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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 ‘선한 정치’와 ‘타산적 정치’의 결합과 균형감각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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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 (글 운 그림 김한석 다음웹툰 연재)

공무원 도전, 엄마의 가게일 돕기, 좋은 혼처를 찾아 결혼하기.

이 셋 중 아무것도 하기 싫은 장유진의 선택은 정치.



정치는 선한 사람들이 모든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장유진의 공간이지만,

그와 동시에 승리를 위해 피나는 경쟁이 이뤄지는 한태환의 공간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하다가 직장에서 해고된 장유진은 (술김에)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한다. 이후 장유진이 대학 동기인 괴짜 천재 한태환을 천신만고

끝에 선거 전략가로 영입하면서 두 사람의 선거 준비가 본격화된다. 학력도 명망도 재력도

없고 오직 성실함과 정직함, 열정만을 가진 주인공이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동원해야 하는

선거에 뛰어든다는 이 비현실적인 설정은 정치 장르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클리셰다.

즉, 덕 있고 선한 주인공과 천재 책사의 결합이라는 정치물의 공식을 통해 그 개연성을 충

당한다. 문왕-강태공, 유방-장량, 유비-제갈량으로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공식은

<랑야방> 같은 봉건시대 정치극에서만이 아니라, <쿠니미츠의 정치>, <여의주>와 같은

현대 정치물에서도 유지된다.


이런 공식이 이토록 오래 유지됐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이 공식이 정치에 대한 전통적

인 견해를 잘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는 선한 사람들이 모든 사람을 위해 봉사하

는 장유진의 공간이지만, 그와 동시에 승리를 위해 피나는 경쟁이 이뤄지는 한태환의 공

간이기도 하다.


두 영역에 대한 고려가 함께 이뤄지지 못할 때 주인공은 비현실적인 몽상가 또는 자기 이

익만 챙기는 냉혈한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

과 상인으로서 현실감각’을 동시에 지녀야 하는 존재이다. 이 관점 중 어느 한쪽도 배제

하지 않으면서 고려하는 방법으로서 정치 드라마는 유덕한 주인공과 냉철한 참모를 결

탁시킨다.


물론 장유진과 한태환의 결합은, 같은 클리셰의 인물들이 겪은 것과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승리를 위해 철저히 계산적으로 사태를 따지는 한태환은 정의감과

양심을 저버릴 수 없는 장유진과 사사건건 충돌한다. 이 충돌을 조정하는 장치는 정의로

운 장유진이 주인공이고 타산적인 한태환이 보조 인물이라는 설정이다(많은 정치물에서

그 역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한태환이 냉철한 관찰력을 통해 우위를 점하는 듯하다가, 이는 주인공

장유진이 정의감에 기반을 둔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뒤집힌다. 그러나 작

품의 이러한 인물관계가, <여의주> 안에서 ‘타산적 정치’에 대한 ‘좋은 정치’의 우위로 이어

지지는 못한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작품 전개만으로 비추어 볼 때는 그렇다. 이는 후술할

문제, 즉 선한 인물이 선한 정치가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선한 인물이 선한 정치로 이어진다는 환상

<여의주>의 독자들이 직면하는 혼란스러운 지점은 주인공 장유진의 정치적 승리를 응원

해야 할 이유가 전개과정에서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간접적으로 제

시되는 이유는 현역 의원 차필웅과 야당 후보 배춘금이 협잡을 일삼는 정치꾼일 뿐 진정으

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재벌가의 일원인 배춘금은 시민들을 질 낮은 하층민으로 볼 뿐이며, 연기자 출신인 차필

웅 역시 정치를 시민들 앞에서의 연기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해고노동자 출신인

장유진은 약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인물처럼 그려지는데, 이는 장유진이 첫 번

째 유세 장소를 대성시에서 가장 소외당하던 장소인 만선마을로 선택하는 점에서 드러난

다. 그런데 그 이상은 없다.


다시 말해 장유진이 국회의원으로 출마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작품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장유진이 대성시 출신의 서민이자 거짓말을 하지

않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며 노동운동을 하다가 해고된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개별적 이력

만이 독자들에게, 혹은 대성시 시민들에게 주어진 정보의 전부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그

리고 독자들은 어떤 이유로 무소속 후보 장유진을 지지해야 하는가?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작품의 실수는, ‘좋은 사람’ 장유진이 곧 ‘좋은 정치인’ 장유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규정하는 단선적 연관성이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정치가 곧

사람은 아니다. 장유진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좋은 정치를 할 것이라는 보

장은 어디에도 없다. 장유진이 후보 추천인 300명을 구하기 위해 해고노동자 농성 현장

에 찾아갔다가 문전박대 당하는 장면은 그가 제아무리 (심지어 같은 해고노동자 출신의)

좋은 사람일지언정 그것이 정치인으로서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보장으로는 이어지지 않

음을 함의한다.


좋은 정치인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자신이 추

구하려는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어떤 정치적 목표인가? 어떤 정

치적 방법인가? 놀랍게도 이 질문들은 선거가 채 2주도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전혀 장유

진에 의해 대답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이 문제들을 부분적으로나마 다룰 수 있었던 토

론회에서조차, “구체적인 질문들은 차후에 논의하자”라며 제쳐진다). 그렇기에 작품이 전

개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장유진의 말들이 아니라 한태환의 책략이며, ‘좋은 정치인’ 장유

진이 아니라 책략가 한태환의 존재감만이 남는다.


이러한 역전은 독자들에게 ‘선한 정치’와 ‘타산적 정치’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다시 고민을 안

긴다. 승리를 위한 천재적인 계획만이 아니라, 좋은 정치 자체에 대한 청사진 역시 구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서 <여의주>에 등장하는, 정의로운 주인공과 치밀한 책

략가의 결합이라는 고전적인 공식의 균형감각은 어긋나 있다.


좋은 정치인으로서 장유진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한태환에 의해 계획된 행동 대신 장유

진의 목소리 자체가 더 구체적으로 문제 상황들 속에서 제시되어야 한다.1) “국민만을 생

각하고 섬기겠다”라는 추상적이고 상투적인 구호만 내놓는 대신, 서민으로서, 여성으로

서, 해고노동자 출신으로서 장유진이 이바지하는 ‘좋은 정치’를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서원주 | 철학과 대학원생. 정치철학 & 사회철학 전공.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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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하우스 오브 카드>처럼 좋은 정치에 대한 고민을 내던지고

오직 정치적 승리만을 추구하는 드라마도 존재한다.

그러나 <여의주>가 그렇게 전개될 경우, 비중 있게 다뤄진

장유진의 성품과 정의감이 모두 무의미한 소품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