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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이 동시대 청춘을 반영하는 세 가지 방식

‘진짜’ 청년의 현실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하고 싶다면, 몇 번의 마우스 클릭과

시간 투자면 충분하다. 화려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은 동시대의 진실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기록되고 있다.



캠퍼스의 낭만과 로맨스

<치즈 인 더 트랩>(이하 <치인트>)이 네이버웹툰에서 재연재 중이다. 그 소식을 듣고 <치인트>

를 다시 들춰보았다. 잊혔던 기억과 감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작품 속 인물들이 대학 생활을 하

던 시기는 내 대학 시절과도 겹쳤고, 당시 작품이 그려낸 대학의 인간군상(이라 쓰고 진상이라 읽

는다)들에 격하게 공감하며 주인공의 갑갑한 심정에 몹시 이입했었다.


등장인물 중 김상철과 손민수는 특히 악명을 떨쳤다. 김상철은 이기적이고 위계적인 선배로 자기

보다 조금이라도 잘난 사람들은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강자에게는 깨갱거리면서 약자에게는 폭

력을 통해 이득을 갈취하는 짜증 유발자다. 손민수는 호감과 동경으로 홍설을 따라 하다가 점차

경쟁의식과 피해 의식으로 그를 미워하게 된 인물로, 유정이 설에게 선물해준 인형을 훔치고, 설

의 동생 홍준을 몰래 촬영해 연인이라고 주변에 거짓말하며, 리포트 사이트에서 설의 리포트를

구매한 뒤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조별 과제에 가져오는 만행을 벌인다.


이런 행동은 괜히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태도와 관련 있다. 20대 초중반, 내게도 있던

태도다. 대학이라는 목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입받고, 이를 위해 극심한 경쟁을 뚫고 대

학이라는 좁은 사회에 가까스로 닿은 그때, 그러나 안심할 수도 없이 또 다른 경쟁과 불안 속에서

헤매야 했던 그 시절. 우리는 쉬이 상철과 민수를 경험했고, 어쩌면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상철이

고 민수였을 테다. 그래서 <치인트>는 그토록 많은 이의 마음에 닿았다.


하지만 공감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홍설에게 우연의 남발로 불행이 ‘몰빵’되는 것은 리얼리티가

떨어져 보였고, 지지부진 거듭되는 졸렬한 사건들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아니, 이 인간들은

성장이라는 걸 조금도 하지 않나? 편리하게 고정된 스테레오타입 악당들은 이 작품이 로맨스 장

르에 속한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하게 만든다. 이 작품이 로맨스임을 뚜렷이 인지한 또 다른 지

점은, 30년을 넘게 살아도 한국에서 유정과 인호 정도의 잘생김이 묻은 남자 사람을 실제로 만날

수 없었다는 슬픈 현실에 있다. 현실의 충실한 재현을 노렸다면 유정과 인호 같은 캐릭터는 외양

부터 불가능했겠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고, 학과 사람들과 두루 알고

지내는 ‘인싸’ 홍설 역시 똑소리 나는 청춘이다. 즉 아무리 진짜 같은 디테일이 존재한다고 할지

라도, <치인트>는 판타지를 버무린 로맨스 작품이라는 것. 독자가 이 장르에 기대하는 것은 일상

에서 접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인물들에 대한 구경이다. 그들이 관계를 진전하며 화학반응을 흩뿌

리고, 그 과정에서의 설렘을 독자도 나눠 받을 수 있기를 욕망한다. 팍팍한 청춘의 현실을 그대로

만 재현한다면 욕망의 달성은 요원하다.


청년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는 장르

로맨스의 설렘을 제거한 채 청년 세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면 어떤 장르가 적절할까.

김숭늉 작가의 <사람 냄새>를 예로 들어보자. 작품은 고시원에 살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리는 성호의 일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2년이 지났지만 취업이 되지 않

아, 랜선으로만 세상과 소통하며 ‘없는 사람’처럼 지낸다. 그의 ‘소통’은 고시원에 사는 다른 사람

들을 혐오하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혐오감을 표출하는 글을 쓰는 것이지만 말이다. 고시원 사람들

과 단절된 생활을 하며 옆방 남자가 자살하고 좀비로 변해도 며칠을 모른다. 그렇게 한국 곳곳에

서 좀비들은 방치됐고, 기하급수적으로 그 수가 늘어나 한국 사회를 무너뜨리고 만다. 이에 고시

원에 남은 사람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외부와의 단절을 꾀한다.


이후 작품은 폐쇄된 고시원 내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갈등, 폭력에 주목한다. 이때, 인물 기저의 심

리를 응시하려는 노력은 작품의 빛나는 점이다. 취업 준비생 세희는 지방대를 다니다 수능을 다시

봐서 고시원 근처의 수도권 대학으로 온 여성으로,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하며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치인트>의 홍설과 달리)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답답하고 막막할 때는 <긍정의 청춘>이

라는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현실의 무력감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

문이다. 그런데도 오 씨 아저씨의 성추행이 주는 불안은 도저히 덜어지지 않는다.


오 씨는 IMF로 실직한 뒤 공사장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걸핏하면 술 먹고 아내를 때려서

참다못해 아내가 그를 떠났던 과거가 있다. 그는 한국의 흔한 꼰대처럼 성호에게 말한다. “성호

씨, 서른이라고 했지? 젊을 때 이것저것 해봐야지. 내가 성호 씨 나이로 돌아간다면 당장 나가서

뭐든지 다 해볼 거야.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패기가 없는 것 같아. 열심히만 하면 뭔들…” 서른

살은 오 씨의 아내가 떠났을 때 그의 나이였다. 그가 누구에게 충고할 입장인가? 오 씨는 돈이 없

거나 너무 비싸서 갖지 못하는 물건은 몰래 훔치거나 뺏어서라도 갖고 싶어 했고, 여자를 물건처

럼 생각하기에 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인다. 결국 그는 야만으로 돌아간 고시원에서

가장 야만적인 존재가 된다. 약 30살 어린 세희를 성추행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상상하지 않는 거야. 내가 아닌 남의 입장이나 고통,

그런 것들을 굳이 상상하지 마. 그런 건 좀비가 없던 세상에서도 사치였어”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는 작품 속 좀비 창궐 사태가 지금 한국의 청년에게 놓인 재난적인 상황과 다르지 않음을 역

설한다. 열악한 주거 환경, 저임금 불안정 노동, 타자에 대한 혐오, 꼰대들의 간섭, 미래에 대한 불

안, 여성들에게는 높은 성범죄 위험까지. 이런 상황을 상기하면 지금의 청춘의 불안과 공포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는 어쩌면 호러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생각에 접속해 위로 받을 수 있다면

그러나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위로를 남기는 작품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계속 살아갈 힘

을 얻기 위해서다. 이런 작품으로 김정연 작가의 <혼자를 기르는 법>이 내게는 최고였다. 절

제된 컬러와 굵은 선으로 간결하게 그려졌지만 전하는 감상은 풍부한, 이 작품의 주요 화자는

‘이시다’이다. ‘훌륭한 분-이시다. 귀한 몸-이시다’를 떠올리며 작 중 부친이 지어준 이름이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일본어 ‘시다바리’가 떠오르는 삶을 살아간다. “시다 씨! 우체국 좀 다녀와!”

“시다 씨, 이거 복사 좀.” 쉬는 시간, 털레털레 담배 피우러 나간 시다는 얼굴처럼 보이는 것

들에게 말을 거는데, 그날의 얼굴은 포크레인의 헤드라이트였다. 동질감을 느낀 것도 잠시,

시다는 배신감에 휩싸인다. ‘1일 작업, 8시간 정착’ 포크레인에 쓰인 지침을 읽어보니 자신은 중장

비 기계보다 오래 일했다. 포크레인보다 오래 일한 어느 날, 지친 몸을 이끌고 혼자만의 집에 온 시

다는 의자에 걸린 가디건에 몸을 맡긴다. ‘그래, 이씨. 계속 이렇게 안아줘 봐. 으음. 백허그 좋네.’


시다가 혼자 살게 된 계기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팝업창이 엄청 많이 뜨는 사이트를 시작 페

이지로 설정한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기는 얼마 주냐? 많이 받냐?”, “어디 다녀왔냐?

그 차림새는 뭐냐?” 같은 질문 폭격들 말이다. 나 이거 뭔지 알아. 내 기분은 고려 않고 잔소리의

포문을 열기 위해 던지는 떡밥이잖아. 내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신나서 나누는 대화는 삶의 매

우 중요한 부분이다. 오랜 시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스트레스만 준다면, 뛰쳐나오는 게

지극히 온당하다.


문제는 서울의 주거비가 미쳤다는 거다. 시다에게도 척박한 주거환경이 기다리고 있다. 시작은

고시원이었다. 방음이 안 되는 고시원을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은 서울에 혼자 사는 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합판으로 대강 벽을 세운 다가구 주택에 살며 얼마나 분노

했던가. 문을 닫았는데도 옆집과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소음에 취약한 집이라니. 지들이라면 못

살 이딴 집을 지어놓고 돈 받아 처먹는 양심에 털 난 집주인 놈들 생각하니 또 분노가 치솟네?


주거 문제를 떠올리면 분노로 이성을 잃어버리는 나와 달리, <혼자를 기르는 법>은 덤덤한 태도

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날카롭다. 그러한 시선과 태도로, 작품은 혼자의 삶에

서 오는 단상들과 노동의 고됨에서부터 넓은 세계 속 개인의 왜소한 존재감에서 오는 막막한 감

정까지 전한다. 그 정서가 퍽 공감되고, 묘하게 위로가 된다. 이런 톤은 댓글난에서도 이어진다.

독자는 자기의 경험을 풀어놓으며 작가의 생각에 공감을 표한다.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 그러

니 웹툰을 봤다고 끝이 아니다. 댓글까지가 콘텐츠다.


그곳에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같이 대자본이 투입된 곳에서 덮어두는 청년의 현실이 있다. ‘진

짜’ 청년의 현실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하고 싶다면, 몇 번의 마우스 클릭과 시간 투자면 충분하다.

화려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은 동시대의 진실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기록되고 있다. ◆


최서윤 | 독거인, 원룸생활자, 가지가지러, <불만의 품격> 저자, <미운 청년새끼> 공동 저자.



*<지금, 만화> 제1호~제5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PDF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