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tic
[스크랩]
조국과 민족

조국과 민족

'조국과 민족’이라는 이름의 유사 가족



 

성상민

 


<조국과 민족> 등장인물의 다수가 틈만 나면 외치는 ‘조국과 민족’. 하지만 액자 속 글자가 거꾸로 읽히는 것처럼 ‘조국과 민족’은 각기 다른 욕망 앞에 내거는 거대한 핑계가 된다.

 

 
 

<조국과 민족>은 기묘한 작품이다.
첩보물의 얼개를 쓰고 긴장감 있게 전개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첩보물의 기본 요건은 도통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정보기관 요원들은 ‘조국과 민족’을 항상 들먹이며 간첩을 색출하고, 확실한 증언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과 사건 조작 같은 더러운 일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잡는 간첩은 간첩이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간첩 대부분은 주인공 박도훈의 일터인 정보기관에 의해 ‘만들어진’ 간첩이다. 진짜 간첩들은 도훈을 끄나풀로 부린다. 그로 인해 ‘조국과 민족’은 위기에 빠진다. 이런 설정은 잡아야 할 스파이도, 지켜야 할 국가도 없는데 이 작품이 첩보물이라는 장르를 유지하게 한다.

 

결국 ‘조국과 민족’은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를 갖지 못하는 텅 빈 용어가 되고 만다. 그런데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무엇을 위해, 왜 ‘조국과 민족’을 운운하는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인공 박도훈과 그의 상사인 장 실장은 ‘조국과 민족’ 뒤에 숨은 욕망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도훈은 어린 시절, 무엇이 결핍되어 있었는지를 작품 초반부에서 스스로 이야기한다. 그는 재벌 가문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집안은 어린 그와 친어머니를 강제로 떨어뜨린 후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복수심을 품은 채 성장기를 보내던 중학생 도훈은 반공 표어대회를 계기로 보안사 수사관 장 실장을 만난다.

 

장 실장은 세상 물정 모르는 도훈을 조종, 학생 운동을 하던 도훈의 배다른 형을 간첩으로 몰아 집안을 풍비박산 낸다. 대학 입학 무렵 도훈은 장 실장을 찾아가 양아들 같은 존재가 된다. 유사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이다.
 

 

 

주인공 도훈은 ‘애국’을 이유로 간첩 사건을 조작하는 등 온갖 잔악무도한 일을 저지른다. 그가 어린 시절 가지지 못한 가부장적 가족의 욕망은 가부장적인 국가의 폭력과 결합하며 점차 비대해진다.

 
 


도훈은 친어머니의 복수를 한 것일까? 하지만 정작 그는 친어머니의 존재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오히려 간첩으로 몰렸던 형이 도훈의 친어머니를 도훈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어린 도훈은 말로는 '엄마의 복수'를 꺼냈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사실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이 떠받들 수 있는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가부장제 안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권위와 동의어임을 감안하면, 다소 우연적이었던 장 실장과의 만남은 필연적인 동시에 상호보완적 관계가 되었다.


그렇다면 장 실장은 도훈을 양아들 삼아 무엇을 원하는가? 자신이 원할 때 도훈을 쉽게 부려먹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장 실장은 도훈을 정말 아들 같은 존재로 여긴다.
 

말을 듣지 않는 친아들과 달리 도훈은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자기의 말을 충실하게 잘 따르기 때문이다. ‘충실하게 말을 따르는 자가 아들인 것.’ 이것이 가부장제 유사가족의 본질이며, 국가주의의 단면이기도 하다.


비슷한 함의는 도훈의 동료 김대한의 아버지, 김판구에게서도 관찰된다. 김판구의 집안은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친일파로 떵떵거렸지만, 해방 이후 북한에 의해 몰락한다.

김판구는 남한으로 내려와 서북청년단이 되어 경제적 지위를 되찾는다. 그는 가정은 물론 회사, 심지어 한국 사회가 전체가 자신의 권위 아래 움직이길 원한다.

이런 김판구 역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울 때 결코 그 의도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도훈이나 장 실장이 ‘조국과 민족’을 핑계로 간첩을 조작하듯, 그 역시 ‘애국’을 자신의 권위적 욕망을 감추는 방패막이로 삼는다.


 
 

‘조국과 민족'이라는 말 뒤에 숨겨진 것은 공고한 권위로 무장된 유사 가부장제 가족을 형성하고 싶어하는 욕망이다.


 
 

 

애국이라는 이름 아래 숨긴 가부장제에 대한 욕망
 
이상의 모습에서 지속해서 관찰되는 것은 결국 일종의 ‘유사 가족’을 형성하고 싶은 인간들의 욕망이다. 그러나 그 ‘유사 가족’은 절대 대안적인 형태의 가족이 아니다. 오히려 수직적인 위계 아래 움직이는 무척이나 끈적한 가부장제의 모습이다.


이 위험한 욕망으로 똘똘 뭉친 '유사 가족'은 끝없는 폭력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려 한다. 힘과 폭력으로 자신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만들어 권위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역설적으로 다른 가족은 물론 사회를 형성하는 기초 공동체를 파괴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하지만 파괴의 역설은 결국 자기 자신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도훈이 어떠한 사고를 쳐도 최대한 감싸주려고 했던 장 실장은 도훈이 자신 몰래 새로운 가부장이 되기 위하여 술수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 도훈을 가차 없이 버리는 모습은 이 거대한 가부장제의 질서가 무척이나 허약함을 반증하는 장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국과 민족>이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것은, 등장인물들의 욕망을 그리는 측면에서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더 많은 권위주의적 질서를 원하는 이들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국가 권력을 탈취한 전두환을 국가의 '아버지'로 상정하며 심정적인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학습하고 욕망했다.

 
 
 
 

<조국과 민족>의 결말은 무척이나 공고해 보였던 거대 유사 가족의 공허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앞으로 한국 사회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수사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최소한 ‘야만’의 길은 아닌 것 같다.

 
 

 

권력 지향자들은 작중은 물론 현실에서도 국가 폭력을 합법적으로 위임받아 거대한 가부장제 유사 가족을 형성한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권위를 공고하기 위한 표상이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들의 권위와 질서를 유지하고 승계하기 위해서 위에서 주입되는 그 표상은 당연하게도 텅텅 비어 있다.

 
별다른 가치를 가지지 못한 표상을 지키기 위해 무척이나 공허한 폭력과 해프닝이 계속 자행되고, 결국 이는 다시 블랙 코미디가 될 수밖에 없다.


블랙 코미디다운 작품 분위기에 한 몫을 더하는 것은 강태진 작가의 그림체이다. 첩보는 물론 폭력과도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둥글둥글한 명랑만화풍의 반극화체는 등장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자행하는 모습과 합쳐지며 역설적인 느낌을 낳는다.


또 고문의 피해자들은 극화체로 표현, 상황을 극대화시키는 것과도 대비를 이룬다. 작가는 서사의 구조뿐만 아니라 화풍으로도 당시의 시대상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데뷔작 <애욕의 개구리 장갑>에서 무능력하고 폭력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통해 한국의 가족을 철저히 풍자했던 강태진은 이렇게 가족은 물론,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한쪽에서 이어지고 있는 거대한 유사 가족의 행태를 유쾌하게 풍자하는 것에 성공했다.
 

 

YOUR MANAⒸ성상민

 
 
 
 
<조국과 민족>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