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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제조일기

환관제조일기
너님들 고추 예스컷인 부분 ㅇㅈ? ㅇㅇㅈ.

 

DCDC

 


<환관제조일기>의 주인공이자 도자장 ‘오룡’.
도자장은 성기를 절제하는 수술의 전문의이자 환관이 되겠다고 자원한 사람들에게 여러 절차를 알려주는 상담사이다.

 

 
 

관성에서 벗어나 빙글빙글

 

비평을 읽다 보면 입체적이라느니 평면적이라느니 하는 서술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운 단어들은 아니에요. ‘입체적’은 단어 혹은 문장 하나 정도로는 정의내릴 수 없는, 다각도에서 복합적으로 장치들이 배치된 경우를 말하죠.

 

반대로 ‘평면적’은 간단하고 쉽게 배치된 경우를 뜻하지요. 빠른 템포의 질주감이나 정보 전달이 목표라면 평면적인 장치를, 깊이를 더하거나 주제 전달이 목표라면 입체적인 장치를 사용합니다. 다 각자의 장단이 있는 무기입니다.


입체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싶을 때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어요.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사건의 상하좌우를 뒤바꾸는 거예요.

 

주인을 노예로, 남자를 여자로, 노인을 아이로. 이렇게 하면 그 스토리는 현실의 거울상에 어딘가 하나 어그러진 지점이 더해지죠. 너무나도 익숙하고 흔한 이야기를 예전처럼 읽을 수 없게 되어요. 약자가 강자가 되고 강자가 약자가 되었으니 이전과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전혀 상반된, 전복적인 의미를 가지니까요.

 

현실을 전복시킨 이런 스토리는 앞 문단에서 입체적이라는 개념에 정의내린 것처럼 단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이야기예요. 투석기에 산 채로 태워져 던져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기존의 상식과 편견에서 내동댕이쳐져 무중력의 공간에 버려지는, 관성에서 벗어나 빙글빙글 돌면서 상하좌우를 잃고 허공을 날아보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에서 더 높은 관점에서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이런 기회들을 갖는 거죠.

 
 
 
 

여성 성기 절단(FGM)은 현재에도 이루어지는 악습이다. <환관제조일기>에서는 시대(청나라)적, 성별(남녀 권력관계)적 전환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감정이입을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끌어낸다.

 
 
 

본격 고추 자르는 만화

 

김달 작가의 <환관제조일기>는 19세기 청나라에서 남성의 성기를 거세하는 도자장 ‘오룡’이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제목 그대로 본격 고추 자르는 만화예요.

고추 달린 게 벼슬이니, 아예 고추를 따버린 세계를 담아낸 거죠. 김달 작가는 데뷔작 <여자  제갈량>에서 삼국시대의 주요 인물들이 실은 여성이었다는 전환을 통해 삼국지의 명장면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재해석했죠. 그 작품처럼 <환관제조일기> 역시 궁궐을 중심으로 측실과 환관이라는, 남녀의 권력관계가 뒤바뀐 세계를 그려냄으로써 입체성을 갖춥니다.

남성(남근성)을 중심으로 구축된 청나라임에도 황실은 그 안에서 본질적인 모순을 담고 있어 요. 봉건사회 임에도 환관들은 거세되었다는 이유로 남성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황후나 후 궁들은 황실에서 성적인 자기결정권을 비교적 자유롭게 향유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이 서열 관계의 맨 꼭대기에 있어야 할 황제는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지만 좋아하는 요리도 독살의 위험 때문에 먹지 못합니다. 측실들과의 섹스도 40분 이내에 끝내지 않으면, 월요일 아침 출근을 위해 맞춰놓은 알람마냥 10분마다 재촉하는 환관의 간섭을 받는 인생이고요.

주인공 오룡은 궁궐의 서열에서 자유로운, 외부의 인물인 도자장입니다. 그리고 여성으로 설정되어 남근을 가진 남성이 다른 가난한 남성의 남근을 거세하는 흔한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인물들의 위치는 이렇게 남성이지만 보편적인 의미의 남성이 아니게, 여성이지만 보편적인 의미의 여성이 아니게 전복됩니다. 모든 등장인물이 단어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현재의 사고방식 너머의 고민이 시작되게 합니다.

 
 
 
 


가부장적 왕정제이지만 남성이 아닌 여성이 권력을 갖고 있다. 동시에 여성이 권력을 갖고 있을지라도 남성성의 상징인 아버지로만 표상된다. 의미심장한 역전을 통해 새로운 사고로 이끈다.

 
 
 

사고의 정지

 

얼마 전 미러링과 관련해서 또 한 번 소동이 있었지요? 미러링은 문장 그대로 독해를 해서는 안 되는 고급의 언어예요. 농담처럼 문장을 문장 그대로 읽어서는 그 뜻을 결코 알 수 없으니까요.

미러링은 어떤 일관된 논리의 전개를 통한 사고의 결과를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오히려 일그러진 논리의 재현을 통해 사고의 정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미러링의 목적이지요. 미러링은 연설문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는 예술의 언어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환관제조일기>는 전복된 젠더 권력의 묘사를 통해 사고의 정지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냅니다. 여기서 작가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의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려 한다고 읽는 것은 무척이나 촌스러운 독법일 거예요.

 

그저 반복되는 모순 속에 미로를 헤매는 것처럼 사건의 이해와 사고의 진행이 뒤죽박죽 뒤섞여, 평소에는 결코 볼 수 없었고 갈 수 없었던 풍경을 바라보게 되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니까요. 뇌 대신 불알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렇게 잠시나마 고추를 예스컷하고 사고해볼 필요는 반드시 있겠지요.


김달 작가 특유의 서늘하고 처연하면서도 어딘가 온기가 남아있는 시선으로 관망하는 청나라의 궁궐 생활은 보는 이의 심장과 뇌를 뒤흔듭니다. 차갑게 식은 가위로 아름다운 비단을 종횡무진 가르는듯한 시원한 쾌감과 함께 말이지요.


김달 작가의 오랜 팬인 저로서는 <여자 제갈량>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 덥고 습한 여름만큼은 <환관제조일기>와 함께 고추 좀 떼고 땀 좀 덜 차게 보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안습의 상징 황제폐하.

 

 

YOUR MANAⒸDC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