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스크랩]
<노견일기>를 그린다는 것
e6bd3795cb5ac0b1d6fef8b73d0686cf.JPG
53f46abdd03782703e9c368244c87c10.JPG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가 처음 만날 무렵 나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전혀 다른 곳에 와 있다.”

 

 

실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오래전 처음 만화를 그려 돈을 벌기 시작했던 때, 훗날 늙은 개 한 마리를 샅샅이

들여다보며 매일 말을 걸고, 반응을 살피고, 개에 대해 생각하고, 개를 그리고 또 그리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내게 만화는 그저 노력 대비 수입이 좋은 아르바이트 같은 것이었다. 당시 나는 정치

사회 문제를 풍자적으로 그리는 이른바 시사만화가였기 때문에 채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들로부터 정화백또는 정선생으로 불렸다. 요즘 한국 범죄영화에 등장하는 마약 제조상이나 손목 하나쯤

잃고 은둔한 도박 고수 같은 호칭이었다. 어떻게 젊은 나이에 벌써 이런 작품을 그리느냐, 대단하다, 장래가

촉망된다 등등의 칭찬을 들었고 이따금 공모전 같은 데서 상도 받았으며 덕분에 잔뜩 우쭐했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철이 없었다. 그때의 정화백은 꽤 밥맛없는 인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나와 놀아주었던 친구들이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새삼 감사의 마음과 사과 인사를 전하고 싶다. “고마웠습니다,

밥맛없게 굴어서 미안해요.”

 

그때 들었던 칭찬은 진짜 내가 잘 그려서였다기보다는 원고료 인상 대신 말 몇 마디로 퉁치려는 데스크의 계략이

아니었던가, 인제 와서 의심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겠지만. 하여튼 여차여차해서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누구에게나 그렇듯 내게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으며 요즘은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16년하고도 4개월가량을

함께 살아온 개 한 마리와 단둘이 제주도에서 헤엄도 치고, 해변을 달리고, 바다 쓰레기를 주우며 분노하다가

마감이 닥치면 갑자기 앗 뜨거! 큰일 났네하며 부리나케 만화도 그린다. 원래 둘은 아니었고 개가 두 마리여서

합이 셋이었는데 하나는 제주도에 내려온 지 1년 만에 뇌종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안녕, 소리야.” 떠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개의 이름을 부르면 마음속에서 울적한 비구름이 순식간에 뭉게뭉게 모여든다. TV에서

어떤 어린이 연기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우는 연기를 잘 해요, 하고 묻던 장면이 생각난다. “슬픈 생각을 해요.

엄마가 멀리 떠난다든지.” 아이는 대답을 하며 벌써 눈물을 그렁거렸다. 나도 떠나보낸 개 생각을 하면

언제든지 금방 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린이도 아니고 연기자도 아니어서 써먹을 일이 없는 게 좀 유감스럽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엔 불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다행인 것 같은 일은,

그때 내가 개들과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10년 넘게 잔뜩 찍어놓은 개들의 사진을 책으로 만드는 작업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주에 막 내려온 도시 촌놈의 어리둥절함에 대해 주간지에 에세이를 연재하는 것이었다. 개 사진을

책으로 만드는 일은 원래 항상 내 만화보다 내가 찍은 개 사진이 더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시작한 작업이었다.

그동안 먹이고 재우고 산책시키고 병원에 데려갔으니 이제 너희들이 돈을 벌어 오너라. 그런데 그저 찍어놓은

사진들을 엮으면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일이 기대했던 것처럼 쉽지는 않았다. 우선 수만 장의 사진 중에서

책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는 작업은 매우 곤란했다. 아무리 거저먹기 프로젝트였다곤 해도 사진 만으론 책의

모양새가 갖춰질 것 같지 않아 중간중간 만화를 넣기로 했는데 그 작업도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비극은 내 등

뒤에 있었다. 내가 책상에 코를 박고 일하는 동안, 개들은 산책하고 싶어서 들끓는 피를 한숨으로 삭이며

속수무책으로 소파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는 동안 개가 아팠다. 많이 아팠는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니, 실은 내색을 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했다.

책 작업만 끝나면 내가 실컷 놀아주마 하고 중얼거렸지만, 개에게 그럴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그때 나는

몰랐다. 책 만드는 작업이 끝난 후부터 홍보 활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나는 아픈 개를

부둥켜안고 안 아픈 개는 리드줄로 끌며 제주에서 서울까지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마침 처음 병을 발견했던 때에는

설 연휴와 주말이 겹쳐 긴 연휴가 생기는 바람에 문 연 동물병원 찾기가 어려웠는데 그 이전에도 이후로도 아직

그만큼 긴 일주일을 겪어본 일이 없다. 책이 나오고 인터뷰며 북토크며 홍보행사에서 개들에 관해 이야기해야

했던 무렵에 아픈 개는 이미 내 곁을 떠나고 없었다. 사람들은 앞에 앉아 있는데 슬픈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써먹을 데도 없는 눈물이 솟구쳐서 삼키느라 애 좀 먹었다. 책 만드는 일 말고 또 다른 하나의 일, 그러니까

제주 생활에 대한 에세이는 매주 꼬박꼬박 연재하고 있던 일이어서 당시 내 상황과 감정이 고스란히는 아니어도

꽤 담기게 되었다. 너무 징징거리면 그나마 얼마 안 되던 독자마저 떨어져 나가버릴까 봐 나름 의연한 척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는지 거기 담긴 문장들은 내게 일종의 인덱스가 되어 지금도 한 줄만

읽으면 당시 있었던 일과 감정들이 주르륵 딸려 나오는 것이다.

  


42d9306b8f991c66de7b712ba6eb9128.JPG
a1d69490e44ccaec9d18b09debfa1c09.jpg
60ff0cfa1d6e10d6b09847d258e75afb.jpg
 


 

<노견일기>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래서였다. 돌이켜보면 기록해둔 시기의 기억은 아직 기록되지

않은 사이사이의 일들까지 잘 떠올릴 수 있지만, 기록해두지 않은 때의 기억은 흐릿하거나 모호하거나 아예

내 안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언젠가 깨달았다. 나는 출퇴근 같은 걸 한 적이 없고 집에서 일했기 때문에

대부분 24시간 내내 개들과 같이 지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 땐 그게 부모와 자식 간이든 부부간이든

하루 중 절반 내외의 시간은 떨어져 있는 게 보통일 터이므로, 생활시간으로 환산하면 풋코와의 16년은 그 배의

시간에 가깝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문득 우리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으시고 하루 종일 나와 한 공간에

계셨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니 모골이 송연해지고 호흡곤란이 올 것 같은 기분이 좀 든다. 혹시 우리 개들도

그런 기분이었을까? 물어봐도 대답은 하지 않겠지만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래서 이 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존재가 되었고, 우리는 서로 삶 전체를

지켜봐 온 동반자 겸 관찰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런 존재가 머지않아 내 곁을 떠나가리라는

사실을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선망하고 있던 때 즐겨 펼쳐보던 책

<세계의 명견들>에는, 풋코와 같은 폭스테리어 종의 평균 수명이 10년에서 14년이라고 쓰여 있었다. 비록

병으로 떠나긴 했지만 12년을 살다 간 소리는 그럭저럭 제 수명을 누렸다고 볼 수 있겠고 풋코는 이제

그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리의 경우 이별을 알지 못한 채 갑자기 맞닥뜨렸지만,

풋코와의 이별은 어쩌면 차분히 준비하면서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게 지금을 기록할 도구가

필요했고 내가 만화가다 보니 그게 <노견일기>라는 만화가 된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과 좀 달랐던 부분이 있다. 처음 <노견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던 때는 겨울이었는데, 아마도 그게

풋코와의 마지막 겨울이 되리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함께 한 번의 겨울을 더 보냈고, 그다음의

, 여름까지 두 계절을 더 난 다음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 풋코는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에서 가을 냄새를

맡으며 킁킁거리고 있는데, 아직도 바다에 가면 해변을 뛰어다니고 첨벙첨벙 헤엄치기를 즐길 만큼 건강해서

도무지 이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다. 그러는 동안 <노견일기>의 연재 역시 1년을

넘겼고, 의외로 많은 독자로부터 격려와 응원의 반응을 얻고 있어서 좀 얼떨떨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뿐만

아니라 <노견일기>가 연재되는 포털 사이트의 댓글 란은 언제부턴가 독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나누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이야기, 함께 살고 있는 개나 고양이에 관한 사랑과 염려,

또 그에 대한 다른 독자들의 위로로 가득한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시시한 내 만화보다 훨씬 절절한 사연이

많아서 나 역시 눈물을 쏟곤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엔 <노견일기> 연재 원고 중 앞부분을 묶어 책으로 냈다.

책 머리말엔 이렇게 적었다.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가 처음 만날 무렵 나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전혀 다른 곳에 와 있다.”

 

그랬다. 정말이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함께 사는 삶을 통해 개들은 그런 나를 어디론가 조금씩 이끌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개와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간이 좀 더 자신 밖의 세상과 조화롭게 공존하길 갈망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대도시의 삶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게 개들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방식이고, 내게 만화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탐구의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대체 인간은 왜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가면서 개를 기르는 걸까? 언젠가 필연적으로 찾아올 이별의

순간을 알면서도 애정을 쏟는 건 어째서일까? 종을 넘어선 다른 존재와의 교류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 생각엔 이런 궁금증에 대한 답은, 얼마간 인간이 예술 활동을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삶이 어느 정도의 풍요를 누릴 때 인간은 그것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말이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개 기르기의 인문학이랄까.

 

고백하건대 <노견일기> 안에는 창작자로서 나의 회한 같은 것도 남몰래 담겨 있는 것 같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대부분 내 생활의 조각을 잘라 만화로 가공하는 일을 해왔는데 모름지기 예술가라면 내

이야기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 가상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잘 해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사실 그런 시도를 해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능력 부족과 게으름 탓으로 내가 지은 남의

이야기는 편집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오랜 세월 하드디스크 안에서 잠자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꼭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노견일기>에는 가끔 그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러니까 <노견일기>

대부분 내가 겪거나 보고 들은 이야기인 게 맞지만 100% 사실 그대로는 아니고 심지어 이따금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도 있다는 걸 얘기해둬야 할 것 같다.

 

만약 이 사실을 알고 <노견일기>의 독자들이 내게 돌을 던진다면? ,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세상에

통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의 근거로 삼고 앞으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정우열 | 개 뒤집기와 화초 죽이기에 능한 만화가. 제주도에서 개와 함께 헤엄치면서

살다가 쌀이 떨어지면 만화를 그리거나 글을 써서 팔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olddog 블로그 olddog.kr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