한 줄 인쇄되는 마음의 이미지를 뒤쫓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필름에 나타나는 연속적인 움직임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 인간의 확장>, 커뮤니케이션북스, 396쪽

 
 
만약 출판만화의 문법이 영화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면, 필연적으로 뜨거운 매체의 특성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나 책을 읽듯 ‘해석’하는 과정이 요구될 것이다.
 
반면 웹툰은 차가운 매체인 텔레비전 드라마와 유사한 연출 문법을 보인다. 그렇다면 웹툰은 상대적으로 더 파편화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웹툰이 사용하는 컴퓨터 화면(혹은 스마트폰 화면 등)이 대표적인 차가운 매체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의 신경과학자 수전 그린필드의 <마인드 체인지>(북라이프)에서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디지털 기술 환경에 적응하는지를 밝힌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화면으로 무언가를 읽을 때는 눈의 피로도 빠르고 독해력도 떨어지며, 짧은 글을 빠르고 얕게 읽는 데 더 적합하다고 한다. 

디지털 기술에 적응한 우리는 현재 과거보다 더 주의 지속 시간이 짧아졌으며, 수동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려 들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웹툰, ‘차가운’ 연출의 유사성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는 분량과 주의집중에 있다.
 
영화는 주로 통제된 환경인 영화관에서 보기에 분량에 제한이 있고, 관객의 주의집중도 높다. 어느 정도 자극이 적고 정적인 장면도 전체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 허용된다.
 
반면 텔레비전 드라마는 통제되지 않는 집에서 보기에 언제든 다른 채널로 돌릴 수 있다. 따라서 분량의 제한이 없고, 관객의 주의집중도 낮다. 계속해서 주의집중을 유도해야 하고, 이해도 어렵지 않아야 한다.
 

 
 
 

KBS 일일드라마 <여자의 비밀>의 방송화면. 주로 등장인물의 얼굴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혼란을 줄이기 위해 앵글의 변화도 크지 않고, 몽타주적 비약이 적으며 연속적이다.

 

 
 


물론 출판만화 경험이 있는 작가의 작품은 (칸마다 다양한 앵글과 크기를 사용하려는) 영화적-몽타주적 연출을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류기훈/문정후의 <고수>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영화가 가진 영상의 다이내미즘을 포기한 대신, ‘극적인 내용’으로 주의를 끌어야 한다. 따라서 플롯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대사에 의존한다. 이러한 특징은 웹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텔레비전 드라마는 영화처럼 비약하는 몽타주와 정반대로, 쇼트를 연속/지속적으로 연결한다. 분량의 제약이 없기에 ‘극적인 영상’으로 내용을 압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에는 얼굴을 인식하는 모듈과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모듈이 선천적으로 구비되어있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지, 텔레비전 드라마는 ‘토킹 헤드(talking head)’라고 야유 당할 만큼 얼굴의 클로즈업에 의존해 구성된다.

 
 

출판만화 <용비불패>로 유명한 스토리 담당 류기운과 그림 담당 문정후 콤비가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웹툰 <고수>의 한 장면. 출판만화-몽타주적 칸 연결이 엿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웹툰은 텔레비전 드라마와 문법이 유사하다. 앵글을 유지한 채 클로즈업 쇼트와 풀 쇼트를 반복하고, 주로 얼굴의 클로즈업과 대사로 플롯 내용을 전달한다.

영상적 묘사를 비약하여 속도감을 내기보다 연속 동작으로 지연시켜 이해의 복잡함을 줄인다.
 

 
 
 
 

네이버 웹툰 <헬퍼 2 : 킬베로스>의 한 장면. 텔레비전 드라마와 유사한 연출을 확인할 수 있다.

 

 
 


웹툰의 만화력은 대부분 오토모 카츠히로와 이케가미 료이치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다.

이는 이시카와 준이 주장하는 (출판만화-몽타주적) 만화력이 낮아서가 아니라, 컴퓨터 화면으로 접하는 정보인 웹툰이 ‘차갑기’ 때문이다.
 


이케가미 료이치는 웹툰적이다?


이케가미의 액션 연출은 미리 살펴봤듯 정적이다. 스토리 구성과 연출의 약점을 가진 그는 주로 스토리 담당에게 시나리오를 받는 형식으로 작업한다.
 
그의 어색한 액션 장면 연출과 묘사는 스토리 담당의 시나리오 속 행동지문을 직역하여 생략 없이 옮기는 데서 발생한다. 마치 편집하지 않은 필름을 그대로 늘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코이케 카즈오와 작업한 <아이우에오 보이(I·餓男)>, <크라잉 프리맨>, 브론슨과 작업한 <히트 -작열->등은 스토리 담당이 따로 있는 작품이다(각 스토리 작가의 시나리오 원고는 영화 시나리오와 유사하다).
 

 
 
 
 

코이케 카즈오 글, 이케가미 료이치 그림 <크라잉 프리맨>의 한 장면. 이케가미 료이치의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일본의 제책 방식상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다.)

 

 
 

위의 <크라잉 프리맨>을 살펴보자. 각 칸은 시나리오의 지문으로 기계적 환원이 가능하다.
 
제 1칸: 프리맨, “탓!” 하고 노파를 향해 단도를 내지른다.
제 2칸: “슥...!” 하고 칼끝을 옆으로 피하는 노파.
제 3칸: “둥실” 하고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노파.
제 4칸: “스윽!” 하고, 노파가 잔상을 남기며 배의 난간 위에서 뒤로 물러난다.
제 5칸: 프리맨, 노파의 괴이하고 빠른 움직임을 보고 놀란다.
제 6칸: 프리맨, 말을 잃고 노파의 모습을 바라본다.

 
보는 데 무리는 없으나, 어딘가 속도감이나 긴박함이 부족한 느낌이 든다. 각 칸의 연결이 유기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수>를 출판만화 형식으로 재배열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명확하다.

 
 
 
 
 


<고수>의 액션 장면을 출판만화 형식 재배열한 것. 읽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반대로 <크라잉 프리맨>의 해당 장면을 웹툰 방식으로 재배열하면 어색함이 줄어든다.
 

 
 

위의 페이지를 위의 페이지를 읽는 방향을 고려해 일부 칸의 좌우를 반전한 뒤, 웹툰 형식으로 칸의 크기를 조절해 세로로 재배열한 것. 어색함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영화와 달리 출판만화는 움직임도 소리도 없기에 칸마다 새로운 정보를 부가해야한다. 여기서 몽타주의 다이내미즘이 도입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만화가는 일반적으로 스토리 담당이 전하는 영화 시나리오 형식의 스토리를 실제 영화보다 더욱더 몽타주에 근거해 영상적으로 재구성한다.
 
반면 이케가미의 경우 시나리오를 직역한다. 이로 인해 몽타주적 영상의 다이내미즘을 잃는 대신 내용과 필력으로 주의를 집중시킨다.
 
이케가미의 만화를 세로로 배열하는 경우, 웹툰과 마찬가지로 ‘차가워’진다. 몽타주적으로 ‘읽는’ 독법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보는’ 독법으로 변화한다. 스크롤 하는 행위로 인해 화면의 변화가 있다는 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요약하면 웹툰이나 텔레비전 드라마와 같은 ‘차가운 매체’의 경우, 몽타주와 같이 칸과 칸 사이의 다이내미즘을 상대적으로 덜 요구한다.
 
영화의 방법론으로 드라마를 비평하지 않듯, 웹툰을 비평할 때는 출판만화와 다른 방법론이나 분석 틀이 필요한 것이다.

 

 

 

웹툰은 만화인가 ③ 끝(④에서 계속 됩니다)


 

YOUR MANAⒸ손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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