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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멘텀


모멘텀
야오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농담이 아닙니다)



 

로카

 

※ 이 글에는 <모멘텀> 일부 에피소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 M의 서재: 우디 앨런의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오마주처럼 보인다. 두 남자의 사이에 끼어들게 된 한 남자가 애초부터 자신의 자리는 그 곳에 없었음을, 두 남자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언제까지나 서로뿐일 것임을 깨닫게 된다.
  

 
 
 

레진코믹스의 옴니버스 BL 만화 <모멘텀>(박지연)은 명확한 스타일을 지니고 있다. 단정한 그림, 침착한 언어, 절제된 연출. <모멘텀>의 인물들은 이성적이고 세계는 정적이다. 모노톤으로 표현된 세계의 인물들은 과잉으로 치닫지 않는다.

그들은 말하고,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고, 때로는 관계가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달아 작별한다. 섹스를 묘사하기에 19금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모멘텀>의 세계는 체액이 질척거리는 육체의 세계가 아니다. 인물들이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언어의 세계다.

 
 
 
 
 

네 번째 에피소드 <테라피스트>: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육체 관계는 더없는 쾌락을 주지만, 이는 육체관계 이상의 감당해야 할 것들로부터 도망치는 손쉬운 길이기도 하다.

 
 
 



단연 돋보이는 에피소드는 네 번째인 <테라피스트>다. 이 이야기는 아내와 이혼한 심리상담사 지안이, 새디스트로서의 서비스 제공을 직업으로 삼는 미샤의 연락처를 내담자로부터 건네받으며 시작한다. 서비스와 그에 상응하는 비용의 교환으로 SM 관계가 시작된다.

이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돈과 육체 외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므로 안정적이다. 의심하거나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만화는 합의된 강압적 섹스가 마조히스트에게 주는 쾌락의 원천을 세심히 보여 준다. 지안의 육체가 한계까지 밀어붙여진 직후엔 식당에서의 대화 장면이 이어진다. 식당에서 지안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본심을 이야기하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금이 간다.

이전까지는 누구도 상대에게 내밀한 개인사를 드러낼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됐다. 그러나 ‘침대 바깥에서의 지안’이 개입되는 순간 관계는 급속도로 불안정해진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진전시키는 대신 이별을 택한다. 미샤는 그 이유를 명확한 언어로 제시한다.


“사랑하게 되는 건,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요. 감정이 끼어들면, 당신은 불안해하고, 기다리고, 원망하고, 작은 것에도 상처받고, 의심하고, 정말 상처받아서 울게 되겠죠. 나는 당신을 아프게 만들고 말 거고. 그만두는 게 낫겠죠.”


지안은 이를 받아들인다. 그는 떠나고, 미샤는 슬픔에 잠긴 채 남겨진다. 그러나 이 상처마저 자신이 택한 것이다.

<모멘텀>의 세계에서 사랑은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연인들이 생겨나고, 또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연인들이 이별하며, 그래도 여전히 각자의 삶은 계속된다.

모든 이들은 특정한 사랑 없이도 존재해왔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 독자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모멘텀>은 두 단독자가 만났을 때 각 인물의 특성에 기반한 관계가 어떻게 성립되거나 깨질 수 있는지, 그 서사의 가능성에 대한 이성적 탐구를 지속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가는 트레이너 네 번째 에피소드 <테라피스트>에서 계약 하의 육체관계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 실패한 두 남자를 다룬 데 이어, 다섯 번째 에피소드 <트레이너>에서는 <테라피스트>처럼 시작된 관계를 연인 관계로 발전시키는 이야기를 배치했다. 그 흐름은 실로 훌륭했다.




 

세 번째 에피소드 <취향과 편견>: 게이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취향일 뿐인 세계.


 

 
 


사실 <모멘텀>을 읽는 동안 한 문장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것은 야오이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사랑 이야기다!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라는 ‘빻은’ 소리가 얼마나 많은 퀴어 작품들에 대한 모욕으로 기능해 왔는지를 우리는 안다. 하지만 이 문장을 포기하지 않고 지면에 올리는 이유는, 이 ‘BL’로 분류되는 작품에서 저 말을 다른 방식으로 쓰고 싶기 때문이다.

과거 야오이가 장르적 재미를 이끌어내던 가장 쉬운 방식은 현실의 게이에게 실제로 가해지는 폭력을 차용해 ‘금지된 사랑’이라는 서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해, 바야흐로 2015년이다. 미국에서는 동성혼이 법제화되었고, ‘금지된 사랑’ 서사는 한물이 가도 한참 갔다. 자연히 게이를 이전처럼 핍박받는 존재로는 그리지 않는 어느 정도의 피씨함이 야오이의 트렌드가 되었고, <모멘텀> 역시 이 점에서 특별하지는 않다. 

이 작품의 정말 재미있는 점은 이 ‘피씨함의 흐름’이 한계까지 밀어 붙여진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로맨스-포르노 장르의 재미는 권력 위계의 낙차에서 찾기 쉽다. 황제와 가신, 일진과 왕따, 선배와 후배, 선생과 학생, 납치범과 피해자... 당장 떠오르는 예시만 해도 수없이 많다. 또 이런 권력의 낙차의 묘사에는 자연히 폭력이 개입되기 쉽다.

하지만 <모멘텀>은 그런 요소를 배제하며 서사를 진행시킨다. 이 글 도입에서 언급했듯 <모멘텀>의 세계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에는 합의가 선행된다. 인물들의 사회적 권력의 위치는 관계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실로 아름다운 문명의 세계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 <뱅커>: 부유한 중년이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가난한 십 대를 거두어 먹이고 가르치고 기르며 섹스한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인 <뱅커>에서는 유일하게 예외적으로 보이는 설정이 제시된다. 이 에피소드는 <테라피스트>에 등장한 미샤의 십 대 시절을 이야기한다. 그는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빈곤한 미성년이었고, 부유하지만 가족과는 등을 진 장년 일리야가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위험해 보이는 관계지만, 독자는 미샤가 이 시절을 거쳐 훌륭한 단독자로 자라났음을 <테라피스트> 에피소드에서 확인한 뒤다.

여기까지 적은 지금, 필자는 문득 <모멘텀>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의 즐거움을 빼앗는 건 아닌지 죄책감을 느낀다. <뱅커> 에피소드가 저울이 기운 상태에서 시작된 관계의 결말을 어떻게 납득시키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실 수 있도록 말을 아낀다.






 


일곱 번째 에피소드 <팬텀>: 과거의 남자와 현재와 남자들이 얽히는 모터 스포츠의 스타디움 위에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의 자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현재 연재 중인 일곱 번째 에피소드 <팬텀>에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지닌 여성 캐릭터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들의 사랑 틈에 낀 방해물이 아닌, 사회 내의 위치를 지닌 단독자로서.

이쯤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했다. <모멘텀>의 모든 캐릭터가 여성이어도 서사의 본질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을 것이었다. <모멘텀>은 '남자이기 때문에' '남자에게만 가능한' 그 어떤 장치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멘텀>이 야오이가 아니어야 한다거나, 야오이가 장르적으로 열등하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금지된 사랑’ 야오이에서 <모멘텀>이 탄생하기까지 야오이 씬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그리고 무엇이 야오이를 야오이로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일 뿐이다.

<모멘텀>은 야오이라는 장르의 전통적 문법으로 활용되던 언피씨한 걸림돌들을 없애거나 보이지 않게 해 완전히 매끈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세계는 완전히 아름답고 평평하여, 게이라거나 남자라거나 여자라거나 하는 것들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인물들은 전부 충분히 인간다우며, 그 인간다움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다. 이런 설계는 분명 의도적이다.

 

 
 
 


계속 달리자.
 

 
 
 


젠더와 섹슈얼리티, ‘퀴어로움’이 어떤 걸림돌도 되지 않고, 취향 이상의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는, 완전히 매끈한 곳으로 세계를 압축하는 시도가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모멘텀>은, 일단 이런 피씨한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관계의 가능성을 성실하고 진득하게 탐구해 오고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이 환상적인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다채롭게 다뤄질 수 있을지, 어떤 판타지 혹은 비극을 가능하게 할지 이후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바다.

이 거친 세상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매끈매끈한 환상의 세계가 주는 위안을 찾고 싶어질 수밖에 없으니.



 


YOUR MANAⒸ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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