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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은 만화인가 ① - 일본 출판만화의 '만화력'이란 무엇인가?

매체 비평ㅣ웹툰은 만화인가 ①

일본 출판만화의 '만화력'이란 무엇인가?

 
 

손지상


만화의 칸과 칸 사이에는 시선의 흐름이 있다. 우리가 만화를 읽는 순간을 자각하지 못할 만큼 익숙한 연출 기법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유럽과 미국, 일본과 한국의 만화들은, 모두 ‘만화’라는 같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서로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각 매체가 시선을 유도하는 방법의 차이다. 이런 차이는 연출 문법과 독서 경험에도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가? I 자로 시선을 유도하는 한국의 스크롤다운식 웹툰과 Z자로 시선을 유도하는 한국과 일본의 출판만화, 미국의 그래픽노블, 프랑스의 방드데시네(bande dessinée) 등을 비교분석해보자.


 


이시카와 준이 주장한 필력과 만화력

같은 만화라도, 웹툰과 출판만화는 독서 경험이 분명히 다르다. 독서 경험의 차이는 매체와 연출 문법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출판만화와 웹툰의 연출 차이를 논하는데 기준이 되어줄 유용한 개념이 있다. 바로 이시카와 준이 주장하는 '만화력'이다.

그는 일본의 만화가이자 만화 평론가로, 만화 비평서 <만화의 시간>(글논그림밭)에서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하 필력)과 만화를 잘 그리는 것(이하 만화력)은 다르다며 자신의 평론관을 밝힌다. 
 
 
 
 


이시카와 준의 만화비평서 <만화의 시간>은 국내에 드문 만화평론집이었다.

 
 
 
 

'필력'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한 ‘칸’ 내부의 구도, 데생, 터치, 세밀한 묘사 등 회화적 요소를 주로 가리킨다. 반면 '만화력'은 심층 구조와 관계가 있다. 심층 구조란, 영화로 치면 감독과 편집의 역할에 해당한다.

이시카와는 <만화의 시간>에서 필력과 만화력을 이해시키기 위해 세계적으로 필력을 인정받는 오토모 카츠히로와 이케가미 료이치의 액션 장면 연출을 비교한다.
 


오토모 카츠히로 vs. 이케가미 료이치

오토모는 일본의 만화가이자 감독이다. 1980년대에 <동몽>과 <아키라>라는 작품으로 극도의 리얼리즘을 선보였고, 일본 만화계의 ‘그림체’와 ‘연출’의 표준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자신의 만화 <아키라>를 애니메이션으로 직접 감독한 뒤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도 경력을 쌓았다.

한편 이케가미는 일본의 극화가로, 성인극화에서 긴 경력을 쌓은 거장이다. 한때 대만과 홍콩 만화의 그림체는 모두 이케가미의 그림을 카피한 만화로 가득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려한 필력을 인정받고 있다.  
 
 


 

https://www.your-mana.com:5025/assets/upload/user/e1a68522bb40cc67408c9c5632818fc2.jpg오토모의 <아키라>(좌), 이케가미의 <생츄어리>(우) 중 한 장면. 두 거장 모두 필력이 유려하나, 칸을 따로 떼서 보면 세밀한 묘사로 인해 오히려 정지해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시카와는 필력이 뛰어난 오토모와 이케가미 중 오토모의 만화력이 더 높다고 결론짓는다. 둘의 비교를 통해, 이시카와가 말한 만화력의 정의를 살펴볼 수 있다. 두 거장의 ‘만화력’ 차이는 칸과 칸의 연결과 시선유도에 있다.

위 그림을 서로 비교해보자. 오토모의 바이크 묘사는 칸에서 칸으로 시선을 옮기는 과정에서 빠른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반면 이케가미의 묘사는(비록 시동을 거는 장면이기는 하나) 칸 내부에서도, 칸과 칸 간의 관계에서도, 바이크가 움직이는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만화력은 게슈탈트 능력

만화력은 게슈탈트(gestalt)를 이루는 능력이다. 게슈탈트란 전체, 형태 등을 의미하는 독일어로 본래는 심리학 용어인데, 우리가 무언가를 지각할 때 한 덩어리의 단위로 인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가 지금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를 듣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두 악기의 음색이 다르더라도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면, 우리는 게슈탈트 능력을 통해 두 소리의 멜로디가 같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지각의 덩어리에서 몇 가지 구성요소가 빠져도, 더 큰 범위의 게슈탈트를 인식하면 빠진 부분을 보충해 인식한다. 이 같은 지각능력은 심리학에서 인간의 기본적 인식능력이자 이성의 기능으로 본다.

'필력'은 각각의 칸에 종속된 결과를 논하는 것이고, '만화력'은 조각난 칸을 구성해 하나로 통합되는 정도를 말한다. 이 둘의 관계는 '개'와 '포유류'라는 두 단어의 관계와 같다. 만화력은 필력보다 한 층위 상위에 있는 것이다.

무엇을 그려내고 무엇을 생략해 게슈탈트를 형성할 것인가. 쉽게 말해, 만화력은 필력을 조직하는 힘이다.



 
 
 

게슈탈트 인식의 예. 존재하지 않는 삼각형을 뇌가 보완하여 인식한다. 각 요소가 모여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과정은 만화 독서경험의 칸과 칸을 연결해 연속성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다. 

 
 
 
 
 
오토모는 중간과정을 적절히 생략하면서 칸과 칸을 비약한다. 그러나 독자는 혼란스럽지 않다. 칸 내부 캐릭터의 행동이나 시선 방향, 칸 내부의 구도 등 다양한 장치가 칸을 비약하는 독자의 시선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선의 흐름으로 게슈탈트를 형성하고, 그렇게 연결된 각 칸과 페이지는 한 층위 상위 추상도에서 다시 게슈탈트를 형성한다. 독자의 머릿속에 ‘장면 전체의 동영상’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뇌가 비약의 공백을 빠르게 채워 넣어 속도감을 느끼게 된다.

반면 이케가미의 각 칸은 다른 칸과 연결하는 시선 유도가 부정확하다. 이케가미는 주로 여러 자료사진이나 정지영상인 스틸사진을 콜라주하여 칸 안을 구성한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촬영된 정지영상을 무작위로 연결하기에, 칸이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행동묘사도 연속사진처럼 중간과정을 일일이 옮겨, 상대적으로 속도감이 떨어진다. 게슈탈트 형성에 실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만화력'은 모든 만화에 적용할 수 있는가?

'만화'라는 게슈탈트는, 미시적으로는 칸과 칸을 연결해 주는 흐름과 의미로 구성된다. 거시적으로는 각 칸과 페이지를 모두 통합하는 스토리와 드라마로 이뤄진다.  

이를 조직해내는 힘인 만화력 역시 여러 요소를 통해 설명된다. 전체 스토리 구성, 스토리 템포를 위한 중간과정 생략, 의미 발생과 스토리 진행을 위한 이질적인 칸과 칸 연결과 독자 시선 유도 등이 그것이다.

이시카와의 주장에 따르면, 출판만화는 웹툰보다 만화력을 더 많이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판만화의 지면은 한정되어 있기에, 효율적으로 칸을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웹툰보다 출판만화가 만화력이 높고, 더 나은 형식의 만화라고 할 수 있을까?


만화력의 정도를 작품의 질적 차이로 받아들이기 전에 해결해야 할 질문이 있다.

이시카와가 주장하는 만화력은 과연 모든 만화에 적용할 수 있는 잣대일까?

그의 주장은 무엇을 기반으로 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을 찾아내지 않는 한 이시카와의 지적은 범용성을 얻지 못한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이시카와가 주장한 만화력의 기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웹툰은 만화인가 ① 끝(②에서 계속 됩니다).

 
 

YOUR MANA손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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