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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로 산다는 것과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과연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작가의 삶은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하다. 모든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유일한 끈은 입금과 마감뿐이다. 그렇다 보니 통제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복리로 불어난다.”



웹툰 작가의 건강관리라는 주제로 글을 쓸 작가를 정하는 편집회의에서 내가 지목됐다고 한다.

그리고 회의에 참석한 한 분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

“이종범 작가… 안 건강한데… 많이 안 좋은데… .”

나는 자기관리를 잘하고 열심히 건강을 지켜내는 작가로 자주 오해받는다. 이러한 오해를 푸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신 하드웨어는 튼튼한 편이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모든 것을

만화로 습득한 나는 자연스럽게 다케히코 이노우에 작가의 <슬램덩크>의 이끌림을 받아 농구소년이

되었다. 해적판을 구해서 본 코야마 유우의 <스프린터>를 보고 달리기를 연습하다가 중학생 때는

육상부에서 200m 선수가 되었고, 만화와는 무관하지만 (이유도 알 수 없지만) 씨름부에 들어가서

용사급으로 모래판을 누비기도 했다. 그러나 의사의 진단은 이랬다.

“퇴행성이 아닌 마찰성 관절염이 넓적다리 관절에서 심하게 나타납니다. 모든 운동을 오늘부터

금지하세요.”


이후로 20년 동안 내 삶에서 운동은 사라지게 되었다. 망한 부자의 3년처럼 나는 그 뒤 20년 가까이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체력과 근력으로 잘 살아남았다.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3개씩 해야만 했던

만화가 지망생 시절에도 밤샘해가며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내 얼굴 옆에는

언제나 ‘이때는 몰랐다…. 내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같은 나래이션 박스가 붙어있었던 것 같다. 긴

이야기를 짧게 정리하자면 나는 현재 심각한 허리디스크 질환과 초기 단계의 목디스크 질환을 갖고

있다. 이마의 모근은 절벽에 매달린 악당의 손아귀 힘처럼 점점 약해지는 것인지 매일 단말마 속에서

조금씩 모발을 떠나보내고 있다. 내 이마가 이렇게 넓었나. 복부의 내장지방은 흡사 대항해시대의

영국이 식민지를 넓히던 기세로 위세를 불리고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이스크림을 먹다 흘려도

절대 땅으로 떨구지 않고 배로 막아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네이버웹툰 <닥터 프로스트> 시즌 2를 연재하던 당시의 일이다. 작업실 건물의 샤워실에서

처음으로 디스크 질환에 의한 전신 마비가 왔다. 엄밀히 말하면 마비가 아니고 지독한 고통 때문에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진 셈이지만, 그 자세 그대로 바로 옆 수면실에서 3

일 동안 누워만 있었다.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1년 뒤에는 원고를 그리던

자세 그대로 똑같은 증세가 덮쳐왔다. 이번엔 구급차가 와서 나를 싣고 갔다. 상황은 심각했다.


경각심을 느끼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늘 느끼는 점이지만 고통과 두려움은 아주 강력한 동기가

되어준다. 미친 듯이 줄넘기를 하고 샌드백을 두들기면서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다시 건강해지는

건가, 이제 연재 중에도 구급차에 실려 가는 일 없이 작품을 완결할 수 있는 건가? 그런데 열심히 하는

나를 좋게 봐주신 관장님이 프로 테스트를 목표로 해보자는 말을 건네자마자 허리디스크가 악화되어

관두게 되었다. 대략 여기까지가 3년 전까지의 내 상태를 요약한 내용이다. 재무제표로 치자면 부도

직전, 나라로 치면 조만간 IMF가 찾아올 지경인 셈이다. 그리고 현재 나는 마흔을 2년 앞두고 다시금

총체적인 건강회복 프로젝트에 돌입하고 한 달을 보낸 상태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즉 이 글의 대부분은

얼마 전까지의 나를 향한 일갈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삶은 건강에 좋지 않은 요소들로 가득하다. 모든 프리랜서에게 있어서 자신을 관리해주는

유일한 끈은 입금과 마감뿐이다. 그렇다 보니 통제되지 않은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복리로 불어난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수면 패턴이다. 마감 직전의 철야는

마감 직후의 방종으로 이어지게 되고 수면 패턴의 붕괴는 아주 높은 확률로 체중 증가, 모공 약화로

이어진다. 두 번째는 운동 부족이다. 주로 앉아서 작업하며 에너지의 대부분은 뇌에만 할당한다. 뇌가

근육이었다면 세계 최고의 뇌 근육을 자랑할 종족이 작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뇌는 배은망덕하게도 주는 족족 에너지를 소비할 뿐 약화되는 건 온몸의 근골격계다. 허리와

어깨, 손목이 약화되기 시작한다. 좋은 점은 이 외에 나빠질 부위가 별로 없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이

부위들이 아주 처참하게 망가진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조언이라는 것들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게 마련이다. 선배 작가, 교수, 어른, 부모들이

하는 말들은 조언의 형식을 띠는 순간 거꾸로 든 컵의 물처럼 흩어진다. 그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날아가 버리는 조언의 대명사가 바로 ‘운동하라’라는 조언이다. 흡사 불볕더위 속 아스팔트 위의

드라이아이스 같다. 나도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던 대사지만(솔직히 말하자면 들었던 기억은 남아

있지 않고 기분만 남아 있다. 그 정도로 빨리 사라진다.) 그 누구도 이 조언을 듣자마자 ‘그래, 맞아.

운동할 거야. 당장 시작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앞서 말했듯 두려움과

고통은 최고의 동기부여 버튼이 되어주지만, 건강을 잃어버리는 경험은 보통 낡은 중고차의

제로백처럼 느린 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몸으로 체험한 고통이 동기를 유발한다면, 운동을

비롯해 건강한 삶을 위한 동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채워진다는 뜻이다. 흔히들 웹툰

연재를 마라톤에 비유한다. 그러나 절대로 연재 준비는 마라토너같이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보통 첫

연재 때에 그동안 살아오면서 쟁여둔 체력을 전부 탕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덕분에 공포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 작가들의 머릿속에선 그동안 클릭할 수 없도록 회색이 되어 있던 건강관리와

운동이라는 버튼이 활성화된다.


주위에 운동을 꾸준히 하는 작가들이 여럿 있다. 그들을 관찰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신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운동이 필요하다고 기껏 이야기해 놓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필요 때문에 하는 행동은 지속 기간이 짧다. 반대로 가장 오래가는 행동은 쾌락에 의한

행동이다. 즉, 자신이 어떤 종류의 운동에 매력을 느끼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는 모순이 있긴 하지만 어떤 사람은 운명적으로

즐거운 운동을 만나게 되고 어떤 사람은 끝끝내 찾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혼자 하는 운동을 좋아할까,

함께하는 운동을 좋아할까. 전자라면 당장 할 수 있지만, 후자라면 동호회나 클럽에 가입하는 편이

좋다. 특정한 종목의 스포츠를 좋아할까? 그렇다면 그 스포츠는 몸을 소비하는 쪽의 스포츠일까

단련해주는 스포츠일까. 전자라면 새로운 종목을 찾아볼 일이고 후자라면 매진하면 된다.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측면에서 자신에게 맞는 운동,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운동을 찾는 것이 대부분의

성패를 좌우한다. 나의 경우 기나긴 여정 끝에 찾아낸 운동이 바로 탁구와 맨몸 근력운동이다. 전자는

운명적으로 만났고 후자는 필요 때문에 도전했다가 매력을 알아가는 중이다.


운동이 어렵다면 한껏 기준을 낮춰보자. 비밀을 한 가지 말하자면, 어렵지도 않고 효과는 엄청난

건강관리의 핵심이 있다. 투자 대비 효과가 말도 안 되게 좋아서 좀 이상할 지경이다. 그건 바로 ‘이른

수면’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분들의 귓가에서 광속으로 흩어지는

조언이 되어가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지만, 체험에 기반을 둬서 말하자면 이것 한 가지만으로도

대부분의 건강 문제가 해결된다.


믿어도 좋다. 밤 10시가량부터 활성화되는 특정 호르몬들에 의해 체중이 줄기 시작하고 이미 망가진

몸이 강해지는 효과까지는 없겠지만 만성적인 무력감과 심리적인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한다. 너무 뻔한 방법이지만, 뻔한 만큼 당연한 이유로 작가들은 이 방법을 시도하지 못한다. 밤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이른 수면과 주 5일의 운동을 시작한 지 6주 차에 접어들고 있다. 7㎏

의 체중을 감량했고 요통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사막화가 진행되던 이마와

머리선 사이의 비무장지대가 조금씩 녹지가 돼가고 있는 것도 같다.


글을 마치려니 비참한 고해성사로 시작해서 다단계 영업같이 끝나버리는 글이 되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작가들 대부분의 귓가에서는 활자들이 흩어지고 사라지고 있겠지. 다 이해한다. 나도

작가로 살고 있으니까. 나처럼 건강을 잃은 뒤에야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 알고 있다.

억지로 끌고 가줄 사람은 없고 그런다고 따라올 종족도 아니다. 그러니 한가지 기원으로 마무리한다.

본인이 필요성을 느낀 그 순간. 부디 그 상황이 아주 최악은 아니길 바란다.◆


이종범 | 네이버웹툰 <닥터프로스트>에 건강의 8할을 바치고 이미 망친 건강을 되찾고자 고군분투하는 웹툰 작가.

팟캐스트, 유튜브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늘 기웃거리는 경계 불명 노마드 스토리텔러라고 자신을 칭하고 있다.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