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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은 만화인가 ② - 만화와 영화의 관계

매체 비평ㅣ웹툰은 만화인가 ②


만화와 영화의 관계



 

손지상

 

틀에는 이름이 있다

 

만화의 형식에 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칸'이다. 칸은 페이지 안에 독립된 구획 공간을 부르는 이름인데, 국가 간 부르는 명칭이 다양하다.

우리나라 만화계에서는 컷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본에서 넘어온 용법으로, 일본에서 만화의 ‘칸’을 영화에서 유래한 컷(cut)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각각 판을 의미하는 패널(panel)과 상자를 의미하는 꺄스(case)라고 부른다.


칸을 부르는 명칭을 언어로 비유하자면, ‘컷’은 구성요소인 ‘음소’나 ‘단어’의 정보량에 가깝다. ‘패널’과 ‘꺄스’는 한칸이 완결된 한 장면인 ‘구’나 ‘문장’에 가깝다(실제로 방드 데시네는 한 페이지나 한 칸이 회화로 팔리기도 한다).

 

컷, 패널, 꺄스라는 명칭과 유래를 논의하는데 적합한 단어는 의미가 중립적인 ‘칸’일 것이다.
 

 
 
 
 

그래픽노블의 시나리오(위)와 방드 데시네의 시나리오(아래). 각각 패널(panel)과 꺄스(case)의 표기와 함께, 지문을 통해 각 패널과 꺄스 안의 시각적 요소를 세밀히 묘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컷과 패널,꺄스라는 명칭 사이의 정보량과 정보 밀도의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그래픽노블과 방드 데시네의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각국의 영화 산업이 만화 문법에, 특히 편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유추할 수 있다.  

편집은 단순한 동영상에서 출발한 영화를 연속된 그림으로, 서사를 전달하는 매체로 발전 시킨 문법이다.

이 문법은 또 다른 연속 그림 서사 매체인 만화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이하의 과정은 영화가 어떻게 스토리 조각을 이용해 더 큰 게슈탈트를 형성했는가의 과정이다.

 

 


프랑스 영화의 타블로와 방드 데시네의 꺄스


타블로란 과거 프랑스의 극장에서 행하던 볼거리나 연극의 단위이다. 무대처럼 명확하고 객관적 시공간에서 배우가 역사적 순간이나 사건을 재현하는 방식을 뜻한다.

초창기 영화계는 픽션 영화를 타블로(tableau)의 연속으로 여겼다. 이러한 경향은 프랑스의 조르주 멜리에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는 연극과 극장의 전통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고전적인 타블로 개념으로 영화의 서사를 조직했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착륙 여행>(1902) 중 한 장면. 연극 무대 같은 배경에 스토리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타블로의 전형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 방드 데시네 중 하나인 <아스테릭스와 오벨릭스>의 한 페이지. 이야기의 진행이 고정된 배경에서 진행되는 타블로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타블로는 멜리에스에 의해, 독립된 스토리 조각이자 스토리의 한순간을 가리키는 용어로 영화에 도입되었고, 장면을 가리키는 개념이 되었다.

방드 데시네 특유의 독립된 꺄스와 세세하고 회화적인 그림 묘사는 프랑스의 영화적 전통으로 보인다. 각각의 꺄스나 페이지를 타블로로 간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영화의 마스터 쇼트와 콘티뉴이티 편집


미국의 두 영화감독 에드윈 포터와 데이비드 그리피스의 등장으로 영화계는 본격적으로 타블로 개념을 극복한다.

에디슨 밑에서 영화감독 및 촬영기사로 일하던 에드윈 포터는, 에디슨 연구소에 소장된 여러 기록 영상과 세트장 영상을 결합해 새로운 서사를 만드는 방식을 창안한다.

지금으로써는 너무도 당연한 '문밖으로 나가는 사람의 뒷모습'과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의 앞모습'을 연결하는 것이 그가 발명한 문법 중 하나다. (과거에는 ‘건물 밖’이 타블로의 외부이기에, 다른 타블로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에드윈 포터의 <대열차 강도>(1905)의 마스터 쇼트 연결 장면. 타블로와 달리, 스토리의 구성요소를 기준으로 다양한 쇼트를 연결하여 스토리를 전달한다. 

 
 


 

마스터 쇼트 방식으로 칸을 연결하는 초기 <슈퍼맨> 코믹스트립. 위의 <대열차 강도>의 쇼트를 늘어놓은 것과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뒤 포터는 <대열차 강도>(1903)에서 처음으로 ‘마스터 쇼트’ 개념을 선보인다.

마스터 쇼트란 시공간과 연기자의 위치관계 등을 풀 쇼트로 명확히 제시한 뒤, 논리적 흐름에 따라 마스터 쇼트 내부의 다양한 ‘순간’을 각각의 쇼트로 자유로이 연결하는 방식이다.

마스터 쇼트는 멜리에스가 페이드인, 페이드아웃과 디졸브로 연결해야 했던 고정된 타블로(=장면)에서 벗어나, 직접 다양한 쇼트를 연결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장면’은 더 이상 타블로에 고정되지 않았다. 관객의 뇌 안에서 추상적인 정보공간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비드 그리피스는 에드윈 포터에게 배우로 고용 되었다가, 그의 영향을 받아 데뷔한 감독이다.

그는 포터의 마스터 쇼트를 바탕으로 한, 다중 쇼트를 더욱 발전시켜 ‘시공간이 연결되는 감각을 유지하는 편집 스타일’인 콘티뉴이티 편집을 발명한다.

설정 쇼트(establishing shot, 마스터 쇼트와 유사한 개념), 리버스 쇼트, 이미지너리 라인(180도 규칙), 인터컷, 시선 맞추기 등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영상 문법들은 그리피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피스가 발명한 이미지너리 라인(=line of action)과 설정 쇼트의 예시. 설정 쇼트로 시공간 배경과 배우의 위치관계를 설정하면, 이미지너리 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앵글과 거리에서 촬영하더라도 관객이 받아들이는 연속성이 깨지지 않는다.


 

 
 


관객들은 콘티뉴이티 편집 덕분에 쇼트의 앵글이나 위치가 바뀌더라도, 심지어 시공간이 바뀌더라도, 배우의 위치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앵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시공간의 연속성이 깨지지 않는 것이다.

미국 만화는 이러한 콘티뉴이티 편집 개념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콘티뉴이티 편집에서는 시공간 연속성과 논리적 흐름을 해치는 쇼트를 철저히 배제한다. 각 쇼트는 독립되어 충분한 정보량을 담고 있고, 객관적인 시공간과 등장인물의 위치관계가 명확하다.

이는 패널 개념과 유사하다. 그래픽 노블의 경우, 칸 내부에서 누가 어디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없다.

 


러시아 영화의 몽타주

동시기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그리피스의 영화에 자극을 받았다.

그들은 내용보다 형식을 중시하며, 예술이란 예술적 의도를 갖고 창조적인 순서로 조각을 배열할 때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피스의 인터컷은 두 개의 독립된 시공간-서사가 병렬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보여 주었고 이는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관과 일치했다. 그 결과, 러시아 영화 이론가는 몽타주(montage)를 발명한다.

몽타주 역시 영화의 서사를 한층 발전시켰다. ‘객관적 시공간에서의 행동’이라는 제약에서조차 벗어나 완전히 추상적인 정보공간에서 서사를 재구성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몽타주 기법을 이용하면, 시공간 연속성과 관계없는 쇼트라 할 지라도 컷 사이에 포함시키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구 소련의 영화 감독, 영화 이론가 에이젠슈타인은 영화 표현으로서의 몽타주란 이질적인 컷을 연결하는 변증법적 비약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달리 말하면 이질적 영상의 충돌이 추상도를 높여(=변증법적 비약) 게슈탈트를 형성(=새로운 의미 창출)한다는 의미다.

몽타주의 본래 뜻은 프랑스 어로 ‘상승하다’, ‘들어올리다’, ‘짜맞추다’, ‘결합하다’로, 필름 조각을 서로 잇는 ‘편집 기술’의 전문용어에서 유래했다.

‘상승하여 짜 맞춘다’는 본래의 의미 자체는 한 층위 위의 추상도에서 결합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게슈탈트 능력과 같은 뜻이다. 에이젠슈타인의 주장과 ‘몽타주’라는 명칭은 이시카와 준의 ‘만화력’과 상통하는 것이다.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1925)의 유명한 유모차 몽타주 장면. 서로 다른 시공간과 시점을 다양한 앵글과 거리로 연결하여 긴박한 장면을 연출한다. 


 

 
 
 
 

테즈카 오사무의 초기 <아톰>의 한 장면. 각 칸이 위의 그림처럼 몽타주로 연결되는 점에 주목. 

 
 
 
 

 

몽타주에 영향을 받은 일본 만화

일본의 스토리 작가이자 비평가인 오쓰카 에이지는 <세계만화학원>(북바이북)을 포함한 다양한 저서에서, 일본 만화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몽타주 개념이 1920~1940년대 일본 영화뿐 아니라 시나 소설에서도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 만화계에서 말하는 만화의 ‘영화적 기법’이나 스토리 만화의 ‘스토리’란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를 가리킨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의 만화가 스콧 맥클라우드 또한 <만화의 창작>(비즈앤비즈)에서 일본 출판만화 특유의 ‘서정적인 배경을 묘사하는 칸’을 ‘양상 간 이동’이라는 개념으로 언급한다.

‘양상 간 이동’ 역시 몽타주 이론에 근거한 연출방식이다. 쇼트가 독립적인 이야기 단위가 아닌 한자의 획이나 단어의 음운처럼 의미를 만드는 하나의 구성요소로 축소, 파편화되기 때문이다.
 




이시카와 준의 만화력 = 몽타주 = ‘일본 출판만화’력

그래픽 노블과 방드 데시네의 패널 혹은 꺄스는, 일련의 쇼트(동영상)를 압축한 것이다. 독자는 각 칸 내부의 정보를 읽어들인 뒤,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게슈탈트를 만든다. 아직까지 마스터 쇼트나 설정 쇼트, 타블로의 전통이 유지되는 것이다.

한편 일본 출판만화의 ‘컷’은 몽타주의 개별 쇼트처럼 파편화되어 있다. 하나의 동작도 다양한 앵글과 크기의 쇼트로 재구성돼, 독자가 스스로 각각의 칸을 이용해 영상을 재구성하는 게 가능해진다. 일본 출판만화는 '읽는'만화보다 ‘보는’만화 쪽에 가깝다.  

이시카와 준이 <만화의 시간>에서 주장한 ‘만화력’은, 일본 영화계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일본 출판만화의 몽타주-만화력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이시카와의 만화력 만을 근거로 웹툰을 비평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주류로 자리잡은 웹툰은 영화의 문법보다는 컴퓨터 화면으로 본다는 매체의 특성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웹툰을 위해, 이시카와의 만화력과는 다른 독자적인 만화력의 정의를 모색해봐야 한다.

 

 

웹툰은 만화인가 ② 끝. (③에서 계속 됩니다.)



 

YOUR MANAⒸ손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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