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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된 웹툰, 안일한 소재주의와 K-드라마 문법의 한계를 넘어

이제 웹툰은 한국의 유력한 서사 매체가 되었다는 것이고 드라마는

이러한 웹툰의 강점을 흡수하거나 극복하는 방식으로서

동시대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웹툰이 드라마 시장에 던지는 질문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5년 전인 2014106일에 열린 tvN 드라마 <미생> 제작보고회에서 연출을 담당했던 김원석 감독은

동명의 원작 웹툰과의 정서적 교집합에 대해, 작은 사건 하나에도 현미경으로 들이밀 듯 세세하게 비추는

연출을 시도했노라 밝힌 바 있다. 사실 원작이 다음웹툰에서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고, 만화가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이 찬사를 보내던 중에도 혹자는 갈등과 해소의 파고가 그리 높지 않은 <미생>

스토리로는 영상화가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만큼 연출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기존 한국의]

오피스 드라마에선 재벌 2, 3세 남자 주인공과 신입 여성 직원의 로맨스를 그리거나, 회사의 명운이 걸린

대기업 간 암투가 벌어지는 반면, <미생>에선 정직원이 되기 위한 인턴들의 프레젠테이션이 세상 무엇보다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주제 선정, 발표 팀원 간 호칭 정리 같은 아주 작지만, 본인들에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순간들을, 김원석 감독의 카메라는 밀도 높게 잡아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높은 시청률과 대중과

평단의 고른 호평이 있었다. <미생>은 한국 오피스 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것은 연출자와 드라마 작가,

연기자들의 공로지만, 또한 웹툰 원작이 가진 장점을 전혀 다른 미디어인 드라마 안에 유의미한 수준으로

이식하려는 노력이 더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웹툰 원작이 원 소스 멀티 유즈 혹은 트랜스

미디어를 통해 드라마 시장에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웹툰 원작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특성들이 드라마의 기존 문법에 변화라는 압박을 준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웹툰의 드라마화는 단순히

해당 드라마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거나 재밌는 결과물이 나왔느냐는 것과 별개로 한국 드라마의 문법에

유의미한 영향과 경쟁 압력을 줬느냐는 맥락에서도 돌아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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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선녀전> 드라마에서 원작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재현해내기란 쉽지 않았다.

제작비와 제작 기간의 제약이 있었겠지만 극의 분위기를 방해하는 CG는 아쉬웠다.

 

 

소재주의, 웹툰 원작을 다루는 양날의 방식

드라마의 러브콜을 받은 웹툰들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라면 소재적인 특성이 한눈에 드러나는 장르물이라는

것이다. 메디컬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 오피스 드라마는 회사에서 연애하는 이야기, 법정 드라마는

법정에서 연애하는 이야기라는 꽤 오래된 농담(이자 진담)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국 드라마에서 SF나 판타지,

추리, 공포, 스포츠 등 장르적 특성은 거의 언제나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라는 좀 더 거대한 요소에 흡수되기

일쑤였다. 나름 신화적 세계관과 공들인 CG를 선보였던 김은숙 작가의 tvN <도깨비>를 보라. 천 년 조금

안 되게 살아온 신적 존재인 김신(공유)과 전생의 업보 등이 뒤 얽힌 세계를 설정에 깔고 있지만, 결국 드라마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전능에 가까운 능력을 지녔으나, 어딘가 어수룩한 매력의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끌리는 연약하지만 씩씩한 여성의 연애라는 김은숙 표 트렌디 드라마의 오랜 문법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만화 혹은 웹툰 특유의 장르적 특성과 소재주의는 한국 드라마에 어느 정도의 다양성을 부여해준다.

 

OCN에서 방영한 2014년 작 <의사 프로스트>는 원작과 같이 주인공인 천재 심리학 교수 프로스트(송창의)

추론을 중심에 놓고 강력 범죄를 해결하는 추리물로 만들어졌다. 원작인 웹툰 <닥터 프로스트>는 사이코패스나

해리성 장애, 프로파일링 등 기존 추리 장르물에서 선호하던 극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일상 영역에서 겪을 수

있는 마음의 병을 주로 다뤘다는 점에서 드라마에 원작의 미덕이 고스란히 전달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드라마를 원작의 스핀오프처럼 구성하는 방식을 통해 구구절절한 캐릭터 설명 없이 천재 심리학자와 경찰의

수사 공조라는 설정을 무리 없이 그려낼 수 있었다. 해당 드라마의 완성도를 한국의 <크리미널 마인드>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국내 IP로 심리 분석과 범죄 해결이라는 요소를 결합해 서사로 풀어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마찬가지로 일종의 퇴마 장르라 할 수 있을 2016년 작 tvN <싸우자 귀신아> 역시 귀신을 보고

만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박봉팔(옥택연)과 수능을 못 치른 한으로 원혼이 된 김현지(김소현)라는 캐릭터를

활용해 원작처럼 호러, 액션, 로맨틱 코미디가 뒤섞인 혼합 장르를 지향한 바 있다. 2016년 작 KBS <동네 변호사

조들호>의 경우 주인공의 이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게 바뀌었고, 소소한 에피소드 위주였던 원작과 달리

거대 권력과 다툼을 그려내며 기존 법정 드라마의 거대 서사에 가까워지긴 했지만(이러한 거대 서사에 대한

집착은 두 번째 시즌인 <동네 변호사 조들호: 죄와 벌>에서 더 두드러진다), 여전히 직관적인 제목 안에서

감자탕집 강제 퇴거 문제, 유치원 원장의 아동 학대 등 현실적인 분쟁 이슈를 녹여내며 최고

시청률 17%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소재주의는 많은 경우, 원작의 재밌는 설정 한두 가지만을 가져와 기존 드라마의 문법에

끼워 맞추는 수준의 방식으로 진행되기 일쑤였다는 데 한계가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가장 뜨거운 배우 중

하나인 주지훈을 캐스팅하고 100억이 넘는 제작비를 들이고도 시청률 3%에 그친 2019년 작 MBC <아이템>

있다. 원작으로부터 제목과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물 아이템이라는 설정만 가져오고, 그 외 캐릭터와 서사의

모든 부분을 새로 만들어낸 이 드라마는 정의로운 검사와 사이코패스 재벌 2세의 대결이라는 구도 안에

아이템이란 소재를 끼워 넣었다. 그것이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드라마에서 아이템에 집착하는 재벌 2

조세황(김강우)의 악행 상당수가 굳이 아이템을 쓰지 않아도 가능한 일들이란 것이다. 검경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을 지닌 이가 굳이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한 교통경찰에게 시력을 빼앗는 향수를 쓰는 모습을 보며 판타지의

장르적 쾌감을 느끼긴 어렵다. 즉 기존 드라마의 선악 구도에 아이템을 억지로 끼워 넣은 느낌이다. 이러한

문제는 냄새를 눈으로 본다는 설정만 남기고 주인공부터 배경까지 모든 걸 흔한 한국 로맨틱 코미디로

구성한 2015년작 <냄새를 보는 소녀>, 역시 제목과 미신을 맹신하는 주인공이라는 설정만 남긴 2016년 작

<운빨로맨스> 등에서 반복됐고, 지금까지 웹툰의 드라마화에서 꾸준히 벌어지는 문제들이다. 다시 말해 웹툰

원작의 독특한 설정과 소재는 꾸준히 드라마 시장의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정작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웹툰

특유의 정서와 서사적 특징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작품은 잘 보이지 않는다.

 

K-드라마의 통념을 넘을 수 있을까

이러한 편의적 소재주의의 함정을 소위 원작과의 싱크로율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지난해 말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큰 기대를 받았던 두 편의 웹툰 원작 드라마 tvN <계룡선녀전>JTBC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의 경우를 보면 단순히 캐릭터와 서사의 싱크로율을 기계적으로 높이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원작의 캐릭터와 설정, 그리고 이야기의 구성 요소 상당 부분을 거의 그대로

가져 왔다. <계룡선녀전>은 심지어 극 중 호랑이로 변신하는 점순이 캐릭터를 CG로 구현하는 노력까지 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원작에 담긴 로맨스 서사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기존 한국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클리셰를

답습하느라 원작의 미덕을 조금도 살리지 못하는 우를 범한다. <계룡선녀전>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이자 예민한

성격에 이성을 신봉하던 정이현(윤현민)은 드라마에선 예민하다기보다는 과거 SBS <파리의 연인>에서부터

이어져 온 흔한 버럭남이 되었고, 그런 이현과 적절히 건조하면서도 깊은 우정을 유지하던 이함숙(전수진)

드라마에선 이현을 짝사랑하며 선옥남(문채원)과 이현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만든다.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원작 파괴 방식도 <계룡선녀전>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데, 병적인 결벽증을 지닌 청소업체 CEO 장선결(윤균상)

원작에서도 예민했지만, 드라마 안에선 대놓고 타인에게 까칠하게 군다. 또한, 여기서도 원작에 없던 최군(송재림)

캐릭터가 등장해 주인공 선결과 길오솔(김유정)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만든다. 해당 원작들이 한국 드라마 속

클리셰의 대척점 혹은 보완할 지점에서 로맨스를 구성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계룡선녀전>

원작에서 정이현과 선옥남, 혹은 정이현과 김금 사이의 이성애적 로맨스는 그저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며,

중요한 건 각 인물이 서로와의 관계 안에서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총체적 과정이다.

<일단 뜨겁게 청소하라>의 경우 원작부터 명백한 로맨스 장르지만, 선결과 오솔의 로맨스는 두 인물의 심리적

문제를 치유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복잡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과 관계들을 눈에 띄게

납작한 K-로맨스 캐릭터로 변환해버렸다. 어차피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로 범벅된 대본은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왜 굳이 웹툰 IP를 원하는가. 정말로 원작의 장점을, 기존 서사 매체에선 볼 수 없던 개성 있는 캐릭터와 서사를

이식하겠다는 욕심이 있기나 한 걸까. 로맨스는 언제나 한국 트렌디 드라마의 주요 요소였고, 특히 욘사마열풍을

일으킨 KBS <겨울연가>의 성공과 한류 열풍 이후 절절한 로맨스는 한국 드라마를 규정하는 장르적 특성이

되기도 했다. 사랑이, 로맨스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이 안에서 통념처럼 자리 잡은 로맨스 공식이 맥락 없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드라마 <미생>의 주요 미덕 중 주인공 장그래(임시완)와 동료 안영이(강소라)

사이의 로맨스 없는 동료애를 꼽을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드라마 안에서도 성공적이었지만 꼭 로맨스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통념을 이겨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회사 일과 조직의 메커니즘이라는 소재에 깊이 천착한 원작의

관점을 상당 부분 수용하는 동시에 세대론적인 관점까지 녹여낸 <미생>에서 장그래와 안영이 포함 동기들 간의

신뢰 가득한 수평적 관계는 작품의 주제 의식과 희망적인 전망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구도 중 하나였다.

여기에 로맨스가 끼얹어져 장그래와 안영이 사이, 혹은 장백기(강하늘)까지 포함된 삼각 관계가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물이 나왔을 것인가.

 

<미생>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니고 있지만 역시 tvN에서 방영됐던 2018년 작 <김비서가 왜 그럴까> 역시 기존

한국 드라마의 문법을 배반하며 성공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선 원작 웹 소설과 웹툰보다 좀 더

뻔뻔하게 그려진 이영준(박서준)과 더 단호해진 김미소(박민영) 캐릭터는 기존 한국 드라마 속 재벌 2세와

여성 직원 간 로맨스라는 클리셰를 비틀어 관계를 역전시킨다. ‘자뻑에 빠진 이영준에게 질린 김미소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사를 통보하고, 이영준은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원하면 연애까지 해주겠노라

선심 쓰듯 말하다가 거절당하는 모습은 기존의 재벌 왕자님 캐릭터와 로맨스 서사를 뒤틀고 희화화한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로맨틱 코미디에 충실한 작품이 되었지만, 드라마의 초반 임팩트는 확실했다. 원작이 왜 인기를

얻었는지, 재미 포인트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이해한 연출과 연기는 드라마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좋은 선례가 나왔음에도 많은 드라마가, 심지어 웹툰 원작 드라마들조차 K-드라마적 클리셰와 고정된

문법을 고민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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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를 검색하고 이미지를 따로 거르면 캐스팅에 대한 기사와

정보가 대부분이다. 웹툰에서의 캐릭터가 현실에서 어떻게 보여지는지,

싱크로율은 어떻게 되는지가 관심사인 것은 당연해 보인다.

 

 

웹툰이라는 경쟁 압력

올해 하반기 기대작으로 스릴러물 OCN <타인은 지옥이다>와 코미디인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 등이 있다.

네이버웹툰 자회사인 스튜디오N이 참여한 이들 라인업에서 원작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드라마의 문법을

다양화하는 결과물들이 나오길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웹툰이 드라마에 미치는

진정한 영향은 웹툰의 드라마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보단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서사 장르로서 웹툰이

드라마에 미치는 경쟁 압력이라는 것까지 고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가령 넷플릭스 <킹덤>의 경우

김은희 작가가 참여한 만화 <신의 나라>가 확장된 프로젝트다. 이것은 만화 원작의 드라마화인 동시에

만화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조선 시대 좀비물이라는 설정이 넷플릭스를 통해 더 구체화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또한 <미생>의 김원석 감독은 이후 연출작인 tvN <시그널>, <나의 아저씨>에서도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를 최대한 배제하거나 지연하며 이야기의 집중도를 높였다. 이러한 드라마 시장의 작은

변화들이 모이고 모여 어디로 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이제 웹툰은 한국의 유력한

서사 매체가 되었다는 것이고 드라마는 이러한 웹툰의 강점을 흡수하거나 극복하는 방식으로서 동시대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살벌한 적자생존의 법칙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어떤 이야기 장르든

시대에 맞춰 계속해서 변화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방식으로서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진보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웹툰이 드라마 시장에 던지는 질문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위근우 | 2008년 엔터테인먼트 전문 웹진 <매거진 t>에 입사해 대중문화 전문 기자로 활동을 시작.

그 뒤 <텐아시아>, 웹매거진 <아이즈>에서 취재팀장으로 일했다.

<지금만화> 1~3호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지금은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쓴 책으로 <웹툰의 시대>, <프로불편러 일기>,

<젊은 만화가에게 묻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가 있다.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