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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 소녀

비평

징벌 소녀
마법소녀를 제외한 모두는 용서받았다

 


 로카

 

※ 글에 이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법소녀는 교내에서 급우를 왕따시키고, 마법소녀 아닌 주변인들도 이에 동조한다.


 
 

평화시 평화고에는 계시자로부터 간택 받아 세계를 지키는 마법소녀들이 있다.
그들의 겉 모습은 정의를 지키는 마법소녀지만, 그들은 부여받은 권력을 이용해 학교에서 눈에 띄는 급우 금희를 왕따시킨다. 그러면서도 모든 처벌을 피해 가는 악한 이면을 지닌다.

마법소녀들은 금희의 동생 주희를 죽이고도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징벌소녀>는금희가 마법소녀들에게 동생의 복수를 결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금희는 '길로틴'이라는 이름으로 마법 소녀들을 한 명 한 명씩 징벌해 나간다.

 
 
 

숨겨진 계시자였던 주희와 그에게 간택받은 마법소녀들.

 
 


'마법소녀들'만의 세계

우리가 익히 아는 마법소녀에는 원형적 세계가 있다. 선택받은 미소녀 전사들이 우주에서 온 괴물과 분투하며 지구를 지켜내는 <세일러문>의 세계다.


또 그 세계를 보며 떠올릴 만한 의문들인, '소녀들은 어떻게 간택받는가?', '괴물들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등을 극단까지 몰고 간 세계가 있었다. 미소녀와 괴물이 본질적으로는 같으며, 거대한 악의 세력 큐베가 그들을 조종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다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의 새디스틱한 세계다.


<징벌 소녀> 역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가 그랬듯 이상적인 영웅으로서의 마법소녀 서사를 비튼다. 그러나 슬프게도, <징벌 소녀>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악에 대항해 싸울 수 조차 없다. 그 곳에는 우리가 혐오할 큐베조차 없다.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악'이기 때문이다.

맞서 싸울 상대조차 없는 부조리한 세계에서 소녀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거나.

 

 
 

아름다움의 전사, 일루미나티 뷰티!


 
 
 

최초로 죽음이 예고된 악당은 아름다움의 전사, 일루미나티 뷰티다. 뷰티는 마법소녀 중 가장 주목받는 존재로, 자신을 돋보이게 해 주는 것이 아름다움임을 잘 알고 이 지위를 십분 이용해 다른 소녀들을 폭행한다. 괴롭힘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주인공을 괴롭힌 이유도 자신보다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금희가 찾아낸 뷰티의 약점은 이 아름다움이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뷰티는 급우 경희를 경계한다. 경희는 한때 못생겼었고, 과거가 알려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타고난 미모를 안경으로 가리고 있던다.

평화고의 마법소녀들은 이와 같은 패턴의 비극을 공유한다. 그들이 지니게 된 마법소녀로서의 위치는 마법소녀가 되기 전의 삶과 대치된다.

아름다움의 소녀는 한때 추녀였고, 전기의 소녀는 장래가 촉망되는 수영 선수였으나 전기의 속성을 지니게 된 뒤 수영을 하지 못하게 됐다. 사랑의 소녀는 짝사랑하고 있는 단 한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하는 동시에 알기를 두려워한다. 정의의 소녀는 정의롭지 못한 방관자였던 과거에 죄책감을 지닌다.

결국 주목받는 화려한 마법소녀로서의 모습이, 언젠가는 마법소녀가 아니게 될, 온전한 그들 자신으로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선함과 정의로움이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세계에서, 뷰티는 마법소녀로서 주목받기 위해 요구되는 일들을 할 뿐이다.


 
 
 

과연 그 세계에는 그들뿐일까?

 

이 마법소녀들에게 주어진 세계, <징벌소녀>를 읽는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는 더 추락할 곳도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 그 곳에는 희망 없는 비극만 있다. 소녀들은 대중에게, 또 독자에게 비극의 차력쇼만을 연신 선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소녀들은 미숙한 중학생 계시자에게 간택되어 마법소녀가 된 순간부터 심판대에 놓여 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세계는 대중이 '아름다움'을 옹호하며 아름다움이 저지르는 악을 방관하는 동시에 언제나 '사이다'를 원하는 곳이다.


마법소녀 채널이 따로 있는 작품 내부에서도, 또 그들의 악한 행동에 독자들이 분개하는 작품 외부에서도 소녀들은 심판대에 세워진다. 마법소녀가 되어 허영에만 휩싸여 있는 그들은 마법소녀 차림으로 과거에 지은 죄, 또 현재 짓고 있는 죄를 추궁받는다.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지를 시험받는다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작중에서 고난을 뛰어넘는 것이 마법소녀가 할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들이 진정 시험받고 있는 부분은 '반성 발전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다.

그들이 진 짐과 지은 죄는 너무 무거워 애초부터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성장은 용인되지 않는다. 남을 죽이는가, 내가 살해당하는가, 살아남는가, 희생하는가 사이에서의 선택만이 가능하다.


물론 마법소녀가 언제나 발전의 가능성을 지닌 영웅이길 요구할 권리는 없다. 마법소녀의 전투라는 변태스런 쇼가 선과 악의 명백한 싸움이길 원하지도 않는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마법소녀의 이야기가 모든 비극적인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추악해진 마법소녀의 이야기보다 낫다는 말도 아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 만화가 상처받은 미숙한 인간상들에서 가능한 모든 추악함을 이끌어내며, 이를 목도한 이들을 전부 공모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이 만화를 읽은 나를 포함해.

 
 

 

이프리트는 왕따였던 과거를 숨긴다. 고통이 위로될 틈은 없었고, 이프리트는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왕따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이들마저도 똑같이 겪기를 원한다.

 
 
 

선택지는 없다

 

초반에 악당으로 보였던 마법소녀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은 뒤,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진짜 흑막' 이프리트를 살펴보자.

마법소녀들의 태생적 비극인 아름다움의 마법소녀는 아름답지 않았고, 전기의 마법소녀는 수영선수였고, 완벽한 부잣집 아가씨는 물의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 친구를 죽였다. 이 모든 것은 이프리트에게서 시작되었다.

이프리트는 마법소녀가 되기 전인 중학생 시절 왕따였고, 그 가해자는 선대 마법소녀였다. 미숙한 중학생이던 계시자는 가해자의 행동에 실망해 전투 중에 능력을 빼앗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를 알게 된 피해자는 계시자에게 요구해 불의 마법소녀 이프리트가 된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다른 이들 역시 겪길 원하는 악의를 품은 채, 계시자에게 잘못된 간택을 종용한다.

<징벌소녀>의 태초부터, 이렇게 철저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적 구도가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이상 누구도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방관자 역시 가해자이므로.

죽음으로서만 징벌받을 수 있는 가해자와 가해자로 거듭나 복수하는 피해자라는 서사의 끝없는 쳇바퀴다.

 

 

 

'사이다'만을 원하는 잔인한 세계가 비판적으로 묘사되는 듯하지만, 만화의 서사는 독자에게도 '사이다'를 향한 욕망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신 함께 복수와 처벌을 원하기를 종용한다.


 
 

이 이분법적 세계에서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만화를 읽는 독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작중의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독자 역시 원한다. 원하기를 종용받는다.

금희가 복수에 성공하는 것은 처음부터 내정돼 있었다. 악당들에게 동정의 여지는 없고, 복수자도 복수를 마치며 내정되어 있던 파멸에 다다른다. 독자는 이 잔인한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작중의 학생들과 함께 '사이다'를 원하는 가해자가 된다.


 
 

 

이프리트가 왕따당하는 것을 방관하던 정의의 마법소녀 저스티스 캄파뉼라. 그는 유일한 생존자로서 새로운 마법소녀 계시자가 된다.

 
 
 

실패한 가짜 희망

 


단, 작중의 방관자였던 정의의 마법소녀 저스티스 캄파뉼라만은 반성과 갱생의 가능성을 부여받는다.

이 부분이 아주 미심쩍다. 어떤 가능성도, 어떤 구원도 없던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의 복수 서사가 끝난 뒤, 방관자로서의 죄책감을 지니고 있던 마법소녀만이 살아남아 새로운 계시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흔들림 속에서 정의를 찾아내는 사람을 보았다. 누구보다도 단단했었던 그들을. 그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면 세상은 분명 바뀌어 나갈 것이다."

 


난데없이 희망으로 가득 차 튀어나오는 캄파뉼라의 독백은 무책임하다. 비극과 절망으로 가득 찬 세계를 제시한 뒤 근거 없는 희망의 결말이 튀어나와 버리는 것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희망인가? 추악함의 한계를 시험받는 고통스러운 심판대에 올려진 소녀들은 한껏 괴롭힘을 당한 후 전부 처형된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반성한 유일한 생존자는 어디에도 없던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는 대부분의 싸움에서 동떨어져 나와 있던 인물이다. 작중 내내 죄책감으로 능력을 봉인 당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싸움에도 직접 참여하지 않으며(혹은 못하며)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얽매고 있던 그는 어디선가 희망을 찾아내 '방관자'였던 자신의 과거를 극복해 낸다.

이 결말이 오히려 심판의 과정보다 더 잔인하다. '희망의 선언'으로 인해 독자의 방관자적 대피처가 되어준 캄파뉼라는 완전히 선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독자가 원하는 것'='사이다'를 위해 존재하는 세계와, 그것을 즐길 것을 요구받은 독자는, 이 독백으로 단숨에 면죄부를 부여받는다.

이제 '악의 굴레'는 끊어졌으며 새롭게 지켜야 할 세계가 있으므로 과거의 일은 과거의 것으로 밀어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벗어날 수 없는 복수와 징벌의 서사는 죽어간 마법소녀들만의 것으로 남는다. 징벌은 이미 끝났으므로, 살아남은 이들은 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 잔인한 세계는 오직 죽어간 자들에게만 상속된다. 


마법소녀들에게 주어진 고통과 절망, 또 그들이 저지른 악행이 작중 세계의 밖으로 퇴출당한 것을 과연 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징벌 소녀>는 결국 마법소녀들을 제외한 모두를 용서받을 필요 없는 방관자로 만들어 준 셈이다.

우리는 목격자이자 방관자로서, 다시 이야기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앞서 말한 이프리트의 일화처럼, '가해자로 거듭나는 피해자 서사'의 끝없는 쳇바퀴가 한차례 돌았을 뿐이다. 이들을 보는 동안 생겨난 찜찜한 죄책감은 어느 세계에 속할까.

 

 
 
 
 
 
 

YOUR MANAⒸ로카

 
 
 

<징벌 소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