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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파트너

비평

미드나잇 파트너
만화 안에서 이야기와 이미지의 연속성 보기




만화가의 부계정

 

그림을 말하기 위한 이야기 말하기

 

주인공인 나은은 흉가 옆 시골집에 이사하게 돼 꺼림칙하다. 그러다 시골집에서 귀신불까지 마주한다. 그런데 귀신불인 줄 알았던 노란 형체의 정체는 나은이 전학 온 고등학교의 담임 선생님과 그 애인. 흉가에서 살던 선생님은 애인인 희라와 펩타(귀신불)를 제거하고 귀가하는 와중에 나은과 만나게 된 것. 이 일로 희라의 능력은 나은에게 옮겨가고, 나은은 선생님의 새로운 파트너가 된다.    

<미드나잇 파트너>는 좋은 만화다.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를 가진 여성 청소년의 성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나은은 다리를 전다. 하지만 장애 자체가 어떤 트라우마를 만들진 못한다. 나은의 장애에 대한 감정은 자신의 장애를 둘러싼 타인의 경멸과 조소, 폭력에서의 무력함에서 만들어진다.


나은은 자신의 장애가 싫다. 장애를 가진 약한 자신이 싫다. 자기 연민보다 강한 불만에 가깝게 보인다. 하지만 나은은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우연히 타인의 펩타(감정적 기억 형상화)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나은은 자정이 되면 담임 선생님의 파트너가 되어 타인의 트라우마와 마주한다. 올곧은 성향을 타고난 나은은, 펩타를 제거하며 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더욱 풍부하게 키워간다.

 
하지만 나은은 밝고 올곧은 인간일뿐 고결한 성인은 아니다. 펩타로 본 트라우마를 통해 누구나 '하자'(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하자'(트라우마)는 자신이 가진, 겉으로 드러나는 '하자'(신체적 장애)와 다르다는 것에 불만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펩타를 통해 볼 땐 무섭고 추하다고 생각한 일그러진 감정들이 자신 안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은의 특별함은 단순한 선함이 아니다. 잘못된 행동을 해도 정당화할 수 있는 당위가 있음에도 잘못된 행위를 하지 않고 선을 긋는다. 선을 긋는 이유 또한 자신을 위해서다. 그리고 상대가 더 나은 인간이 되길 바란다. 무엇이 인간을 존엄하게 만드는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나은을 계속 지켜보게 만드는 힘이다.


하지만 이 만화가 좋은 이유는 이외에도 많다.


Q. 만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인가?
    이야기인가?

A. 둘 다 만화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진부하기도 한 문답이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만화의 모든 면모를 정의하는 데엔 지루함을 느끼지만 <미드나잇 파트너>를 설명하기에는 제격이다. 이 작품의 좋은 성장담론과 이야기만을 얘기하고 싶지 않다. 글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다루고 싶은 부분은 김민희 작가가 <미드나잇 파트너>에서 만드는 이미지와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운용해가는 방식이다.


웹툰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컬러 만화가 한국만화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출판물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는 것이 높은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다. 픽셀로 이룬 모니터 특성상 섬세한 펜 터치나 흑백 톤이 화면에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컬러 작품은 작은 화면(모바일)에서 형태를 개별적으로 파악하기 쉽고 더 좋은 가독성을 갖는다.


그만큼 만화를 그리는데 필요한 노동력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흑백은 기본 바탕인 백색을 채우지 않아도 되지만 컬러가 되면 모든 개체에 개별적으로 색을 채워야 한다(프로그램과 사용 방식에 따라 밑색을 편리하게 채울 수도 있지만 넘어가자).


이렇게 늘어난 노동력에 불구하고 흑백보다 눈에 잘 들어오는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것 이상의 의의나 퀄리티를 보여준 컬러 만화는 많지 않다. 오히려 색이 만화의 미감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출판 만화에서 웹툰으로 넘어온 여러 기성작가 중엔 쌓아온 노련함에 불구하고 컬러에서 고전하기도 한다.


때문에 출판만화를 그렸던 김민희 작가의 웹툰 데뷔작인 <미드나잇 파트너>를 보고 먼저 감탄했던 것은 색의 사용이었다. <미드나잇 파트너>의 일상이 가지는 색 자체는 세련됐지만 무난한 조합이다.


색의 진가가 드러나는 건 자정이 됐을 때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펩타(트라우마 이미지)가 증식될 때, 배경엔 채도가 낮은 블루와 그레이 조합이 주를 이루며 펩타는 채도가 높은 진한 노란색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색의 조합은 미적일 뿐 아니라 형상화된 트라우마 이미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고, 타인의 속마음을 보는 기묘함과 불안한 느낌을 자아낸다.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정의 색이다. 이렇게 잘 기획된 색의 사용은 색을 통해서도 작품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든다.

 
 
 
 
 
 

채도가 낮게 깔린 어두운 교실에서 보이는 펩타(노란색 다리)가 보여주는 시각적 임팩트는 굉장하다.


 

 
 
 

자정일 때 펩타 외에는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은 색이 사용되지만, 때론 채도가 높은 색을 배경에 부어 인물을 조금 더 임팩트 있게 보여준다. 이렇게 색은 단순히 물리적 형태를 잘 인식하게 하는 것을 넘어 장면에 분위기를 좌우하고, 화면에 시선을 잡아둘 수 있으며, 섬세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다.


<미드나잇 파트너>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놀라운 점은 색의 사용만이 아니다. 페이지라는 프레임을 다시 프레임(칸)으로 나누고 그 안에서 이미지를 구성하는 방식 또한 눈여겨봐야 한다. 김민희 작가는 이미지를 절제하면서 필요한 이야기를 빠짐없이 담아내고 단순한 방식으로도 풍부한 표현을 만들어 낸다. 






 

펩타가 파괴되는 모습을 세 개의 칸으로 나눠 그리고, 세 칸에 다른 배경을 채움으로써 날이 어두울 때부터 밝을 때까지 계속 펩타를 파괴했다는 내용을 담아냈다.

 
 
 
 

 

세 장면 모두 개별 된 칸이 아닌 한 칸에 이미지를 나열했지만, 첫 번째는 희라의 표정 변화, 두 번째는 경험한 폭력을 넘어 은수를 떠올리는 나은의 기억, 세 번째는 나은의 시선과 시선에 닿은 은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비슷한 방식의 나열로도 각각 다른 의미를 갖는 풍부한 표현이 가능하다.  

 
 
 



김민희 작가는 <미드나잇 파트너>에서 특유의 능숙한 드로잉을 살리며 사소한 명암을 생략한 채색 방식을 사용한다. 이런 채색 방식은 다소 깊이가 없는 입체감의 평면적인 느낌을 갖는다. 평면적인 느낌은 그림을 장식적으로 만들며 약간의 조합을 통해 패턴화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우리에게 또 다른 미감을 선사해준다.

 
 
 
 
 

여러 장면들을 붙여낸 꼴라주 형식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이런 방식들을 살리는 김민희 평면적인 화풍은 큰 장점이다.

 
 
 
 
 

만화에 대한 얕은 이해로 테크닉컬한 부분에만 입각해서 실력을 논하는 경우가 있다. 소실점과 빛의 묘사를 이용해서 입체감 깊은 배경을 그릴 수 있는가? 인체구조를 틀리지 않고 그릴 수 있는가? 따위 말이다. 이런 식의 얕은 기준으로 김민희 작가의 그림을 뜯어본다면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헛짚은 것이다.

류기운 작가와 문정후 작가의 <고수>에서 섬세하게 그려진 광활한 배경이 단순한 차력쇼가 되지 않는 점은 그 배경엔 먼치킨 주인공의 위력을 보여주는 의의가 확실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포르노 만화에서 명확한 인체구조에 기반을 둔 데포르메가 요구되는 것은 성관계 묘사가 포르노에서 핵심적인 요소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만화의 가치는 인체 구조나 배경 파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배경을 파기 전에 그렇게 노동을 들인 배경이 만화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지 어떤 이유로 칸의 구성을 만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테크닉 자체에 집착해 스스로 만화 작법에 한계를 주는 경우도 많다. 테크닉이라는 작은 그림에서 벗어나자.
 

 
 
 
 
 

카드 모양 펩타가 엉킨 나은. 실험 만화 같은 생소한 이미지도 펩타라는 이유로 충분히 이야기 속에서 녹아들고 있다.

 
 
 
 
 

또한 <미드나잇 파트너>는 이야기와 그림이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펩타를 통해 특정한 모양의 이미지를 많은 수로 보여주며 상징적 의미와 장면 전체의 미감을 더하는 방식을 보자. 병원을 떠다니는 수많은 도형이나, 교실을 뛰어다니는 다리들, 비처럼 쏟아 내리는 얼굴들, 기괴하면서도 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트라우마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펩타는 특정한 트라우마를 형상화하고 증식해 보여준다. 이러한 펩타의 성질은 읽기 편한 연출이 중점이 되는 스토리툰 안에서도 과감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이미지는 그런 상황을 설명해낸다. 어떤 이야기를 그릴 것인가와 어떤 이미지로 그릴 것인가의 고민이 종합된 결과다.
 

 
 
 
 
 

펩타가 파괴되는 모습은 기괴하지만 해방감을 주기도 한다. 물론 펩타에서 해방되는 것이 트라우마와의 완전한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미드나잇 파트너>가 훌륭한 지점은 이야기가 이미지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로 이야기를 운용하는 연속된 과정이다. 만화는 만화가 됨으로 단순한 테크닉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이미지가 어떻게 이야기를 담고, 의미를 담고, 감정을 담는지 김민희 작가의 <미드나잇 파트너>를 보고 즐길 수 있길 바란다.

 

 

YOUR MANAⒸ만화가의 부계정

 
 
 

<미드나잇 파트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