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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대통령

비평

<라면 대통령>, 웹툰이 된 쿡방

 

 

선우훈


<라면 대통령>은 현재 가장 한국적인 웹툰으로 꼽을 만하다. 전통적이면서도 촌스러울 수도 있는 연애 서사, 드라마와 오디션의 방송 문법, 최근의 쿡방이 보여주는 소재주의, 웹툰 독자층의 음식 소비문화 모두를 담고 있는 가장 '핫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글 작가 명랑, 그림 작가 신얼의 작품으로 케이툰(구 올레웹툰)에서 연재 중이다.

 
 
 


실시간으로 꼭 지켜봐야 할 <라면 대통령>. 웹툰에서 다층적인 재미를 찾고 싶다면 이 작품을 권한다. 같은 플랫폼 케이툰에서 연재중인 <편의점 만화왕>(링크)도 함께 보면 현재 식문화에 대한 만화적 소비가 한층 더 와닿는다. 

 
 
 
 

음식 만화에서 쿡방까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시작된 ‘백주부’ 백종원의 인기가 통조림이나 설탕의 판매율을 좌지우지하던 적이 있었다.


그때만큼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냉장고를 부탁해>나 <쿡가대표> 등의 요리 예능 프로그램들이 여전한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음식 관련 예능 프로그램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면, ‘음식’이 하나의 문화 콘텐츠라는 걸 다시금 느낀다.


음식 소재의 만화는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음식’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출판만화와 그 문법은 대부분 일본에서 비롯되었다. 아마도 일본의 식문화와 출판만화 시스템이 잘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허영만의 <식객>이 음식 만화를 대표해왔지만, 다양한 작품이 등장한 것은 웹툰 시대에 이르러서다. 웹툰 작가들은 일본 음식 만화의 구성을 따르지 않는다. 일상의 순간을 음식의 유래나 오랜 기억과 연관 짓는 <오무라이스 잼잼>, 어설픈 만듦새를 유머로 승화한 <역전! 야매요리>, 구질 한 삶의 본질을 시니컬하게 그리는 <먹는 존재>가 바로 그 예다. 재료의 선택과 전문적인 조리과정을 그려내기 위한 치밀한 취재는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이 되었다.


이런 음식 만화의 추세는 웹툰의 소비 패턴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찰나의 공감’은 스마트폰 시대의 화두이기도 하다. ‘먹방’에 이어 ‘쿡방’이 대세가 되었던 이유와도 얼추 겹치는 지점이 그려진다.


“맞아, 맞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을 위한 재료는, 더는 낯설거나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일 필요가 없다. 건강에 대한 염려로 그간 멀리해왔던 꽁치 통조림이나 수북한 설탕일 수도 있고, 익숙하게 끓여온 라면 한 봉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라면: 모두의 기억

<라면 대통령>은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라면을 통한 음식 대결 구도를 그린 작품이다. 단순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그 구성은 절묘하다.


우선, <한식 대첩>이나 <마스터 셰프 코리아>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문법을 따름으로써 ‘요리’ 대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 또 ‘라면’이라는 제한을 통해 대중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댓글로 레시피를 제보받는 쌍방향 소통을 적극적으로 끌어낸다.


이 두 가지 조건은 작품 내부의 현실성을 책임지는 동시에 외부와의 연결고리를 마련하는 장치다.

 
 
 
 


만화 속 오디션 설정이 현실성을 더하면서, 실제 레시피를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적극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오디션의 긴장감은 전형적인 사각 관계의 서사로 대체되었다. 승자는 한 명이지만 대회에 참가한 주인공은 구공탄과 라미연 두 명이며, 경기 밖의 강풍기와 묵은지의 관계가 얽히면서 예측할 수 없는 애정 전선이 그려진다.


<라면 대통령>은 다음 이야기가 제일 궁금한 순간, 한 화를 끝낸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라면 요리에 배를 움켜쥔 채 다음 화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예능과 드라마를 섞어 놓은 듯, 가벼운 공감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독자들의 흥미를 이끈다.
 

 

우리는 무엇을 즐기는가


그러나 이는 단점을 증대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편집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서사의 구축이다. 참가자들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고, 그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가능성을 점치게 하며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든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로 설계된 <라면 대통령>의 오디션 장면들은, 서사의 중심축이 아닌 만큼 안배가 덜한 까닭에 몰입이 어렵다. 요리만화에서 익숙하게 봐온 심사위원들의 과장된 반응도 지금까지 쌓아온 작품의 현실성과 엇갈리며 어색하게 맴돈다.


드라마적 요소도 마찬가지로 문제를 일으킨다. ‘드라마’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가 아니다. <라면 대통령>은 '리얼리티'의 부재를 서사로 채운다. 대부분의 웹툰이 주 1회로 연재되며, 빠르게 재미 요소를 제공하고 다음 화를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드라마적 구성은 좋은 선택이다.

 
 
 
 
 

 
 
 

5화의 진상 손님(위)과 19화의 오디션 탈락자(가운데) (아래). '불편함'을 유발하는 캐릭터들은 어딘가 관습적이다.

 
 
 
 


오해가 겹치는 사건들이 빠르게 전개되어 개연성 없이 누적되는 지점이 있지만, 문제 요소는 아니다. 묵은지, 구공탄, 강풍기, 라미연이라는 인물의 이름에서 드러나듯, 작품은 시작부터 가벼움과 만화적 과장을 예고했다. 오히려 그 지점이 재미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출발점이 연애에 있었으므로, 어디에서든 연애하고 마는 한국 드라마의 지겨움을 오히려 우직하게 풀어낸 셈이다.


문제는 현실성과 만화적 과장, 혹은 우연 사이에서 조절되지 않는 톤이다. TV 프로그램 ‘라면 대통령’의 막내 PD 묵은지와 셰프 강풍기는 우연을 거듭하다 결국 맞선 자리에서 만난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배웅하는 자리에서 며칠 전 헤어진, 전 남자친구 구공탄을 만나는 것은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러나 구공탄이 처음 본 강풍기에게 “은지 남편이다. 이 새끼야!”라고 소리치며 주먹을 휘두를 때, 낯익은 민망함이 시작된다.


라미연의 사연도 마찬가지다.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였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라미연. 고교 태권도 대회에서 우승하던 날, 부모님과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홀로 살아남았지만 슬픔에 식음을 전폐한다.

마침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의 삼촌이 셰프 강풍기였고, 사연을 들은 그는 라미연에게 라면과 김밥을 응용한 요리를 건네며 마음을 열게 한다. 여기까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라미연을 오디션 참가자로 강풍기와 마주시키기 위해서, 부모와 꿈을 동시에 잃은 슬픔을 가족주의로 대충 무마하는 것은 어떤가. 라면 요리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의 모습이 준비된 감동과 웃음 사이에서 위태롭다.

 
 
 


주먹과 함께 감동도 주고받는 두 남자 주인공, 강풍기(위), 구공탄(아래).

 
 
 
 


이러한 불협화음은 작가의 실수일까? 방송 적 요소에서 기인하는 문제들은, 여주인공의 손목을 강제로 낚아채는 장면이 낭만적으로 포장됐듯이, 형식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눈치채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까?


‘어떤 농담에 웃는가?’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라면 대통령>의 재미가 의미심장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우리가 즐겨온 여러 요소를 모은 만큼, 재미와 민망함은 동시에 부각된다.

 

우리는 예능과 오디션, 드라마와 웹툰의 어느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는가? '쿡방' 열풍이 가져다준 식문화에 대한 관심은 결국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라면으로 수렴될 일이었나? 이런 고민까지 '재미'로 느낄 수 있는 독자에게, <라면 대통령>은 최고의 작품이다. 직접 읽어보면서 느껴보길 추천한다. 군침과 특별한 라면 레시피는 덤이다.

 

 
 
 
 


1화에 등장한 '스페셜한 날이라면'(좌)과, 특별편 '아주 특별한 라면 레시피'에 등장한 실제 요리(우). 밤에 보긴 좀 힘들다.

 

 
 
 
 

YOUR MANAⒸ선우훈

 
 
 
 
<라면 대통령>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